성경말씀 의미와 교훈357 마지막 시험, 아들을 제물로 여호와 이레 뜻은 죽어야 할 자 대신에 제물을 준비하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죽여 번제로 바치라고 하였는데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려 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40여 년 이상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왕 바로와 그랄 왕 아비멜렉까지도 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경수가 끊어진 사라에게 새 생명을 탄생케 합니다. 애굽으로 두 번이나 내려갔어도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오십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시험은 상대방을 잘못되게 하는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2024. 9. 29. 일곱 개의 우물을 사다 이방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네가 하고 있는 모든 일 안에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모든 행동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칭송하는 아비멜렉과 언약을 합니다. 아브라함이 암양 일곱 마리를 주면서 우물 일곱 개의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브엘세바라는 말은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 개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우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맹세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이 반드시 자기와 자기 후손들의 소유가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실제로 그 땅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넘어온 것은 430년 후입니다. 더 크게는 다윗 왕 때 완전한 정복이 이루어진 때입니다. 그러면 1,000년 후입니다. 아브라함은.. 2024. 9. 29. 아내를 판 댓가 가데스라는 말은 거룩한 샘입니다. 민수기에서는 ‘가데스바네아’로 나옵니다.(민 32:8) 이곳은 신 광야에 위치한 오아시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한동안 머물렀습니다.(신 1:46) ‘술’은 ‘성벽’이란 뜻으로 출애굽 한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에 제일 먼저 묵은 곳입니다. ‘그랄’은 ‘거처’라는 뜻으로 한때 아브라함과 이삭이 기근을 피하여 내려갔던 땅입니다.(창 26:1‐6) 그랄은 이름대로 거처하기에 좋은 땅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처럼 아흔 살이나 먹은 첩 하나 얻기 위해 남편을 죽이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듣자마자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바로 잡으려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네가 나를 큰 죄에 빠지게 할 뻔했다고 경책합니다. 그는 그런 일.. 2024. 9. 28. 소돔을 대체할 소알을 찾은 롯 롯은 세상과 더불어 쾌락을 즐겼습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신앙의 여정을 함께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떠났고 세상 사람들과 교제했습니다.롯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돔과 그 속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롯은 말씀을 듣자마자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반대했습니다. 하나님은 머뭇거리는 롯의 팔목을 억지로 잡아끌어 구출합니다. 롯은 그 앞에서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19절)’하고 또 주저앉습니다. 롯은 불에서 건져주신 것은 고맙지만 힘들어 산까지는 못 가겠다고 합니다. 롯은 하나님께 소돔처럼 평야에 있는 소알로 가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롯은 하나님을 설득하려 합니다. 소알은 작은 성이니 그냥 놔두고 .. 2024. 9. 28. 의인을 위한 중보기도의 힘 하나님은 죄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고자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를 막고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들을 생각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로 롯이 구원받습니다. 롯은 천사들이 손목을 잡고 끌고 나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도 술에 취해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경은 롯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롯은 소돔 성의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롯을 의로운 자라고 부럽니까? 아브라함은 의로운 자를 악한 자와 함께 벌하시는 것이 가하냐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거기 있는 의인들은 모두 살려 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19장 29절에서 그 롯이 소돔 성에서 빠져나오게 된 이유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라고 기록합니다. 롯이 의인이 되고 소돔 .. 2024. 9. 28. 세상 사람들과 반대로 나그네를 대접한 아브라함 팔레스타인 지방의 정오는 보통 화씨 150도, 섭씨 58도입니다. 현재도 이 시간에는 낮잠을 자거나 집 안에서 쉽니다. 아브라함도 장막 문 앞에서 쉬고 있었습니다.(창 43:16,25) 세 사람의 나그네가 아브라함의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분은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여호와였고 나머지 둘은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행임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주석가들은 3절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이라는 기록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아보았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기보다 높은 사람들을 흔히 주라고 불렀습니다.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은 ‘제가 좋게 보이면, 제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처럼 보이면’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상전처럼 .. 2024. 9. 28.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3년 만에 나타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코람데오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번역이 된 단어는 ‘엘샤다이’입니다. 그 말은 ‘엘’(하나님, 강한 자) ‘샤다이’(기르는 자, 능력 주시는 자, 충만케 하는 자)의 합성어로 ‘모든 것을 기르시고 충만케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람(Abram)은 ab(father)와 ram(high)의 합성어입니다. ‘높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이 이름을 Abraham'열국의 아버지‘로 바꿉니다.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꿉니다. 사래는 ‘나의 왕비, 조롱’이라는 뜻이고 사라는 그냥 ‘왕비’라는 뜻입니다. 사라는 자식이 없어 조롱받던 아브라함의 아내에서 열국의 어.. 2024. 9. 28. 이스마엘 ㅡ고통을 들으시는 여호와 아브라함은 사라의 권유로 이스마엘이라는 작품을 만듭니다.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당시 이러한 행위는 자연스러운 관습이었습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 때문입니다.. 아내의 요청을 수락한 아브라함도 같은 사람입니다. 이는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여긴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니다. 이스마엘의 탄생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하갈 세 사람의 관계의 파괴를 가져옵니다. 사라는 자신이 아브라함을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하갈이 임신을 하자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모든 책임을 돌립니다. 아브라함은 위기가 닥치자 임신한 하갈을 사라의 처분에 맡깁니.. 2024. 9. 28. 고삐를 쥔 자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믿음 믿음은 아무런 의심 없이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객관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의해 주관적 믿음이 나옵니다. 성경적 믿음은 외부의 힘에 의해 끌려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고삐를 쥔 자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믿음의 전 과정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진행하고 완성합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할 때 쪼갠 짐승사이를 지납니다. 이때 ‘쪼개다’라는 히브리어는 ‘바타르’이고 이 단어는‘바라’를 어근으로 합니다. ‘바라’라는 단어를 어근으로 갖는 다른 단어는 ‘베리트’ 곧 ‘언약’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언약은 모두 쪼개짐을 전제합니다. ‘칼로 자르다, 칼로 쪼개다’라는 단어 ‘바타르’의 동의어는 히브리어 ‘물’이.. 2024. 9. 28. 믿음을 의롭게 여기다. 조카 롯을 구출하는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아브라함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동방의 연합군들을 삼백 열여덟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좇아가 습격합니다. 전리품과 포로를 빼앗아 옵니다. 아브라함이 출격하여 조카 롯과 원정대의 탈취 물들을 빼앗아 오긴 했지만 동방 연합군의 재침공이 걱정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거절한 소돔 성의 많은 전리품들도 미련이 남았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후손들을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아들 한 명 없자 하나님에 대한 불신도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찾아가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방패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방패는 전쟁 때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2024. 9. 27. 조카 롯 구출 작전 조카 롯이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318명 가신들을 모았습니다. 주변 헤브론 땅의 아모리 족속, 마므레 삼 형제의 부족, 즉 마므레와 에스골과 아넬 족속으로부터 소수의 동맹군을 얻어 전쟁에 참여합니다. 상대는 가나안 땅 전체를 점령하고 수많은 전리품과 포로들을 이끌고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가는 막강한 동방 원정군이었습니다. 자기의 이익만 좇아 떠난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속으로 쾌재를 불러야 맞습니다. 그런데 그는 구하러 갑니다.. 바위에 계란 치기 싸움이 뻔합니다. 상대는 막강 4개국의 연합군입니다. 상대는 이미 직선거리로 140마일이나 먼 길까지 철수한 상태입니다. 600리를 길은 일주일 동안 계속 달려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힘겹고 손해뿐인 싸움입니다. 아브라.. 2024. 9. 27. 롯과 아브라함의 선택 네겝에서 3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살던 삼촌과 조카 사이의 관계가 소유가 많아져 분열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처음 들어가 겪은 어려움은 기근이었습니다. 지금은 정 반대로 풍부하여 어려움이 찾아옵니다.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재벌가 2세들도 재산싸움이 치열합니다. 물질이 인간을 다스리는 힘은 큽니다. 성경은 재물을 하나님과 견주어서 맘몬신 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하였습니다. 더 이상 물욕과 불신에 사로잡힌 이기적인 인물이 아니라 이제는 성숙해졌음을 엿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했습니다. 조카 롯은 땅의 선취권을 주겠다는 삼촌 아브라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단을 바라보았습니다. 창세기의 기자인 모세는 아.. 2024. 9. 27. 나그네요 이방인처럼 살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주신 복은 이 이후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복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라는 뜻은 ‘아브라함 안에서’입니다. 아브라함이 전하는 복음에 동의하는 자는 복을 받고에 동의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백성들의 대표로 가장 먼저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과 나홀과 데라로 이어지는 ‘셈의 후예들’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아브라함도 아비 데라의 영향 아래 우상을 섬겼습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고 풍요로운 도시였습니다. 사 천년 전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나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사람들은 달의 신인 ‘씬’이라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야곱과 라헬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도.. 2024. 9. 27. 바벨탑을 쌓은 이유ㅡ스스로 하늘에 닿으려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떠났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인생에 왕이 되어 살고자 했습니다. 이런 죄악의 세력들을 총칭하여 바벨탑, 바벨론이라 칭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건립을 미워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들이 스스로 하늘에 닿으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하늘에 닿아 하나님의 지배와 권위를 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배를 벗어나 스스로 왕이 되어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행복과 만족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올라앉아,, 하나님 나라 대신 자신들이 발전시킨 인간의 왕국으로 하나님 나라를 대치하려 했고 그것이 하늘에 닿으려 하는 죄인들의 마음이었습.. 2024. 9. 27. 아비의 부끄러움을 누설한 함 노아는 무서운 홍수를 경험하고도 다시 만취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 과정에서 노아는 함과 함의 자식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이에 따라 함의 후손인 가나안 사람들은 실제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시 노예로 살았습니다. 계속 역사적으로도 마케도니아, 로마 등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후손인 아프리카 흑인들은 오늘날까지도 저주가 이어집니다. 성경에서 함이 노아의 벌거벗은 죄를 보았다는 데에 쓰인 단어는 기계적으로 본다는 의미를 넘어 즐기며 조롱했다는 뜻입니다. 함은 형제들에게 그 아비의 부끄러움을 누설하고 설명해 줍니다. 함이 아비의 부끄러움을 덮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 주시는 방식과 정반대의 행동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셨다는 뜻입니.. 2024. 9. 27. 방주의 구조 속에서도 영적 의미를 발견한다.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 사람들에게서 당신의 신을 거둔다. ‘나의 신’의 히브리어는 ‘루아흐’로 ‘성령, 영혼, 생명, 생기, 바람’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나의 신은 하나님의 생명력이다. 성령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곳에 편재하며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의 영향력 밖에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성령에 의해 창조되었고 성령에 의해 존재하며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산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타락하여 자신이 왕이 되고 싶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자랑하고 싶어 했다. 노아의 홍수가 있기 전 네피림, 용사들이 유명한 자들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힘의 원리가.. 2024. 9. 27. 홍수와 방주의 영적 의미 노아의 홍수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동화책에도 나옵니다. 신화나 설화 그리고 서사시에도 노아의 홍수와 유사한 이야기가 300여 편 있습니다. 고대 바벨론의 길가메시 서사시(The Epic of Gilgamesh)에 있습니다. 수메르 인들의 작품인 아트라하시스 서사시(The Epic of Atrahasis)에도 있습니다. 신화에는 신이 인류를 홍수로 멸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이 홍수 기사의 주인공들에게 미리 알립니다. 신이 주인공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홍수신화에서는 주인공은 구원받지만 다른 모든 생물은 죽습니다. 홍수가 끝난 뒤 새를 내보내서 방주 밖의 상황을 알아봅니다. 주인공이 홍수가 끝난 후 방주 밖으로 나와 신에게 희생 제사.. 2024. 9. 26. 에녹 하나님과 동행 한 자 에녹은 아담의 7대 손입니다. 이름의 뜻은 순종하는 자란 뜻입니다. 에녹은 365살을 살았습니다. 365는 1년 365일을 상징하는데 그는 하루하루 삶이 온전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일이 풀리지 않으면 머피의 법칙을 떠올립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꼭 집니다. 나만 신호등 앞에서 면 꼭 붉은색으로 바뀝니다. 이것은 피해망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나의 일을 방해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신자들도 유사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안 들어주신다고 원망합니다. 우리는 에녹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기 위하여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를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것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에녹처럼 죽음을 보지 않.. 2024. 9. 26. 이전 1 2 3 4 5 6 7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