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의미와 교훈357 왜 애굽의 현인들은 바로 왕의 꿈 해석을 못하였나? 창세기 41장은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애굽의 총리로 등극하는 말씀이다. 왜 30세의 어린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석했는데 애굽의 꿈 전문가인 점술가들과 현인들은 하지 못했나? 바로의 첫 번째 꿈은 아름답고 살진 일곱 마리의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마리의 암소가 나일강 가에서 올라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치우는 꿈이다. 소는 초식동물이지 육식동물이 아니다. 초식동물이 동족을 잡아먹는 것부터 이상하다. 살진 암소가 힘이 훨씬 센데 파리한 소에게 먹히는 것도 이상하다. 애굽에서 암소는 이시리스 곧 달 신으로 땅과 소출을 담당하는 신이다. 나일 강은 범람의 유무에 따라 흉년과 풍년을 좌지우지하는 강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하류에.. 2024. 12. 8. 들레지도 다투지도 아니하다. 마 12장 18-19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본문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의 방법에 대해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말씀이다. “다투다.”는 “큰소리로 외치다. 논쟁하다.”는 뜻이다. “들레다.”는 “아주 어수선하고 시끄럽게 떠들다. 야단스럽게 떠들다.”이다. 본문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한 성품을 표현하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앞으로의 사역도 암시한다. 예수님은 충분히 기적과 능력을 동원하여 대중들을 설득하고 인기를 얻으면서 쉽게 사역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다.. 2024. 12. 8. 성경에 의(義)와 불의는 관계 용어 국어사전에 의(義)”는 “사람으로서 지키고 행하여야 할 바른 도리.”라고나온다. 의롭다는 것은 형용사로 "정의를 위한 의기가 있다."라는 의미다. 정의(定義)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다. 그러나 의에 대한 성경적인 뜻은 다르다. 사회의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의롭다 불의하다는 서로서로의 관계가 어그러질 때 사용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파괴되었을 때 불의하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불의라고 한다. 성경 속 여인 중에서 다말이 있다. 다말은 유다의 끊어진 후사를 잇기 위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동침한 여인이다. 성경은 이런 다말을 창세기 38장 26절에 “옳도다.(righteous)”고 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려면 하나님과의 사이가 바른 관계가 되어야.. 2024. 12. 6. 천로역정 집필 배경 영국 청교도 존 번연이 복음을 전하다 투옥되었다. 정열적이고 활동적이었던 번연은 감옥생활이 견디지 못하게 답답했다.그는 날마다 감옥 창살을 붙잡고 기도했다.“제발, 제게 자유를 주소서. 제발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자유로이 하게 하소서.”어느 날 눈물로 기도하는데 음성이 들렸다.“번연아!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은혜 네게 족하다.”라고 세 번 들렸다.번연은 즉시 두 무릎을 꿇고 말씀을 받았다.그는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게 족한 은혜를 주시는구나여기며 기쁘게 생활을 했고 감옥에서 더욱 깊은 하나님에 대한 묵상과 감사 속에서 [천로역정]을 저술했다.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기독교 고전이다.번연은 12년간 감옥생활을하며 수없이 성경을 읽고 천로역정을 썼다. 2024. 12. 1. 슈바이처의 겸손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생명을 위해 모금 활동을 하던 중 자기 고향인 알자스에 가게 되었는데그 소식을 들은 많은 친척과 동료들이 기차역에 모여 대대적인 환영 준비를 했다.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이자 환영객들은 ‘슈바이처 박사쯤이면, 일등실이나 적어도 이등실에는 타고 계시겠지…’ 하고는 모두 일등실 앞으로 몰려갔다.그러나 그곳엔 그의 모습이 없었다.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의 눈에 맨 뒤 3등 칸에서 내려오는 슈바이처의 모습이 들어왔다.환영객들이 일제히 달려가,“아니, 박사님 어째서 3등 칸에 타셨습니까?”하고 원망 섞인 목소리로 묻자 그는 웃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4등 칸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할 수 없이 3등 칸에 탔습니다.” 2024. 12. 1. 지렁이가 땅속에 들어간 이유 옛날에 지렁이는 귀뚜라미에게는 없는 눈이 있었고 대신 귀뚜라미는 아름다운 띠가 있었다.하루는 귀뚜라미가 지렁이를 찾아와 말했다.“지렁이야! 내 아름다운 띠 좀 보렴. 나는 이것 때문에 누구에게나 높은 대우를 받는단다.”귀뚜라미는 자기 띠를 뽐내고 자랑하면서,“네 눈을 내 띠와 바꾸지 않을래?”라고 말했다. 어리석은 지렁이는 귀뚜라미의 띠가 매우 아름답게 보였고 또 이것 때문에 높은 대우를 받는다는 말에 혹해 얼른 자기의 눈과 바꾸자고 했다.그러나 아름다운 띠는 생겼을 지언정 제일 소중한 눈을 잃어버렸으니 높은 대우를 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후로 지렁이는 귀뚜라미에게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 것이 부끄러워 땅속으로 숨어 들어가 탄식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2024. 12. 1. 최선의 때 어떤 섬유회사의 작업실 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붙어 있었다.「만일 실이 엉클어져서 풀 수 없을 때는 즉시 현장 주임에게 도움을 요청하시오.」어느 날 새로 입사한 여직원이 일하다 실이 엉클어졌다.그녀는 풀어보려고 애썼지만 반대로 모두 망치고 말았다.그제야 그녀는 현장 주임에게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였다.현장 주임이 그녀에게 말했다.“왜, 일이 이렇게까지 잘못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도움을 청하지 않았습니까?”그녀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 실을 풀어보려고 노력했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소장은“아닙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이 최선을 다하는 길은 일이 잘못되기 전에 나에게 와서 말하는 것입니다. " 2024. 12. 1. 용서라는 판결 여러 차례 탈영을 시도하다가 붙잡힌 한 병사가 마지막 재판을 받기 위해 웰링턴 장군 앞에 섰다.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 뻔한 탈영병은 두려움에벌벌 떨었다.장군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더 이상 병사를 다룰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질책도 하고 훈계도 해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았던가! 이제 자네에 대하여 마지막 방법을 취하여야 하겠네.”웰링턴 장군이 잠시 말을 멈추고 판결하려 하는 데, 한 병사가 말했다.“장군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게 이 병사의 마음을 돌려놓을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장군님께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웰링턴은 허락했다.“다름이 아니라, 이제까지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입니다.그를 용서해 주십시오.”병사의 말을 들은 웰링턴 장군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용.. 2024. 12. 1.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아주 넓고 비옥한 영토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다.그리고 그의 주위에는 경호원이 있어 항상 그를 보필하였다.하루는 왕이 자꾸만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져 현인들을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짐의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 그대들을 불렀소.나의 넓은 영토를 지켜 주는데 도움이 되는 반지를 찾아야 마음이 안정될 그것 같소.그 반지는 짐이 행복한 순간에 그 반지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슬프게 만들어야 하고짐이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는 짐을 기쁘게 만드는 그런 반지라야 하오.”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아도 왕의 명령에 꼭 알맞은 반지가 떠오르지 않았다.현인들은 며칠을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였다.그러기를 며칠 후현인들은 드디어 왕의 요구에 알맞은 반지를 찾아냈다.그들은 반지 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왕의 손에 끼워 주었다.. 2024. 12. 1.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I am nothing.) 고린도 교회는 분쟁이 있었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고린도전서 1장 12절에 교회는 베드로 파, 아볼로 파, 바울 파, 정통그리스도 파로 나뉘었다. 사도바울은 이런 분파 문제를 어떻게 권면하는가? 바울은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하여 1장13절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자신은 한 게 없다고 한다. 또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서는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이 식물을 자라게 하.. 2024. 12. 1. 자기 사랑은 커지고 서로 사랑은 작아지는 시대 사도바울이 참수형으로 순교한 해는 AD67~68년이다. 디모데후서는 AD67년 경에 쓰였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를 1년 또는 6개월을 남기고 옥중에서 쓴 서신이다. 영적인 아들 디모데가 1차 수신자다. 본 서신은 바울의 유언과 같고 그의 마지막 가르침인데 좋은 말, 희망적인 말만 하지 않는다. 디모데후서3장 1~7절을 참고하면 세상은 점점 나빠질 것이라 예고한다. 사랑도 자기 사랑은 커지지만 서로 사랑은 식는다 한다. 디모데후서3장7절은"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라고 한다. 오늘날은 인터넷 시대이다. 특히 AI를 도구하여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지식 전달도 빨라지고 있다. 지식을 쫒는 사람은 많은데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진리의 지식은 복음과 같이.. 2024. 12. 1.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눈이 먼 후 왜 응급실로 뛰어 가지 않았나?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는 AD35년 경으로 그의 나이 30세로 보인다. 로마의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는 AD64년 경으로 그의 나이는 20세로 보인다. 왜 두 사람을 비교하냐 하면 AD35년 경에 기독교 최고 박해자는 바로 사도바울이었다. 35년의 네로가 바로 바울이었다. 바울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에서 130킬로 떨어져 있는 이방 땅 다메섹 도상에까지 가 기독교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바울은 예수님의 원수였다. 바울은 초대교회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간단히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변화시켜 충성스러운 제자로 삼고자 하셨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다. 눈이 신체 .. 2024. 11. 28. 어떤 시각으로 요한계시록을 볼 것인가?ㅡ다니엘의 이레, 금신상, 천년왕국의 이해 계시록은 결론의 책이다. 창세기는 원인의 책이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계시록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계시했는데 구약은 다니엘, 신약은 요한이다. 계시록 주해작업은 성경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어야한다. 요한1서에서는 기름 부음이 우리를 가르친다고 하신다. 진리의 성령은 우리의 교사가 되어 계시록 말씀을 볼 때에도 인도한다.계시록의 위치는 끝이요 결론이다. 결론을 알려면 서론을 알아야 한다. 계시록의 서론은 창세기다. 창세기 제목은 Genesis이다. 게네시스는 마태복음 1장1절 Generation과 연결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세대란 뜻은 예수님의 족보이다. 창세기는 창조의 기록이 아니다. 창조기록은 1장에만 나온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의 역할과 의무 곧 영어로 Generat.. 2024. 11. 21. 성도는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시간 속에 있다.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의 하루의 삶은 이유 없이 온 일들이 없다.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올 것이 온 것이다. 성도의 삶의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생활 속에서 뜻한 바가 안 될 때도 잘 될 때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신다.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연단도 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것도 장차 영광을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8: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고난을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이겨야 한다.창세기2:17절은 아담에게 선악과.. 2024. 11. 21. 하나님까지 올라가는 누가의 예수님 족보 눅3장 23~38 은 누가가 기록한 예수님의 족보이다. 첫 구절은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이고 마지막 38절은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이다.다른 족보인 마태복음의 족보와 비교하면 다윗 이후로는 이름이 겹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누가는 솔로몬의 윗 형인 나단 계통으로 기록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동생 솔로몬을 택하셨고 마태는 선택받은 솔로몬을 따르는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했다.나단의 계통을 따라가면 결국은 마리아의 아버지 헬리가 나온다. 마리아의 계보를 따라가도 예수님의 계보도 왕인 다윗까지 올라간다. 마리아의 계보를 따르든 요셉의 계보를 따르든 예수님의 왕으로.. 2024. 11. 10. 레위기에서 동물을 정함과 부정함으로 나눈 기준 레위기 11장 1-47동물은 선악의 개념이 없다. 본능으로 행동할 뿐이다. 모두 생태계에서 필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레위기 11장은 정한동물, 부정한 동물, 먹을 수 있는 것, 못 먹는 것을 정해주었다. 현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두 선하다고 율법을 다시 해석해 주셨다. 정함과 부정함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많다. 예를 들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기준으로 정했다. 사체를 먹냐 안 먹냐를 기준으로 정했다. 땅이나 물에서 하나님이 저주한 땅과 얼마나 가까이 생활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기준도 있다. 물고기 중 비늘이 없는 고기는 대부분 땅바닥이나 바위 안에 생활한다. 새도 날지 못하면 땅에 가깝다. 또는 당시 가나안의 풍습과 우상에 대상이 된 동물을 먹지 .. 2024. 11. 3. 그리스도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기록했다면 세상에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요21:24-25) 21장 24-25절입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24절에서 ‘증언하다’와 ‘기록하다’의 두 동사 시제는 다르다. ‘증언하고’라는 μαρτυρῶν(마르튀론)은 현재 능동 주격 남성 단수형이다. ‘기록한’이라는 γράψας(그랍사스)는 과거 능동 주격 남성 단수형이다. 요한은 현재 증언하고 있는데 그 기록은 과거에 이미 했다고 한다. 요한에게 특별히 주어진 사명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일들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일이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하다 마리아 별세 후 비로소 나이 든 상태에서 에베소 교회를.. 2024. 10. 25. 두 번째 표적-왕의 신하의 아들 고침 요한복음 4장 43-53절에는 예수님의 두 번째 표적을 기록했다. 신하의 아들이 병들어 당시 의학으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다. 신하는 당시 무명의 목수인 예수님을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간다. 예수님께 거의 죽게 된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한다. 신하에 쓰인 단어(바실리코스)는 왕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파생했다. 그는 왕의 신하였다. 당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왕이 헤롯 안티파스였으니 신하는 그의 친척이거나 매우 가까운 귀족이었다. 원어에는 아들이라는 단어 앞에 관사가 붙었다. 이는 병든 아들이 외 아들이었다는 뜻이다. 아이의 헬라어 원어는 “파이디온”으로 어느 정도 자란 아이였다. 그런 아들이 왕의 측근으로서의 능력으로도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죽어 가니 얼마나 안타깝고 절박했겠는가? .. 2024. 10. 17. 이전 1 2 3 4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