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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죽은 이후의 상태
1. 성경에서 말씀하는 영혼의 개념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귀신 곧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개념과 같은 개념인가? 아니다.가. 인간의 상태와 성령의 역사 설명성령이 임하시면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결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육은 죄와 허물 죽어 있었기에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산 영'의 상태인 사람입니다. 산영인 상태는 또 성결의 영이 임하여 왜 우리의 육이 날마다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지, 그리고 육은 십자에에 못 박았어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자신이 죽어야 함'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영의 상태에 이른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익니다. 그래서 신자가 맺는 열매는 자랑도 할 수..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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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8편
시편 18편 은 다윗은 사울 왕에게 10여 년 동안 쫓겨 다니며 수많은 고난과 위기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후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며 모호한 분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하나님을 주변의 구체적인 사물에 빗대어 고백하고 찬양했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이요, 요새요, 피할 바위요, 방패요, 구원의 뿔이요, 높은 망대와 산성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시편 18편에는 다윗이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구체적인 사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고백이 나타납니다.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단순히 지식이나 관념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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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1.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우리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연 배우가 아닙니다.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죄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받은 선물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가진 힘은 섬기기 위한 것이지 위세를 부리려고 가진 힘은 아닙니다.약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예수님은 인질로 잡혀 있는 자들의 교환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마귀와 함께 한가로이 거닐지 않으십니다.2. 말하기보다 듣고, 비판보다 용서하는 삶마음속으로만 말하고 입은 열지 말아야 합니다. 말은 파괴적입니다.귀를 먼저 앞장세우고 혀는 뒤따르게 만들어야 합니다.비판적인 말들은 우리 안에 비축해 두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당신의 원수가 넘어졌을 때 비웃지 말아야 합니다...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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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바라 본 신앙
과학은 ‘어떻게(How)’를 탐구하고, 신앙은 하나님과 주님이 ‘누구이신가(Who)’를 알고 믿는 것이 핵심입니다. 과학으로 성경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어리석은 상상을 해 보려 합니다.예수님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일까요? 허리를 기준으로 위는 인성이시고 아래는 신성이실까요? 아니면 왼쪽은 신성이고 오른쪽은 인성일까요?신학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이 온전히 함께 존재하십니다. 신학에서는 몸을 반으로 나누듯 신성과 인성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격 안에 두 본성이 연합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문..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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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물리학과 출신입니다. 물리학과 4학년이 되면 1학기 동안 양자역학이라는 걸 배웁니다. 양자역학은 중첩과 얽힘이라는 아주 이상하다 못해 괴기한 법칙이 2개 있어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 제가 물리학 용어를 한 개도 안 쓰고 한번 두 개를 설명해 보겠습니다.먼저 중첩입니다. 저를 한번 봐주십시오. 제가 누구로 보입니까? “임01형제”로 보이시죠. 근데 제가 우리 아들 임02이 하고 완전히 겹쳐있다고 가정합니다. 누가 안 보면 임01와임02 또는 임02과임01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두 상태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다 누가 확인하는 순간 임01 이거나 임02 둘 중 하나의 모습으로만 보이게 됩니다. 한 형상으로만 딱 보이게 행동합니다.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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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찾고 누리자
제목: 하나님이 허락한 즐거움을 찾고 누리자 본문: 요한복음 15:11 / 열왕기하 5:1~19 / 잠언 17:22 / 누가복음 10:41~42 / 고린도전서 6:12 / 시편 16:11 오늘 수요일인데요. 많이 피곤하시죠? 하루 종일 생업에 시달리시느라 많이 지치셨죠?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한 분이 오늘날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진단합니다. 그러면 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억압사회였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하지 마라.", "하면 안 된다.", "금지한다."와 같은 요구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그 반대입니다."할 수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해라.", "꿈은 이루어진다.", "넌 성공할 수 있다." 이처럼 끊임없이 긍정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
2026.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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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안에서 강하라
디모데후서 2장 1절 묵상"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딤후 2:1)사도 바울은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목회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흔히 사명을 감당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하고,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하며,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보다 먼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라"고 권면합니다.바울은 "네 결심으로 강해져라", "더 열심히 노력해서 강해져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주신 은혜 안에서 강해지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결심은 시간이 지나면 약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과 같기 때문..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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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ㅡ믿음으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도데체 뭐가 바뀌었다는 거야?
기독교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말은 겉모습이 갑자기 바뀌거나 죄를 전혀 짓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나는 예수 믿기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뭐가 새로워졌다는 거지?"성경적으로 보면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신분과 관계입니다.죄인 → 하나님의 자녀원수 → 화목한 자정죄받는 자 → 용서받은 자사망 아래 있는 자 → 영생을 받은 자입니다.이것은 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다음으로 바뀌는 것은 내면의 방향성입니다.예전에는 죄를 지어도 별로 괴롭지 않았는데, 이제는 죄를 지으면 마음이 불편합니다.예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
202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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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의 차이
창세기 50장 19~20절에서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나이다." 또한 이사야 55장 8~9절에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때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바라보시는 시각은 참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한 장면만 보고 절망합니다. 문이 닫히면 끝난 줄 알고, 눈물이 흐르면 실패한 줄 알고,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나를 잊으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장면이 아니라 전체 이야기를 보고 계십니다. 마치 우리가 자수 놓인 천의 뒷면을 보는 것과 같..
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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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았던 나사로
누가복음 16장 25절에서 31절을 보겠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유일하게 '나사로'와 '아브라함'이라는 실명을 거론한 비유이기도 합니다.본문은 단순히 가난하게 살고 부자로 살지 말라는 교훈으로 묵상되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참된 **회개**에 대한 비유로 보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기적을 눈앞에서 직접 보아도, 인간은 스스로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실제로 요한복음 11장에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인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났을 때에도 회개한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믿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부활시키신 일을 계기로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했고, 심지어 나사로까지 함께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최근 선거가 끝나서 세상에서는 유..
202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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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에피소드
직장 업무로 제주도에 출장을 다녀왔다.문득 궁금해졌다.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쳐 경상도,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쳐 전라도,충청도는 충주와 청주를 합쳐 충청도다.그렇다면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를 합쳐 강원도인데, 왜 도청은 춘천에 있을까?서울과 더 가까워서일까?춘천 사람들이 정치력을 발휘했을까?물론 진실은 따로 있겠지만, 출장길에 별 생각이 다 든다.그러다 제주도는 또 뭘까?제(濟)는 건널 제,주(州)는 고을 주.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이름부터가 이미 비행기 티켓을 요구한다.원주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제주 메종글래드 호텔.처음에는 제주 방언인 줄 알았다.알고 보니 메종(Maison)은 프랑스어로 '집',글래드(Glad)는 영어로 '기쁜'이라는 뜻이다.결국 "기쁜 집"이다...
202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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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
오늘 제목을 줄여서 '가상칠언'이라고 합니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거나 하신 말씀이 7가지인데요. 우리 대명주로교회 성도님들은 다 외우고 계시죠? 사람이 죽어가면서 남긴 말을 유언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가 1996년이었는데요. 그때 아버지처럼 잘해주셨던 과장님이 계셨습니다. 이분의 레퍼토리는 "내가 언젠가는 교회에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얘야, 너는 반드시 교회에 가거라” 하고 유언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말이 평생 귓가에 울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가 교회를 다니니까 저를 잘 대해주신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안 가시더라고요.예수님이 임종하시며 남긴 7마디는 유언과 같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거의 30%가 예수님 죽음의 과정에..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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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아프리카에서 선교 활동을 오래 하신 어느 선교사님의 간증입니다. 현지에서 회심하는 분들이 참 많지만, 선교사님 혼자 설교와 양육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현지 성도를 세우기로 하셨고, 그들을 세우기 전에 영국 같은 본국으로 보내 2년 정도 배워오게 했다고 합니다.그런데 이분들이 돌아와서 가르침을 주는데, 대단히 열정적으로 도표도 그려가며 가르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지인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습니다. 심지어 뒤에서는 '서양 물 먹은 사람'이라며 놀리기도 했답니다. 선교사님이 그 원인을 분석해 보니, 공부하고 온 분들이 배워온 것이 많다 보니 오직 정보만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삶 속에서 부딪혀오는 현지의 언어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간파한 선교사님은 그다음부터는 사..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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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짧은 묵상글
1.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말 속에는, 겉으로는 거룩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을 숨 막히게 만드는 신앙의 긴장감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사단의 마을처럼, 무엇 하나 잘못하면 바로 무너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신앙은 점점 자유를 잃고 굳어버립니다.우리가 여기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 ‘신앙의 비장함’이 반드시 좋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너무 비장해지면, 신앙은 생명이 아니라 부담이 됩니다. 숨 쉬듯 자연스러워야 할 믿음이, 시험을 치르듯 긴장 속에서 유지됩니다.율법주의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데에는 철저하지만, 그 안에 기쁨은 없습니다. “이건 하면 안 된다, 저건 만지면 안 된다”는 기준은 분명하지만, 정작 왜 믿는지, 누구를 사랑하는지는 흐려집니다. 결..
202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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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민감도(주권인정도, 구원만족도, 자기부인정도, 십자가의존도)
꽃샘추위에 샘은 샘나다 “질투하다.”라는 뜻입니다. 꽃샘추위는 추위가 꽃들이 화려하게 피는 것을 질투하고 샘내서 계속 춥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추위가 더 이상 샘내지 말고 빨리 따뜻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막 결혼 한 신혼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지도 그리고 회사에 취업은 한 지도 얼마 안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남편의 회사부서가 젊은 여인들이 많았습니다. 야근도 가끔 있어서 부득이하게 집에 태워주는 일도 생겼습니다. 남편은 아무일 없었지만 웬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태워 준 바로 다음 날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악하고 저녁을 사주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한껏 꾸미고 나왔습니다. 차 조수석에 물건이 많이 있어서 뒷자리에 탔습니다. 그런데 조수석 시트 아래에서..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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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고후12:1~4, 고후4:16~5:1)
오늘은 죽음 이라는 주제로 교제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죽어 본 분 안계시죠? 네 저도 60여년 살았는데 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은 성경이 죽음을 어떻게 보는가?"를 교제하겠습니다. 우리 말 죽음의 어원이 뭐죠? 죽음은 “죽다.”의 명사형이죠. “죽”자는 순수한 우리말인데요. “기운이 다하다. 완전히 꺼지다, 힘이 빠져 기능을 잃다”와 같이 기능이 정지한 상태를 나타낼 때 “죽”을 썼답니다. 15세기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나온답니다. 죽음은 “생명이 끝나다.”라는 뜻이죠. 의학적인 죽음은 심장과 뇌와 폐의 기능이 멈추는 것을 말합니다.제럴드 다이아몬드 작가가 쓴 “총균쇠”라는 책 아시죠. 인류 문명을 인종의 우열로 보지 않고 총(군사력). 균 (전염병), 쇠(기술력)과 같이 지리 환경적 요인으로 설명..
2026.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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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신4장32-36)
올해가 무슨 해 입니까? 말띠 해입니다. 내년은 양띠 해입니다. 그 다음 해는 원숭이 해입니다. 보통 자기 띠 이외에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연이어지는 세 개의 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양띠 해에 태어났습니다. 제가 살았던 동네는 산이 보통 2 천 미터가 넘는 노추산 자락에 있는 산골에 살아서 3시면 해가 졌습니다. 저는 항상 말띠 형들과 잘 놀았습니다. 이 형들이 국민학교 입학을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집에서 개구쟁이 짖을 많이 하니 형 들 따라 놀러 갔다 오라고 하며 함께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만 형들과 함께 줄서 있다가 입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확이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어머니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저는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말띠 들과 ..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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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6장3-4절 묵상글
디모데전서 6장 3–4절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남기는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입니다. 이 본문에서 바울은 단순히 “무엇을 가르치느냐”의 문제보다, “어디에서 벗어났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가르침이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기준점에서 벗어났다면 결국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의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출발할 때 나침반이 단 1도만 틀어져도, 시간이 흐르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배는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처럼 신앙의 길에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기준은 인간의 지식이나 논리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과 교훈입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순간, 신앙은 경건의 능력을 잃고..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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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3가지 시험
1. 거꾸로 된 삶과 영적 대립의 본질‘LIVE’를 거꾸로 하면 ‘EVIL’, 곧 악이 됩니다. 이는 삶이 하나님을 향할 때와 사탄을 향할 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시지만, 사탄은 사람을 통해 파괴의 역사를 시도합니다. 진리의 영은 삶을 바르게 이끌지만, 거짓의 영은 삶을 역행하게 만듭니다.사탄은 하나님을 창조하지도, 생명을 만들지도 못합니다. 다만 하나님을 대적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탄숭배의 상징은 십자가를 거꾸로 세우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이는 구속을 부정하고 하나님 자리를 전복하려는 시도입니다. 메시아는 반드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김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증언합니다.---2. 성경의 ..
202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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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요한에게 둔 다른 소망
마태복음 4장 18절에서 22절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부르심이 우연이나 즉흥이 아니라, 오래전부터의 관심과 주목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삶의 현장을 살아가던 이들을 눈여겨보시다가 때가 되었을 때 부르셨습니다.성경은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거친 물결 속으로 힘 있게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의 모습에서는 진취적인 기상과 결단력이 드러납니다. 반면 요한은 배 위에서 그물을 깊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그물을 정돈하고 수선하는 일을 섬세하고 묵묵하게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전혀 다른 모습을 그대로 보시고 부르셨습니다.주님은 베드로의 적극성과 담대함을..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