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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에세이(경험글)

주번의 직권남용

by 명주(明珠) 2024. 8. 24.

70년대 초등학교(국민학교)에는 주번이란 제도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6학년)들 5명 정도가 순번제로 일주일씩 주번을 맡았다. 그 5명 중 한 명은 주번 장이었다. 주번은 요즈음 민방위 훈련 할 때 팔에 차는 노란 완장을 찼다. 주번 장은 노란 완장에 두 줄을 그 어서 구분해 주었다.
주번에게는 일주일 동안 막강한 권력과 권위가 주어졌다. 주번 조회를 아침과 저녁으로 따로 받았다. 조회 장소는 교무실 앞이었다. 주번의 역할은 선생님을 대신하여 질서유지, 청결관리, 부정부패 척결 등도 도맡았다. 주번은 학교가 끝난 후 화장실을 포함하여 학교외곽 전체의 청소상태를 최종으로 점검하고 주번 담당선생님께 보고하면서 끝나는 조회를 마쳐야 집으로 간다. 초등학생의 부정부패는 학교에서 소지하지 말아야할 것들을 가져오면 압수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딱지이다.
드디어 나의 순번이 돌아와 주번완장을 찼다. 그것도 주번 장이었다. 주번의 권위는 교내라는 장소에 한정되어 있었다. 학교를 파하고 한 학년 후배인 5학년 오천석(가명)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집이 멀어서 비포장(신작로) 도로를 1시간을 걸어야 했다.십리는 되었다.
오천석 군은 물론 내가 바로 그 주에 주번장이란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같이 집으로 오는 길에 자기가 학교에 가지고 가지 말아야할 딱지가 가방에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 딱지는 동그란 딱지로 가장자리로 별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로봇 태권브이, 마루치 아루치 같은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는 딱지 열장을 천석 군에게 빌려서 딱지 따먹기를 하였다. 딱지 따먹기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딱지를 쳐서 넘기는 것도 있었고, 책상에 한 장씩 올려놓고 손가락에 침을 발라 딱지를 찍어 뒤집으면 가져가는 방식도 있었다.
천석 군과 나는 집으로 오는 도중이었으니 양손에 딱지를 쥐고 있으면 상대방이 딱지 몇 장을 들고 양손 중 한쪽을 찍어서 별 그림이 많은 쪽을 찍으면 찍은 딱지만큼 받고 적으면 상대방에게 주어서 따먹는 방식으로 했다. 천석 군과의 딱지 따먹기는 잘 풀리지 않았다. 딱지를 계속 빌려서 했는데 다 털렸다. 집에 쌓아 둔 딱지까지 다 잃어 빈털터리 상태까지 갔다.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가방 깊이 숨겨두었던 주번 완장을 꺼냈다. 그리고 천석 군이 따간 모든 딱지를 주번장의 이름으로 압수 했다. 그리고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진 주번장 완장을 펄럭이면서 유유히 집으로갔다. 천석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먼지 펄펄 나는 신작로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지금도 미안하다.
직권의 남용 이란 형식적으로 일반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하여 자기의 직권을 남용하여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서 예컨대 부당하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여 납부케 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폭행·협박으로써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경우도 해당한다. 처벌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대한민국 형법 제12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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