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근처
4살 때 마트를 데리고 가던 중이었다. 아파트를 지나가야 하는데 앞으로 가도 되고 뒤로 가도 반대쪽에서 만나는 길이었다. “너는 앞으로가! 아빠는 뒤로 돌아 갈께! 반대쪽에서 우리 둘이 만나는 거야!”굳게 약속하고 헤어졌다. 30여초 후에 아파트 반대편에 갔는데 아이는 없었다. 급히 아파트 앞쪽으로 왔지만 없었다. 아파트를 2번을 뱅글뱅글 돌며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며 헤맸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이가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귀신이 곡 할 노릇.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있었던 죄, 없을 것 같은 죄, 기억나는 죄, 나지 않는 죄 다 회개하고 도와달라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전혀 다른 쪽 아파트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아이는 아파트 반대편에 가면 만난다는 공간 인식능력, 아빠가 잠시 없어졌다 나타난다는 유추 능력이 전혀 없었다. 먼저 뛰어가다 아빠가 자기 눈앞에 안보이니까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거기에도 아빠가 없으니 다른 쪽으로 뛰어간 것이다.
종합병원
병원에서 둘째 아들이 태어 났고 일주일 후 퇴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어린 4살 딸의 손을 잡고 1층 로비에서 퇴원 절차를 밟고 있었다. 종합병원이 다 그렇듯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를 3번 반복해야 했다. 이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번거로웠다. 아이를 매점 앞 테이블에 잠시 앉혀 놓았다. 이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30분 정도 지나 수속이 끝나고 산모와 아들을 데리고 집에 가려고 병실을 올라 가서야 아이 생각이 났다.
미사일보다 빠르게 1층 로비로 내려 왔지만 테이블에 아이는 없었다. 주변 사람에게 아이가 어디 갔는지 물어봐도 다 모른다 했다. 애타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그분들이 순간적이었지만 너무 야속했다. 매점 주인에게 물어봐도 못 봤다 했다. 혹시 납치! 소리를 질러야 하나! 경찰을 불러야 하나! 머리를 움켜 잡고 고민하고 있는데 정면에 있는 자동문으로 아이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아이는 기다려도 기다려도 아빠가 오지 않아 찾으러 밖에 나갔다가 없자 다시 들어오는 중이었다. 아빠를 못 찾으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울음을 터트리려던 참이었다. 나는 이 충격으로 어디 갈 때는 아이를 묶고 다니고 싶었다. 아이는 약속의 개념이 없다. “여기 잠깐 있어!” 이런 약속이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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