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권투를 처음 본 것은 10살 때이다. 동네에 좀 산다는 한 집에 흑백 TV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권투를 보았다. 2002 월드컵 응원열기를 능가했다. 유제두 선수가 일본 와지마 고이치를 KO로 꺾고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경기였다. 오픈 경기로 흑인 선수가 나와서 KO 당했다. 순진한 시골 아주머니들은 흑인 선수가 멀리까지 와서 신나게 맞고 쓰러지기까지 하니 안쓰러워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내가 권투 장갑을 처음 껴본 때는 중학교 3학년이다.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이친구가 권투 글러브를 샀다. 손에 끼니 커다란 솜뭉치처럼 보였다. 누굴 때려도 아프지 않을 것같이 착하게 보였다. 한 친구와 스파링을 했다. 솜뭉치려니 생각하고 쨉쨉을 마구 날렸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별이 30개가 보이더니 어느새 바닥에 누워있었다. 입 속에 뜨듯한 게 흘렀는데 쌍코피였다. 그 친구는 몇 번 장갑을 껴본 터라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나를 보낸 것이다.
권투하면 4전 5기의 신화를 쓴 홍수환 선수가 있다. 4번 다운되고 일어나서 강펀치 한방으로 상대선수를 넉 다운 시켜 KO승 한 전설의 영웅이다. 권투는 시간제한이 있다. 죽도록 맞고 쓰러지고 또 일어나다 보면 공이 울린다. 잠시 쉬고 나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인생의 사각 링도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린 다 이렇게 링에 나가는 권투 선수처럼 치열하게 산다. 쓰러질 것 같고 또 쓰러져도 공이 울려 살려주면 또 잠시 쉼을 얻고 다음 라운드에 오른다.
에세이(경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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