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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에세이(경험글)

의미없는 경쟁

by 명주(明珠) 2024. 8. 24.

딸이 4살 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보육원에서 연수원을 빌려 운동회를 했다. 딸이 무엇을 얼마나 잘하나 궁금하여 회사 조퇴를 하고 참석했다. 운동장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은 걸 알고 자책했다. 다른 학부모들은 운동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비디오 카메라, 디지털 카메라, 스마트폰을 들고 찍느라 분주했다.
 
딸은 곰 세 마리 무용을 제일 앞줄에서 잘 한다. 이윽고 달리기 시간이 왔다. 1등 할 수 있을까? 3등 안에는 들어야 할 텐데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딸은 3조에 속했다. 1조 아이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결승점까지 열심히 달려온 한 아이가 결승선 리본까지 와서는 지나가지 말라는 표시인 줄 알고 우두커니 서 있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를 본 다른 아이는 리본 아래로 통과했다. 또 다른 아이는 아예 리본잡은 선생님 뒤로 돌아 골인했다. 1,2,3 등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2 조가 달릴 차례였다. 이번에는 2 조가 달리니 뒤 3 조 아이들도 덩달아 달렸다. 친구가 달리니 덩달아 달렸다. 아이들은 왜 순서대로 달려야 하는 지 또 왜 다른 친구보다 빨리 달려야 하는 지 아직 이유를 몰랐다. 이유를 알쯤 이들의 고난은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친구가 달리니 덩달아 달렸던 딸이 초등학생이돠어 계주선수로 뽑혔다. 계주는 곗돈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계주(繼走 )는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4명이 한 조가 되어 차례로 배턴을 주고받으면서 달리는 육상 경기이다. 일명 ‘이어달리기’라고 한다. 계주는 국민학교 시절 운동회 때 마지막에 하는 운동회의 꽃이었다. 청백군 승패는 계주 경기에 달려 있었다. 내 노라 하는 달리기 꾼 아이들만 뽑혔다.
 
숏 다리인 나는 한 번도 뽑인적이 없다. 5명이 경쟁하는 학년별 달리기도 내 앞에 두 명이 항상있었다. 그 두 명 전학도 가지 않았다. 또 결석도 안했다. 결석하기를 그렇게 바랐건만... ... 그것도 6년 동안이나 하기야 누가 운동회 때 결석을 하겠는가?
 
딸이 어느 날 말했다. "아빠 나 운동회 때 계주 선수로 뽑혔어!" 반 전체 아이들을 몇 줄로 세워놓고 묵작정 뛰게 했는데 1등으로 들어와 학년 대표 선수로 뽑혔다. 아빠의 한을 딸이 풀어주는 구나 생각했다.
 
역사적인 경기를 보려고 하루 휴가 내고 참석했다. 역시 딸은 잘 달렸다. 2번째 주자였는데 첫 번째 주자가 서로 아슬아슬하게 들어왔고 이어서 배턴을 받은 딸은 2-3 m 차이를 벌렸다. 그 이후 다른 팀 주자들은 차이를 좁히질 못했다. 딸 때문에 1학년 백군 계주는 승리했다.
 
반별 개인 달리기에서도 딸은 출발이 늦어 3번째로 갔지만 마지막에는 앞 선 2명을 제치고 1등으로 들어왔다. 나는 응원석 계단을 내려와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만국기 아래 치러진 어린 시절 시골 가을 운동회는 온 동네 축제였다. “보~아라 저 넓은 운동장에 청군과 백군이 싸우면 청군과 백군이 싸우~며는 보나마나... 백군 이기지~~” 그 함성 지금도 귓전을 울린다. 철수 어머니 오른쪽 고무신 뺏앗아 닌고 달리기와 같은 미션 달리기도 한 재미를 더했다.
 
운동회가 끝날 무렵 고삐풀린 망아지인 나보다 더 뛸듯이 기뻐하며 응원하는 한 엄만가 눈에 띄었다. 그 아이는 꼴찌였다. 장애가 있었는지 절뚝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에 와 준 아이를 대견스러워 했다. 순간 나는 내가 3등 할때 뒤에 있었던 2명의 친구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하는 생각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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