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어느 유명한 교회에 사역자 초빙 공고를 냈습니다. 여러 명이 지원했겠죠. 지원서류에 자기소개서 심사를 했습니다. 황당한 소개서가 있었습니다. 소개서 내용은“저의 외모는 키가 작습니다. 저는 머리카락이 거의 없고요. 코는 메부리코 입니다. 저는 건강도 매우 않좋습니다. 안질도 있고 편두통을 달고 삽니다. 게다가 저는 말도 더듬습니다. 아나운서같이 매끈한 설교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듣던 교인들은 수군수군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저런 사람이 지원서를 어떻게 냈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장일치로 떨어뜨렸습니다. 이 지원자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핸디캡이 많았음에도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분입니다.
오늘 말씀부터 사도바울의 앞으로의 계획과 문안인사가 16장까지 이어집니다. 바울은 예수님 보다 10년 정도 어립니다. 예수님 BC4년 탄생하셨고 바울은 AD5년입니다. 예수님 살아생전에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예수믿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는 일을했습니다. 이런 원수를 예수님은 변화시켰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고 쓰셨습니다.
본문요약
오늘 본문이 깁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요집회 참석하시는 성도님들은 신앙 9단들이십니다. 오늘 본문 내용을 90%는 알고 있으시리라 판단합니다. 바울의 현재 위치는 고린도입니다. 그는 로마를 거쳐서 땅 끝까지 가고자했습니다. 땅 끝은 서바나로, 현재는 스페인입니다. 바울은 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기근이 들어서 이방교회에서 이들을 돕고자 모금을 했는데 그 모금한 것을 예루살렘교회에 전해 주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방문은 굉장히 위험했습니다. 바울을 미워했던 유대인들 40인이 바울 암살단을 조직하여 금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울을 죽이기로 ”맹세했다.“ 했습니다. 유대인의 맹세는 장난이 아닙니다. 배신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맹세입니다. 실제 로마 총독이 이들로부터 바울을 보호하려고 군사 470명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을 가고자 합니다.
영적인 눈,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롬15:14-15)
오늘 본문 롬15:14절 부터는 논조가 완전히 바뀝니다. 사도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주어 “내가” 15번 나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14.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닙니다. 생면부지의 성도들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내 형제들아하고 친근감 있게 부릅니다. 늘 옆에서 보아 왔던 가족을 부르듯 친근하게 부릅니다. 바울은 눈으로 보지 못했지만, 영적인 눈으로는 늘 봐왔습니다. 바울은 늘 한 사람 한 사람 로마 성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눈으로 본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를 칭찬합니다. “선하고, 영적 지식이 풍부해서 서로 잘 돕고 있다.“고합니다. 실제 로마교회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의 갈등 심각했습니다. 또 영지주의 이단 문제도 있었습니다.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럼 칭찬 보다는, “정신 좀 차리십시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편을 갈라 싸웁니까?”하고 따끔하게 조언을 해야 맞습니다. 반대로 칭찬합니다. 심지어 로마서1장8절에서 로마교회 성도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고 까지 합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들고 나온 안드레의 믿음을 크게 보시고 오천 명을 먹이시지 않았습니까? 바울도 성도들의 작은 믿음을 크게 보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기 보다는 장점을 부각 시키는 자세 필요합니다. 남을 살려주는 자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쓴 목적이 무엇입니까? 다시 생각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뭔가 막 쇼킹하고 신비하고 새로운 것을 주려고 한 게 아닙니다. 기존의 내용을 다시 상기 시키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망각합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론이 있습니다. 공부하고 나면 10분 후부터 망각이 시작된답니다. 완벽하게 외운 것 같은데 1시간 후면 44%만 머리에 남는 답니다. 하루가 지나면 33%만 남습니다. 한 달이 지나면 21%만 남는다는 곡선입니다. 그래서 잊혀 지기 전에 복습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일 성경을 보고 설교도 매주 2번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로마서를 대략 썼다고 합니다. 대략은 구체적이고 부분적인 것을 뺀 어떤 일의 줄거리. 대략의 진행 상황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는 대략 썼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것은 만나서 전해 주고자 했습니다. 대략 썼는데도 로마서는 성경의 꽃이라고 극찬합니다. 제가 로마서 본문으로 오늘 28번째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대략 썼는데도 그렇습니다. 만약 대략 안 썼으면 아마 제가 평생 교제해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간증합니다. 그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은 16절에서 설명합니다. ”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한마디로 자신을 구약의 제사장 직분에 빗대어 증거 합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3D 직종입니다. 폼 잡고 우아하게 일하는 직종이 아닙니다. 3D는 'Difficult(어렵고)/Dirty(더럽고)/Dangerous(위험한)'약자입니다. 구약 제사장이 하는 일이 어렵고, 더럽고, 위험했습니다. 소, 양을 잡아야 했습니다. 각을 떠서 태워야 했습니다. 아주 Difficult합니다. 또 태우면 연기가 솟구칩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그 피를 재단에 뿌렸습니다. 한마디로 Dirty합니다. 제사장 직분 수행하다 죄가 있으며 죽습니다.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Dangerous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바로 자신이 이런 영적인 제사장이라 소개합니다. 마찬가지로 선교도 우아 한 일이 아닙니다. 죄인들과 싸워야 합니다. 설교도 은혜만 전달 할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과 심판과 지옥을 전해야 합니다. 또 십자가와 피에 대한 설교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 십자의 보배피를 통하여 씻겨 져야 하나님이 받으심 직한 제물이 됩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영적으로 제사장적인 일을 해왔고 또 그것이 은혜였다고 간증합니다.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도 만인제사장입니다.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십니까?
제사장 직분(롬15:17-19)
제사장 직분이 3D 직종이지만 바울은 훌륭하게 감당했다고 계속 소개 합니다. 17-19입니다. “17.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자랑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출신이 금수저 출신입니다. 학문도 좋았고, 집도 부자였습니다. 헬라어도 능통했고,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1-3차 전도여행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 지역만 해도 중복 포함하여 29군데 지역입니다. 그 열매만 자랑해도 3박4일은 걸립니다. 바울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역사하신 것으로 증거합니다. 자기는 도구였을 뿐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역사임을 고백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있었기에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편만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편만(遍滿)이라는 한자 뜻은 두루 두루 편(遍), 찰 만(滿)입니다. 편만은 빠짐없이 두루두루 모든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1차, 2차, 3차 전도 기간을 합치면 약 9년입니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중 13권을 썼습니다. 바울이 선교사역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을 까요? 저는 끊임없이 걷는 거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가 걸은 거리가 1만7천km라 합니다. 바울이 하루 20km 걸었다고 하면 선교기간 9년 중 2년 반을 도로 위에서 보냈습니다. 당시는 변변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어떻게 복음을 편만하게 전했을까요? 바울의 선교열정이 식지 않게 해준 동기에 대하여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바울은 부르심이 확실했습니다. 그는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강력힌 빛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평생 그 장면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바울은 3층천에 가서 천국의 실상을 다 봤습니다. 세 번쩨는 그의 사역의 고비 때 마다 주님께서 옆에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섯째는 복음에 대한 절대성과 양들에 대한 사랑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사막에서 갈증으로 죽어 가는데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은 이런 생명수였습니다. 복음이 없는 개인, 복음이 없는 가정, 복음이 없는 사회는 제대로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영화를 만들면 영혼의 고통을 줄 수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 책을 쓰면 그것도 피해만 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절대주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디든 복음을 들고 달려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롬15:20-21)
20절을 보십시오. ”20.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바울의 선교 원칙이 있었습니다. 오로지 복음의 불모지, 아무도 발을 들여 놓지 않은 복음의 황무지만 찾아다녔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터가 없는 곳을 찾아 다닌 것이 사도바울의 개인적인 욕심, 개인적인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52장15절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 말씀은 본문 21절에 인용합니다. “21.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복음 역사에 씨뿌리는 사역에 올인 했습니다. 복음역사는 씨만 뿌려서 안 됩니다. 물을 주어서 자라게 하는 사역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울은 자라게 하는 방법도 썼습니다. 두란노 서원에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자들을 2년 동안 눈물로 가르친 역사도 있습니다. 그 제자들을 통해 아시아 전체에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유연한 자세(롬15:22)
22절을 보십시오. “22.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바울의 복음역사는 계획 한대로 만사형통이 아니었습니다. 턱턱 막힐 때가 있었습니다. 로마행은 여러 번 막혔습니다.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환경을 통하여 막으셨습니다. 바울은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안되면 되게하라.”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막으면 유연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에게도 진리에는 타협하지 않는 강직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유연성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성령의 방향을 잘 살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의 향후 계획(롬15:23-29)
23절부터 29절까지는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바울의 향후 계획입니다. 24절을 보면 로마 성도들의 지원을 받아 땅 끝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그 지원이 돈은 아니었습니다. 사귐을 통한 기쁨이었습니다. 성도 간에 교제를 통한 기쁨이면 내가 땅 끝까지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배울 점입니다. 우리도 성도 간에 만나면 기쁨을 주고받는 관계여야합니다. “만나면 피곤하기만 해!” 이러면 곤란합니다. 누가 같이 식사하자고 하면 불편하니까 핑계 대서 빠지는 관계면 곤란합니다. 우리 명주로교회가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고, 위로를 얻고, 각박한 현실을 이길 용기를 얻는 관계이기를 기도합니다.
본문에 이방교회에서 연보(捐補)를 걷었다했습니다. 연보의 한자 뜻은 내놓다, 기부하다의 연(捐)과 돕다는 의미의 보(補)입니다. 연보의 뜻은 ‘내어놓아 남을 돕는다’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왜 목숨 걸고 예루살렘에 연보를 전해 주려 했을까요? 본교와 이방교회를 화해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본문 28절에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다는 뜻은 이방에서 일어난 역사도 보고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증거하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한마디로 피스메이커의 역할을 하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신자는 어디 가든 피스메이커가 되어야합니다. 트러블 메이커가 되면 안 됩니다. 바로 복음역사가 하나님과 죄인을 화해시키는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2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현재 바울이 로마서를 쓰는 장소는 고린도입니다. 고린도에는 고령토가 풍부했습니다. 그 흙으로 만든 특상품의 항아리가 유명했습니다. 항아리를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이탈리아로 수출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내가 로마에 갈 때 고린도의 특산품을 들고 가겠다, 고급항아리를 가지고 가겠다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항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 영적인 복을 가지고 가겠다고 합니다. 바울은 영적으로 줄 것이 많았습니다. 바울은 주고 싶은 것이 넘쳐서 빨리 로마 성도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기도부탁(롬15:30-31)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30-31절은 바울의 기도부탁입니다. 기도제목은 40인의 암살단에게서 건짐을 받는 것이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 잘하는 것입니다. “암살단 정도는 믿음으로 의연하게 대처해야지. 기도 부탁을 하면 믿음이 없어 보이지 않나요?” 오랫동안 선교한 선교사님이 사인펜 뚜껑을 잃어버렸답니다. 그는 그 뚜껑 찾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더랍니다. 우리가 기도 부탁을 하려면 기도의 능력, 기도의 힘 절대적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울은 구체적으로 기도제목을 제시했습니다. 복음역사는 기도가 전부입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손을 움직여야합니다. 복음역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입니다. 사탄의 손에서 빼내 오는 일입니다. 사탄을 이길 수 있는 분은 딱 한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복음역사는 기도를 통하여 이 하나님의 손을 움직여야합니다. 말솜씨, 영적인 지식, 도전정신,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기도 부탁하는 바울을 통하여 기도의 중요성 배웁니다.
끝인사(롬15:32-33)
32,33절은 끝인사입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고 합니다. 평강이 중요합니다. 어떤 팀, 어떤 조직, 어떤 회사에서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무엇이 제일 많았을까요? “일이 적은 것? 월급? 좋은 복지 혜택?”이 아닙니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제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평강이었습니다. 영적인 삶에 있어서도 평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평강은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시편 91편11,12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수호천사들을 붙여 주시기까지 하면서 지켜주는 귀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 이 천사의 수종을 받아 천국으로 갑니다. 우리 모두가 이 하나님 안에서 내면 깊숙한 평강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저의 메시지는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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