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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하나님의 가족들(로마서16장1~23)

by 명주(明珠) 2024. 8. 24.

주목받지 못하는 휴지통

나이 들어가는 증거 중 하나는 무얼 잘 흘리거나 쏟습니다. 정교한 작업을 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컵 가장 자리에 봉지에 든 커피를 걸치고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렸습니다. 뜨거운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뚜껑위에 떨어뜨리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희 집 휴지통은 발로 쓰레기통 아래 레버를 밟으면 뚜껑이 열리고 안에 휴지를 버리고 내리는 형태입니다. 발로 레버를 밟는 시간과 커피봉지를 떨어뜨리는 시간이 맞지 않아 뚜껑에 쏟았습니다. 휴지통 뚜껑과 몸통 전체에 묻은 흔적을 닦아 내는데 휴지통과 주변이 매우 지저분했습니다.  닦아내며 든 생각이 "휴지통 너 참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갖 냄새나는 것은 다 속에 담아 두는 중요한 일을 하면서 정작 인정은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휴지통을 끌어안고 고생이 많다 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복음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정작 이름도 빛도 없었던 분들 이름이 나옵니다.

로마서를 쓰는 이유

로마교회는 바울이 개척하지 않았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때 또는 초대교회 핍박 때 흩어진 성도들에 의해 자체 형성된 교회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의 지하교회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바울은 본인이 개척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로마서를 써서 권면하는 것입니까? 왜 남의 교회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겁니까? 월권행위 아닌가요? 예를 들면 우리 교회 성도가 다른 교회에 서신을 써 보내면서 권면하면 기분 나쁜 일입니다. 바울은 거기에 대하여 15장에서 내가 이방인의 사도의 자격으로 로마서를 쓴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도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증거는 내가 복음을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편만하게 전했다고 증거 합니다.(행15:19) 그것도 남들이 밟지 않은 미개척지, 황무지 지역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행15:20)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 근거를 사도 증명서, 학벌로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몸으로, 삶으로 살아낸 모습이 증거라고 합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까지 다닌 총거리가 2만키로가 넘었습니다. 지역도 수십 개가 넘습니다. 바울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 선 복음 전한다고 하여 빌딩이 몇 채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로마서를 쓰는 다른 목적은 바울의 마지막 비전에 있었습니다. 그는 땅 끝까지 가고자 했습니다. 거기에 중간 기착지가 로마였습니다. 땅 끝은 어디죠? 서반아로서 지금의 스페인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어제 결혼한 부부도 스페인으로 신혼여행 간답니다. 이들이 사도바울의 열정을 배우러 갈까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바울의 열정도 생각하면서 축구장도 구경하고 잘 다녀오시 길 바랍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예화 하나 말씀드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은 “살바토르문디”라는 작품이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습니다. 가격이 우리 돈으로 5,062억 원 이랍니다. 이 그림은 인물화입니다. 사람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이 그림 주인은 사우디 왕세자 빈살만 입니다. 이 그림이 어디에 걸려 있는지 아십니까? 안방이 아닙니다. 개인 요트에 걸려있답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5천억 원이 창고에 걸린 셈이죠? 저는 세계 가장 비싼 그림 15개 작품을 검색했습니다. 10개가 모두 인물이 주제였습니다. 무엇을 말씀드리고 싶냐하면 사람이 아름답다는 겁니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복음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사람입니다. 유럽에 교회 건물을 보면 세계 최고를 자랑합니다. 관광객도 1년에 600만씩 다녀간답니다. 그런데 정작 예배 때는 신도수가 거의 없고 노인들만 몇 명 있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들이 클럽이나 호텔로 재단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답니다. 인걸은 간 데 없고 건물만 남아서 관광 수익만 올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37명의 사람 이름(로마서16:1~23)

오늘 본문은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37명의 사람들을 거론합니다. 실명이 35명,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자매 간접적으로 2명을 언급합니다. 1절 뵈뵈, 2절 브리스가와 아굴라, 5절 에배네도, 6절에 마리아, 7절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8절 암블리아, 9절 우르바노와 스다구, 10절에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 11절에 헤로디온과 나깃수, 12절에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13절 루포와 그의 어머니, 14절에 아순그리도, 블레곤, 허메, 바드로바, 허마, 15절에 빌롤로고, 율리아, 네레오, 네레오의 자매, 올름바 29명입니다. 그리고 21절부터는 로마 성도가 아니고 바울과 같이 있는 로마지역 이외 성도를 소개합니다. 21절에 디모데,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22절 더디오, 23절 가이오, 에라스도, 구아도, 총 8명이 나옵니다.

바울의 소개 방식

이름 앞에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나의 보호자, 나의 동역자, 나의 사랑하는 자, 나를 위해 목이라도 내어놓을 자들, 수고하고, 많이 수고하고, 택하고, 인정 받고,”입니다. 제가 어제 결혼한 한 자매를 다른 교회 소개할 때 “교회의 000 자매”입니다. 이러면 사무적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믿음이 좋고, 주일학교를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섬겼던 훌륭한 교사 자매입니다.” 라고 하면 타인이 볼 때 그 사람에 대한 가치가 달라 보입니다. 남을 잘 소개하다 끝에 가서는 은근 슬쩍 그 사람을 깎아 내리고 자기를 은근히 높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집니다. 본문에서는 바울의 남을 높이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자세를 배울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은 몇 백억 자산가 누구, 전직 사장님 누구라고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알아봤고, 제대로 평가하여 소개합니다.

바울의 행복

바울의 주변 사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변에 나를 위해 목을 내놓을 사람 한 명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요즈음은 눈만 감으면 코 베 가려는 시대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용하는 시대입니다. 얼마 전 유명 골프선수와 아버지와의 관계도 뉴스에 나왔습니다. 요즈음은 AI를 이용한 딥 페이크 사기도 유행합니다. 이런 시대에 자기를 위해 목이라도 내어 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뵈뵈(로마서16:1,2)

37명이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1절에 뵈뵈입니다. 1,2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뵈뵈는 우리 말 어감은 좋지 않습니다. 배배 꼬인 자매님 아닌가? 그러나 배배 꼬여서 뵈뵈가 아닙니다. 뵈뵈란 이름은 이방신 아폴로와 연관이 있답니다. 아폴로는 태양신입니다. 부모가 태양을 잘 숭배하라고 지어준 이름입니다. 뵈뵈는 태양을 섬기던 자매님이 복음을 영접하고 변화되었습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 일군입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11키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사도행전18장18절을 보면 바울이 서원한 바가 있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뵈뵈는 바울의 보호자 역할을 했습니다. 보호자는 먹이고 입히고,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물질적인 것을 다 공급하는 사람입니다. 뵈뵈가 바울에게는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주석에는 뵈뵈가 상당한 재력이 있었다고 나옵니다. 본문에는 이 뵈뵈를 로마교회에 천거하는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뵈뵈 자매님은 로마서 신서를 직접 들고 로마교회에 전해주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읽어주고, 설명도 해주었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을 대신하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겐그레아에서 로마까지 육로로 2100km, 배로는 1000km, 최소3개월은 걸리는 여행입니다.

본문에서 추천한다는 단어 뜻은 “함께 세운다. 함께둔다.”입니다. 당시에는 복사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뵈뵈는 교회를 순회하며 서신을 읽어 주고 필사도 하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교회에 뵈뵈가 가면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라고 합니다. 당시 여인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로마 당시 분위는 남성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감사하는 게 있었답니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답니다. 그 정도로 여성을 무시하는 시대였습니다. 로마교회에서도 “아니 뭐 대단한 분이 온다더니 여인이왔어?”하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에 “소용되는 데로 도와주라.”는 의미는 마치 종이 주인 곁에 서서 시종을 듯이 도와주라는 의미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로마서16:3,4)

두 번째 소개하는 분들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3,4절을 읽어볼까요?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사도행전 18장에 자세하게 나오는 부부입니다. 브리스가는 귀족에게 붙이는 이름이랍니다. 아굴라는 유대에서 로마에 노예로 잡혀 온 가문이었습니다. 귀족가문과 노예가문의 두 사람이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무엇인가 대단한 스토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1세기에 로맨스가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손에 물 한번 안 묻혔던 브리스가가 텐트 만드는 일을 했을 아굴라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생겨서 였을 까요? 아마도 믿음이 특출 났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들 부부는 고린도 교회 개척 때 텐트 만드는 업이 같아서 바울과 만났죠? 그리고 이들은 원래 로마에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 유대인 로마 추방령을 내려서 고린도에 와 있었고 바울을 만났습니다. 이 때부터 이들은 바울의 선교 여행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가정을 개방하고 헌신적으로 섬겼습니다. 목을 내놓다는 표현은 바울과 죽음의 고비도 함께 넘겼다는 뜻입니다. 브리스가는 애칭입니다. 우리 애칭은 아주 가까운 사이에 씁니다. 부부사이에 ”자기야!“하고 부릅니다. 아이들 부를 ”똥깡아지, 뚱뿐이“하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부부는 애칭을 부를 정도로 가깝고 신뢰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당시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 있었습니다.

에배네도(로마서16:5)

그 다음은 5절에 에배네도 입니다. 에배네도도 현재는 로마에 있습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애배네도 이름 뜻은 “칭찬받을 만한”입니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서 맺어 주신 첫 열매라고 소개합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개척할 때 3개월을 회당에서 대중 설교를 했는데 실패합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두란노 서원을 빌려서 12명 정도 제자를 따로 세우고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밤낮으로, 눈물로 2년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이 나가서 아시아 전체에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첫 열매가 애배네도 였습니다. 애배네도는 고생 고생하여 얻은 열매입니다. 마치 사막에서 핀 꽃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느 교회나 첫 열매가 있습니다. 바울이 열매를 소개하는 방식에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맺어주신 열매라고 합니다. 복음의 열매, 생명이 살아나는 일은 그리스도만이 맺어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 첫 열매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열매는 대표성을 띠며 전체를 상징합니다. 첫 열매를 귀히 여긴다는 것은 모든 복음 역사가 하나님의 역사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리아(로마서16:6)

6절에 마리아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에게 문안하라” 마리아는 “가장 높다, 존귀하다.”는 뜻입니다. 마리아 자매님은 수고했는데 얼마나 수고했으면 많이 수고했다고 합니다. “많이 수고했다.”의 시제가 과거완료입니다. 지금은 많이 수고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마리아 할머니 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복음을 위해 많이 헌신했는데 지금은 마리아 모친님이 되셨습니다. 이분들도 귀하게 여기고 합당하게 대우하라고 합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로마서16:7)

7절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입니다.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는 헬라식 이름으로 남성이고, 유니아는 로마식 이름으로 여성입니다. 이들은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바울보다 먼저 믿었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친척이라고 하는데 친척은 정말 삼촌, 사촌 같은 혈통이란 뜻이 아닙니다. 동료, 동족이란 의미입니다. 같은 유대인 들은 다 친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졌다고 합니다. 존중의 뜻은 “탁월하다.”로 번역합니다. 아주 특출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실 바울보다 더 특출한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바울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자세가 있었습니다.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로마서16:8)

8절에 암블리아, 9절에 우르바노와 스다구입니다.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 우르바노와 나의 사랑하는 스다구에게 문안하라.” 암블리아는 노예들 이름입니다. 우르바노는 “도시에.”란 뜻의 노예 이름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마당 쇠, 돌 쇠” 이런 이름입니다. 스다구도 “이삭, 곡식의 알멩이.” 란 뜻입니다. 그 다음 10절에 나오는 아벨레도도 노예에게 붙인 이름입니다. 바울은 노예들에게도 “내 사랑하는, 우리의 동역자”란 수식어를 붙여서 부르고 있습니다.

아벨레, 아리스도불로, 헤로디온, 나깃수(로마서16:10)

10절에 아벨레와 아리스도불로, 11절에 헤로디온과 나깃수가 나옵니다. 10,11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아벨레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인정받다는 테스트 겪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달아 보셨는데 거기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리스도불로는 헷롯 왕의 손자입니다. 왕족입니다. 나깃수도 로마의 귀족 가문입니다.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

12절에 드루배나, 드루보사, 버시입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두르배나, 드루보사 자매님들은 귀족의 딸들입니다. 이들이 “주 안에서 수고했다.”의 헬라어는 “코피아오”로 “죽을 힘을 다해 수고했다. 진액을 짜서 섬겼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수고하고는 현재분사입니다. 이들은 현재도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많이 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버시에게 붙은 “수고하고.”는 부정과거분사입니다. 지금은 수고하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현재 수고하는 자매님과 이미 수고한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이는 믿음의 계승이 시니어에서 주니어로 잘 이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루포와 그의 어머니(로마서16:13)

13절을 보겠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루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 가시다 힘들어서 쓰러 지셨는데 이 때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입니다. 로마병사에게는 식민지인에게 아무나 붙잡고 짐을 지우고 오리를 가자고 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마가복음15장21절에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으로 나옵니다. 구레네는 아프리가 북쪽에 있고, 예루살렘까지 2000km 떨어진 지역입니다. 몇 달 동안 걸어서 예루살렘에 순례객으로 걸어온 시몬입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운 나쁘게 또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일로 시몬은 구원받았습니다. 바로 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들이 루포입니다. 시몬의 부인이 루포의 어머니입니다. 루포의 어머니가 얼마나 복음 역사를 잘 섬겼는지 바울은 그의 어머니가 자기 어머니라고 고백합니다. 재수없게 얻어 걸려서 억지로 진 십자가가 구원을 가져다주었고, 그 신앙이 부인과 자식에게 다 영향을 줬습니다. 루포의 어머니는 바울이 초기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어머니처럼 섬겨줬던 분입니다. 현재는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로마교회에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다 보면 의무감, 책임감, 억지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은 귀하게 쓰신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하여 배웁니다.

왼쪽 아래 구레네 위치

바울 주변의 동역자(로마서16:21~23)

21-23절에는 로마교회 사람이 아닌 바울 주변에 있는 동역자들을 소개합니다. 본문22절입니다.“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더디오는 바울의 로마서를 대필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안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디오 같은 대필자가 필요했습니다. 더디오가 바울 옆에서 기계적으로 받아 적기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바울님 이 부분은 이게 아닌데요,” 하고 태클을 걸었겠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더디오는 바울 옆에서 맞장구도 치고, 같이 감격도 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늘 옆에서 동행하면서 위로를 주었을 것입니다. 더디오도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바울의 복음 역사를 이름도 빛도 없이 섬긴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5개 로마교회(로마서16:1~16)

본문 1-16절 그리고 21-23절까지의 이름 들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첫째 로마에 있는 교회의 숫자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로마교회는 최소한 5개는 있었다고 봅니다. 로마교회는 건물 교회가 아닙니다. 집 교회, 가정 교회였습니다. 아무리 집 크다 하여도 40명이상 모일 수 없었으리라 짐작합니다. 5개 교회 중 첫째는 본문 5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저의 집에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10절에 “아리스도볼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에서 권속은 자기 집안에 딸린 식구를 말합니다. 여기도 하나의 교회를 형성했습니다. 세 번째는 11절에 나깃수의 가족 중 주안에 있는 자들이 나옵니다. 여기도 집단을 말합니다. 네 번째 14절에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이 나옵니다. 여기도 교회였습니다. 다섯째는 15절에 울름바와 함께 있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당시는 건물에서 공식적으로 모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로마황제의 핍박이 심하여 공적으로 만나기도 어려웠습니다. 목숨 걸고 만나야 했습니다. 한번 모이면 “오늘도 살아서 이렇게 보네요.”라고 하며 뜨겁게 인사했습니다. 당시는 어머니, 보호자, 형제, 자매와 같이 가족보다 더 끈끈한 관계여야 로마교회가 유지되었습니다.

계층이 다양한 로마교회

두 번째 특징은 계층의 다양성입니다. 특히 자매님 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뵈뵈부터 자매이름을 가장 먼저 거론했습니다. 브리스가, 마리아, 유니아, 두르배나, 두루보사, 버시, 루포의 어머니 다 자매님들입니다. 그리고 노예이름도 나옵니다. 아굴라, 안드로니고,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허메, 울름바, 나깃수가 노예였답니다. 또 왕손도 있습니다. 11절에 아리스도불로 헤롯대왕의 손자인데 로마 교회에 더해진 사람입니다. 로마교회는 아니지만 고린도 교회에 재무관 에라스도와 구아도도 있었습니다. 재무관은 공무원으로 재정과 회개 일을 했습니다. 야손도 데살로니가 읍장 출신입니다. 이를 볼 때 로마교회 뿐 아니라 당시 교회는 남녀차별, 빈부귀천, 지위고하의 차별이 없었습니다. 현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 안에서 동등한 존재입니다.

배만 위하는 이단을 조심하라.(로마서16:17~20)

로마서16장을 바울이 로마서를 끝내며 하는 마지막 권면입니다. 그 중 하나가 이단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17-20절입니다. 본문은 한 마디로 자나 깨나 불조심하듯 자나 깨나 이단 조심하라는 권면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고린도서에 바울이 복음역사에 방해가 된 것을 나열합니다. 자연재해도 있지만, 동족의 위험, 강도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이 컸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의 37명은 함께 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본문17-20절까지는 함께 가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갈 필요가 없으니 이름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지 말아야 할 사람의 특징은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고 자기 배만 섬기고 교활한 말로 아첨하고 미혹하는 자들입니다. 배만 섬긴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양의 비유에서 삯군목자입니다. 삯군은 양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몰래 넘어갑니다. 그는 양을 잡아 다 양 꼬치 구이 하여 술안주 하려고 넘어갑니다. 또는 양을 팔아서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복음역사를 이렇게 섬기는 자들이 자기 배 만을 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특징이 또 다 말로 유혹합니다. 이들에 대하여는 말을 섞지 말고 떠나 상종하지 말라 권면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악한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은 논리로 이겨낼 수 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함께 걸어가는 길

저희 어머니가 80세입니다. 그런데 건강상 어려움이 있을 때 마다 저에게 “컴퓨터 한번 처 봐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컴퓨터가 만능일줄 알고 계십니다. 몇 년 전에 본인도 컴퓨터를 해 본다고 하여 중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켜고 끄는 것을 스위치를 눌러서 켜고 끄고 하여 일주일 만에 망가졌습니다. 다른 걸로 교체하고 끄는 법부터 알려드렸습니다. 한글타자 연습하고, 영상 보는 것 정도만 하시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마우스 화살표 움직이는 것도 어려워하셨습니다. 요즈음은 저희 어머니 말처럼 컴퓨터가 만능인 시대가 왔습니다. AI 곧 인공지능 때문입니다. 저도 설교 준비하면서 AI 검색으로 “로마서16장으로 설교문 하나만 작성해 줘!” 했습니다. 몇 초 안되어 설교문을 만들어줬습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가족, 함께 걸어가는 길” 이라고 정해줬습니다. 소단위 제목을 넣어서 설교문을 만들어 줬습니다. AI가 이렇게 설교문도 만들어 주는 시대에 설교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고민이 됩니다.

오늘은 AI가 정해준 제목으로 결론을 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2가지 반복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22번 반복하는 단어가 “문안하라” 입니다. 9번 반복하는 단어가 그리스도 안, 주 안입니다. 본문의 37명과 5개의 교회를 묶어주는 단어가 바로 “주안, 그리스도 안입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결혼식이 있었는데 우리 모두의 딸을 결혼시킨 겁니다. 또 신랑은 우리 교회의 사위로 맞아들인 겁니다.

각 나라의 다양한 인사법

본문에 문안은 물을 문(問) 평안할 안(安)자입니다. 문안은 히브리말로 바꾸면 샬롬 입니다. 인사말에는 그 시대 역사가 반영됩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하면 밥을 굶는 것을 밥 먹 듯이 했던 시절에는 한 끼 먹었느냐를 묻는 것이 인사였습니다. 악수는 전쟁이 많았던 시절 “난 빈손이다. 당신을 해칠 의사가 없었다.”는 뜻으로 악수를 했습니다. 특이한 인사법은 아프리카에서 얼굴에 침을 많이 뱉을수록 반가움도 배가 되는 인사가 있습니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인사가 나왔다 합니다. 티벳에는 모자 벗고 혀를 최대한 길게 내미는 것이 인사랍니다. 이 나라의 악한 왕은 혀가 없었답니다. 나는 그의 신하가 아니란 뜻으로 이런 인사법이 생겼습니다.

문안하라(로마서16:16)

사도 바울은16절에서 교회도 서로 문안하도록 권면합니다.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합니다. 우리가 진짜 입을 맞추면 곤란합니다. 그 정도로 반갑게 인사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안에서 형제, 자매, 보호자, 나의 동역자, 나의 어머니, 내 친척, 내 사랑하는 자들, 다 같은 권속입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 문안하며 가족 같은 사랑을 나누면서 함께 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저의 메시지는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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