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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부활은 반드시 일어난다. (고전15:1-10)

by 명주(明珠) 2024. 7. 17.

방탄은 총알을 막는다 입니다. BTS 방탄소년단도 같은 뜻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편견과 억압을 막아낸다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습니다. 요한일서5장1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란 말씀이 있습니다. 부활신앙이 우리를 방탄성도로 만들어 준다는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시작합니다.

 

 

외국 노부부의 부활 신앙 예화




외국 부부가 있었습니다. 40년을 같이 산 노부부가 성지 순례를 갔답니다. 예루살렘에서 불행하게도 부인이 죽습니다. 장례를 치러야하는데 고국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장의사가 남편에게 제안을 합니다. “부인 시신을 고국으로 운구하려면 5000 달러가 듭니다.” 그러나 “이곳 예루살렘 성지에 묻으면 단돈 150달러입니다.” 말을 들은 남편은 펄쩍 뛰면서 말합니다.“아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5,000달러든 50,000만 달러든 내가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고국으로 가서 장례를 치르겠다.” 말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장의사는 “평소 살아 계실 때 얼마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컸으면 저렇게 펄쩍뛰실까?”하면서 칭찬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의 얘기가 이렇습니다. “여기는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한 땅이라면서요?” “만에 하나 부인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큰일이잖아요? 이제 겨우 자유를 얻었는데^^” “반드시 데려 가야 합니다.”고했답니다. 부활신앙은 확고한 남편인데 방향이 잘못됐습니다.

노부부

아리마데 요셉의 부활 신앙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장사 지낸 분이 누구죠? 아리마데 요셉입니다. 그는 부자고 저명한 공회의원입니다. 그는 자기의 새 무덤에 예수님 시신을 안치합니다. 새 무덤 조성하려면 꾀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를 안 친구가 찾아와 권면합니다. “아니 자네 미치지 않았느냐?”“그 비싼 돈 주고 만든 무덤에 처형당한 죄수를 안치하다니!”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하려고 그러느냐““그러다 정치적인 생명도 끊어지고 평생 비난받으며 어떻게 살려고 하냐고”하고 핀잔을 주었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리마데 요셉이 하는 말이 “야! 이 친구야 평생은 무슨 평생이야! 딱 3일 이면 끝나. 3일 이면 방빼!” 이렇게 말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러나 남의 눈이 두려워 계속 제자임을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십자가 죽음 지켜보고 빌라도 총독을 찾아갑니다. 성경은 그는 “당돌하게” 시신을 달라했다 합니다.(막15:43) 그는 더 이상 숨지 않고 방탄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따가운 시선도 그를 뚫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아리마데 요셉을 만들어낸 인물이라 합니다. 거짓 인물이라 합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것이 거짓인물 만들려면 무명의 사람을 끌어다 써야 탄로가 나지 않습니다. 유명한 공회의원 이름을 갔다 썼습니다. 특정단체에 속한 인물의 이름을 쓰면 공회에 가서 물어보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은 만들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필요한 부활 신앙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코린티아제스타이(corinthiazestai)’란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한다.란 뜻입니다. 좋은 뜻이 아닙니다. “저촌놈”과같이 욕하는 말입니다. 속되게 말하면 “저 고린도 놈~”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코린티아제스타이는 “방탕을 일상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이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으면 ”코린티아제스타이“란 말이 만들어졌겠습니까? 여기에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고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문제 중 한 가지가 부활 문제입니다. 당시 교회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딤후2:17-18 호메내오와 빌레도같은 사람입니다. ”부활은 우리가 침례 받을 때 이미 일어났다. 영적으로 이미 부활했다. 이제 끝났다. 몸이 다시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몸은 부정하기 때문에 살아날 가치도 없다는 것처럼 주장합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 신앙의 근간이 무너집니다. 기초가 없어집니다. 부활이 없는데 한 세상 고생하면서 살 필요도 없습니다. 최대한 살아 있을 때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확실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예언된 일이고 증인들도 많고 자신이 직접 보았음을 증거합니다. 사도바울 잘 아시듯이 순교까지 한 분입니다. 헛것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짜를 보았기 때문에 1세기 부활의 증인들은 기꺼이 순교했습니다.

복음이란



1절을 보십시오.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부활복음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전제합니다. 뭔가 쇼킹하고, 신비운 것이 아니란 것이죠? 이미 전에 다 전해준 내용입니다. 본문에 ‘알게 한다’는 것은 ‘Remind’로서 ‘다시 기억하도록 한다’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무엇인가 색다른 것을 자꾸 찾고 추구하기 쉽습니다. 히6장2절은 권면합니다.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특히 이단들이 기초를 다시 닦습니다. 자기들 입맛에 맞게 내용을 바꾸어서합니다. 당시는 영지주의 자들이 이런 자들입니다 이들은 영과 육을 분리해서 뭐는 이미 부활했고 뭐는 안했고 하면서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내용을 비비꼬고, 비틀어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면 이미 부활신앙의 기초위에 서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 시킵니다.

헛되이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는다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헛되이 믿는다는 것은 부활 신앙이 현실에서 힘을 못 씀을 말합니다. 부활 믿음 효험이 제로인 상태입니다. 부활신앙이 방탄 역할을 제대로 못함입니다. 사탄이 쏘는 두려움, 염려, 불안의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고 괴로워함을 말합니다. 헛되지 않은 믿음의 사람 구약 시대 아브라함의 예를 듭니다. 아브라함이 말년에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가서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명령입니다. 아들을 어떻게 자기 손으로 죽입니까? 하나님이 갑자기 식인종이 되셨나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기록은 그가 인간적으로 갈등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삭이 똘망 똘망한 눈으로 처다보며 “아빠 제물은 어디있어요?”하고 물었을 때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히11:19절은 그의 헛되지 않은 부활믿음을 이렇게 증거 합니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릴 줄로 생각했다.”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헛되이 믿지 아니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랍니다. 말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예를 들겠습니다. 직장에서 위에 과장님이 반복한 말이있습니다. 본인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자기한테 한 유언이 있답니다. “교회를 꼭 가라!”였답니다. 이 한마디가 평생 가슴에 남아서 잊혀 지지 않는다고 언젠가는 교회에 가야지하고 말하곤 합니다. 본문에 말을 지킨다는 것은 영어로 “Keep”입니다. 축구에 골키퍼 연상하셔도 됩니다. 공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다른 뜻은 굳게 붙잡으라. 입니다.(hold firmly) 떠내려가지 않게 꽉 붙잡는 것을 말하죠? 이렇게 말씀을 “keep"하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으리라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현재적으로 구원받은 상태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지키고, 붙잡고, 다시 기억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굳게 붙잡는 다는 의미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굳게 지키고 붙잡을 말씀은 무엇입니까? 3,4절을 참고합니다.“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복음의 핵심입니다. 복잡한 내용 없습니다. 바울이 창작했거나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받아서 전한 내용입니다.

성경대로의 의미




본문에는 성경대로가 두 번 나옵니다. 성경에 큰 도로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로는 의존명사로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란 뜻입니다. 엿장수 맘대로가 아닙니다. 학자들은 구약에서 300번 이상 예수님 부활이 예언되었다고 합니다. 부활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성경대로 다 이루셨기 때문에, 성경에 장차 우리 몸도 부활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면 그 성경대로 우리도 부활함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기절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도 훼손하려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죽지 않으셨고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나셨다. 기절설이 있습니다. 졸도하는 약물을 먹여서 졸도했다 깨어났다는 졸도 약물설도 있습니다. 또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갔고 부활했다고 거짓말한다. 도둑설도 있습니다. 예수님 잠깐 탈진했다가 깨어났다는 탈진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부정하면 부활도 당연히 부정되는 것이니까 정적들은 황당한 설을 많이 주장합니다. 기절설, 졸도설, 약물설, 도둑설, 탈진설 다 터무니없는 설들입니다.

확실히 죽었다는 의학적 근거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예수님 확실히 죽으셨다는 의학적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먼저 예수님 죽으시기 전에 겟세마네동산에서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고 나옵니다. 이 내용은 의학적으로 혈한증이라고 합니다. “hematohidrosis”로 발음합니다. 혈한증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정도의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나옵니다.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땀샘에 있는 모세혈관을 파괴 하는 화학성분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땀과 함께 피가 섞여 나옵니다.

저혈량성 쇼크



또 예수님 십자가 지시기 전 채찍에 맞았습니다. 채찍 39개의 가닥으로 만들었고 끝에는 쇠구슬이나 뼛조각을 달아서 한번 때리면 살점이 뜯겨나갑니다. 피도 많이 흐릅니다. 피가 많이 나면 의학적으로 “저혈량성 쇼크”가 옵니다. “저혈량성 쇼크”가 오면 4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심장이 더 이상 피를 펌 푸질 못합니다. 두 번째는 혈압이 떨어져 정신이 몽롱해지고, 기절 합니다. 세 번째는 신장이 조금이라도 피를 아끼려고 소변을 만드는 일을 중지합니다. 네 번째는 흘린 피를 보충하기위해서 수분이 필요해서 목이 아주 마르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오르시다가 여러 번 쓰러지며 기절합니다. 또 계속 목마르다고 호소를 합니다. 예수님의 행동 하나하나 다 의학적인 근거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너무 고통스런 처형방법이어서 마땅히 표현할 단어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신조어를 만들었답니다. “십자가로부터” (Excruciating) 고유명사를 만들어야 할 정도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면 팔이 6인치 정도 늘어나고 어깨가 탈골됩니다. 근육이 횡경막을 눌러서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숨 내쉬지 못하게 만든답니다. 십자가상에서 숨을 내쉬려고 몸을 들어 올려야 합니다. 들어 올릴 때 마다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못 들어 올리면 호흡수가 점점 줄면서 질식사 합니다. 질식사를 하면 심장 주위 막에 액체가 고입니다. 이걸 의학용어로 심낭삼출이라 합니다. 폐 주위에도 액체가 고이는데 이걸 늑막삼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요19:34) 로마 군병들 사람 죽이는 데는 전문가들입니다. 또 이들이 십사가 상에 살아 있는 예수님을 끌어 내렸거나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는 임무를 실패했다면 목숨을 내놔야합니다. 이런 의학적인 근거와 정황을 볼 때 예수님은 확실히 죽으셨습니다. 확실히 묻혔습니다.

십자가형의 고통에 대하겨


예수님 이렇게 혈한증, 저혈량성 쇼크, 질식, 심낭삼출, 늑막삼출을 겪으면서 죽은 이유가 무엇이라 합니까? 우리 죄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죄를 없애고 의를 전가 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실을 잘 말해주는 말씀이 레위기 16장 8절입니다. 아사셀 염소가 나옵니다. 당시는 속죄를 위해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뽑아서 한 마리는 피를 뽑아 제단에 뿌렸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머리에 안수를 했답니다. 안수하는 이유는 백성들의 1년 동안 진 죄를 다 염소에게 뒤집어씌우는 행위입니다. 안수 후 염소를 몰고 광야로 나갔답니다. 사람들은 이 염소가 광야로 멀리 안 보이는 데까지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자기의 모든 죄가 사라졌음을 시각적으로 확인합니다. 아사셀의 뜻은 “완전한 제거, 다 내려놓음, 멀리 가버리게 내버려 둠”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영원히 아사셀 합니다. 이런 자들은 사단이 더 이상 죄에 대한 정죄로 우리를 넘어지게 못합니다.

부활(復活)이 한자로는 다시 부 살활 자입니다. 다시 산다는 뜻입니다. 원어의 뜻도 “again”이란 뜻이 담겨 있어서 “다시 일어난다, 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이 부활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의 무덤 입구는 가수 김종국 같은 사람 세 명이 굴려야 겨우 굴러갈 수 있는 큰 돌로 막았습니다. 인봉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부활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목격자들이 많습니다. 구약에는 증인 2명만 있으면 사실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을 본 증인이 몇 명입니까? 5-8절을 보십시오. 본문에 오백여~~ 형제는 오백 명이 넘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에 보면 부활증인 더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엠마오 도상 제자 2명입니다. 도합 517명이상입니다. 증인 2명만 있어도 되는데 248배나 더 많은 증인이 있습니다. 부활 부정하는 자들은 환상을 봤다는 환상설, 최면이 걸렸다는 최면설도 주장합니다. 그런데 환상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집단적으로 환상을 보게 만드는 건 불가능합니다. 최면도 병원 어두컴컴한 방에서 한사람에게만 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몇 주에 걸쳐서, 장소도 다양하고 기간도 40일 동안 계속 같은 환상과 최면에 걸릴 수는 없습니다. 말이 안 되는 설들입니다. 본문에 이 환상설 아닌 걸 누가 증명합니까? 야고보입니다. 예수님하고 30여년을 같이 한집에 살았습니다. 형님 못 알아 볼 리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직접 목격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3차에 걸쳐 전도여행하며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합니다. 전도여행은 AD45년에 시작해서 AD67년에 끝납니다. 22년간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간증 내용 항상 일치합니다. 진술이 결코 오락가락하지 않습니다.(행9:1-11, 행22:6-11 행26:12-18) 진술이 한결같으면 사실임을 말합니다.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이 정말 사실이란 마지막 증거는 부활의 증인들의 삶입니다. 9-10절입니다. 바울 예수님의 원수 노릇하다가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원수도 회개시켜 귀하게 쓰는 하나님의 은혜에 바울은 감동했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수고를 감당합니다. 바울 여행거리 20,000Km정도 입니다. 지구둘레 40,000 Km입니다. 지구를 약 반 바퀴를 걸어서 여행 한 셈 입니다. 이 거리는 사람이 여행할 거리가 아니랍니다.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설 때 한없이 낮은 자신을 말합니다. 신앙인격은 커질수록 겸손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년에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까지 낮춥니다. 바울은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



부활신앙은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어 줍니다. 오늘 본문6절하반절을 보면 죽음을 뭐라고 하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입니다. 잠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41년간 일한 간호사이면서 작가인 전지은 씨 인터뷰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수없이 봐오면서 무엇을 느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환자의 얼굴은 굉장히 평온하다. 그래서 그런 표정을 보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라고 합니다. 또 죽을 때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미안하다, 고마웠다, 용서해라, 사랑한다.”란 말이 제일 많았답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고 감사와 용서를 미루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입니다. 잠이 안와서 문제이지 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잠 자고 나면 몸도 부활합니다. 물론 죽으면 우리의 영혼은 천사의 수종으로 하나님 품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피해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은 없습니다. 다 사탄의 속임수입니다.


오늘 제목이 방탄 성도입니다. 방탄차 하나 예를 듭니다. 세계 최고의 방탄차는 벤츠S600가드라고 합니다. 가격이 16억 4천만 원 입니다. 저격수가 쏜 총은 물론 가볍게 막아 줍니다. 로켓, 슈류탄, 헬기 사격 도 다 막아주는 괴물 방탄차라고 합니다. 제가 왜 이 비유를 드는가하면 부활신앙은 바로 이렇게 우리 자신을 방탄시켜 준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부활 신앙으로 굳게 설 때 사단이 쏘는 두려움의 총격, 염려의 로켓탄, 불안의 폭탄 이 못 뚫고 들어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제자들은 처음엔 방황합니다.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들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님의 역사 후 입니다. 우리 자신을 방탄 시켜줄 분은 바로 성령하나님입니다.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가 서두에 요한일서5장18에 말씀드렸듯이 성령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악 한자가 감히 만지지도 못합니다.


성경참고구절
고린도전서15:1-10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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