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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제5의 힘-중풍병자(마가복음2:1-12)

by 명주(明珠) 2024. 7. 17.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힘

자연에 존재하는 힘은 4가지로 분류합니다. 중력, 전자기력, 핵력, 약력입니다. 중력은 잘 아시죠? 전자기력은 이 힘 때문에 스마트폰 잘 쓰고 있습니다. 핵력은 원자폭탄 생각하십시오. 약력을 사람 경력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약하게 작용하는 힘입니다. 원자핵 내에서 작용하는 힘입니다. 양성자가 중성자로 바뀌는 과정을 전문용어로 베타 붕괴라고 합니다. 이 때 상호 작용하는 힘입니다. 오늘 제목을 제5의 힘으로 한 것은 이 4가지 힘 이외의 어떤 힘을 소개하려고합니다. 이 힘은 초자연적인 힘, 영적인 세계에 작용하는 힘입니다. 그렇다고 숟가락을 엿가락처럼 휘게 하는 초능력, 염력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소문을 듣다

1절을 다 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봅니다.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본문에 수일 후 AD27년경입니다. 가버나움은 지금 팔레스타인 북쪽 지역입니다. 가버나움이란 지명의 뜻은 “위로의 집”이란 뜻입니다. 예수님 수일 후에 다시 여기에 들갔습니다. 그럼 수일 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하면 앞장을 참고합니다. 가르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사람을 사로잡은 악한 영들을 쫒아냅니다. 그리고 병을 고칩니다. 마지막으로 고친 병이 나병환자입니다. 나병도 불치병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고치고 나서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 당부합니다. 그런데 병자는 말 안 듣고 소문을 퍼트립니다. 예수님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국으로 퍼집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군중들을 피했다가 다시 가버나움에 들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일이 주목적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대형종합병원을 차리고 돈을 쓸어 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 계신 곳은 어디입니까? 한 집입니다. 대형체육관이 아닙니다. 조그마한 집입니다.

많은 사람이 모임

이 집에 얼마나 사람이 많이 모였을까요? 2절을 계속 보십시오.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집안은 물론 꽉 찼으며 문 앞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아마도 키 작은 사람은 까치발을 했고, 키 큰사람은 기린목도 뺐습니다. 푸시맨도 있었습니다. 서울지하철 출근시간에 한명이라도 객차에 더 밀어 넣으려고 푸쉬맨 고용하지 않습니까? 번호표 제도 있었으면 수백 번까지 밀렸을 정도로 많이 모였습니다. 보통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으면 군중의 힘이 생깁니다. 그러면 무엇을 합니까? 그 힘을 이용합니다. 유투브를 시작하여 좋아요 구독 조회수 늘려 돈을 법니다. 아니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대권을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기를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군중들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도를 말합니다. 돈 잘 버는 비법, 핵 인싸가 되는 법 처세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도는 헬라어 원어로 ”로고스“입니다. ”진리, 말씀,”이란 뜻입니다. 도는 하나님 나라, 구원의 길, 천국, 지옥, 미래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도를 가르치다

도를 가르치는 도중에 이상한 일이 생기죠? 3,4절을 보십시오.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진지하게 강의하고 있는데 갑자기 지붕에 속된 말로 빵꾸가 뚫렸습니다. 그러더니 중풍병자가 달려 내려옵니다. 콘크리트 지붕을 어떻게 빵꾸 냈냐구요? 당시 지붕은 대들보에 나무를 걸치고 흙과 짚으로 덥어서 평평하게 만들었습니다. 빵구 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일은 정말 황당한 일입니다. 줄서서 기다렸던 사람들에게 비난이 쏟아졌급니다. “거 좀 신사적으로 합시다.” 집주인 입장은 어떠했겠습니까? 경찰 부르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들의 죄를 오늘날 법으로 따져봤습니다. 5가지 죄목이 나옵니다. 주거침입 죄, 새치기 죄, 재물손괴 죄, 예배방해죄, 환경오염 죄입니다. 여러분 새치기 하지 마십시오. 경범죄로 처벌받습니다. 예배 방해죄도 있습니다. 형법 제158조에 보면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로 나옵니다.

설교하는 예수님

죄사한을 먼저 선포하신 예수님

계속 5절을 봅니다.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 5가지 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보이는 건가요? 추상명사입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이 볼 수 없는 마음 중심을 봅니다.

본문에 메고 온 4명은 병자의 친구였습니다. 4명의 친구 사랑 대단합니다. 요즈음 남에게 관심 없는 시대입니다. 무정한 시대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 나왔던 해외골프여행 남자 사건 있습니다. 그가 택시타고 공항 가다가 택시 기사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왔습니다. 그래서 앞 차를 들이박고 멈춥니다. 옆에 탔던 남자가 차키 뽑아서 내리면서 전화합니다. 그런데 119부르지 않고 다른 택시 불렀습니다. 트렁크 열고 골프가방 챙겨 떠나버렸습니다. 응급처지가 늦은 택시기사는 심장 마비로 죽었습니다. 이 장면이 CCTV에 찍혀서 공분을 샀습니다. 2018년 동계 올림픽에서 팀 추월 경기 때 있었던 일 기억하십니까? 3명이 동시에 들어와야 하는데 한명의 동료를 버려두고 둘만 들어와서 논란을 빚었습니다. 오늘날 스피드 시대로 다들 바쁩니다. 청년들도 바쁩니다. 자기코가 석자입니다. 취업준비, 결혼준비, 할 일이 많습니다. 이를 볼 때 본문의 4명의 친구들은 남다른 사람들입니다. 또 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이 있는 집까지 메고 왔지만 집에 들어갈 틈이 없으면 보통은 돌아갑니다. “오늘만 날이냐? 내일의 태양은 또 뜬다. 돌아가라는 운명인가 보다?” 이렇게 말하며 포기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들어 갈 틈을 만들었습니다. 친구를 살리고자하는 뜨거운 사랑, 열정, 예수님께만 데려가면 고치리라는 믿음이 컸습니다.

 

중풍병자의 믿음도 생각해 봅니다. 병을 오래 앓았으면 몰골이 말이 아니었겠죠? 냄새도 납니다. 그는 자기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특히 남자들이 자존심이 강합니다. 그래서 여자들보다 평균 5년 일 찍 죽습니다. 남자들은 낯선 곳 가면 절대 길을 묻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모양 빠지는 거 싫어하고, 가오가 구겨지는 거 싫어해서입니다. 병자의 자존심도 강합니다. 본문 중풍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오는 일은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는 병자의 자존심, 남자의 모양 다 버렸습니다. 신사적인 태도 다 버렸습니다. 그도 예수님께만 나아가면 건강해 지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4명의 친구는 빵꾸 뚫는 믿음으로 병자는 모든 견을 견디는 무릎 쓰는 믿음입니다. 우리도 빵꾸 뚫는 믿음, 무릎 쓰는 믿음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중풍병자를 소자로 불러주심

예수님은 무릎 쓴 중풍병자를 어떻게 불러줍니까? “작은 자야” 하고 부릅니다. 무시하는 말 아닙니다. 번역하면 “MY SON! 나의 아들아!”하는 뉘앙스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따뜻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중풍병자는 지금까지 자기를 이렇게 다정스럽게 불러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들려 온 것을 보면 가족도 외면했습니다. 만약 쓰러지기 전에 약혼녀가 있었다면 이미 옛날에 신발 거꾸로 신었습니다. 이런 그를 예수님은 사랑하는 아들로 받아 주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아들로 영접해 준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 다음엔 병을 고쳐 주셔야 순서가 맞습니다. 그런데 무엇이라 하십니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합니다. 중풍병자 오늘 예수님과 초면입니다. 만남의 방식이 좀 기상천외 했지만 초면입니다. 예수님께 죄 지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욕 한번 한적 없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피해 당사자처럼 말씀하였고 그 피해에 대한 벌을 내리기 보다는 용서하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느끼시는 죄의 개념이 우리와 다름을 유추합니다. 예수님의 죄의 기준은 높습니다. 도덕적인 죄, 윤리적인 죄, 실정법을 어긴 죄도 죄지만 마음속에 악한 생각 자체도 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불신의 죄도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상태로 태어납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 원죄라 합니다.

서기관들의 고소

그러면 본문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봅니다. 본문6-7절을 보십시오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여기서 새로운 무리가 등장합니다. 서기관들입니다. 서기관은 당시 기득권층으로 예수님을 항상 죽이려는 원수역할을 합니다. 중풍병자를 어찌하든지 살리려고 했던 4명의 친구와 비교하면 서기관의 가슴은 차가운 사람들입니다. 중풍병은 몸이 마비된 자이지만 서기관은 마음과 양심이 마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 죄로 몰려고 마음만 먹었습니다. 당시는 그 자리에서 돌로 치는 즉결 심판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그들 의 악한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봤습니다.

예수님의 질문

8,9절을 계속 보십시오.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9.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예수님은 이들 마음속의 소리를 들으시고 만천하에 공개합니다. 아마 서기관들 뜨끔했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오리발 내밀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자칫 돌에 맞아 죽을 급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질문을 합니다. 쉬운가? 어려운가 OX문제를 내십니다. 인간 편에서는 둘 다 어렵고 예수님 입장에서는 둘 다 쉽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본다면 병고침이 쉽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인데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 중풍병자 용서되었습니까?”하며 확인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죄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면서 죽음이 왔습니다. 그 죽음의 한 증상이 바로 병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병고침의 효과보다 죄문제라는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우선입니다 “뭣이 중헌지” 아시겠죠?

일어나 걸어가라

본문 10-12절을 보십시오.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중풍병이 단번에 나았습니다. 예수님 복잡한 뇌수술 집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말씀 한마디 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올 때는 4명이 들고 왔지만 갈 때는 혼자 당당하게 걸어가게 합니다. 평생 누워 살았으면 재활훈련 해야 제대로 걷습니다. 우리 다리 근육 하나만 파열되어도 4개월은 재활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는 명령하자마자 일어나 바로 중심잡고 걸었습니다. 아니 뛰어갔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은 자연의 4가지 힘의 법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입니다. 이 4가지 자연 법칙을 위배하려면 제5의 힘, 초자연적인 힘이 가해져야합니다. 의사가 아무리 유능해도 무엇을 창조해 내지는 못합니다. 그저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도울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삐쩍 마른 병자의 팔과 다리에 새살이 나게 합니다. 우리 뇌 속에는 1000억 개 뉴런, 100조개 시냅스가 있습니다. 이 조직은 전기신호와 화학신경 물질을 통하여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이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을 창조하셔서 중풍병자의 막힌 뇌를 뚫었습니다.

무리들의 반응

본문에 10절 마지막 구절은 목격자들의 반응입니다. 고친 것은 예수님인데 영광은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목격할 때 이런 반응 보입니다. 구약에 구원자가 왔을 때 알아 볼 수 있는 특징이 예언했습니다. 그 중 한 가지가 불치병치유입니다. 문둥병, 중풍 병을 고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영접하고 영광돌립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러 왔습니다. 그 방법은 자신이 죄인 대신 벌을 받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갚을 빚을 대신 갚아주었습니다. 이 방식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이 십자에 죽고 부활 승천한 일입니다. 이 일은 2000년 전에 단 한번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과거의 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현재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바로 그 제5의 힘, 초자연적인 힘이 우리와 상호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현재적으로 부활한 예수님의 영이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힘에 대하여 자세히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제가 처음에 성경이 사실이란 고고학적인 근거를 말씀드렸습니다. 성경의 성은 성스러울 성이고 경은 그 내용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할 때 경자를 붙입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습니다. 보고 만지고 느껴서 믿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 우리는 권위를 통하여 믿습니다. 우리가 조선시대를 가 보고 믿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의 권위를 인정하여 믿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얻고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개인 간증

저는 1986년 가을 대학 2학년 때 믿게되었습니다. 저의 전공은 물리학과입니다. 그래서 진화론과 유물론을 믿었습니다. 그러다 기독교 동아리에서 봉사활동을 나갔습니다. 땅콩을 작은 봉지에 싸서 사람들에게 팔아 이익금으로 고아원, 양로원 등 불우이웃돕기를 합니다. 저는 낯을 많이 가리는 형입니다. 그래서 팔러 나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모양 빠질까 봐, 거의 끌려가다 시피 나갔습니다. 저 한 박스를 언제 다 파나 했는데 의외로 1-2시간 만에 다 팔렸습니다. 원가보다 10배는 더 받았는데 잘 사주었습니다. 제가 맡은 구역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는데 오히려 더 잘 사줬습니다. 저는 이 전에 창세기 1장27절 말씀을 공부하고 알고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내면에 하나님의 성품을 심어 놓았다는 구절입니다. 땅콩 사건은 이 성경구절이 정말 사실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절대선하며 인격을 가진 분입니다. 저는 그전에는 인간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의 성품 속 한 구석에는 선한 성품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품을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성경말씀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믿음을 갖게 되자 나를 만드시고 나를 구원하려고 이미 십가가의 일을 완성하셨고 또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제5의 힘,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큰 감동과 기쁨으로 다가 왔습니다. 중풍병자가 누워만 살다가 뛰어가 보십시오.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저도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 합니다.

성경참고구절
마가복음2:1-1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1)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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