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제목은 원래 창세기(創世記)가 아니었습니다. “태초에”입니다. 첫 문장의 첫 단어로 제목을 붙입니다. 유대인은 이런 관습이있다합니다. 모세 오경들의 제목도 이런 원리로 지었습니다. 출애굽기 제목은 “이름들” 원어로 “쉬모트”입니다. 레위기 이름은 “부르셨다.” 원어로 “와이크라”입니다. 민수기는 “광야에서”이고 원어로“브미드바르”입니다. 신명기는 “말씀들”이고 원어로“드바림”입니다.
창세기란 이름은 70인 역 본부터 나옵니다. 70인 역은 BC 300년에 헬라어로 구약을 번역한 역본입니다. 창세기는 비롯할 창(創) 세상 세(世) 기록 기(記)자를 써서 세상이 시작된 기록이란 뜻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모세입니다. 기록연대는 BC 1400년경입니다. 수신자는 애굽 노예생활을 하다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200만 명이 광야 생활을 앞두고 있습니다. 광야는 물도 없습니다. 떡도 없습니다. 전갈, 독사가 우글거립니다. 맹수도 있습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입니다. 주변국들이 호시탐탐 노립니다. 광야에서는 미래가 안 보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들을 택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려주고자 창세기를 기록합니다. 창세기를 통하여 미래에 대한 확신과 소망을 주려고 합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로 40년, 또 양 똥 치우는 양치기로 40년, 이스라엘 지도자로 40년을 살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22절에 보면 “모세는 이집트 왕궁에서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했다.”고 나옵니다. 당시 이집트는 세계 최고의 문명국입니다. 당시 이집트에는 원시문자인 상형문자(象形文字)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당연히 이 문자를 배웠고 성경을 기록하는데 사용했다고 봅니다. 모세가 우여곡절 끝에 왕궁에 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무계획이 계획이 아니셨습니다.
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창1:1-6)
그러면 창세기 1장 1절을 참고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장1절을 믿으신다면 게임은 끝났습니다. 창세기1장1절을 믿는데 성경에 못 믿을 구절이 없습니다. 신앙 출발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서 합니다.
창세기1장1절은 히브리어 7자입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엣, 하샤마임, 에트, 하레레츠” 해서 7입니다. 성경에서 7은 “안식, 창조, 신의 수, 완성”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1 단어 하나하나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 하나님이 영감을 주었습니다. 축자영감(逐字靈感)이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류가 없습니다.
분문에 태초는 클 태(太) 처음 초(初)를 써서 큰 처음이란 뜻입니다. 이는 “시간의 시작점”을 말합니다. 태초 전후는 영원입니다. 요12:48절은“마직막 날 심판을”말씀하고 마태13:49절은“세상 끝”날을 묘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태초라는 시점에서 시간을 시작하셨고 끝을 내신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돌고 도는 물레방아 사상이 아닙니다. 인간이 죽으면 천국이냐 지옥이냐 둘 중 하나입니다. 세상은 종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역사관을 직선적사관이라 합니다. 과학자들도 세상은 태엽이 풀리는 시계와 같다 합니다. 태양도 언제 가는 수명을 다합니다. 태양은 초당 4백만 톤 씩 무게가 줄어듭니다. 태양 중심의 수소가 다 타 없어지면 무게가 1/10로 줄어 백색왜성이 되었다가 서서히 사라집니다. 이 과정에서 지구도 흔적 없이 녹아 없어집니다. 앞으로 태양이 다 타려면 100억년 남았답니다.
창세기 1장1절의 주어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이라 읽습니다. 이 이름이 성경에 6,800번 나옵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주어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창조(원어:바라)는 유에서 무가 생긴 것을 말합니다. 롬4장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입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무에서 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벤허의 작가도 하나님 없음을 증명하려고 성경을 읽다 감동하여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파스퇴르,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파스칼, 패러데이, 갈릴레오, 보일 등이 유명한 과학자로 하나님을 믿은 분들입니다.
창세기1장1절에서 또 하나 주는 메시지는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주인을 높인 말이 주인장입니다. 주인장의 준말이 쥔장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쥔장, 시간의 쥔장, 세상과 우주만물의 쥔장, 또 인간의 주인장입니다.
“신은 죽었다.”라고 한 철학자 니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46세에 정신발작을 일으킨 후 10년을 정신병원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니체 대학 화장실 낙서 유머 아시죠? 한 학생이 대학 화장실 벽에 “신은 죽었다.” -니체- 하고 썼습니다. 그 바로 아래 다른 학생이 “니체도 죽었다.” -신- 이라 썼습니다. 그러자 “여기에 낙서한 놈들 둘 다 나한테 죽었어!”하고 -청소아줌마-가 적었답니다. 하나님을 꼭 믿어야하나 착하게 살면 그만이지 하나님을 주인장으로 모고 살면 구속되는 것 같아 싫다는 분들 있습니다. 또 내 주위에 신자를 보면 제대로 된 사람 못 봤다고 혹평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장이 그 마음에 없으면 로마서 2장9절에서는 “영에 환난과 곤고가 끊임없이 있다.”고 합니다. 마치 광야 한가운데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2,3절을 참고합니다. 처음 지구의 모습은 혼돈, 공허, 흑암입니다 이를 카오스라고 합니다. 혼돈은 섞일 혼(混) 어두울 돈(沌), 공허는 빌공(空) 빌허(虛), 흑암은 검을 흑(黑) 어두울 암(暗)자를 씁니다. 뒤섞여 있고, 어둡고, 텅 비어 있고, 검은 상태를 묘사합니다. 한 마디로 최초 땅의 상태는 사람 살 곳이 못 되었습니다. 3절을 보면 “빛이 있으라!” 하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외치면 공허한 메아리일 뿐인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빛의 종류만 해도 우주에 30 만 종류 입니다. 최초의 빛이 지구를 비추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장관이었을 듯합니다. 등대가 배를 비추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등대는 밝아서 43키로까지 비출 수 있답니다. 요한1서1장5절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길을 밝혀 줍니다. 빛은 에너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도 우리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해 줍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말씀에서 하나님의 영은 성령님을 뜻합니다. 이 말씀 전체 표현은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 “닭대가리!”라고하며 닭을 빗대 무시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실제 닭의 아이큐가 6이랍니다. 한 자리 수 입니다. 닭의 기억력은 6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어릴 때 닭이 곡식이라도 쪼아 먹을라 치면 빗자루로 쫓습니다. 꼬꼬댁하고 쫓겨 갔다 6초 후면 잊어버리고 또 오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닭이 머리는 좀 나쁠지라도 모성애는 지극합니다. 암탉은 20일 동안 알을 품습니다. 첫 5일은 식음을 전폐하고 꼼짝도 안하고 품고 있습니다. 5일 후 부터 하루 한 번 잠깐 나오는데 모이 먹고 흙 목욕하고 다시 품습니다. 하루 20분 정도만 나옵니다. 품속 알도 골고루 돌려가며 품어서 온도를 유지 시킵니다.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알을 품다 부화시키고 나면 몸무게가 반으로 줄어듭니다. 본문에 “운행하시니라.”란 단어는 독수리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둥지 위를 유유히 날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애정을 가지고 땅을 품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닭과 독수리 비유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도 동일하게 품고 돌보신다는 의미로 많이 나옵니다.
본문 1절에 “천지” 할 때 “지”는 지구를 말합니다. 2절 첫 단어 땅을 원어로 풀면 “그런데 바로 그 땅”으로 1절과 연결됩니다. 1절과 2절이 같은 날로 봅니다. 그러나 1절과 2절 사이에는 긴 기간이 있었고 첫 창조 후 재창조를 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지 않습니다. 첫 창조물을 보고 하나님은 기뻐합니다.(4) 그리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혼합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혼돈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피조된 것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빛을 낮 어두움을 밤이라 지으십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너는 나의 소유다.”하며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뜻합니다. 빛을 창조하심으로 창조 첫날이 지나갑니다. 여기서 하루는 문자 그대로 24시간을 뜻합니다.
본문 1-5절까지 보면 지구를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태양이 중심이 아닙니다. 태양은 넷째 날 창조합니다. 태양도 지구를 위해 있습니다. 태양을 도는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천해명 9개입니다. 행성들이 의미 없이 궤도를 돌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구를 멸망 시킬 수도 있는 혜성들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지구 방파제 역할입니다. 특히 목성은 커서 많이 막습니다. 달도 그냥 보기 좋으라고 떠 있지 않습니다. 지축의 기울기를 유지 시킵니다. 밀물과 썰물도 일으켜 바다에 영양소를 공급합니다. 달이 없으면 맛있는 회도 먹지 못합니다.
본문에 창조 수단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만으로 만물을 창조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가 1장에서는 8번 반복합니다.(창1:3,6, 9, 11, 14, 20, 24, 26, 29)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 졌습니다..(창1:3, 7, 9,11, 15, 21,24,30) 말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속의 뜻, 의사, 계획을 전달하는 매개체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이 육체가 되어서 오신 분이라고 증거합니다.(요1:14)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안에 계획을 그대로 실천하러 오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실천합니다. 십자가에 죽으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고 구원을 완성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39절에서 성경이 당신을 증거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성경을 읽고 성경말씀에 순종하고 성경의 가치관대로 산다는 것을 뜻합니다.
2.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창1: 26-31)
다음은 사람 창조로 넘어가겠습니다. 사람 창조도 다 계획이 있었습니다. 무계획이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26절을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6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은 제일 마지막에 창조합니다. 창조의 초점은 인간 창조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본문에 “우리가”란 주어를 반복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혼자 즉흥적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께서 긴밀히 협의합니다.
세 번째 특징은 인간을 만드실 때 모델이 있었습니다. 그 모델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입니다 이는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좀엄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형상을 가졌다는 근거 중 하나 예를 듭니다. 하나님은 절대 선입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에는 절대 선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것을 도덕률이라 합니다. 도덕률은 교육으로 사회 관습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 안에 도덕률을 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를 삼기도 합니다. 우리는 타락해서 도덕률대로 살 능력을 상실합니다. 그래서 우리 내면에는 항상 벌 받을 것 같은 불안,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불안 저절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을 통해서만 없앨 수 있습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으십니다. 아주 섬세하게 장인정신으로 빚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인체의 신비 소개합니다. 우리 몸의 방어체계를 예로 듭니다. 1차 방어체계는 입속 침 속에 라이소자임이라는 효소가 있는데 나쁜 세균이 입으로 들어오면 분해합니다. 꼭꼭 씹어 먹으라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위액은 산성이어서 2차로 균을 죽입니다. 2차 방어시스템은 항체 방어시스템이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면 우리에게 항체를 형성하게 해 주어 바이러스를 이깁니다. 항체는 단백질로 우리 몸속에 아주 유능한 경찰과 같습니다. 항체는 몸속에 바이러스, 세균, 나쁜 물질이 들어오면 열쇠가 자물쇠에 끼워지듯 딱 달라붙어서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증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식균작용을 하는 백혈구는 피아구별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이 항체만 붙어있으면 잘 잡아먹습니다. 마치 적군 군복에 빨간 물감을 칠해서 잘 보이도록 한 것과 같습니다. 항체가 붙어있는 바이러스를 골라 폭파시키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는데 보체라고 합니다. 이 보체는 평소에는 쥐죽은 듯 있다가 항체가 들러붙은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잠에서 깨어나 폭파시킵니다. 그래서 항체가 있나 없냐가 관건입니다.
인간 창조의 다섯 번째 특징은 하나님이 숨을 코에 불어 넣으셔 산 존재가 되게 한 부분입니다. 창세기 2장7절을 참고하십시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입니다. 인간 안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방이 있습니다. 이 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는 우리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셨습니다. 28절을 보면 우리는 만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맞게 해야 합니다. 한국은 빠른 산업화로 평균온도가 과거보다 1.8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평균온도가 올라가면 이상기후가 많이 나타납니다.
27절을 보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나옵니다. 세상에 남녀 비율이 적절히 조정되는 것도 신비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조절하지 않나 추측합니다. 생명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생명 탄생과정도 너무 신비롭습니다. 염색체도 남자에게서 23개 반수체와 여자에게서 23개의 반수체가 융합하여 온수체 23개의 쌍이 되면서 부모의 유전형질이 전달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3~5억분의 1의 경쟁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 다 아실 것입니다.
29절을 보면 처음 엔 채식을 합니다. 땅이 저주를 받으면서 약육강식으로 전락하면서 육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채식만하면 단백질이 모자라 어떻게 살았냐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덩치 큰 코끼리도 잘 살고 있습니다. 소도 잘살고 있습니다. 1950년대에 리틀타이크라는 사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자는 고기를 거부했답니다. 채식만 합니다. 그런데도 안 죽고 잘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가오는 천년왕국 시대에는 다시 사자와 곰들이 어린양과 함께 사이좋게 풀을 먹는 시대입니다.
31절을 참고합니다. 하나님이 창조된 세상을 보고 소감 발표합니다. 심히 좋았다는 표현은 “보라! 얼마나 좋으냐”란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감탄한 존재입니다. 누가 나를 감탄하면서 봐준다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요즈음은 온갖 악성 댓글이 난무하는 세상 아닙니까? 악성 댓글 때문에 목숨도 끊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60%이상이 악플을 단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밴드는 악플 제로입니다. 선한 댓글 100프로입니다. 아주 좋은 현상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주인장이 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당신의 형상을 닮은 선한 존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나를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 안에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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