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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바벨탑과 언어의 기원(창세기11:1-9)

by 명주(明珠) 2024. 7. 16.

언어학회에서 발표한 지구상에 언어는 약 6,500개입니다. 오늘은 언어가 이렇게 나뉜 윈인이나옵니다.
본문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 사람들의 모든 생각이 항상 악합니다.(창6:5) 하나님은 노아와 8가족만 남기고 홍수로 심판합니다.(벧전3:20) 홍수 후에 하나님의 뜻은 인류가 흩어져 온 땅에 충만해지는(창1:28) 것입니다. 노아도 자식들에게 이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후손들은 노아의 지시도 하나님의 명령도 어깁니다.

태초에 언어가 하나



1절을 보면 당시 언어와 말이 하나였습니다.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영어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합니까? 영어 사교육시장 규모는 6조를 넘었습니다.

당시에는 한 개의 말과 글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어떤 말과 글이 공용어로 쓰였을까요? 주석에는 공용어가 히브리어 또는 셈족어라 추측합니다.

2절을 보면 사람들은 동방으로 옮기다 시날 평지에 정착합니다. 하나님은 흩어지라 했는데 모였습니다. 시날 평지는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생한 지역입니다. 여기에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이 있습니다. 이 유역을 바벨론이라고 부릅니다. 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은 악을 생산 해 내는 도시입니다.(계14:8)

3절을 보면 이곳은 돌보다 흙이 많은 지역입니다. 사람들은 흙과 역청을 섞어 벽돌을 만들고 구웠습니다. 역청은 아스팔트(asphalt)입니다. 아스팔트는 석유를 거른 후 마지막에 남는 물질입니다. 중동에 가면 아스팔트 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샘에서 물이 나오는데 여기는 기름이 나옵니다.

미국 석유 왕 록펠러라는 사람은 본문 11장3절에서 힌트를 얻어 중동석유 개발을 했답니다. 스탠더스 회사입니다.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직원을 파견하여 유전을 개발하고 이윤을 남겨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침례교도입니다. 교회 4,000개를 세웠습니다. 시카고 대학 등 학교도 12개 세웠습니다. 그는 항상 주일예배 40분 전 교회에 옵니다. 헌금도 40분 동안 기도로 준비하고 예배 후 회계사 30 명을 부릅니다. 그들을 통해 십일조를 정확히 계산하여 내고 갔답니다.

성경에는 석유보다 더 값진 보물을 소개합니다. 예수그리스도입니다.(벧전2:4) 사도바울은 이 보배를 발견하고 자신의 유형, 무형의 가치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깁니다.(빌3:8)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는 가장 큰 복은 영생입니다. 시편133편3절은 말합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

언어가 갈라진 배경


3절에 2번 반복하는 단어가 대신(instead of)입니다. 돌 대신 벽돌, 진흙 대신 역청입니다. 돌과 진흙은 하나님이 순수하게 주었습니다. 벽돌과 역청은 인위적으로 만듭니다. 4절을 보면 이것으로 성읍(City)을 건설하고 탑(Tower)을 쌓았습니다. 성읍은 성곽을 두른 도시를 말합니다. 지금도 당시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이 탑은 지구라트(ziggurat) 유적입니다. 피라미드 형태의 계단식 탑입니다. 꼭대기에는 제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25 개를 발견합니다. 큰 것은 길이가 102미터, 높이는 24미터입니다.

성읍과 기념탑을 세우는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4절은“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라 합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유명하게 하려고합니다. “흩어짐을 면하자!”는 창세기 1장28절 말씀에 정면 위배입니다. 28절은 “땅에 충만하라!” 고합니다. 온땅에 흩어져 충만해지는 것이 지상명령입니다. 그런데 “흩어짐을 면하자.”하고 거역합니다.

당시는 홍수 심판을 경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탑을 될 수 있으면 높이 쌓는 것은 물이 아무리 차고 올라 와도 잠기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탑을 쌓아 하나님의 심판도 피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사람들은 바벨탑을 무서운 속도로 쌓아 올렸습니다. 그냥 두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 1위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킹덤 타워라고 합니다. 1,007미터입니다. 2위는 일본 토교의 스카이트리입니다. 634미터입니다. 3위는 중국 상하이 타워로 632미터입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롯데월드 타워는 5위입니다. 555미터입니다.

 


현대의 건축 기술, 과학 기술을 투입하여 하늘 높이 탑을 쌓아 올라갈 수 있는 최대 높이가 600~1000미터입니다. 당시 유적지 지구라트는 24미터입니다. 높이를 대기권과 비교 해 봅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기권의 높이는 1백5십만 미터 입니다. 바벨탑 높이 24미터는 우리가 하늘이라고 말하는 대기권 높이의 0.000016%입니다. 바벨탑은 그야말로 “하늘아래 뫼이로다.” 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이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내려 옴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장차 내려올 것을 약속합니다.(살전4:16)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은 심판의 날임과 동시에 믿는 자들에게는 축제의 날입니다.(계19:9)

6절은 무리가 한 족속이고 언어도 하나였기 때문에 “이 후로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고 합니다. 막을 수 없다는 표현은 사람들의 죄악이 절정에 달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 지역과 같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유황 불의 심판을 받은 지역입니다. 당시 5개의 성이 있었는데 한 개의 성에 5천명이 살았습니다. 총인구 2만5천 명입니다. 이들 중 10 명의 의인이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고 보면 됩니다. 의인은 0.004%도 없었습니다.

7-9절은 “자 우리가 내려가자!”합니다. 본문3절과 4절에도 자~란 표현이 있습니다. 자는 “자자 모여봐!”란 뉘앙스로 영어로는 “Come on!”입니다.
우리란 표현은 혼자가 아님을 암시합니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 3위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9절의 바벨은 섞다, 혼합, 혼란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내려 오셔서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합니다.” 하루 아침에 말이 안통합니다. 우리말 “사랑해!”를 영어로는“아이 러브 유”하였습니다. 일본어 “아이 시떼루” 중국어 “워아이니” 스페인어 “떼 기예로” 프랑스어 “주 떼므” 힌두어 “마이 툼 세 피아르 카르타 훙”입니다. 힌두어로 사랑고백하기 힘듭니다. 아랍어로는 남자가 여자에게는 “우히부키”라하고 여자가 남자에게는 “우히부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어 한 두 개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말이 달라지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랑해라고 말했는데 자기에게 욕하는 줄 알고 칼을 꺼내 휘둘렀습니다. 벽돌을 달라고 했는데 식빵을 가져왔습니다. 심지어 같은 나라 말이라도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경우 많잖습니까? 북한말과 남한말의 다른 점 몇 개를 예로 들겠습니다. 수영에서 ‘평영’을 북한에서는 ‘가슴헤엄’이라합니다. ‘박치기’를 ‘골받이’라합니다. ‘볶음밥’은 ‘기름밥’입니다. ‘근시’는 ‘병신눈’이라합니다. ‘버리이어티쇼’는 ‘노래춤묶기’라합니다. ‘헤어드라이기’는 ‘머리건조선풍기’입니다. 북한 말로는 “오늘 교회오실 때 머리건조선풍기 하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어야합니다. ‘건강진단’은 ‘위생통과검열’입니다. 올해 ‘위생통과검열’은 받으셨습니까?하고 물어야합니다. 같은 민족의 말도 이렇게 다른데 당시는 외국어끼리 뜻이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탑 쌓기는 금방 중단하였고 인류는 온 지면에 흩어집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흩음으로 죄의 확산도 막았습니다. 온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뜻도 이룹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변하지 않고 성취됩니다.

타이타닉호의 교훈


타이타닉호의 침몰 사건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교만한 선장의 최후”입니다. 타이타닉 호 사건은 1912년 4월14일에 인류가 만든 최고의 초호화 유람선이 대서양 횡단 4일 만에 가라앉은 사건입니다. 106년 전 일입니다. 2,300명이 승선했었는데 1,514명이 희생당합니다. 700명만 구명정에 옮겨 타 살아남습니다. 당시 선장은 항해 전에 이미 대서양에 빙산이 떠다닌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길이 269미터 폭28미터 높이 11층인 46,328톤급의 배가 과연 가라앉을 것인가?”생각하며 경고를 무시 합니다. 항해 중에도 6번이나 빙산에 대한 경고를 무선으로 연락했는데 항해사도 선장도 무시합니다. 항하사는 무선을 선장에게 전달하며 “ 전방에 빙산이 있다는 무선을 받았는데 어찌할까요? 설마 이 타이타닉호가 빙산 따위에 눈 깜작이나 하겠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선장은 한술 더 떠 “하나님이라도 감히 이 배를 어찌할 수 없을 걸세! 항해를 계속해!”하고 명령합니다. 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최고속도(40Km/h)로 달리다가 빙산을 피하지 못하고 충돌합니다. 빙산에 배가 부딪혀 구멍이 나고 얼음 파편이 들어와도 사람들은 얼음으로 축구를 합니다. 어떤 분은 위스키에 기념으로 빙산 파편을 넣어 먹으려고 챙기기도 합니다. 배가 기울어 구명정에 올라타라고 해도 사람들은 작은 구명정보다는 가라앉는 고철 덩어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타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70 명 정원의 구명정을 28 명만 태우고 내리기도 합니다.

배가 가라앉는 중에도 의연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8명의 연주자들입니다. 이들은 “내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이란 찬송을 연주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켰습니다. 배가 가라앉기 10분 전까지 연주를 계속 합니다. 악단 장은 하틀리라는 바이올린 연주자였는데 평소 가장 사랑했던 찬송가(새찬송338장)였답니다. 8 명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반면 어떤 한 사람은 여성과 아이들만 태울 수 있었던 구명정에 여장을 하고 몰래 탔다고 합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가 비난여론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로 10 년밖에 살지 못했다 합니다. 주석서의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가? 그리고 사람들의 교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초래케 하는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기에 충분한 사건입니다.

타아타닉 호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선



오늘 본문에서 바다 속 저류와 같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사실은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통치하고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입니다.(계19:16) 이 하나님은 우리를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십니다.(계2:18)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은 없습니다.(신4:39)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으면 우리는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눅2:11)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미래에 새 하늘과 새 땅을 별도로 마련하셨다 하시면 우리는 거기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벧후3:11, 계21:1) 이 땅에서 성읍과 바벨탑을 쌓고 천년만년 살려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끝까지 버틸 때 심판하십니다. 마지막 심판은 불 심판을 말씀하십니다.(막9:49, 벧후3:10-12) 우리가 매사에 매순간에 하나님을 인정하고(전12: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시편119:105)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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