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내용과(1-17) 가룟 유다의 배반(18-30)이 나옵니다.
1.유다의 배반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팝니다. 은 30은 120데나리온으로 노동자의 120일치 월급입니다. 은30은 당시 남자 노예 1명의 몸 값입니다. 그래서 율법 보상 규정에 종이 소에 받쳐 죽으면 보상금으로 은30 세겔을 주어야합니다. (출21:32) 당시에는 소가 사람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우리 나라 농촌도 소가 재산이었습니다. 경북상주에는 우의총(牛義塚)이라고 의로운 소의 무덤이 있습니다. 호랑이가 소 주인을 물고 가려하자 뿔로 들이받아 주인을 구합니다. 목숨을 건진 주인은 상처가 깊어 20일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주인 잃은 소도 시름시름 앓다가 따라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의로운 소를 기리기 위해 무덤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소도 의리가 깊은데 제자인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이유에 대하여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역시 돈에 대한 욕심, 개인의 이익 때문에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24:14-16, 막14:10-11, 눅22:3-6에 그렇게 증거합니다.
두 번째는 유다가 예수님에게 느낀 배신감 때문입니다. 자기의 정치적인 욕심을 예수님이 이루어 주지 않자 팔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왕이되면 한 자리 차지하려는 욕심이 다른 11제자보다 더 컸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열심당(熱心黨, Zealot)이라는 비밀단체 회원이었다고 합니다. 시카리당입니다. 시카리는 그리스어로 “단검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이름대로 가슴에 식칼을 숨기고 다녔습니다. 군중들 틈에 있다가 로마에 우호적인 반역자가 있으면 즉결 처분합니다.
유다는 예수님 주위로 군중들이 몰려들면 들수록 언젠가는 세를 결집하여 로마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리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로부터 신앙고백을 받은 후 고난을 받고 죽는다고합니다. 열심당원 입장에서 얼마나 약한 소리입니까?(마16:21)
오늘 본문 말씀도 예수님은 세를 결집하여 로마를 몰아낼 의지가 없음을 압니다. 1절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한다고 합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간다고 합니다.
당시는 유월절 전날입니다. 이 때는 전국에서 예배 객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몰려듭니다. 200만 명이상입니다. 당시는 강경한 유대인에 비하여 치안을 유지하여야 할 로마군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빌라도 총독은 병력 증강을 로마 황제에게 요청합니다.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서에도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유다는 이때가 예수님이 능력을 발휘하여 왕이 될 절호의 기회였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만 씻기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로마 군대가 둘러싸면 무력을 사용하여 자기 기대를 채워 줄 줄 알았습니다. 그의 잘못된 판단이 예수님을 배반한 원인이었다는 설입니다. 터무니없는 가설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다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순순히 체포당합니다. 칼을 휘두른 베드로를 오히려 꾸짖습니다. “칼을 가진 자는 다 칼로 망한다.”(마26:51) 베드로 뿐 아니라 유다에게도 일침을 놓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칼을 버리고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유다는 뒤늦은 후회를 해봤자 소용없었습니다. 마27장3~5절은 유다의 최후의 기록입니다. 유다는 은30 세겔을 반납하고자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성소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하며 자책하다 목매어 죽습니다.
2.베드로의 배반
이번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배반했는지 알아봅니다. 마26:69-75절입니다.(막14:66-72 눅22:54~62, 요18:25~27) 첫 번째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다.(마25:70) 두 번째는 맹세하면서 부인합니다.(마26:72) 마지막 세 번째는 저주하고 맹세하며 모른다고 합니다.(마26:74) 부인하는 강도가 점점 커집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기막힐 일입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요 예수님의 오른 팔입니다. 베드로는 만 천하 사람이 다 알 정도로 얼굴이 알려졌습니다. 외모만 보아도 뱃사람 베드로입니다. 갈릴리 사투리가 그를 숨길 수 없습니다. 100미터 밖에서 거친 억양만 듣고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 아무리 예수님을 모른다고 발뺌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입니다. 여종도 단번에 베드로가 제자임을 알아봅니다. (마26:69)
베드로는 닭이 울자 예수님을 부인한 일이 마음 아파 통곡합니다. 그 이후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자 물고기 잡으러 낙향합니다. 부활 후 예수님이 베드로를 찾아갔을 때는 무엇이라 고백합니까? 세번씩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 예수님도 잘 안다고 합니다.
3.예수님의 긍휼은 진실되게 회개한 베드로에게 향함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은 베드로에게로 향합니다. 유다가 아닌 이유는 본문 30절에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나옵니다. 유다는 빛인 예수님을 버리고 밤을 향해갔습니다. 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두운 세상 곧 어두움의 권세를 상징합니다.(눅22:52-53) 밤은 또 타락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유다는 어두움을 더 사랑했습니다.(요3:19) 돈을 그리고 그의 정치적인 야심을 더 사랑합니다.
어두움은 빛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깨닫지 못합니다.(요1:5) 마태복음26장22-25절을 보면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판다고 하자 다른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여 나는 아니지요?”하고 되묻습니다. 유다도 되묻습니다. 그런데 호칭이 다릅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합니다. 랍비는 선생님이란 뜻입니다. 유다는 마지막 자리에서까지 예수님을 선생님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반면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합니다.(마16:16) 사람들 다 떠나도 베드로는 예수님에게는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하며 떠나지 않았습니다.(요6:68)
베드로 전후서에는 베드로의 말씀 사랑과 예수님 사랑이 어떠한 지 엿볼 수있습니다. (벧전1:24-25, 벧전2:22-25, 벧전3:18-22)
목을 매단 유다를 보면 그는 내 죄는 내가 끝까지 책임지려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죄이자 하나님의 품을 떠난 온 인류의 죄입니다. 자칭 왕, 자칭 하나님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베드로 이름 뜻은 반석이고 유다는 하나님 찬양입니다. 유다 예루살렘근처 도시 출신입니다. 베드로는 무시 받던 이방의 갈릴리 출신입니다. 유다 교육 잘 받았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베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4장13절에는 “본래 학문없는 범인이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복음 역사에 잘난 유다보다 부족할지라도 예수님을 사랑한 베드로를 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돌이켰습니다. 베드로의 훌륭한 점은 예수님이 말씀하면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기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우기다가 예수님이 그러면 나와 관계없다고 하자 손과 머리까지 씻겨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면 어부의 상식을 내려놓고 무조건 던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왜 가까이 두었을까요? 배반의 칼을 들이댈 줄 알면서 왜 처음부터 싹을 자르지 않았을까요? 유다가 그렇게 까지 막나갈 줄은 몰랐기 때문일까요?
이질문의 답은 첫째 본문 18절에 성경을 응하게 하려고 한다입니다. 예수님은 즉흥적으로 또 마음 내키는 대로 복음역사를 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 속에 섬겼습니다. 유다를 3년 반 동안 끌어안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뜻에 따랐습니다. 같이 있기 싫은 사람하고 3년 반 동안을 산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 죄있는 세상에 온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님은 마귀도 도구로 씁니다. 마귀의 편이었던 유다의 입에서 무슨 증거가 나왔습니까? 마27장3~5절을 보면 유다가 은30세겔을 도로 반납하면서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대적자의 입을 통해 증거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하다면 불신자들도 복음역사에 씁니다. 애굽의 바로 왕,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 입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섭리는 세상 종말 전까지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최측근들 틈에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끝까지 유다를 몰랐습니다.
오늘날도 가라지는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한국 신흥종교 실태조사 연구집'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칭 하나님이 20여명 이상, 자칭 메시아가 50여명 이상이 있답니다. 독일의 종교 간행물 Idea는 세계적으로는 1,500명이 있다고 합니다.
유다는 예수님 제자라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셨고 자고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기적의 현장도 목격합니다. 이런 유다도 넘어졌습니다. 하물며 우리 믿는자는 더욱 깨어 있어야겠습니다.
4.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
본문1절을 참고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끝까지 사랑은 영어 Endless Love로 끝없는 사랑입니다.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넓은 사랑입니다.
본문2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라고 합니다. 괴롭다는 원어 “타랏소”로 “비통하다. 근심스럽다, 혼란스럽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배반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때가 다가 오자 가슴 아파합니다.
본문26절은 예수님은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줍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는데 유다가 미워서 떡을 주지는 않았겠죠? 유대인들은 우리 속담과 정반대입니다. 가장 친한 사람에게 떡을 건넵니다. 예수님은 “배신할 사람은 유다 너야!”하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묵묵히 떡만 건넸습니다. 떡을 건네며 끝까지 사랑을 표현합니다.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줍니다.
끝까지 사랑의 표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깁니다. 발은 식사 전에 종들이 씻겨 주었습니다. 종이 없으면 제자들 혼자 씻거나 서로 씻겨 주면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누가 크냐하는 경쟁심으로 서로 팔짱만 끼고 있었습니다. 남자 12명 발 냄새 대단했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발 냄새 경연대회도 있습니다. 일명 “썩은 운동화 경연대회”입니다. 올해 32회 째인데 13세 소녀가 우승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을 기절시킬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발 냄새도 여기 나갈 수준이었습니다. 식사 도중인데 청국장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종의 역할을 자처 합니다. 유다 차례가 되어 “시간 없다!” 하고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더 정성껏 씻겼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떠나는 마당에 기억에 남을 만한 유언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악법도 법이다.” 하던가. 이순신 장군처럼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하던가. 스피노자처럼 "비록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하던가. 최영 장군처럼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던가. 기록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긴 유언은 미국의 프레데리카 쿠크 부인이 9만 5940단어의 유언을 했습니다. 책4권 분량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멋진 유언 안합니다. 묵묵히 발만 씻겼습니다. 제자들도 따라하라 합니다. 발 씻김은 폼 나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예수님의 씻김을 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못느끼지만 예수님은 죄의 냄새가 지독함을 압니다. 참지 못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씻겨줍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기려면 폼 잡고 하지 못합니다. 무릎을 굻어야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염치없어도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매일매일 발을 내미는 자들 되길 기도합니다. 또 겸손히 누군가의 발을 씻겨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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