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안식일 율법에만 열심을 내는 바리새인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안식의 실체로 온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으로 안식일 율법 조항만을 지켰습니다. 십계명을 가지고 613 개의 세부 조항을 만들고 그 중 안식일 조항만 39가지였습니다. 안식일에 죽어가는 사람도 치료하지 않고 간단한 응급 조치만합니다. 안식일에는 집 밖 1,800미터 반경은 벗어나지 못합니다. 침을 뱉어 땅이 패이면 밭갈이로 간주합니다. 이 바리새인들의 눈에 제자들의 잘못된 행동이 들어옵니다.
밀이삭을 잘라먹은 제자들을 고소한 바리새인
본문 1-2절을 참고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2.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늘 배고팠던 제자들은 밀 밭 사이를 지나갈 때가 허기를 채울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입김으로 껍질을 날리고 먹습니다.
바리새인은 제자들이 손으로 비빈 행위는 탈곡행위요, 껍질을 날린 것은 도정 행위로 보고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송사합니다.
안식일 율법을 어긴 형벌 큽니다. 출31장14절을 보면 현장에서 돌로 쳐죽이라 합니다. 오늘 본문 분위기는 돌에 맞아 죽느냐 사느냐하는 긴박감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들을 변호합니까?
다윗을 예시로 제자들을 변호한 예수님
3-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구약 시대 다윗과 제사장의 예를 들어 율법이라는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합니다. 삼상21:1-6참고하면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느라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래서 먹어서는 안 될 진설병을 먹고 생명을 구한 일을 하나님도 묵과하고 넘어간 사건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다.
마가복음 2:27에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지 않다합니다. 본문7절에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합니다. 제사라는 형식보다는 마음 속에 자비라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사울왕의 월권행위
본문은 구약의 사울 왕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말씀의 인용입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에게 둘러싸여 망할 위기에 처합니다. 제사 드리기로 약속한 사무엘이 오지 않자 자신이 대신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라는 형식만 취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이끌어 내려고 합니다. 제사형식만 취하면 하나님이 기계적으로 도와 주리라 여겼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도깨비 방망이 취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자고 우리 마음 중심을 봅니다. 마음없이 형식만으로 하나님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엘리 제사장의 오해
구약의 엘리 제사장은 기도를 열심히 한 한나에게 “언제까지 술에 취해 살 것이냐! 술을 끊으라!”고 합니다.(삼상1:12-14) 외형만 보고 마음을 몰라준 사례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머리에서부터 붓자 제자들이 낭비라고 책망하는 상황에서 여인의 진심과 속마음을 알아줍니다.(요12:5)
6절은 성전을 섬기는 일은 안식일 규례보다 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성전 보다 더 큰 분이 예수님입니다.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
8절에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무엇을 합니까? 한쪽 손 마른 사람, 병자를 고쳐줍니다.(마12:10-13절, 마12:15절) 바리새인들은 이 예수님을 죽여야겠다고 판단하고 방도를 찾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다른 날도 많은데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화를 자초합니까? 안식은 평안할 안(安) 쉴식(息)자 쓰고 뜻대로 평안히 쉬는 날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7일째 안식합니다. 이 날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구별합니다. 5,6일은 보이는 물질에 복을 줍니다. 그러나 7 일째는 날에 복 주고 거룩하게 합니다. 시간에다 복을 줍니다. 우리는 시간을 맘대로 하지 못합니다. 손에 잡히지 않고 통제도 불가능합니다. 흐르는 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쉬움, 회환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7일 이후에는 밤이되고 낮이된다는 말씀 없습니다. 영원한 낮이 계속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에게서 생명력을 공급받아 영원히 안식을 누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이 창세기 3장 이후 범죄하면서 깨집니다. 인간은 죄로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힘이 단절되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육체의 한계를 안고 살므로 아쉬움과 회환이 있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에게 받는 생명력 대신 스스로 땀 흘려 일함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이 생명력은 결핍이 있고 완전하지 못하며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참 사랑을 공급받지 못하니 불안, 두려움, 어두움, 가운데 삽니다. 물질 문명과 과학 기술이 이 결핍을 채우지 못합니다.
잃어버린 참 안식을 회복하는 방법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하는 방법은 골2:16-17을 참고합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의 실체는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구약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은 예수님이 와서 우리의 안식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예표입니다(출20:8-11, 출31:14-15, 겔20:10-13, 레25:2-5, 대하36:20-21) 구약에 안식일, 안식년, 희년도 안식을 주실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병자들이 많아 고통이 있는 안식일은 참 안식이 아니므로 예수님은 굳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칩니다.
히브리서4장3은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이미 안식에 들어와있습니다. 히4장10절은 우리도 자기의 일을 쉰다고 합니다. 자기 일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력을 공급 받고 참안식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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