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 해를 돌아보면 화를 많이 냈습니다. 화낸일로 밤참을 설치며 후회해도 쏟아낸 분은 주워 담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는 본의 아니게 헐크 아빠로 변했습니다. 아내에게도 상처 줄 때가 많았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신앙인격이 성숙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올해는 사회적으로 입에 거론하기도 싫을 정도로 바다에서 하늘에서 또 땅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회 안정망이 좀 더 잘 갖추어져서 내년에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함께 교제하고 싶은 말씀의 주제는“우리는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부주제로는 “방패 되시고 상급되시는 하나님”이 어떤분이신가 알아봅니다. 말씀은 창세기 15:1~6절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환상 중에 직접 찾아 가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현재 아브라함은 신앙생활 10년 째 입니다. 그의 나이는 85세 입니다.
아브라함 조카 롯을 구하다.
14장에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나라와 나라가 연합을 맺었다가 배반하고 배반하자 전쟁을 일으키고 하는 복잡 다양한 동맹구도가 나옵니다.
제1다국적군은 4개국으로 이름과 왕은 시날(왕:아므라벨) 엘라살(왕:아리옥) 엘람(왕:그돌라오멜) 고임(왕:디달) 이었다.
제2다국적군은 5개국으로 이름과 왕은 소돔(왕:베라) 고모라(왕:비르사) 아드마(왕:시납) 스보임(왕:세메벨) 소알(왕:벨라) 이었습니다.제2다국적군이 속한 나라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속해 있었습니다.
제2다국적군이 속한 나라가 힘이 약했습니다. 제1다국적군이 속한 나라를 십이년 동안 조공을 바치며 섬겼습니다. 이들이 힘이 커지자 계약을 폐기하고 배반합니다. 제1다국적군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배반한 다음 해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제1다국적국 대장인 엘람국 그돌라오멜은 제2다국적국을 치러 가면서 르바, 수스, 엠, 호리, 아말렉, 아모리 등 6개 족속을 통합합니다.제2다국적국이 이들과 연합전선을 펴지 못하도록 아예 싹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제1다국적군은 제2다국적군이 진치고 있는 싯딤 골짜기까지 쳐들어갔습니다. 제2다국적군에게는 싯딤 골짜기가 역청과 구덩이가 많아 지형에 익숙하지 않아 불리한 조건임에도 대승을 거둡니다. 완패한 제2다국적군을 포로를 사로잡아 가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잡혀갔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헤어질때 죄악의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떠나가자 아브라함은 서운하게 생각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조카 롯이 포로가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아브라함은 사병 380명을 이끌고 단까지 쫓아가서 기습작전을 펼쳐 승리하였습니다.
적의 인원이 수천 명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기록에는 80만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318대 80만! 이 대목에서 영화 “명랑”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섭섭하겠죠? 바다에는 12척의 배로 왜군 33 0척을 이긴 이순신 장군이 있다면 육지에서는 318대 80만이라는 아브라함의 승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명랑에 이순신 장군 멘트를 날린다면 “신에게는 아직도 318명의 군사가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죠!
그런데 바로 이 아브라함의 전투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함께한 전투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얘를써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전리품은 실오라기 또는 신발 끈 한 개도 취하지 않습니다. (창14:22-23)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브라함의 영적인 상태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대 승리 후 아브라함에게는 영적인 침체가 왔습니다. 잘 나갈 때, 뭔가 일을 이루었을 때 영적으로 조심해야 할 시기입니다. 마음이 느슨해졌을 때 사탄이 맹공을 퍼붓는 시기입니다. 아브라함은 영육 간에 힘들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방문합니다.
요즈음 같았으면 간단히 카톡을 보냈겠죠. “ 아브라함아 왜 그러느냐 힘을 내라! 하나님 보냄” 이렇게 문자를 쏘실 수도 있었겠죠? 아니면 천사를 대리인으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면 발람 선지자를 깨우치시는 방법 같이 말하는 당나귀를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방문한 것을 보면 사안이 시급했습니다. 아니면 정말 아브라함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시고자 했습니다.
아브라함을 직접 찾아 가신 하나님
직접 찾아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책망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10년이면 이제는 좀 성장해야지 계속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냐?” 아니면 원칙론을 말씀하며 “신앙생활의 ABC! 신앙생활의 3박자” “말씀 읽기 기도하기 순종하기” “내가 그렇게 강조 했 건 만 꼴좋다.” 그러나 어떻게 하십니까? 1절 전반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아브라함아 두려워 하지 말라” 합니다.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하늘과 땅의 주인 인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제가 두려하는 분에게 “두려워 마십시오.” 했다면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한번 두려움이 밀려들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첫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전쟁사에 길이 남을 승리는 거두었지만 언제 연합군이 쳐들어와 목숨을 앗아갈지 몰랐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 최대의 적입니다. 두 번째로 아브라함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입니다. 나이 이십 대도 아니고 벌써 85살인데 자신의 DNA를 물려받은 자식 하나 없으니 불안했습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는 이유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1절 하반부를 보십시오.“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말씀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 나야! 내가 있잖아!”입니다.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 어떠한 환난이나 위험 가운데서도 보호해준다고 합니다. 80만의 적이 밀려 들어와도 다 막아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바로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축복의 근원 자체이신 하나님이 상급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신자에게 불화살을 날립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인생 끝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옵니다. 더이상 성경말씀을 따라살며 손해 보기 싫다 내 맘대로 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맘대로 살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방패 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손해를 다 배상해 주실 든든한 보험! 전액 보상이 아니라 수 천 수만 배 덤을 얹어서 보상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쭉 보상해 줍니다.
방패요 상급되시는 하나님
방패요 상급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방패이시라는 말씀은 영접한 듯합니다. 방패이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아브라함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급은 이해를 못합니다. 그것도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씀은 아브라함을 더욱 반발하게 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똑같은 말을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합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 이다.” 아브라함은 사실 자식 하나 바라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75세까지 자식 하나 없던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정든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면 아브라함도 많이 참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나 저제나 사라의 배가 불러오기를 바랐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습니다. 제 계획대로 밀고 나가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계획
고대 근동 지방에는 노부부가 아이가 없을 경우 양자를 들이는 관습이 있습니다. 양자는 재산 상속을 약속 받습니다. 그 대가로 늙은 양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죽었을 때 장래를 책임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관습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은 다 포기하고 자기 집에서 길 리운 종을 양자로 삼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자기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하나님이 한번 약속으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룹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노력 더하기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노력을 차단하고 이미 태가 닫힌 사라의 몸을 통하여 구속역사를 성취합니다.
하늘의 뭇별을 세어보라
하나님은 방안에 드러누워 자기 생각으로 꽉 차 있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갑니다. 우물 안 개구리 마냥 갇혀 있는 아브라함의 닫힌 세계의 문을 열고 광활한 하나님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자기 의로 똘똘 뭉쳐진 아브라함의 세계를 깨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세계로 이끌고 갑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억지로 끌고 나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에만 코를 박고 고민하지 말고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명령합니다. 땅의 논리를 떠나 하늘의 논리로 세상을 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늘을 올려 다 보았습니다. 그날따라 밤하늘의 별은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별들이 금방이라도 땅으로 쏟아 질듯합니다. 지금은 가로등 때문에 우리는 별 볼 일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습니다. 재작년에 주일학교에서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별을 보러 갔습니다. 운동장에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에 별을 관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별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교사들이 더 흥미롭게 별을 관찰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평상에 누워 모깃불 피워놓고 자주 쏟아지는 별을 본 기억이 많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 밤”읽어드립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겨울이 지나고 내별에도 봄이 오면” 시를 통해 아브라함의 상황을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해 보시라 낭독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늘의 뭇별을 세어 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명령에 따라 별을 세어 보았습니다. 별 하나 별둘 별 셋 ...별 백오십 별 백육십 별 천 별천 구백이십 둘 그런데 갑자기 어느 별부터 세기를 시작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세어 본분들은 알 수 있습니다. 세다 보면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헷갈립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세어 야합니다. 여러분 하늘의 뭇별을 과연 아브라함이 다 셀 수 있었겠습니까? 셀 수 없습니다.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의 이름은 안드로메다입니다. 우리은하(Our galaxy 또는 Milky galaxy라고도 함)라고 합니다. 우리 은하계에 태양계만 1000억 개입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계와 같은 은하계가 또 1000억 개입니다. 숫자에 약하신 분들은 감이 안 오시죠? 그래서 제가 1억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인터넷을 찾아봤습니다. 1에서부터 1억까지 숫자를 세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단1초도 쉬지 않고 세면 약7년 정도 걸린답니다. 잠자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일상적인 생활을 빼고 센다면 약20년이 걸립니다. 1억을 우습게 보시면 안 됩니다. 아주 큰 숫자입니다. 그런데 1000억에 또 1000억은 얼마나 많은 별이 있는지 아시겠죠? 하늘의 별을 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뭇별을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수많은 별을 반복하여 세면서 닫혔던 마음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마음이 열리자 아브라함의 입도 와아! 하고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어 네 자손도 이와 같으리라 선언합니다. 벌어진 아브라함의 입속으로 약속의 말씀이 쏙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도 없습니다. 그의 몸에서 나오겠다던 자식은 지금부터 14년이 지난 후입니다. 언제 318명에게 당했던 주변 그돌라오멜 동맹국들이 아브라함을 치러올지 모릅니다. 상황은 어제나 오늘이나 조금도 나아진 바 없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겨주었습니다. 의인으로 칭해 주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인이 되려면 반드시 의로운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남대천 길을 걸어서 출근하다 보면 강 옆에 흉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흉상은 1999년 1월 얼음이 녹아 있는 줄 모르고 들어가 놀다가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러 뛰어 들어 갔다가 돌아가신 택시 기사님 문성관씨를 기리는 동상입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을 의인이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런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믿기만 했을 뿐인데 의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바로 칭의(稱義)라고 합니다.
칭의
그러면 칭의(Justification)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면서 강의의 결론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4장에서는 상기 말씀으로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교리를 설명합니다. 제가 문성관씨의 예를 들었는데요. 의인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의로운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의로운 행위가 없는데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누군가가 우리 대신 의로운 행위를 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우리 대신 의로운 행위를 한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합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의롭다 칭해 줍니다. 의롭다 칭함 받은 자들은 영원한 심판에서 면제됩니다. 의롭다 칭함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방패이신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됩니다. 상급이신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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