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는 고난의 예수님을 예언하며 “슬픔의 사람” (a man of sorrows, 사53:3) 이라 했다. 복음서에 기록한 예수님의 감정은 이렇다. 불쌍히 여기셨다. (compassion,요11:33,35, 요9:36, 마14:14) 분노하셨다. (요2:15, 막3:5). 고만하고 슬퍼하셨다.(sorrow, 마26:38) 놀라셨다. (sore amazed,막14:33)
성경에서 언급하지 않는 예수님의 감정 표현은 이렇다. “웃으셨다”, “서두르셨다”, “놀라셨다 (surprised)”, “두려워서 하셨다”라는 표현은 없다.
예수님은 이처럼 이 땅에 계실 때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그런데 유일하게 기쁨 (joy)의 감정은 숨기셨다. 눅10:20-21절이 유일하다. 그 이유를 짐작하면 자주 받아 죄로 물든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늘의 일을 비교할 때 기뻐하실 일이 크게 없으셨으리라.
예수님은 하늘의 기쁨을 다 알고 계신 분이다. 눅10장의 기쁨은 70인의 제자들이 전도 여행에서 돌아와 있었던 놀라운 일들을 보고하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땅에서 일어난 일 자체보다는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에 기뻐하셨다. 예수님은 이들이 부르심 받고 구원받은 그것 자체의 기쁨을 표현하셨다. 또한 장차 이들에게 주어질 하늘의 기쁨을 생각하시니 기뻤을 것이다.
이 땅에는 참 기쁨이 없다. 타락하기 전 창세 때 에덴에는 참 기쁨이 있었다. 사람들은 창세 때 잃어버린 기쁨을 이 땅에서 찾고자 헤맨다. 그러다 영육 간에 상처받고 병든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창세 때 주신 기쁨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무너진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하여 영적인 기쁨을 먼저 회복시켰다. 하늘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현세에서 이 기쁨을 맛볼 뿐만 아니라 장차 예수님이 숨기셨던 온전한 기쁨을 맛볼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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