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다. 새색시같이 조용한 역사 선생님이 계셨다. 남자 선생님이셨고 교단 앞에서 큰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수업을 했다. 역사 참고서에 인물의 일생에 대하여 별도의 네모 칸으로 기록해 놓은 부분이 있다. 그날은 이 부분을 학생들에게 읽어 주셨다. 선생님은 조용한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안중근 의사였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진해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친구들은 점심시간 직 후라 설악산 울산 바위의 무게로 누르는 눈꺼풀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의 책 읽기는 계속되었다. "안중근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겼고, 집 안에 자주 드나드는 포수 꾼들의 영향으로 사냥하기를 즐겨 명사수로 이름이 났다." 이 대목에서 한 친구가 나지막한 탄성으로 "워우~~"하고 추임새를 넣었다. 이 장난기는 금방 잉크가 물에 퍼지듯 반 전체로 번졌다.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하였다."하고 읽자 다른 한 친구가 일어나 박수를 턱턱턱 세 번쳤다. 그러자 모든 학생들의 눈꺼풀이 열리며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우우 소리와 박수 소리가 터져다. 선생님도 브레이크를 밟을 시기를 놓쳤다. 한 문장씩 읽고 끝나기가 무섭게 우우하는 함성이 이어졌다. 추임새를 넣을 타임이 아닌데도 넣어 한바탕 또 웃는다.
드디어 안 의사가 총으로 저격하는 대목까지 왔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기차가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우우 와우 우리의 열기는 태양 코로나처럼 뜨겁게 타올라 갔다.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 대신 코코프체프와 열차 안에서 회담을 가진 후 9시 30분경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하였다.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향해 브라우닝제 반자동 권총 M1900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이토히로부미는 그의 총탄에 쓰러졌다."란 문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들은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드디어 한 친구의 입에서 "대한독립 만세!" 소리가 나왔다. 그와 동시에 반 친구들은 일제히 일어나 함께 "대한독립만세! 만세! 만세!"외쳤다. 옆 교실에서 시끄럽다고 항의 방문이 있고 나서야 우리의 흥분은 가라 앉았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재미있었던 역사 시간이었다.
'에세이(경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나우져와의 아픈 추억] (0) | 2024.08.24 |
---|---|
애송이 과학 교생 (0) | 2024.08.24 |
초가집에 불이 나면? (0) | 2024.08.24 |
혀가 웅덩이에 빠진 날 (0) | 2024.08.24 |
나의 첫 택시 시승기 (0) | 2024.08.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