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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에세이(경험글)

초가집에 불이 나면?

by 명주(明珠) 2024. 8. 24.

초등학교 1학년 때 쯤 초가집에 불이났었다. 초스피드로 탔다. 아버지가 젖은 검정색 고무 장화를  말리려고 부엌  화로에 올려놓았다. 물론 화로 숯은  다 꺼진 줄 알았다. 그러나 숯에 불씨가 남아 있었다. 작은 불씨가 커져 화로 안에 퍼졌고 올려놓은 장화에 불이 옮겨 붙고 장화의 불은 벽을  타고 천정으로  옮아갔다. 아래 채에 세들어 살았던 아저씨가 "불이야!"소리쳤다. 시골에 119는 당연히 없던 시절이다.
불은 삽시간에 집 전체로 번졌다. 우리 4식구는  잠결에 모두 속 옷차림으로 뛰쳐 나왔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런데 1살이던 막내 여동생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가  잠결에 막내를 안고 나온다고 착각하고 그 위 3살 동생을 안고 나왔다. 지붕 위로 불꽃은 치솟고 아무도 초스피드로 타들어 가는 불구덩이 속에 들어갈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 맨발로 뛰어 들어간 분이 아버지였다. 집안에 들어 서자 이미 연가가 꽉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천정에서 불꽃도 떨어졌다. 엉금엉금 기며 손으로 바닥을 쓰는데  아이가 손에 잡혔다. 밖으로 집어  던지다 시피하여 막내 여동생은 구사일생 살았다. 사람들은 살아난 막내 여동생에게 항상  명줄이 길거란 말을 했다.
초 봄 아직 개울에 얼음이 녹지 않고 남아 있던 계절이다. 우린 안고 나온 이불에 몸을 숨기고 타들어 가는 집을 지켜 보았다. 양동이로 타오르는 불 속에 물을 퍼붓자 불의 숨이 죽기는  커녕 휘발류를 뿌린듯 더 잘탄다. 물이 수증기로 기화하며 공기를 넣어 주어 역효과가 났다. 사람들은 벽을 허물면서 공기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1시간 남짓 짧은 시간에 집은 전소되었다.  불난 다음 날 매쾌한 냄새 속에 쓸만한 가재 도구를 찾았으나 아무 것도 건지지 못했다.  더군다나 장롱 깊히 넣어 두었던 금반지도  파헤쳐 지고 없었다. 밤 사이 누군가가 뒤져  가져갔다.
졸지에 집없는 아이로 학교에서는 불우 이웃돕기 대상이되었다.  얼마의 현금, 책받침과 공책, 츄리닝, 밀가루가 걷혔다며 교감 선생님이 직접 친적집에 있던 우리를 방문해 구호품을 전달했다.
가족을  위해 불구덩이에 용감히 뛰어 들었던 아버지는 진성적혈구증다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오래앓다 돌아가셨다. 이 병은 적혈구가 적절히 조절되지 못하고 계속 증가하는 혈액암의 일종이다. 약을 지속적으로 먹어서 적혈구 수를 조절하면 오래 생존 가능한 병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할 때 업어드릴 일이 있었다. 업는 순간 발 앞으로 금반지가 툭 떨어졌다.  무심코 주머니에  넣었다. 아버지가 병으로 손가락 마저 야위어 저절로 빠진 것이다. 이렇게 들어온 금반지는 돌려드릴 일이 없게되었다. 퇴원 후 3주가 지나 하늘로 떠나셨다.
떠나시기 전 삼복 더위에  아버지가  병든  몸을 이끌고 마루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하시도록  시골집  마루를  수리한 적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뜯고  있었다. 이 때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방안에서 자신이  쐬던 선풍기를  최대한 강하게 틀어 바깥에 있는  나를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해 주려 애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때 봉지 커피를 종이 컵이 아니라 커피 잔에 타 어렵게 내미셨다.  아 그  달콤한 커피  맛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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