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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예수님이 인생의 해답(마가복음2:1-12)

by 명주(明珠) 2024. 7. 18.

1. 서론


 
마가복음의 저자는 마가입니다. 마가는 큰 망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름을 쓰지는 않습니다. 임 망치, 최 망치하지 않습니다. 조폭느낌이 나는 이름인데 유대인은 좋은 의미로 많이 씁니다. BC167-164년에 일어난 유대 민족 독립운동을 주도한 맥카피 혁명의 주도자도 같은 이름입니다. 마가복음은 AD65에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주일학생도 잘 아는 중풍 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한 사건입니다. 성경에는 중풍 병자가 많이 나옵니다. 중풍 병자의 영적인 의미는 율법이라는 틀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무기력한 세상 사람들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2. 왜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이는가?


 
오늘 본문은 내용이 스릴이 있고 스펙터클합니다. 본문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예수님 소문 듣고 사람이 많이 모였습니다. 사자숙어로 인산인해(人山人海)라 합니다. 사람이 산처럼 쌓이고 사람으로 바다를 이뤘습니다. 왜 예수님께 사람이 많이 모일까요? 저는 1년이 가도 몇 사람 찾아오지 않습니다. 예수님 대통령과 같은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은 스케줄을 5분 단위로 짜야 할 정도로 사람이 옵니다. 예수님 돈도 많은 분 아닙니다. 갑부 빌 게이츠도 4-5분 단위로 스케줄을 짤 정도입니다.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데 왜 예수님에게 사람이 많이 모입니까? 왜 사람들이 자석에 끌리듯 예수님께 가려고 합니까? 심지어 예수님에게 여인이 향유를 붓고 발을 씻기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이러고 싶은 분이셨습니다. 우리 이러고 싶은 분 주변에 있습니까? 막 태어난 아기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사랑스러워 입으로 발에 뽀뽀도 합니다. 예수님 이러고 싶은 분이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지만 이럴만한 인격과 그릇이 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 가면 인생에 해답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으면 그 힘을 이용하려 합니다. 군중의 힘을 믿고 출마를 합니다. 총선에 나가 국회의원을 하고, 대선에 나가 대통령에 도전합니다. 아니면 인기를 이용해 유튜브를 시작합니다. '좋아요'와 ‘구독’을 요청하여 수입을 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중의 힘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를 말씀하셨습니다. “도를 아십니까?”하고 길다가 묻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 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길, 진리의 길, 구원의 길,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 돈 잘 버는 비법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핵 인싸가 되는 법, 처세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도는 헬라어 원어로 ”로고스“입니다. “진리, 말씀,”이란 뜻입니다. 하여간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3. 지붕을 뚫은 친구들의 죄목


 
예수님 한참 도를 가르치는 도중에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3~5절을 보십시오. “3.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서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남의 집 지붕을 뚫고 병자를 달아 내린 사건입니다. 이들의 행동은 용감한 시민상을 줘야 합니까? 상식적으로는 얌체 같은 행동입니다. 이들이 오늘날 실정법을 적용하면 5가지 죄목이 나옵니다. 주거침입죄, 새치기 죄, 재물손괴죄, 예배방해 죄, 환경오염 죄입니다. 여러분 새치기하지 마십시오. 경범죄로 처벌받습니다. 예배 방해죄도 있습니다. 형법 제158조에 보면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옵니다. 여담입니다만 제가 어떤 강연장에서 이런 분 봤습니다. 강연 내용이 마음에 안 들었나 봅니다. 그럼 끝나고 질문하고 반론을 제기하면 됩니다. 이분이 강연 중간에 강단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자기 한쪽 신발을 벗어서 강연자에게 던지면서 막 뭐라 하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의 오늘 설교가 약간 지루하더라도 조금만 참으십시오. 3년 이하 징역, 500만 원 이하 벌금 기억해 주시고 조금만 참으시기를 바랍니다. 신발 벗어 봤자 안좋은 향기만 납니다.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는 그림


 
4. 아들로 영접 해 주시는 예수님

 
지붕에 큰 구멍이 뚫리며, 흙이 떨어지고, 먼지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시체 같은 병자가 달려 내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놀라서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새치기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을 것입니다. 집주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야말로 112에 신고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이 집이 신혼 집 이었으면 어떠했겠습니까? 비새는 집에서 신혼살림 해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3년 이하 징역과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렸습니까? 아닙니다.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자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작은자는 영어로 “My son!”“나의 아들아!”라는 뉘앙스가 있답니다. 이 호칭은 아버지가 아들을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따뜻하게 부르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겉모습보다 속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을 보시고 알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서로 속마음을 몰라주어 얼마나 많은 오해와 갈등이 생깁니까? 예수님은 마음을 읽는 분이십니다.


 


5. 영적인 질병과 육체의 질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그런데 그 다음이 이상합니다. 예수님이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줘야 합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시급한 일은 병 고침입니다. 중풍병자 오늘 예수님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예수님은 너의 죄를 용서하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 병자에게 손해를 입은 적도 없었는데 대단한 손해를 입은 당사자처럼 말씀하십니다. 이 예수님은 둘 중 하나입니다. 정신이 이상한 분이시거나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절대적으로 선하신 분입니다. 모든 인류는 이 선의 기준에 맞게 살아야 하고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증거합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고 죽음의 증상들이 병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는 중풍병자는 병고침 보다 더 근원적인 죄문제 해결이 시급했습니다.


 
6.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야만 하는 이유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죄사함을 선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이제 이 예수님은 다시 이 땅에 오실 예정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는 4천 년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이후에 2년 여년의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올해가 벌써 2024년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야 했고, 하나님은 이렇게 6천 년 여년이라는 긴 서사가 필요했을까요? 예수님이 왜 오셔야 했는가 많은 신학적인 해석이 있지만 이런 측면으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것만 우리에게 주실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초등학교를 다른 친구들보다 1년 일찍 들어갔습니다. 저는 한글을 제대로 쓸 줄 몰라서 어머니가 제 연필 잡은 손을 같이 잡고 글씨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한글은 모르는 분인데 저에게 한글을 가르쳐 줄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사랑이 있으니 우리에게 사랑을 넣어 주어 사랑할 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성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에게 창조 능력을 주어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 편에서 죄인처럼 되어 죽어보신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경험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경험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주시는 방법은 직접 경험이 아닌 믿음을 통하여 입니다. 예수님을 믿음 것으로만죄를 위해 죽고 부활한 경험을 우리에게 넣어 주시고 새로운 영적 생명을 주시는 방식이 바로 구원역사입니다. 그러면 왜 6천여 년의 역사가 필요하셨는가? 이것은 하나님 그만큼 큰 신분이시고. 기독교가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고밖에 저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우리 역사 속 시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 같이 여기십니다.


 
7. 점점 메말라 가는 사회에 귀감이 되는 중풍병자의 친구들


 
본문에서 우리는 4명의 친구에게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중풍병 친구를 고치려 할까요? 병자 친구가 돈을 많이 꾸어서 고쳐서 빚 받으려고 이렇게 애를 썼을까요? 중풍병자에 대한 따뜻한 인간애입니다. 요즈음 무정한 시대입니다. 얼마 전에 이케아란 설문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38개국이 설문에 참여했습니다. 첫째 “집에서 홀로 있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에 한국인이 40%가 좋다고 답했습니다. 38개국 중 1등을 했습니다. 또 “식구들과 함께 웃는 시간이 즐겁다.”란 설문에 14%만 긍정 답변을 했습니다. 이 부분은 꼴찌입니다. “집에서 자녀와 손주를 키우는 게 즐겁다.”란 항목의 답변은 우리나라는 8%였습니다. 평균이 22%였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주는 기사여서 인용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 성향이 미국과 유럽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이런 우리 사회를 파편화된 사회, 나노 사회라고 보도를 했습니다. 이들 4명의 친구는 나노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4명의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예수님이 있는 집까지 메고 왔지만, 집에 들어갈 틈이 없으면 그냥 돌아가기 쉬웠습니다. “오늘만 날이냐? 내일의 태양은 또 뜬다. 하나님은 환경으로 말씀하신다.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싸인 인가 보다?”하며 포기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음으로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뚫었습니다. 친구를 살리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은 겨울한파도 녹일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만 데려가면 고치리라는 믿음 우리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8. 서기관도 도와야 할 대상으로 보신 예수님


 
본문6-7절부터는 이 훈훈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서기관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걸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단지 마음만 먹었는데 예수님은 이들 마음속까지 다 들여다보고 선제 대응을 하십니다.
 
8-10절을 계속 보십시오.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9.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예수님은 이들 마음속의 소리를 들으시고 만천하에 공개하십니다. 이어 공개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병을 고침과 죄사함 어떤 것이 쉬운지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예수님 입장에서 둘 다 쉽습니다. 둘 다 쉬운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쉽냐는 질문입니다. 우리 사람입장에서는 둘 다 어렵습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침은 눈으로 보이는 기적적인 일입니다. 눈에 보이냐 안보이냐는 기준에서는 죄를 사함이 쉽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첫째 병의 원인이 죄임을 인식시키려는 겁니다. 예수님은 죄와 병을 연관시키고자하는 의도가 있으십니다. 육체의 질병보다는 영적인 질명이 더 중하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서기관을 돕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셨습니다. 서기관들은 율법에 매여 “사람을 어찌하여!”라고 하며 늘 남을 판단하고, 누군가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도 남을 판단하는 마음을 접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예수님 자체에 관심을 두도록 유도하셨습니다.


 
9.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다


 
본문 11-12절을 보십시오.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예수님은 중풍병을 단번에 낫게 해 주심으로 당신이 죄사함을 선포할 권세가 있음을 입증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심을 입증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중풍병자는 단번에 걸었습니다. 평생 누워 살았으면 1년은 재활훈련 해야 정상입니다. 차츰차츰 한 걸음 한 걸음 떼며 점진적으로 회복돼야 합니다. 그러나 중풍병자는 예수님이 명령하자마자 일어나 바로 중심 잡고 걸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첫째 우리의 구원도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메시지입니다. 단 한 번 믿으면 영 단번 모든 죄가 용서됩니다. 구원은 일생 살다 죽어봐야 아는 게 아닙니다. 구원 점진적이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중풍병자가 어쩌다 꼼수로 나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하여 고쳐졌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유능하여도 무엇을 창조해 내지는 못합니다. 우리 몸이 스스로 치유되는 것을 도울 뿐이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른 병자의 팔과 다리에 새살과 근육이 생기게 했습니다. 우리 뇌 속에는 1,000억 개 뉴런과 100조 개 시냅스로 구성되었다 합니다. 이 조직은 전기신호와 화학 신경 전달 물질을 통하여 움직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전기신호와 화학물질을 창조하셔서 중풍병자의 막힌 뇌를 뚫었습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모두 하나님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이 영적으로 막힌 뇌를 뚫어주신 분들입니다.
 
저는 1986년 가을 대학 2학년 때 뚫어 주셨습니다. 저는 물리전공이어서 창조주하나님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진화론을 믿었고,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으면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다 선교회에서 봉사활동 하다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봉사활동 방법은 땅콩 20알 정도를 선물 봉지로 잘 포장하고 겉에는 성경구절도 써 붙여 팔아이익금으로 고아원, 양로원을 도왔습니다. 저는 성격이 꿔다놓은 보리짝 형입니다.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형입니다. 그래서 죽어도 땅콩을 팔러 나가기 싫었지만 단체로 다 나가기 때문에 혼자 빠질 수없어 마지못해 끌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2시간 만에 다 팔았습니다. 제가 맡은 구역이 제일 가난한 동네였음에도 더 잘 팔렸습니다. 대학생이 불우이웃돕기 한고 하니 더 잘 사줬습니다.  저는 당시 하나님이 당신의 성품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배웠습니다. 그 성품 중 하나가  선입니다. 저는 땅콩이  잘팔리는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 안에 선한 성품을 실제로 심어 주셨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5의 힘,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후에는 문둥병자를 손으로 만지며 낫게 해주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죄사함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10. 결론


 
결론적으로 인생에 해답은 예수님이십니다. 중풍병자에게도, 몰려든 군중들에게도, 중풍병자 친구들에게도 해답은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9장2절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게에 “작은자야 안심하라!”라고하셨습니다. 안심하라는 말씀이 더해졌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근원적인 불안이 있습니다. 그 불안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초자연적인 힘으로 계시는 하나님, 절대적인 선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은 언젠가는 지켜보시다가 하늘을 뚫고, 지구를 뚫고 침공 하실 것입니다. 이때는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무대 뒤에서 감독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면 그 연극은 끝났음을 압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선하게 살지 못하면 못한 것 때문에 벌 받을 것 같은 불안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풍병자와 같이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으면 누구든지 근원적인 불안이 없어집니다. 안심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하십니다. 작은 자 대신 자기 이름을 넣어 주십시오. 우리 모두 올 한 해도 이 하나님 예수님 안에서 불안이 없는 삶, 일어나 당당하게 걸어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저의 메시지는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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