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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분노의 칼을 막은 여인-나발과 아비가일(사무엘상 25장1-38)

by 명주(明珠) 2024. 7. 17.

" 본문 25장은 다른 모습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부하 400명과 함께 칼을 뽑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뻔합니다. 이때 이 분노의 칼을 막는 여인이 있었으니 아비가일입니다."



본문의 시대는 다윗이 왕으로 기름 부음 받고 8년 된 해입니다. 다윗의 나이는 23세입니다. 시기는 BC1018년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도망 다니던 때 일입니다. 본문 24장에는 동굴 사건을 기록합니다. 엔게디 광야 들 염소 바위길 옆에 있었던 일익니다. 사울은 한두 명도 아니고 3,000명 군사를 동원해 다윗을 쫓습니다. 다윗은 잘못 한 일이 없습니다. 사울은 질투심, 시기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입니다. 다윗은 골리앗도 물리쳤습니다. 사울의 군사로 천부장으로 공도 세웠습니다. 수금 연주로 악령도 쫓아주었습니다. 사울은 은혜도 모르고 다윗을 10년을 쫓아다닙니다. 사울은 들 염소 바위 쪽 동굴에 사울이 볼일을 보려고 혼자 숨어듭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처럼 안에 다윗 일행이 숨어있었습니다. 다윗은 분노의 칼을 빼 들고 사울의 목을 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못 칩니다. 옷자락만 살짝 벱니다. 다윗은 사울도 하나님이 세웠으니 하나님이 심판하시도록 맡깁니다. 이 사실을 안 사울이 감동합니다. 큰소리 높여 울면서 말하는데 삼성 24장 20절을 참고하면 다윗을 차기 왕으로 인정합니다. 다윗은 24장의 기록을 보면 사울도 감동하게 할 정도로 왕도가 있었고, 품위를 지켰습니다. 분노를 참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본문 25장은 다른 모습입니다. 분노를 참지 못합니다. 부하 400명과 함께 칼을 뽑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날 뻔합니다. 이때 이 분노의 칼을 막는 여인이 있었으니 아비가일입니다.

 

 

1. 사무엘의 죽음(삼상25:1)


1절을 보십시오. 본문은 사무엘의 부고 소식부터 시작합니다. 사무엘은 향년 83세로 죽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최후의 사사이며 최초 선지자고 제사장입니다. 삼중 직을 감당합니다. 사무엘은 가장 어두운 때에 세움. 받았습니다. 당시는 정치적, 영적으로 어두웠습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이 등불처럼 사무엘을 쓰십니다. (삼상7:5-16)

사무엘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 다하고 죽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전체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에 이렇게 온 백성이 슬퍼한 예는 크게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죽음이 있고 평가가 있습니다. 죽은 뒤 평가가 “거참 잘됐네~~” “그렇게 악하게 굴더니 속 시원하네!” 하는 평가가 나오면 곤란합니다. 사무엘 4살 때부터 성전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사명을 마친 사무엘의 마지막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음을 안타까워합니다.

다윗에게 사무엘은 인생의 멘토입니다. 영적인 아버지입니다. 사울에게 자기를 지켜줄 마지막 바람막이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습니다. 사무엘 죽음 후 다윗은 힘들어했습니다. 본문에 다윗은 남쪽 끝 바란 광야로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184km입니다.

2.마온 사람 나발(삼상25:2-11)


본문 2, 3절을 보십시오. 나발 부부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이들이 사는 동네 마온이고 갈멜부근 성읍입니다. (수15:55) 완만한 산, 언덕이 많아 목축하기에 적합한 땅입니다. 나발은 부자였습니다. 갈멜 지역 재계 1순위였습니다. 양 삼천 마리 염소 천 마리 합하여 4,000 마리를 가진 부자입니다. 4,000 마리 현 시세로 56억 나옵니다.

3절에 나발 이름 뜻은 “어리석다.”입니다. 나발은“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사람” 나옵니다. 17절을 보면 하인까지도 나발은“불량한 사람”이라 합니다. 25절에 보면 그의 부인도 “불량한 사람, 미련한 사람 이라 하면서 정말 그 이름답게 사는 남편”으로 혹평합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부인이 사지에서 돌아왔는데 나발은 아무것도 모르고 큰잔치를 벌리고 만취해서 곤드레만드레”하는 모습 봅니다.

반면 아비가일 이름 뜻은 “아버지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녀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웠다.” 소개합니다. 17절을 보면 일이 터지자 하인이 나발에게 안 가고 아비가일에게 가서“당신은 어떻게 할지를 알아 생각하실지니”라 창 고하면 생각이 깊은 여인입니다. 가정 문제 해결사 노릇도 했습니다. 33절을 보면 다윗이 여인을 평가하기를“하나님이 보낸 여인이며 그녀의 지혜로움을 칭찬합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이 죽자 왕후의 자리에까지 갑니다.

본문 4~9절까지는 다윗이 나발에 음식을 요청하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현재 6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수장입니다. 광야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도자의 최대의 리더십은 먹을거리 해결입니다. 목축업자들의 최대 축제는 양털 깎을 때입니다. 8절에는 이날을 좋은 날로 소개합니다. 영어로는 Festive time입니다. 주인은 음식을 장만하고 잔치를 베풀고 나그네를 대접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당시는 국제법도 없으니 목축하는 사람들은 항상 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마온 광야 남쪽 베두인족 속 또 거친 아랍 족속들이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습니다. 베두인 부족은 험난한 사막 생활에 잘 적응하며, 뛰어난 전투력을 가진 강인한 부족입니다. 이들은 평생 목욕 2번 합니다. 태어났을 때 한번 결혼할 때 한 번입니다. 나머지는 다 모래 목욕합니다. 다윗은 이들로부터 나발이 안전하게 목축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3. 나발의 집을 멸할 결심(삼상25:12-17)


본문 15,16절에 보면 다윗이 담 역할을 해주었다 합니다. 나발은 사람도 안 다치고 가축도 털끝 하나 잃어버리지 않았다 기록합니다. 다윗 이렇게까지 했으면 말 안 해도 알아서 섬겼어야 도리입니다. 음식 많이 했으면 초대하여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다윗 나발에게 음식 요구할 권리 있었습니다. 다윗은 당연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소년 10명을 보냈습니다. 10은 완전수, 만수로서 최고의 예의와 존경심을 상징합니다. 6절 상 반절 사는 자란 뜻은 원어로 “나의 형제여!”란 표현이랍니다. 나발을 형제로까지 불렀습니다. 6절에 평강을 3번이나 빕니다. 3번씩 평강을 빈 것은 구약성경에서 최초랍니다. 평강을 사람뿐 아니라 집에도 빌었고 말 못 하는 가축에게까지 빌었습니다. 인사말에 간절함과 진심과 진정성이 묻어납니다. 심지어 8절을 보면 “네 종과 네 아들 다윗”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다윗은 연장자인 나발을 아버지로까지 높이고 자기를 아들로 부하들은 종으로까지 낮추었습니다.

나발은 이런 다윗의 요청을 어떻게 거절합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주기 아까우면 에둘러서 “요즈음 경기가 하도 불경기여서! 구제역 때문에 올해도 마이너스다.”하며 상대가 마음 상하지 않게 거절하면 됩니다. 거절의 기술도 있습니다. 천하가 다 알고 있는 다윗에게 “다윗은 도대체 누구고 이새의 아들은 또 누구냐?”하고 무시합니다. 다윗을 사울에게서 탈출한 종이라 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근본 없는 놈들에게 음식 줄 수 없다고 합니다. 다윗 1년 먹을거리 요구하지도 않았고 한 끼 정도였습니다. 나발은 말끝마다 내가, 내 떡과 내 물, 내가 잡은 고기, 일인칭 소유격을 썼습니다. 말속에 오만함이 묻어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모욕당한 10명의 소년이 이 모든 말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다윗은 13절에 조용히 “칼을 차라 올라가자!”합니다. 요란하게 화내지 않고 냉정하면 더 무섭습니다. 다윗 목축업자 나발 하나 처단하려고 군사의 2/3를 동원합니다.

22절에 보면 “나발에게 속한 모든 남자 아침까지 한 명도 안 남기겠다.”라고 다짐합니다. 남자의 원어 뉘앙스는 "벽에다, 오줌싸는 놈들"이라는 거친 표현입니다. 다윗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았습니다. 율법에 보면 자기가 직접 원수 갚는 것을 금합니다. (신32:35, 롬12:19,20) 다윗은 율법도 안보였습니다. 법은 멀고 칼은 가까웠습니다. 다윗 “나발과 그 일파들 내 씨를 말려 버리겠다.” 하는 자세였습니다.


본문 14절부터는 장면이 바뀝니다. 17절까지 나발의 하인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네가 몰살당할 상황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나발에게 가봤자 일만 더 커질 테니까 안주인인 아비가일에게 달려갑니다. 정확한 현실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걸 보면 지혜로운 종입니다. 나발 인복은 있습니다. 아비가일뿐 아니라 훌륭한 하인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 하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발이 재물은 남부럽지 않게 모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 잃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최측근 하인도 나발편이 아닙니다. 심지어 아내인 아비가일도 아닙니다. 재물 얻고 사람 잃었습니다. 예수님 이런 말씀 하시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16:9) 거라사 광인 한사람 살리려고 돼지 2000마리 희생시키십니다. 우리 가끔 인격 갖추지 못한 CEO들 방송에서 욕먹는 일 봅니다. 그래서 제품 불매운동도 하지 않습니까? 사람을 놓치면 곤란합니다.

4.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행동(삼상25:18-31)


18~31절까지는 장장 13절에 걸쳐서 아비가일의 활약상이 나옵니다. 일단 분노한 400의 군사를 멈춰 세워야 합니다. 세울 유일한 방법은 먹는 것입니다. [웰컴투 동막골]이란 영화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동막골은 전쟁과 상관없는 아주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래서 북한군 장교가 촌장에게 비결을 묻습니다. “거~~ 기니까니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은 휘어잡을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 머리 쉬고 수염 긴 촌장이 먼 산을 지긋이 바라보며 “멀 마이 맥여야지 뭐?~” “네에??” 장교는 대답을 듣고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비가일 스케일 크게 맥일 음식 준비합니다. 음식도 떡 한 가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6가지로 다채롭게 준비합니다. 떡 백 덩이, 포도주 2포대, 맛있게 요리한 양 5마리분,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백송이, 무화과 뭉치로 이백을 나귀에 실어 보냈습니다. 마른 음식 위주로 야전 군인들이 먹기 좋게 배려합니다. 금방 먹고 원기 회복을 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음식 밟고 넘어갈 군인 없을 것입니다. 아비가일 일단 멈추어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뒤이어 아비가일이 나귀 타고 등장합니다. (19-20)

23~31절까지는 그야말로 아비가일의 지혜와 스케일이 얼마나 큰지 나옵니다. 그녀는 먼저 엎드렸습니다. 얼굴까지 땅에 댔습니다. (23.24) 본문에 34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단어 “내주, 여종”입니다. 문장의 흐름을 해칠 정도로 많이 나옵니다. 상대의 분노 잠재우는 첫째 무기는 겸손이었습니다.

첫마디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라!” 합니다. 분노 잠재우는 두 번째 무기 남 탓하지 않고 내 탓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요즈음 내 탓의 반대말을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합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약자랍니다.

아비가일 분노의 화살을 자기에게 돌리도록 합니다. 자기가 10명의 소년이 어려운 걸음 했을 때 잘 챙겨야 했는데 못 챙겼다 합니다.

25절을 보면 남편 나발은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니 “상종할 필요 없다. 상종해봐야 똑같은 사람 된다.” 합니다.

26절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합니다. 신앙적인 조언도 합니다. 분노로 하나님을 잃어버렸었는데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조언합니다.


28절에는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든든한 왕국을 반드시 세우시리란 확신을 줍니다. 다윗의 잃어버린 정체성과 비전을 새롭게 일깨워 줍니다. 사무엘이 돌아와서 조언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당시 양을 칠 때 낮엔 방목하다 밤엔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가둘 때 한 마리 두 마리 세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몇천 마리를 세어야 하는데, 세다가“내가 몇 마리까지 셌더라. 786이야 876이야 하겠죠?” 당시 목자들은 보자기를 갖다 놓고 양 한 마리 들어갈 때마다 돌 한 개씩 넣어서 세고 잘 싸두었습니다. 돌 한 개가 양 한 마리 목숨입니다. 당시 귀중한 물건은 보자기에 싸서 두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아비가일이 하나님이 생명 싸게에 싸서 다윗을 보호해 준다고 하자 마음에 와닿았으리라 짐작합니다. 원수는 물매 돌을 던지듯 하나님이 던져버린다고 합니다. 다윗 물매의 달인 아닙니까? 아비가일 400명의 군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비유를 통해 설득합니다.

이런 지혜 어디서 나왔을까요? 본문에 보면 아비가일의 말속에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이 9번이나 나옵니다.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다고 했는데 평소 아비가일은 하나님 경외하는 여인입니다

다윗과 아비가일

5. 다윗의 용서(삼상25:32-35)


32~35절은 다윗이 분노의 칼을 칼집에 꽂는 대목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자신의 범죄를 막아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400명 군사 앞에서 뽑았던 칼 다시 칼집에 넣는 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왕의 자존심 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다윗 깨끗이 칼집에 꽂습니다. 여인의 조언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돌이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한 여인을 통해 말합니다. 하나님 결코 침묵하는 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 순간 만나는 사람을 통하여, 벌어지는 사건을 통하여, 자연을 통하여서도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36절~38절은 나발의 최후입니다. 나발은 취했던 술에서 깨어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듣자 충격으로 낙담하여 돌같이 됩니다. 낙담은 너무 놀라서 간 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나발은 쓰러진 지 10일 후에 숨을 거둡니다. 38절은 말씀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온통 갈등구조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범죄한 인류의 비극입니다. 예를 들면 여당 야당 늘 싸웁니다. 노사 갈등합니다. 종교갈등, 민족끼리 갈등, 영토분쟁, 지역갈등, 세대갈등, 현재는 미얀마는 군부와 시민의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개인적으로도 살다보면 분노할 일 많습니다. 사울, 나발 같은 분노유발자들 많이 만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은 이러하여도 분노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자들 되길 기도합니다. 심판하실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오히려 분노의 칼을 막을 수 있는 제2의 아비가일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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