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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다윗 왕의 인구조사 결과(역대상21장1-14절)

by 명주(明珠) 2024. 7. 17.

본문의 연대는 BC1015년입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지 35년 차입니다. 다윗이 40년을 다스렸으니 통치 말년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말년 병장 때와 같습니다. 제가 특수부대가 아니고 특수한 부대 출신이라 했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입대했습니다. 당시 왕고가 있었습니다. 병사들 중 자기 위에 더 이상 고참이 없을 때 왕고라고 합니다. 최고참입니다. 이 왕고 건들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터치 못 합니다. 낙엽도 피합니다. 모든 근무, 불침번 열외입니다. 졸병들이 깨워주고, 매트리스, 모포 개 주고, 밤에 신라면도 끓여줍니다. 왕고는 하루 종일 TV 리모컨 들고 빈둥거리다 제대합니다. 요즈음 군대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줄을 잘못 서서 왕고 일주일만 하고 전역했습니다. 막내는 1년 내내 했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줄을 잘 서야 한단 말이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대상21:1-6)



오늘 본문의 다윗을 보면서 군대 때 왕고가 생각나서 소개했습니다.  다윗이 매우 훌륭한 왕이었지만 2가지 치명적인 죄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밧세바 간음 사건입니다. 또 다른 죄는 인구 조사 죄입니다. 다윗은 왕궁 옥상을 어슬렁거리다 빠진 죄가 밧세바 간음죄였고 그녀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아를 죽이도록 하는 살인 교사죄를 지었습니다. 이 죄로는 5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인구계수 죄는 무려 7만 명이 죽습니다. 우리는 간음죄, 살인 교사죄가 더 크게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구조사 죄를 더 크게 다루셨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사탄이 주어로 나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자입니다. 사탄은 인간을 유혹해서 하나님의 원수가 되게 만듭니다. 본문에 사탄이 충동(衝動-incited)했다고 합니다. 한자는 찌를 충 움직일 동자입니다.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충돌 질 한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계수(計數)는 헤아릴 계, 셀 수 자입니다. 영어로는 센서스(census)입니다. 오늘날도 총인구 센서스를 합니다. 5년마다 합니다. 2025년에 또 합니다. 조사 기간은 15일이나 한 달을 넘기지 않습니다. 인구 센서스의 목적은 국가 정책을 수립하기 위함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다윗이 인구계수를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 요압은 총군사령관입니다. 브엘세바는 남쪽 끝이고 단은 북쪽 끝입니다. 전 국토를 말합니다. 과거에도 인구조사는 합니다.(출30:12, 민1:44, 민26:51) 그런데 명령권자가 하나님이셨습니다. 시행권자가 대제사장입니다 인구조사를 하면 누구나 반 세겔의 성전 세를 냈습니다. 이 돈은 성소 기구를 만드는 데 썼습니다.(출30:25-28) 반세겔은 빈부격차 상관없이 다 냈습니다. 백성들은 이렇게 하면서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품었습니다. 과거 인구조사는 예배,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잘 묻는 사람입니다(삼상23:2,4 삼하2:1 삼하5:19, 23역대상14:10, 14) 그런데 이번에는 묻지 않았고 단독으로 합니다. 자기 맘대로 진행합니다. 시행자도 제사장이 아니고 군대장관입니다. 목적은 예배가 아니라 군사력 확보 차원입니다 세금징수의 목적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지금 최고의 번영을 누리고 있는 때입니다. 온 천하가 자기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브엘세바부터 단까지 모두입니다.

다윗의 마음에 대하여 합리적인 상상을 한번 해봅니다. 다윗은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이거 다 놓쳐버리면 어떡하나? 강대국이 언제 쳐들어올까? 이 불안은 자신이 인간적으로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윗은 무명의 목동을 불러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정복 전쟁을 통해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 방패 자요.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줄어들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믿음 없어졌습니다. 그 대책으로 칼 뺄 수 있는 자를 파악했고 세금도 거두고 군사력도 확보해서 손아귀에 들어온 영광을 지키고자 합니다. 인구계수의 이면에는 다윗의 불신앙, 교만이 자리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죄가 바로 교만입니다.(잠16:18 눅1:51 잠21:4, 잠16:18)

3절을 보십시오.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 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요압은 여기서 이런 충언을 할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는 용맹했지만 복수심에 불탔습니다. 성경은 양심이 메마른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다윗 왕국에서 해결사 역할은 했는데 아주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솔로몬 왕 때 숙청 1호가 됩니다.(왕상2:31-34) 이런 요압까지도 다윗의 인구계수는 잘못됐다고 알아차린 것입니다. 본문에 백배나 더하시기를 원한다는 것은 요압도 다윗 왕국이 하나님만 잘 의지하면 백배나 더 축복받을 수 있음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이미 양심이 무뎌져서 알아듣지 못합니다. 4절 상반을 보면 다윗 왕이 요압을 재촉했다고 나옵니다. 재촉은 다그치는 것을 말합니다. 강력하게 밀어붙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다윗의 태도를 확인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어떤 의견을 채택하고 나면 틀려도 그 의견을 한사코 고수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확인편향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항상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닫혀있었습니다.

다윗 왕의 재촉에 요압은 하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인구수를 센 결과가 몇 명이었습니까? 총157만 명입니다. 본문 내용이 사무엘하24장9절에도 나옵니다. 거기는 130만 명입니다. 27만명이 차이가 납니다. 이방인을 넣고 뺀 차이랍니다. 사무엘하에는 인구조사 기간도 나옵니다. 9달20일 거의 10달이 걸립니다.(삼하24:8) 너무 길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10달이면 그사이 새로 태어난 아기만 해도 몇 만은 됩니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요압은 2개의 지파를 빼먹습니다. 베냐민, 레위 지파입니다. 요압이 이 보고한 인구수는 허수가 많습니다.

허수를 실수로 믿었다가 망한 전쟁이 있습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랍니다. 당시 국방 장관이 로버트 맥나마라입니다. 포드회사 사장을 지냈습니다. 역대 처음으로 7년 국방 장관을 한 사람이랍니다.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걸어 다니는 컴퓨터라 할 정도로 모든 걸 수치화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베트남전도 수치화합니다. 적의 사망자 숫자, 폭격기 출격 숫자, 폭탄 투하 숫자 등을 CIA를 동원해서 파악하면서 작전을 수행합니다. 문제는 일선에 있는 병사들이 사망자 숫자를 부풀렸습니다. 승진과 포상을 위해서입니다. 이 허위 보고 때문에 오판을 불러왔고 미국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 손실을 떠안았습니다.

아라비아 수는 AD4세기 인도에서 발명합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세계로 퍼트렸습니다. 사람들은 이 숫자를 신뢰하고 숫자로 표현하면 모호한 것이 구체화 됩니다. 4차 산업의 근간도 빅데이터라는 확률을 이용합니다. 요즈음 날씨까지도 비가 올 확률로 표기합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이렇게 하지 않고 비가 올 확률 85%로 말합니다. 그러면 좀 더 명확합니다. 수는 편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숫자보다 마음을 더 원합니다.

아라비아 수

 


 
2. 하나님의 형벌(삼상21:7-14)



본문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셨다고 나옵니다. 병행 구절 삼하24:10을 보면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로 나옵니다. 하나님이 무뎌진 다윗의 양심을 깨우치십니다. 바위 같은 딱딱한 마음을 깨트리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8절을 참고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이제부터는 다윗의 철저한 회개가 나옵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다윗왕이 완벽해서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회개할 줄 아는 사람이어서 훌륭합니다. 삼하24:11절을 보면 다윗이 밤새도록 회개 기도를 하고 아침에 일어났다고 나옵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또 다른 훌륭한 점을 찾는다면 남 탓, 상황 탓, 백성 탓하지 않았습니다. 본문17절도 참고하면 다윗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립니다. 백성은 벌하지 말고 자기를 벌하라고 요청합니다.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조상 탓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으면 아들의 이가 시리다.”랍니다. 아들이 잘 안되는 것이 아버지 탓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집단에서 남 탓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려고 설문을 했답니다. 질문은 간단합니다. “당신의 대인관계 능력은 좋은 편입니까? 나쁜 편입니까?”이고 7점 척도로 체크하라고 했답니다. 아주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느 집단이건 평균보다 항상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5, 6점에 몰려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4라는 평균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야 합니다. 수학적으로 정상분포라 합니다. 그런데 항상 평균보다 높았다고 합니다. 이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항상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결론입니다. 자신은 평 균 위로 봅니다. 그래서 문제가 터지면 자기는 평균 위이니까 평균 아래에 있는 남 탓을 할 수밖에 없다 진단합니다. 성경 말씀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고 권면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2:3절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합니다. 자기를 평균 위로 보지 말고 평균 아래로 여기고 남을 평균 위로 보고 낫게 여기라,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책임지는 정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모두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정신,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정신, 참 목자의 정신입니다. (요1:29)

9-12절을 보면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통하여 징계도 선택하도록 합니다. 선택지가 삼지 선다형입니다. 세 가지가 어느 하나 좋지 않습니다. “3년의 기근이나 적군에게 패배한 다음에 3달의 도망자 신세냐 3일의 전염병 후에 천사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함이냐.”입니다. 333선택 지입니다. 성도님들은 뭐가 제일 쉬울 것 같습니까? 기근? 도망? 전염병? 다윗은 도망에는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10년을 도망 다녔으니 도망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징계하시면 되는데 하필 선택하라 하셨을까요? 11절하반절 보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합니다. 전염병은 여호와의 칼이라고 비유합니다. 저는 이 두 단어를 보면서 하나님이 고등어 뼈를 발라내듯이 죄는 철저하게 파헤치고 회개하도록 도우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유의지로 인구조사를 선택합니다. 징계도 자유의지로 선택하라 하시면서 잘못을 상기시킵니다. 칼을 뺄만한 자를 계수했으니 여호와의 칼로 치고자 합니다. 16절을 보면 천사가 칼을 빼 손에 들고 있는 모습까지 보여 줍니다. 이를 통해 회개 안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어떻게 회개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함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본문 그의 손에 빠지다(fall unto the hands)는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겼다는 뜻 입니다. 다윗은 내 손으로 내 맘대로 무엇을 해보려 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긍휼의 손에만 의탁합니다.

14절은 하나님의 징계하심을 기록합니다. 전염병으로 7만 명이 죽습니다. 왜 수가 6만도 아니고 8만도 아닌 7만 일까요? 인구 대비 백성들이 가장 공포심을 느끼는 수랍니다. 우리가 고공 11m에서 가장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 숫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희생 앞에 하나님이 얼마나 죄를 미워하는가? 죄를 싫어하는가? 공의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죄를 얼마나 미워하셨으면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 죄를 도말 해 버리셨습니다.(골2:14) 도말은 진흙으로 깨끗이 발라버리셨다는 뜻입니다.

요압이 파악한 백성 숫자가 157만이라고 합니다. 전체 인구수는 4를 곱하면 나옵니다. 628만 명입니다. 강릉시 인구의 27배입니다. 아마도 다윗과 지도자들은 이 많은 숫자에 흡족했습니다.. 앞으로 걷힐 세금 액수와 군사 수를 헤아리며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이참에 브엘세바 아래 또 단 위쪽을 공격하여 더 큰 제국을 이룰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국이 어떻게 이루어진 왕국입니까? 10년을 광야에서 유리방황하며 형성된 왕국입니다. 삼상22:2절에 보면 다윗이 아둘람 동굴에 있을 때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합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임에 들어와 상처받은 마음이 치유되고 나아서 왕국의 기초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많아지면 이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의 가치가 희석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에 메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길 잃고 헤메는 한 마리의 양을 구하러 가심에 비유합니다.(눅15:4) 예수님은 한 생명의 가치를 온 우주보다 귀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의 가치관을 잃지 않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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