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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내면에 고요함을 유지하는 비결(마가복음4:35-41)

by 명주(明珠) 2024. 7. 15.

오늘 본문 말씀은 광풍사건입니다. 본문은 막4:35-41절까지입니다. 마8:24-27절과 눅8:22-25절에도 나오는데 마가복음이 가장 길게 기록합니다.

고요와 반대말은 불안, 두려움, 무서움입니다. 이런 요소를 일으키는 상황을 한 마디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팽팽히 조인다.(stringer)”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의학적용어로 ‘외부 자극에 대하여 자신이 있던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저항하는 반응’입니다. 셸리라는 학자는 스트레스를 경보반응(alarm), 저항반응(resistance), 탈진반응(exhaustion) 단계로 나눕니다. 탈진반응까지 가면 몸에 병이 옵니다.

스트레스 자가 측정표



미국의 정신의학자 토머스 홈즈(Thomas Holmes)와 리처드 라헤(Richard Rahe)는 스트레스 측정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인 5천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문합니다. 이 표를 사회 재적응 평가 척도(SSRS)라고 합니다. 이 지수가 300이상이면 2년 내에 질병 확률 80%입니다.

아래 내용을 진단해 보기 바랍니다. ①배우자의 사망100 ②이혼 73 ③부부 별거 생활65 ④구류63 ⑤친척의 사망63 ⑥개인의 사고나 병 53 ⑦결혼50 ⑧해고 47 ⑨부부 갈등(심각한 갈등) 45 ⑩퇴직(은퇴) 45⑪가족의 건강 변화44 ⑫임신 40 ⑬성적 장해 39 ⑭가족 구성원의 증가 39 ⑮직장업무변화 39 ⑯경제 상태의 큰 변화 38 ⑰친구의 사망 37 ⑱새로운 일 시작, 직장 옮김 36 ⑲부부싸움 35(갈등보다는 좀 약한) ⑳1,000 만 원 이상의 대출 31 ㉑대출금을 갚지 못함, 빚 독촉 30 ㉒업무상 책임의 변화(승진, 보직 변경) 29 ㉓자녀 별거(결혼, 유학)29㉔친척과의 트러블, 고부갈등29 ㉕개인의 성공 28 (성공해도 스트레스는 있음, 좋은 스트레스)㉖부인의 취직이나 이직, 실직, 은퇴 26 ㉗입학, 졸업 26 ㉘생활 조건의 변화25 ㉙개인적 습관의 수정 24 ㉚상사와의 트러블 23 ㉛노동 조건의 변화 20 ㉜주거의 변화 20 ㉝전학, 이사 20 ㉞여가생활의 변화19 ㉟교회 활동의 변화 19 ㊱사회 활동의 변화18 ㊲1,000만 원 이하의 대출17㊳수면 관습의 변화16 ㊴가족 모임의 변화 15 ㊵식습관의 변화 15 ㊶휴가 13 ㊷크리스마스, 명절12 ㊸가벼운 위법 행위(신호위반, 무단횡단 등) 11 총합1632 적은 지수를 모두 합치시기 바랍니다.

지수가 0~149이면 양호입니다. 150~199는 가벼운 위기상황입니다. 질병 발생확률 37%입니다. 200-299이면 보통위기상황으로 질병 발생률 51%입니다. 300이상이면 심각한 위기상황으로 질병발생률 80%입니다.

예수님의 스트레스 지수는 얼마였을까요? 400은 넘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병사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고요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광풍에 대한 제자들과 예수님의 반응을 대조합니다.

갈릴리바다의 크기



갈릴리 바다는 둘레 55키로 입니다. 세로(남북) 21키로 폭13키로(동서) 입니다. 모양은 거문고 형태라고 해서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부릅니다. 해수면보다 200미터 아래에 있습니다. 북쪽은 2,815미터의 헬몬산이고 정상에는 만년설이 있습니다. 산의 찬 공기가 내려오다 바다의 더운 공기와 만나 돌풍이 생길 확률이 높은 지형입니다. 요즘도 광풍이 일면 200명승선 유람선도 운항 포기합니다.

갈릴리 바다 전경



이스라엘 기노사르 키부츠 박물관에 당시 배 한 척을 갈릴리 바다에서 건져 전시했습니다. 길이는 8.2미터이고 폭은 2.3미터입니다. 가운데에는 돛이 하나 있고 바람이 없을 때는 노를 저어서 이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쓴 배 상상하면 안 됩니다. 어깨를 맞대고 앉아야 하는 수준입니다. 잠들어 있는 예수님도 눈앞에 보이는 배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 빌립이 어부 입니다. 나다나엘, 도마, 작은 야고보, 시몬은 어부는 아니지만 갈릴리 바닷가 출신입니다. 제자 12명 중 9명이 바다에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입니다. 제자들은 전문가 집단입니다.

전문가들이 광풍 앞에서 무서움의 웅덩이에 빠져 익사 할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원망의 화살은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호칭이 어떻게 바뀝니까? “선생님!”입니다. 주님으로 부를 때는 언제고 상황이 변하자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예수님은 어떻게 상황을 정리합니까?

갈릴리 바다를 꾸짖음



바람과 바다를 꾸짖습니다. “바람 너 좀 잠잠해! 파도야 너 좋은 말로 할 때 좀 고요해라!” 바람과 바다는 무 인격체 입니다. 우리가 바람에게 이렇게 했다가는 엠뷸런스가 와서 즉시 싣고 갑니다. 예수님 말고는 누가 광풍을 감히 꾸짖을 수 있겠습니까? 꾸짖었다는 것은 창조주의 권위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창조주이기 때문에 무 인격체가 즉시 순종합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도 꾸짖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주석에는 ‘아직도’란 단어가 첨가된 문장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부르심 받은 지 1년 째 입니다. 아직도 광풍을 무서워합니다. 도대체 믿음은 어디다 두고 온 것입니까? 영어로 Where is your faith? 하고 예수님은 믿음 없음을 책망합니다.

41절은 보면 제자들이 기적을 체함하고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놀랍니다. 그는 만물의 주인이시고 창조주입니다.(골1:16절)

인생의 광풍 앞에서



인생의 광풍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예수님에게서 지혜를 배웁니다. 고물에서 고요하게 잠자는 것입니다. 고물은 배의 뒤쪽을 말하고 앞쪽은 이물이라 합니다. 제자들은 돛을 내리고, 물을 퍼내고, 밧줄을 당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물론 광풍에 미리대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노력으로 어찌할 수없는 광풍에는 조용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광풍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36절을 참고합니다.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자기들이 배에 모시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착각입니다. 배의 선장은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오히려 예수님의 배에 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선장도 내가 아닌 예수님입니다.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비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마음에 고요함을 유지할 할수있을까요? [맥도날드 고든]이란 분이 쓴 [내면세계와 영적성장-IVP출판]이란 책에서 몇 가지를 인용합니다. 고든의 친구가 미국 핵잠수함 장교였습니다. 당직을 서고 있는데 갑자기 잠수함이 요동치고 흔들렸습니다. 잠수함은 바다 위로 수많은 배들이 지나다니는데 갑자기 나타날 때 피하기 위하여 비정상 적인 움직임이 많다고 합니다. 갑자기 잠수함이 많이 흔들리니까 배의 함장이 조정실을 방문합니다. 함장은 “이상 없나?”하고 물었고 친구는 “네 이상 없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함장은 조정실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보기에도 괜찮아 보이는군!”하면서 조종실을 나갔다고 합니다.

위의 상황을 다시 상상해봅니다. 잠수함 밖에는 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곳은 어디 입니까? 내부 조정실입니다. 함장은 본능적으로 배가 흔들리자 조정실부터 찾았 습니다. 조정실이 공포의 기색 없이 고요합니다. 고도로 숙련된 승무원들이 차분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함장과 조정실의 승무원들은 수천번이상은 비상 시 상황훈련을 했습니다. 잠수함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과잉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조정실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면 잠수함의 안전은 보장됩니다. 그러나 조정실이 질서 없이 우왕좌왕하면 위험합니다. 재난이 닥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질서 없이 우왕좌왕 하는 상황과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잠수함에 조정실과 같습니다. 외부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우리 마음에 이상이 없으면 괜찮습니다. 조정실이 우왕좌왕하고 질서가 없으면 문제입니다. 위기가 오고 질병이 생깁니다. 그래서 잠언 4:23절은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나라”고 합니다. 롬12:2절에서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합니다.


우리 마음 조정실의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 12가지가 책에 소개됩니다. 몇가지만 언급하면 첫째 내면세계에 신경 쓰라고 합니다. 외적인 세계에만 매진하지 말라고 합니다. 두 번째 적당한 쉼을 가지라고 합니다. 월화수목 금금금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 중심적인 삶을 살지 말라고 합니다. 일 중심적인 사람을 쫓기는 삶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반대는 부르심 받은 자의 삶이라고 합니다. 부르심 받은 자의 삶은 성경적으로 말하면 청지기의 삶, 종의 삶입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잠깐 빌린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도 내 소유가 아닙니다. 잠깐 맡았다가 주인이 찾으면 돌려주어야합니다.

시간관리



세 번째 시간 관리의 조언도 있습니다. 시간 관리는 최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선순위와 한계가 분명했습니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잃어진 자를 구원하입니다. 잃어진 자를 만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의 마지막에 예루살렘을 향합니다. 유월절 종교 축제가 있었습니다. 6~7시간만 가면 예루살렘 도착 입니다. 그런데 지체합니다. 제자들의 속을 많이 태웁니다. 중간에 소경거지가 애타게 불러서 만나느라 지체합니다.(눅18장) 또 얼마 지나 느닷없이 뽕나무를 쳐다보더니 삭개오를 내려오라 합니다. 몇 시간이면 예루살렘인데 그의 집에 들어가 하루를 묵습니다. 예수님은 잃어진 자 소경거지와 삭개오를 만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를 입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12명의 제자만을 키우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결정과 행동을 앞두고 반드시 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복음서에는 홀로 한적한 곳에 계셨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의 금요 기도 모임, 수요 예배, 주일 예배와 주일말씀 등 모두가 내면세계와 영적인 성장을 위함입니다. 수요 예배 온다고 하여 실질적으로 떡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광풍 앞에서 믿음으로 고요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내적능력이 생깁니다.

간디의 물레질 교훈


 
작가는 내면세계를 항상 정돈하라는 차원에서 인도 간디 수상의 물레질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의 물레질은 정치적인 제스처의 차원이 아니라 내면을 정리하는 도구로 쓰였슷니다. 간디는 인도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늘 왕궁과 정부청사에서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집에 오면 언제나 가장 단순한 물레질을 합니다. 물레질은 그를 교만하지 않게 하고 삶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 작가의 주장을 보면서 사도바울의 텐트 만드는 작업을 떠올렸습니다. 성경에서 사도바울만큼 바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늘 그는 저녁이 되면 한 올 한 올 텐트 깁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일로 마음을 정돈하고 성령의 힘을 덧입고 교만함을 물리치고 영적인 힘을 덧입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인생은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는 과정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소풍 온 장소와 같이 지나가는 곳이거나 잠시 머무는 곳 입니다. 인생항로의 선장은 내가 아니고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선원입니다. 우리가 늘 이 예수님을 의지하여 인생의 수많은 광풍 앞에서 무서워 떨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외면세계에 올인 하지 말고 내면세계를 갈고 닦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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