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나이 별로 무엇에 이끌리는가에 대하여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10세에는 과자입니다. 20세는 연인입니다. 20세는 결혼 적령기이다 보니까 이성에 많이 끌립니다. 30세에는 쾌락, 40세는 야심, 50세에는 탐욕에 움직인다고 합니다.
본문 사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 구하다.”입니다. 사울은 이름의 뜻과는 반대로 여호와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사울처럼 되지 말자는 뜻에서 본문을 공부합니다.
1.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2년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왕이 될 때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년에.” 이년이란 단어를 주목해 주십시오. 사울은 백성들이 그토록 바랐던 초대 왕에 오릅니다. 몇 살 입니까? 40세입니다. 40이면 루소는 야심에 끌립니다. 사울이 왕에 오르고 2년이 흘렀습니다. 인생의 고비는 성공 후에 옵니다. 사울은 2년 동안은 잘했습니다. 그 후에 삼천포로 빠집니다.
사울 가문은 왕족 가문이 아닙니다. 미약한 베냐민 지파입니다. 베냐민 지파 내에서는 유력했습니다.(삼상9:1) 그러나 사울은 스스로 지파도 가문도 작고 미약하다고 여겼습니다.(삼상9:21)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자존감 없는 가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저의 족보 이야기를 잠깐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큰 아버지는 처음으로 족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놀란 것은 저도 사울같이 남에게 내세울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시조가 임춘(林椿)이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검색도 안 될 줄 알았는데 나왔습니다. 임춘은 고려 중기 무신 정권 시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인이었습니다. 호는 서하(西河)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내용이 이러 하였습니다. “임춘은 극도로 빈곤한 처지에서 다른 문인들과 더불어 모임을 결성하여 술과 시로 사회적 울분을 달랬다.”고했습니다. 또 “과거 시험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골로 내려가 실의와 곤궁 속에서 방황하다가 요절했다.”로 나왔습니다. 술, 시, 요절,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으로 '국순전', '공방전' 등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도 이스라엘 지파 중 뼈대 있는 가문이 아닙니다. 사울이 제비뽑기를 통해 왕으로 등극했을 때 짐 보따리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을 보면 소심한 사람이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사울 왕에게 여호와의 영이 크게 임하면서 새사람으로 변합니다.(삼상10:6) 사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른 쪽 눈을 다 빼버리겠다고 모욕한 나하스 장군을 군사 33만을 일으켜 물리칩니다. (삼상11:2, 8, 11) 이 사건을 통해 사울은 공식 왕으로 인정받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등극한 후 2년은 잘 지냈습니다. 어떤 특권을 누렸을까요? 우리나라 대통령에 비유해봅니다. 대통령에게는 헤어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경호인력, 주치의를 둡니다. 전용요리사는 한식, 일식, 중식, 양식이 다 따로 있습니다. 전용차, 전용기차, 전용헬기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용차는 미사일을 맞아도 끄떡없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조약체결비준권, 국민투표부의권, 계엄선포권, 긴급처분명령권, 행정부지휘권, 국군통수권, 공무원임명권, 사면권이 등등이 있습니다. 대통령 월급 한 달에 2,000만원 연봉 2억3,251만원 입니다. 임기가 끝나도 죽을 때까지 연금 1천만 원 이상을 받습니다. 만40세 이상 대통령 후보 신청 가능합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사울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마음대로 직권을 남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천명의 군대를 조직합니다. 그리고 2천명은 왕 직속 부대로 편성합니다. 천여 명 가량은 아들 요나단에게 편성합니다. 남은 자들은 장막으로 보내 예비군으로 둡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요나단을 시켜서 적국인 블레셋의 변방 수비대를 칩니다. 그리고 수비대장을 죽입니다. 이것이 화를 자초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3절 산상수훈에서 첫 번째 덕목을 무엇이라 하십니까?“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셨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마음이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자 부해졌습니다. 영적인 역사도 뭔가를 성취한 후에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세는 좋습니다. 섬긴 이후 영적으로 느슨해지면 사단에게 공격할 틈을 줍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우리들을 위하여 어떤 권면을 합니까? 빌립보서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가 늘 심령이 가난한 자세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뒷일은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직권남용한 사울 왕의 변명
사무엘이 제사를 드린 일로 사울 왕을 문책하자 무엇이라고 변명합니까? 12절을 참고합니다. 변명은 간단명료합니다. “부득이하여” 입니다. 부득이하다는 것은 자기편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합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본문에서 사울 왕이 처한 상황은 풍전등화(風前燈火), 백척간두(百尺竿頭)입니다. 풍전등화는 바람 앞의 등불이고, 백척간두는 30미터의 장대 꼭대기에 서 있는 형국입니다.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당시 전력을 비교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쟁무기가 없었습니다. 칼 두 자루 밖에 없었습니다. 사울과 아들 요나단에게만 한 자루씩 있었습니다.(삼상13:22) 나머지 군사들은 무기라고 해봤자 농기구 밖에 없었습니다. (삼상13:19-20) 쇠스랑, 낫, 도끼, 곡괭이, 소를 몰 때 쓰는 막대기 등이 전부입니다. 반면에 블레셋은 어떠합니까? 본문5절을 보십시오. 병거가 3만입니다 마병이 6천입니다 군인 수는 너무 많아 통계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해변의 모래와 같았습니다.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사울은 자기의 처지를 모르고 블레셋의 수비대를 요나단에게 명하여 먼저 공격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생쥐가 잠자는 사자의 콧 털을 뽑은 셈입니다. 블레셋은 화가 나서 이스라엘을 치려고 사방을 에워쌌습니다. 그러자 군인들과 백성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삼상13:6) 남은 자는 겨우 600명밖에 없었습니다.(삼상13:15)
사울은 제사라도 지내서 위기 상황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7일을 기다려도 사무엘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기다리다 못해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집도합니다. 사울은 부득이한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블레셋의 말과 병거가 이스라엘을 초토화 시킬 것이라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삼상14장을 보면 블레셋이 쳐들어오지 않는 틈을 타서 요나단과 그를 따르는 병기든 소년이 선제 기습 공격을 합니다. 이를 계기로 오히려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둡니다.
우리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합니다. 사단은 항상 상황을 부득이하게 보이게 합니다. 부득이하게 보이는 현상은 사탄이 두려움과 근심을 심어서 상황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계략에 속지 말아야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부득이하게 보이는 상황에 말려들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열왕기하6장13-17절을 보면 아람군대가 말과 병거를 동원해 엘리사와 제자를 잡으려고 성읍을 둘러싸고 대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엘리사의 제자는 두려워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적에게 뼈도 추리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엘리사는 기도한 후 제자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제자는 하나님이 불 말과 불 병거들을 온 산에 가득 채우고 마치 군대에서 5분 대기조처럼 있는 놀라운 모습을 봅니다.
사도행전7장55절을 보면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평온합니다. 얼굴이 해같이 빛났습니다. 무엇을 보았기 때문입니까?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과 옆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감히 감당 못할 많은 말씀으로 보호한다고 말합니다. 생명싸개에 싸서 보호합니다.(삼상25:29) 수호천사를 세워서 지키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단10:20, 에스겔28:14) 우리가 부득이한 상황에 말려들지 말고 상황을 넘어서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사람들의 영성
영성(靈性, Spirituality)뜻은 위키백과 사전을 참고하면“신성(神性)의 영역(divine realm)과 연결 또는 합일되는 경험”입니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나오는 경험을 말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아무런 교제 없이 하루를 산다면 영성이 없습니다. 울 왕도 영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블레셋이 쳐들어오면 사울이 2년 동안 누렸던 왕으로서의 특권은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목숨도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다급한 상황에 처해서야 사울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요청합니다. 사울이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제사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은 마치 기다렸다는 제사장소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준비된 탄핵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핵심내용은 본문 14절입니다. 참고합니다. 사울 대신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른 지도자를 세우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그가 다윗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누가 더 멋있는 사람입니까? 사울이 더 멋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외모에 대하여는 두 사람 다 멋있고 준수하다고 나옵니다. 이들이 진 죄의 질과 양을 따진다면 오히려 다윗이 더 큽니다. 사울왕은 길보아 산 전투에서 아들과 함께 죽을 때에 자기 한 목숨 부지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자결을 하지만 비굴하지는 않았습니다.(삼상31:4)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 가드 왕 아기스로부터 한 목숨 부지하려고 미친 척을 합니다. 대문짝을 긁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연기를 합니다.(삼상21:13)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통해 역사를 이룹니다.
사울은 하나님과 마음이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반면 다윗은 통하는 사람입니다 (행13:22) 마음이 하나님과 합한 사람입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 하나님의 마음과 아무 관계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왕은 그냥 사울왕의 길을 갔을 뿐입니다. 사울의 세상적인 삶이 제사 사건을 통해서 표면으로 드러났습니다. 제사 그 자체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 보기 전에 이미 사울의 삶이 영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 영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무엘을 통해 굳이 7일을 늦게 도착하도록 하셨을 까요? 하나님은 그 7일 동안 사울의 영성이 없는 삶을 겉으로 드러냈습니다.
4.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
사울은 2년 만에 심판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자마자 당장 왕의 자리에서 하야하여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울은 38년 동안 계속해서 왕위를 유지합니다. 이 유지 기간에 다윗왕국의 기틀을 만련 할 만큼 영토를 확장하는데 쓰임 받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위한 심판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징계, 심판은 회개 시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몇 년을 살았습니까? 930년을 더 살았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태어날 때부터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몇 년이 걸렸습니까? 120년이 걸렸습니다. 창세기 15:16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모리 족속을 심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몇 년이 걸렸습니까? 760년이 걸립니다. 디모데전서2: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늘 먼저 오래 참으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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