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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 대한 5가지 비유(눅15:11~13 엡2:10 시편100: 3 히12:5~11 사62장5)

by 명주(明珠) 2024. 7. 15.

김광석이란 가수의 노래 중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 있다. 아마도 이 가수는 연인과의 헤어짐의 아픔을 노래 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와 정반대로 표현할 수 있다. 아프니까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성경에서 제시한 방법을 몇 가지 찾아본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 방식에는 고통이 따른다. 고통의 이유에 대해 몇가지 비유를 든다.

1. 자유 의지를 준 하나님의 사랑


눅15:11~13절을 참고해 봅니다. 이 본문에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주 배은망덕한 요구를 아버지께 한다. 아버지가 죽으면 물려줄 유산을 미리 땡겨(ㅎ.ㅎ) 달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 빨리 죽으십시오.”하고 요구했다. 보통 아버지들 같으면 동사무소 가서 무엇을 판다. 호적을 파 가문에서 제명시킨다. 아니면 왕년에 힘 꾀나 쓰신 분은 다리 몸둥이를 부러뜨린다고 위협한다. 본문의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요구에 순순히 재산을 나누어 주고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었다. 첫째 아들의 몫까지도 같이 챙겨 주었다. 이렇게 문제제기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면 왜 둘째 아들이 가는 길을 강제로 막지 않으셨습니까? 전능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직무유기 아닙니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여 악의 길로 갈 것 을 뻔히 알았는데 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까? 선악과 주위에 위험 표지판을 세우던지. 아니면 10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전선으로 막아놓던지. 아니면 티라노사우루스 몇 마리 풀어서 따먹지 못하도록 막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하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런데 이 이의제기가 과연 정당한 것인까? 그렇지 않다.이 이의제기는 나를 왜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한다. 하나님은 이 의지를 조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의지를 사용하여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잘 못 사용하여 범죄 한 후 한없는 불행 가운데 빠질 줄 알았다.그럴지라도 자유의지를 강제로 뺏지 않았다. 오히려 수 천 년 후에 불행 가운데에서 건져낼 차선책을 세웠다.그분이 바로 여자의 후손 예수님이다.(창3:15)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은 인간이 불행의 길로 가면서 고통 받는 것을 보아야하는 아픔을 모두 감수하겠다는 결정이다.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를 지닌 피조물로 만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


엡2:10을 참고해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에서 ‘만드신 바’는 영어성경에서는 orkmanship으로 나옵니다. workmanship의 뜻은 작품을 말한다. 다른 번역을 보니까 이렇게 나와 있다.“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곧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라는 화가는 우리가 잘 알듯이 바티칸에 있는 시스타나 성당의 천장에 <천지창조><최후의 심판>등 불멸의 명작을 남겼다. 그는 한 번 일을 하기 시작하면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았으며,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한다. 자신의 체력과 정력을 모두 소진하며 작업에만 몰두한 결과, 작업장에서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시스티나 천장 벽화를 완성한 이후에는 아예 신체가 변형되어 평생 그를 고생시키는 지병이 생겼다다. 목 디스크가 생기고, 등은 굽고, 무릎 관절은 닳고, 엉덩이는 튀어나온 모습을 보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천장 벽화 작업에 몰두하는 그에게 누군가가 질문했다. “천장 구석에 뭣 하러 정성을 쏟나. 보이지도 않는데. 누가 본다고 그렇게 열심히 그리는가?” 그는 대답한다. “내가 보네” 미켈란젤로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했다. 한 인간도 자신의 작품에 혼신의 힘을 불어 넣는데 창조주 하나님은 어떻겠는가?

3.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 중 동물의 비유가 많이 나온다. 목자와 양, 독수리와 그 새끼, 암탉과 병아리 등등 시편100편 3절을 참고하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인 줄 너희는 알 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 반려동물의 존재의미는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훈련을 받아야한다. 우선 배변훈련부터 받아야한다. 아무데서나 갈기고 싸면 주인과 공존할 수 없다. 반려동물 입장에서 보면 본성을 거슬려 훈련받는 것이 고통일 수 있다.그러나 이 훈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반려동물은 주인과 같은 공간에서 공존할 수 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목자의 비유가 나온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양은 목자의 품에 있는 것이 행복이다. 그러나 무리를 이탈해 낭떨어지로 가면 목자는 못가도록 제재를 가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도 우리를 다루는 방식 유사하다.

4.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히브리서12:5~11을 참고하면 징계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가족끼리 운전연습 시켜줄 때 싸우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남이라면 가서 들이 받던 욕을 먹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자칫 잘못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거나 잃을 수도 있다는 과한 염려 때문이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한다.

아버지와 아들

5. 신랑과 신부


성경은 신자를 신부로 많이 표현한다. 아가 4:10을 참고하면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성경의 아가서는 신부에 대한 신랑의 찬가라고도 할 수 있다.이사야62장5절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 웨딩드레스 색깔이 검은 색은 보지 못했다. 모두 흰색이다. 또 누더기 옷을 입은 신부도 보지 못했다. 신부는 흠이 없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신부다운 신부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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