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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까마귀를 보고 염려하지 말라(누가복음12:21-31)

by 명주(明珠) 2024. 7. 15.

염려의 이유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자녀, 건강, 사업, 결혼 등 종류는 다양합니다. 12세기 때 중국 기 나라 청년이 하늘에서 해와 달과 별들이 머리위로 떨어질까 봐 걱정 했다고 합니다. 기인우천(杞人憂天)이란 사자 숙어가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직장인은 의자를 뺄까봐 염려하죠? 오래 버티는 전법을 “젖은낙엽전법” 이라 합니다. 아스팔트에 딱 달라붙은 젖은 낙엽은 쓸어도 쓸어도 쓸리지 않습니다. “딱” 달라붙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염려하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의 염려는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제자의 삶을 살다 굶어 죽을까봐 또 거리에 나앉을 까봐 염려 합니다.
 
요즈음은 이와 같은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작년(2016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천 달러입니다. GDP는 세계 11위였습니다. 그래서 먹고 입는 문제로 고통 받는 분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요즈음도 먹는 것으로 염려하기는 합니다. 양식이냐, 중식이냐, 한식이냐? 한식이면 설렁탕이냐, 곰탕이냐? 아니면 대구머리 찜으로 가느냐? 선택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요즈음 같은 화사한 봄이면 여성들의 걱정은 무엇입니까? 옷장을 열면 옷은 꽉 차 있는데 입을게없습니다. 기이합니다. 지난 교회에서 있었던 바자회가 옷 가뭄을 해소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자들은 자주 굶었습니다. 굶으면 자기도 모르게 먹는 것에 집착합니다. 안식일에 남의 밭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다가 바리새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눅6:1)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막8:15-17)고 하자 제자들은 빵을 연상합니다. 빵 챙기지 못한 것으로 신경전을 폈습니다. 베드로는 빵은 막내 요한이 챙겼어야 한다고 타박 했을지 모르죠?

1세기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적 상황



1세기 때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살펴봅니다. 그러면 제자들의 염려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들 다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은 유일신 사상과 선민사상이 강한 민족입니다. 폭동과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로마는 유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안정화한 후에 어용 왕 헤롯을 파견하는데 30년이 걸렸습니다. 30년의 진압과정에서 남자만 15만 명이 죽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나라 형편은 한 마디로 쑥대밭으로 변했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제대로 있었겠습니까? 유대지방은 황량한 광야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들은 목축업, 상업으로 연명합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이로 겨우 입에 풀칠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는데 국가는 세금도 많이거뒀습니다. 수입의 60%를 내야합니다. 이자율 연24%입니다. 돈을 갚지 못하여 아내와 자식들은 팔려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기지 못해 정신이 이상해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빈민들은 견디다 못해 도적 떼가 되었습니다. 동굴에 은신하며 강도짓도 합니다. 주로 부유한 지주나 로마 사람들을 털었습니다. 전국 도적 연합회를 만들어 연합 게릴라 작전을 쓰기도 합니다. 도적 연합회 회장님은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고, 자기가 예언만 하면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라고도 합니다.

복음서를 읽다보면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 들린 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칭 메시아를 경계하라는 말씀을 자주한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섬기려니 먹고 입는 것을 늘 걱정합니다. 예수님은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먹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마른 땅에서 올라온 줄기에 비유합니다. 영혼들을 살리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예수님을 모시면서 제자들은 아침 먹고 나면 점심을 염려했고 점심 해결하고 나면 저녁을 또 염려했습니다. 옷도 단벌 신사입니다. 통으로 짠 옷 하나 걸치고 다니다 저녁에 이불삼아 겉옷을 덮고 잤습니다. 한 벌 밖에 없는 옷이 낡아 떨어지면 무엇을 입을지 걱정했습니다.

염려의 심리학적인 해석



본문에서 염려는 원어로 “여러 갈래로 나뉜다.”라는 뜻입니다. 염려가 병적인 수준에 이른 것을 스트레스(Stress)라고 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리 몸은 근육을 긴장시킵니다. 근육을 긴장 시키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에너지는 우리 몸의 장기를 움직일 때 사용하는 에너지를 축소하여 쓴다고 합니다.

축소 과정을 진행시키는 호르몬이 에피네프린, 코티졸입니다. 긴장하면 입속이 마르고 소화가 안 되는 것은 소화기능을 축소하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도 방광의 기능을 축소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몸의 기능이 손상됩니다. 스트레스가 오래되면 약80가지의 자가 면역 질환이 생깁니다. 편두통, 탈모, 요통, 목뻣뻣함, 구토, 속쓰림, 변비, 현기증, 발한, 과호흡, 천식, 고혈압 등등이 나타납니다. 뇌기능이 축소되면서 오는 정신적인 현상으로 불안, 신경과민, 우울증, 조울증, 공항장애 까지 온다고 합니다. 염려에서 시작한 스트레스는 우리 건강에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건강염려증이(Hypochondriasis)이란 병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심각한 병이 있다는 믿음에 집착합니다. 의사 진단에는 이상이 없는데도  6개월 이상 지속되어 일상생활, 직장생활 등에 지장을 줍니다.

건강 염려증

치료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우울이나 불안 증세가 동반되면  약물 치료까지 합니다.

염려로 괴로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깨쇠골 쪽에 좁쌀만 한 점이 생겼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서서히 커진다. 좁쌀에서 팥으로 팥에서 콩으로 점점 커졌습니다. 점이 커감에 따라 나의 염려도 조금씩 커졌습니다. 급기야 암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밀려왔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 피부과를 향했습니다. 피부과 의사는 2분 만에 점을 떼어내는 시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 가끔 생긴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5년간의 염려가 2분 만에 사라졌습니다.

5공 시절에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교복을 입었습니다. 교복에는 복장 불량으로 걸릴 용가가 101가지가 넘었습니다.  선도부 선배들이 가끔 교실에 들어와 사랑의 매를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때 행운아는 첫 타자였습니다. 맞는 것은 순간이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아주 괴로웠습다. 얼마나 아플까 상상하며 염려하는 괴로움이 크기 때문입니다.

염려 용어 정리



염려를 한자로 풀면 의미가 잘 다가옵니다. 생각할 염(念) 생각하려(慮) 자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국어사전에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함입니다.

염(念) 자는 今(이제 금)자와 心(마음 심) 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今 자는 입을 거꾸로 그린 것으로 ‘입 안에 머금는다’라는 표현입니다.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고 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인데 의역하면 머릿속 생각이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려(慮)자는 虎(범 호) 자와 사(생각할 사)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옛 산길로 다닐 때 호랑이를 만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반영한 글자입니다.

단어 내용을 정리하면 염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함에서 오며,  말이 밖으로 새 나가지 못하고 속에서 끙끙 앓고 있는 고통을 말합니다. 그 고통의 크기는 호랑이를 만나서 죽을 그것 같은 공포입니다.

염려의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생명 유지를 위해 필요한 염려입니다. 창조적 염려, 좋은 염려라고합니다. 절벽에서 뛰면 죽는다는 염려가 없다면 번지점프에서 줄을 안 매고 뛸것입니다.

염려의 긍정적 측면


염려의 worry라는 영어 단어는 merimnao라는 희랍어 동사에서 생겼는데  뜻은 "나누다"라는 의미의 메리조와 "마음"이라는 의미의 누스라는 2 개의 단어가 합쳐졌습니다. 염려는 "마음을 나눈다"는 의미로
야고보서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약1:8)라고합니다.  염려하는 사람은 정서, 정신, 영적으로 나뉘어진 사람입니다. 의학 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음을 한 곳에 쏟는 사람보다 염려하는 사람이 더 많이 사고를 당한다합니다.

학자들이 정리한 9가지의 염려



학자들은 염려의 원인을 9가지 정도로 정리합니다. 첫째 어린 시절 부모의 과보호입니다.두 번째 부모가 무조건 비판하고 나무라는 분위기, 아버지의 철권 통치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더 많이 염려에 빠집니다. 세 번째 외상 경험입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경험이 있거나 불에 덴 아이는 물과 불에 대하여 지나친 염려를 합니다. 네 번째 부정적 사고방식이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100% 실패 할 것이라."라는 사고입니다. 다섯 번째 분노가 염려를 낫습니. 여섯 번째 죄를 범할 때 염려합니다. 일곱 번째 믿음의 결핍 때문입니다. 특히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이 약할 때옵니다.  여덟 번째 염려에 자주 빠지는  것도 습관입니다. 염려는 조건반사와 같습니다. 한번 빠지면 계속 빠집니다. 아홉 번째 이기주의입니다. 지나치게 나 자신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를 지나치게 조롱거리로 만들기 싫어하기 때문에 염려에 잘 빠집니다.

염려하는 모습

염려에 대한 예수님의 권면


이런 염려에 대하여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본문22절을 다시 보십시오, “염려하지 말라!” 고합니다. 일단 “염려를 멈추라!” “염려를 STOP!”하라고 합니다. 차가 가다가 정지선에서 멈추듯이 멈추라합니다. 염려는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져 들면 계속 빠져 들어갑니다. 염려의 늪에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일단 멈추어야합니다.

염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농부들이 밭에 비료를 뿌리듯이 우리 마음에 염려를 뿌리고 가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 세력이 공중권세 잡은 자 사탄입니다. 악한영입니다. 우리 마음에 염려가 생기면 악한 영이 뿌리갔음을 알고 대적하는 자세 중요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할 신앙적인 이유



23절부터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음식이 목숨 때문에 있지 않고 의복이 몸 때문에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본질과 비본질의 가치를 말합니다. 우선순위를 설명합니다.

현대는 가치가 전도된 시대입니다. 물질만능주의가 예입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 취급합니다. 뉴스에 이이 셋 둔 어린 부부가 정부 양육비 40만원을 받아 게임만 즐겼습니다. 아이들을 방치하여 굶겨 몸무게가 보통 아이의 1/6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말을 안 듣는 다고 폭행해 숨지게 합니다. 이런가치가 전도된 극단적인 예입니다.

세월호 사고도 결국 돈의 가치가 인간의 생명과 안전의 가치보다 우선하여서 일어난 사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 한 사람을 구하려보 돼지 떼 수천마리를 희생 합니다. 한 생명이 온 우주보다 귀함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목숨이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음식을 주고, 몸이 중요함을 알기 때문에 의복을 줍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까마귀를 예로 들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부정한 새입니다. 제가 어릴 때 까마귀가 울면 아버님이 침을 “퉤! 퉤! 퉤!”하고 세 번 뱉었습니다. 까마귀가 울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합니다. 아침부터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하루 종일 조심하곤 했습니다.

까마귀도 먹이시는 하나님


“사이언스”지에 까마귀의 지능이 침팬지만큼 높다는 연구 결과가 실렸습니다. 까마귀 까맣다고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설마 속까지 까맣겠습니까? 까마귀는 호두를 높은 곳에서 떨어트려 깨 먹습니다. 까마귀는 자유낙하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심지어 호두를 자동차 바퀴가 깔고 지나가게 만들어서 먹습니다. 호두를 도로에 올리다가 차에 치여 죽지 않으려고 건널목 붉은신호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까마귀는 먹이를 숨겨두는데 그 장소와 먹이의 종류까지 기억합니다. 저는 돌아서면 까먹는데 까마귀는 안 까먹습니다.


그런데 까마귀 아이큐가 아무리 좋아도 농사를 손수 짓지 않습니다. 배추, 무우 직접 심는 기특한 까마귀 없습니다. 까마귀는 먹이를 보관할 창고나 골방을 만들려고 토목공사 하지 않습니다. 까마귀 하나님이 기릅니다. 사람들이 부정한 새라고 좋아하지 않는 까마귀조차도 하나님이 친히 기르는데 하물며 까마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귀한 제자들을 하나님이 먹이지 않겠습니까?

염려로 키를 키울 수 없다



25-26절을 보십시오. 이번에는 염려의 백해무익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본문에서 키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합니다. 우리의 신장을 말하는 키와 생명의 길이를 말하는 키입니다. 염려한다고 수명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염려와 비례하여 수명이 길어진다면 인간의 평균 수명은 아담 시대로 가야합니다. 아담 930살까지 살았습니다. 염려할수록 우리의 키가 커진다면 키 작은 분들에게는 희소식입니다. 그렇다면 모두 키크려고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염려모드로 전환하겠죠? 한 자는 한 큐빗입니다. 한 규빗은 팔꿈치 끝에서 중지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입니다. 약46센치 입니다. 염려할 때마다 키가 커지면 인간의 평균 신장은 어느 시대로 가야합니까? 골리앗이 살던 시대로 가야 합니다. 골리앗의 키는 2미터 93센치 입니다. 염려는 백해무익합니다. 염려로 땅에 티클 하나 날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염려하지 말아야합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번에는 식물을 예로 듭니다. 백합화 한 송이를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었지 솔로몬이 누렸던 모든 영광을 모아도 비교하지 못합니다. 자연미와 인공미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공미가 자연미를 따라가지못합니다. 엑스포 구경을 가면 많이 느낌니다.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



백합화 [百合花]는 영어로 a lily flower라고 부릅니다. 꽃말은 순결, 순수, 순수한 사랑입니다. 백합은 우리말로 나리입니다. 백합은 추위에 강한 편이며 총 96종이 있습니다. 백합화의 전설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이브가 너무 슬퍼서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져 하얀 백합이 되었다 합니다.

백합화도 스스로 실을 만들어 옷을 짜 입지 않습니다.백합화도 하나님이 입힙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지 솔로몬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끝으로 들풀을 예로 듭니다. 들풀은 야생화입니다. 야생화는 약 25만 종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약 3,500종이 있습니다. 한국의 야생화 중 재미있는 이름만 골라서 소개합니다. 새끼노루귀, 봄구슬붕이, 처녀치마, 너도바람꽃, 모데미풀, 참나리, 노루오줌, 오줌 똥으로 이름을 많이 지었습니다. 패랭이꽃, 나도송이풀, 오리방풀, 애기며느리, 졸방제비꽃, 칼잎용담, 바디나물, 흰그늘돌쩌귀, 미꾸리낚시, 쇠무릎, 개여귀, 뚱딴지, 궁궁이, 애기똥풀, 개불알풀도 있습니다. 욕 아니고 공식 학명입니다. 개불알풀은 겨울에 피는 야생화입니다.

믿음이 작은 자



본문에서 오늘 있다가 내일 던져진다는 표현은 수명이 짧다는 뜻이고, 아궁이에 던져진다는 표현은 무가치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수명이 짧고 무가치한 들풀도 입히는데 하물며 자신이 택한 제자들을 입히지 않겠느냐는 반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믿음이 작은 자(little faith!)들입니다. 예수님은 염려문제를 신앙과 연관 짓습니다. 신앙위인 죠지 뮬러는 “염려를 시작하면 신앙이 끝나고, 신앙을 시작하면 염려가 끝납니다. 염려는 기도로 제거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 옵니다. 염려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벗어납니다. 빌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벧전5:7절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로 말씀합니다. 본문을 다른 번역에는 “여러분의 온갖 근심 걱정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십시오.”라 합니다. 송두리째 입니다. 맡기라는 영어로 cast입니다. cast는 동사로 “(힘차게)~을 던지라.”는 뜻입니다. 염려는 송두리째 던져 버려야합니다.

자연의 의미


자연(自然)은 한자어로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자입니다. 자연은 한자의 뜻과 같이 스스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이 움직입니다. 자연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필연입니다. 들에 핀 이름 없는 들풀 하나도 하나님의 무한한 솜씨와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로 자라고 유지됩니다.

29,30절에서는 다시 한 번 근심하지 말라고 강조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제자들의 모든 있어야할 것을 압니다. 눅11:11-12절을 보면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는 없다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겠느냐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끝으로 예수님은 우리가 염려하는 대신에 무엇을 먼저 하라고 권면합니까? 31절을 참고합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구하라는 말씀은 추구하라(seek)라는 뜻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하나님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하나님이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함이 얼마나 중요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까지 하나님이 해결해 주는가 의문이 듭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에 관심없어도 잘 먹고 잘 살기합니다. 신자는 나만 고상한 것을 추구한다고 성경책 들고 교회 왔다 갔다 하다 망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중요합니다. 세상은 복잡하게 보이지만 단순합니다. 영적으로 두 나라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와 사단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영적인 존재입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거나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악령의 지배를 받을 때 영혼에 고통이 따릅니다. 그렇게 산 결과는 영원한 심판과 파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문제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영생이냐 영원한 파멸이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세상은 사단과의 전쟁터


영적으로 세상은 사단과 하나님의 전쟁터입니다. 사단의 나라가 더 확장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가의 싸움입니다. 딤후2: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군사로 모집된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전쟁터에 병사입니다. 군인은 국가의 재산입니다. 군인이 뭘 먹을까 뭘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국가가 다 알아서 책임집니다. 군인들은 적이 침범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나라를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먹을 것 입을 것 속옷 팬티까지 다 나옵니다.

우리가 지키고 확장해야 할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세운 나라입니다. 1세기에 12제자들이 순교하며 확장한 나라입니다. 수많은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피와 땀으로 지키고 이어 온 나라입니다. 우리 교회도 개개인의 나라가 모여 이루어진 연합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할 때 하나님은 필요를 공급해 줍니다. 그 방법은 구약시대 엘리야처럼 까마귀가 떡과 고기를 물어다 주는 초자연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아파트 앞에 매일 쌀 한가마니 씩 떨어져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피자 한판씩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급해주는 방법은 직접공급과 간접공급으로 나눕니다. 직접공급은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혜택을 주는 일반적인 것 들 공기, 햇빛, 토양, 비 등입니다. 간접공급은 사람과 사람, 관계와 관계를 통하여 공급해 줍니다. 구제도 간접공급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것들을 교회를 통하여 공급해 줍니다.

염려의 배경에는 사단 곧 악한 영이 있습니다. 개인의 의지로 이기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염려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신을 인정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성령 충만함을 구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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