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형되신 예수님
본문은 마가복음 9장2~23절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 모습이 변형됩니다. 어떻게? 옷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빛이 나려면 광원이 필요합니다. 자연 상태에서는 광원 없이 빛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빛은 초자연적 현상입니다. 원인 없이 결과가를 내는 분은 창조주밖에 없습니다. 빅뱅이론도 질량이 큰 불덩어리가 있었다고 전제합니다. 불덩어리의 제1원인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인성을 가졌지만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분입니다. 동등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 흰 정도를 빨래에 비유합니다. 2절을 보면“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이라는 비유법과 “매우 희어졌다.”는 강조법을 사용합니다.
대학 실험실에 선배 대학원생이 강의를 할 때 와이셔츠를 입어야하는데 세탁을 귀찮아했습니다. 목 카라에 때가 끼면 지우기가 번거로웠습니다. 담가만 두어도 희게해 주는 세제가 처음 나오자 뛸 듯이 기뻐한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날은 담가 둔 사실을 깜박 잊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세제가 강해 와이셔츠가 흐물흐물하였습니다. 세제의 수십 배가 와이셔츠 값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옷은 세상 어떤 초강력 세제로도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빛났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올라간 산은 헬몬산 입니다. 해발 2,850미터입니다. 설악산(1,780미터) 보다 1,070미터 높습니다. 만년설이 있는 아름다운 산입니다. 예수님 옷은 만년설보다 더 빛났습니다. 예수님은 옷뿐 아니라 용모도 변했습니다.(눅9:29)
예수님의 변한 모습도 신비한데 누가 나타났습니까?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는 약BC,1400년 전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약BC800년 전 선지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나이차이도 600살입니다. 시공을 뛰어넘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을 하루 단위로 봅니다.
예수님은 기도 중에 변형되었습니다.(눅9:29) 예수님이 기도하면 제자들이 같이 하는 행동이 있죠? 잠을 잡니다. 누가복음9:32절은 깊이 졸았다 합니다. 영어로 very sleepy입니다. 졸다가 깨어난 베드로는 예수님께 획기적인 제안을 합니다. 초막 세 개를 짓고 거기서 눌러 살자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땅에 눌러 살고자 함이 문제입니다. 이땅에서 천년만년 살수 없는데 말이죠? 베드로는 자기를 위한 초막은 필요 없다 합니다. 아랍사람들은 존귀한 사람이 왔을 때 존경과 예의의 표로 장막을 쳐줍니다. (왕하 4:9,10). 베드로는 초막 셋의 제안으로 최고의 예우를 갖춥니다.
베드로는 ‘먼동나생’ 형입니다. 먼저행동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스타일입니다. 이런 스타일은 추진력이 있고 겉과 속이 투명함이 장점이지만 실수도 많이 합니다. 베드로는 눌러 앉자는 제안을 해놓고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초자연적인 광경이 무섭기도했습니다.(막9:6)
예수님은 인생들을 섬기느라 바빴습니다. 잠도 못잤습니다. 폭풍 속에 짬이나 곤히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자주 녹초가 되었습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참고하면 예수님은 12제자를 앞세워 일합니다. 2만 명에게 떡과 고기를 나누어주는 일이 쉬웠겠습니까? 제자들은 이사야 선지자 예언대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는 예수님만 보았습니다. 그러다 변형된 예수님을 봤습니다. 베드로는 문제 많은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습니다.예수님과 천년만년 눌러 앉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왜 변한 모습을 보이셨을까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다고 하였던 분이 왜 보여주었을까요? 9장7을 참고합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귀를 틀어막지 말고 들으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말씀을 들으려하지 않으니 예수님은 충격요법 썼습니다. 하나님도 엄위하게 직접 말 좀 들으라 합니다. 믿어야할 근거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로 선언한 말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믿어야합니다.
아들은 어떤 자입니까? 피조물은 만들고 아들은 낳습니다. 아들은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입니다. 낳다는 영어로는 beget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만든 피조물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낳은 유일한 독생자입니다.
‘믿다’의 뜻은 첫째 한 인물에 대한 일반적인 신뢰입니다. 두 번째 신뢰를 근거로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셋째 미래를 위해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어떤 대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상태를 믿음이라합니다.
이들이 믿을 내용은 8장31절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고 예수님이 이땅에 온 목적입니다. 수 천 년 동안 약속되고 예견된 일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십자가 말씀을 듣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조용히 따로 모시고 가 책망합니다. 본문에는 항변했다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고 꾸짖습니다. 예수님의 최 측근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 길을 가야합니다. 이들은 최측근으로 예수님의 뜻을 먼저 알고 믿어야했지만 베드로는 오히려 길을 막습니다. 베드로의 말은 예수님에 대한 충심에서 나오기도했지만 예수님이 힘없이 죽으면 자기의 인간적인 꿈도 물거품이 됨으로 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예수님
귀신들린 아이를 고친 사건은 9장 14~29절입니다. 이 사건 속에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엿봅니다. 측근 3명의 제자들뿐 아니라 산 아래 있던 나머지 9명의 제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귀신들린 아이를 9명 모두 고치지 못합니다. 이를 보고 있던 서기관들이 제자들의 무능력에 대하여 공격합니다. “너희가 그러고도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있느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영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왜 아이를 못 고칩니까? 지도자들이 깨어 있었다면 귀신들이 아름답고 튼튼하게 자라야할 아이를 사로잡았겠습니까? 믿음이 없는 시대일수록 귀신들이 득세합니다. 영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갑니다. 시대가 어두운 것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한 신자들의 책임도 있습니다.
본문의 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저의 첫째 딸이 4살 때입니다. 이때 한 인물했습니다. SNS 사진 보고 아동 모델 하라고 제안 전화 오기도 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예쁘다고 사진 찍느라 바빴습니다. 이런 딸을 둔 저는 얼마나 더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어느날 아이가 종이 날에 손을 베었습니다. 피가 나왔습니다. 또 한 번은 아빠 면도하는 것이 신기했던지 자기도 면도한다고 흉내내다 입술을 베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나의 손가락이 아프고, 입술이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본문에 아이 아빠의 심정도 자기가 대신 병에 걸렸으면 했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어떻게 말합니까? 9장23절에 “무엇을 할 수 있거든” 고쳐달라합니다. 할 수 없으면 말라는 것이죠? 아버지도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당시 지도자들인 서기관들, 둘러싼 무리들, 아이의 아버지, 최측근 제자들 모두 하나같이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대에게 무엇이라 한탄합니까? 9장19절“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다른 성경에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하고 한탄합니다. 패역하다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뭐라 합니까? 9절23절“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제자들에게는 무엇이라 합니까? 8절33절“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또 9장29절에는“기도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합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배우는 교훈입니다. 첫째는 믿음을 뒤흔들고 갉아먹는 감정을 다스려야합니다.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생각해봅니다. 베드로는 처음 물 위에 발을 딛을 때는(마태복음14장28~31절)예수님처럼 물위를 걸을 수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베드로는 전능하신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 자신도 충분히 물위를 걷게 하리라는 사실을 이성으로 믿었고 감정도 그렇게 여깁니다. 처음엔 물위를 잘 걸었습니다. 중간에 바람이 불었고 바다 아래를 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작용하여 걷는게 지속된다는 객관적인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숨어서 안보이시는 것도 아닙니다. 변한 것은 갑자기 자신을 집어 삼킬 듯 한 시퍼런 물을 보고 빠져 죽을 것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깁니다. 이감정이 요동쳐 이성적까지도 마비 시킵니다. 우리는 늘 이런 바람들을 만납니다. 바람으로 감정이 춤을 추며 믿음의 성을 허뭅니다.
오늘은 믿음으로 잘 살아야지 하며 승용차를 출근하다 눈이 내리는 상황이 되면 눈에 미끄러져 10중 충돌사고 나면 어떡하지 하고 믿음을 잃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성경캠프나, 수련회 에서서 믿음이 충만하다가도 집에 돌아와 일상생활을 하면 제자리걸음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감정이 구원 받았나 받지 않았나 의심하게 만듭니다. 구원은 성경 말씀에 기초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감정이 이 이성을 넘어뜨립니다. 우리는 믿음의 습관을 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습관화를 위하여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신자들과 교제를 꾸준히 하여야합니다.
본문 아버지도 처음에는 예수님이 아들을 고처줄 줄 믿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예수님이 산에 가고 없자 9제자들에게 부탁했는데 못 고쳤습니다. 9제자들 경험 부족아니었습니다. 둘 씩 둘 씩 전도여행 보냈을 때 귀신 쫓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습니다. 그런데 왜 못한 것입니까? 경쟁심, 욕심에 사로잡혔습니다. 3명만 따로 산에 데리고 간 예수님께 불만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3명만 제자냐? 우리도 있다?”할 수있었습니다. 예수님 안 계실 때 한 건하여 점수 따자하는 경쟁 심리도 있었습니다. 또 의지할 예수님이 눈에 안보이니 우리가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초심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하고 가정법을 썼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이럴 때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하고 물리침으로 믿음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지적합니다. 사람의 일은" 예수님은 가만히 계십시오. 제가 다 하겠습니다"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필요가 꼭 있습니까? 살아서 왕이 되어 세상을 잘 다스려 주면 우리도 좋고 다 좋아집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거양득이라 생각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2:13절은 ‘너희 안에서 행하는 이는 하나님이 시니’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다 알아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농사지어 자랑스럽게 내놓은 가인식 믿음은 하나님이 받지 않습니다. 양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바란 아벨의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본문의 아버지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하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버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예수님만 온전히 믿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믿음 위에 예수님은 온전케 된 아들을 선물로 줍니다. 우리가 이런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날마다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설교원고(24)
성경참고구절
마가복음 9장2~23절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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