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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요한복음16:1-14)

by 명주(明珠) 2024. 7. 13.

오늘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며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는지 알려줍니다.

본문의 상황



본문의 상황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기 직전입니다. 1차 말씀 대상자는 제자들입니다. 제자들의 기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를 몰아내고 메시아 왕국을 세울 줄 기대했습니다. 일부 제자들은 어머니 살로메를 앞세워 인사 청탁도 했습니다.(마20:20) 예수님은 제자들의 기대와 반대로 당신을 보내신 분에게 간다하십니다. 그러자 마음에 근심이 들어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묻기도 두려워합니다.(16:5)

제자들의 근심의 이유


제자들의 근심을 예수님은 아는지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이들의 앞날은 장밋빛 미래가 아닙니다. 실족(失足)할 지경까지 가고(16:1) 또 출교(出教)도 당합니다.(16:2) 당시 출교는 회당에 나오지 못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출교는 사람과의 교류도 안 될 뿐 아니라 경제활동까지 단절합니다. 누구와 함께 음식을 먹는 일도 금합니다.

저는 혈압이 높습니다. 현미채식을 시작했습니다. 모든 단것, 쌀밥, 밀가루 음식, 고기, 생선 다 빼고 현미만 먹습니다. 당연히 직장에서 점심도 현미 도시락으로 따로먹습니다. 일주일 했는데 효과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 생활에서 왕따 당할 위기입니다. 30일 더해보고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마 제가 당시출교 당했다면 현미 구입을 못하여 혈압조절  불가능했겠죠?

또 당시  출교당한 사람 2미터 이내는 접근 금지입니다. 전염병자도 아닌데 엄격합니다. 심지어 출교당한 사람이 죽으면 애곡도 금지합니다. 출교자의 시체에 돌을 던지도록 규정화했습니다. 제자들은 목숨까지도 빼앗긴다 합니다.(16:2)

이들의 명분이 하나님을 위함입니다.(16:2) 하나님을 위하는 데 무슨 일 인들 못하겠습니까? 영적으로 무지하면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수 노릇합니다. 사도 바울도 회심 전에는 같은 명분으로 외국 원정까지 가 그리스도인을 색출합니다.

1990년대 소련의 공산주의가 붕괴하면서 미소 냉전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이데올로기(ideology)의 대립시대가 막을 내지라 종교분쟁이 커집니다. 신을 위하는 명분으로 하는 전쟁은 무정무자비합니다. 시리아 내전도 종교분쟁이 원인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이 핍박을 정다화 함으로 더 무지막지합니다.

미래를 알려주는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미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일러주심은 예방주사 차원입니다. 제자들이 고난을 잘 견딜 수 있도록 함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면 진리가 자유를 준다 합니다. 제자들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과 영광으로 가는 과정임을 알 때 기꺼이 고난을 감당할 힘이 생깁니다. 예수님도 장차의 영광을 보며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난 받도록 내버려 둔 채 무책임하게 떠나지 않습니다. 플랜B가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십니다.(16:7) 성령님(the Spirit of God, Holy Ghost) 때문에 예수님은 빨리 제자들을 떠나는 편이 낫다합니다.(16:7)

성령님과 역할


성령님은 어떤 분이입니까? 7절을 참고합니다.“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님은 보혜사(保惠師)입니다. 보혜사는 절 이름이 아닙니다. 보혜사의 사자는 스승사입니다. “보호하고 은혜를 베푸는 스승”입니다. 영어로는 “the Counselor, the Comforter”입니다. 조언하고 위로하는 분입니다. 보혜사가 할 일은 책망입니다. 책망 뜻은 “깨닫게 한다.”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는다.”입니다. 무엇에 대한 책망인가 하면 8절에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함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어떤 문장이 옳은 문장인지 보려면 문장의 주어와 술어가  내용과 형식면에서 일치하는지 봅니다. 주부가 있는데 술부가 없다면  우문입니다. 본문9-10절은 이런 우문 구조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본문은 십자가 사역의 영적의미를 잘 증거합니다. 9절부터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참고하면, 성령님은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사람들은 불신앙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죄의 개념부터가 잘못되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감을 말합니다. 10절은 “의에 대하여라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함이요”입니다. 이 문장은 선문답같습니다. 중간에 많은 말씀이 생략된 듯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의를 내세우며 삽니다. 제 잘난 맛에 삽니다. 자기 의에 흠집이 나면 화내고 상대를 공격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의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불의하다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전세가 역전됩니다. 사람들이 불의하고 예수님이 의로움이 증면된 셈입니다. 본문의 뜻은 세상에 의인은 없고 의로운 분은 예수님밖에 없으며 의인이 되는 길은 예수님을 믿음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에 대하여



11절을 보면 “심판에 대하여라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의하다 여겨 심판하고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사단도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오히려 세상을 영적으로 지배한 임금, 곧 사단을 심판한 셈입니다. 세상은 복잡한 것 같지만 사단의 지배 아래 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사단이 인간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무기는 죄와 사망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은 창3:15절에서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만드시겠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현재 사단은 이미 심판 받아 머리상한 뱀과 같은 형국임을 성령께서는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과 연합한 우리는 죄와 심판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진리 가운데로



13절을 참고하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진리란 무엇입니까? 진리는 두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영원성(永遠性)과 보편성(普遍性)입니다. 진리가 10년 후에 강산이 변하듯 변한다면 진리가 아닙니다. 또 진리는 대한민국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외국 영혼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영원하고 보편적인 진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님께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십니까?

인생의 3가지 본질


우리 인생은 세 가지 본질적인 질문에 답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입니다. 뿌리에 관한 질문이죠? 두 번째는 왜 사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存在)의 이유에 관함입니다. 세 번째는 죽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가입니다. 즉 내세(來世)에 관한 물음입니다. 우리 중 아직도 이 세 가지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분이 계십니까? 인간은 우주의 먼지 하나만도 못해, 그저 던져진 존재야 하며 비관하고 술병을 잡고 사는 분 계십니까? 아니면 우리는 진화의 산물임을 믿으며 죽으면 다 끝이야 그러기에 최대한 즐기면서 살자! 젊어서 놀아야지 늙어지면 못노나니 하며 사는 분 안계시죠?

우리는 이미 성령님의 인도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을 알고 믿은자입니다.(요14:6) 우리는 하나님이 심히 기뻐한 피조물이고 땅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 천국으로 가는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다.(창1:31, 롬1:5, 벧전1:3)


오스카 쿨만(O, Cullmann)이란 신학자는 예수님의 때에 대하여 이미와 아직의 긴장관계로 설명합니다. 이미(already)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 성령님께서는 아직(yet)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하여 계시해 줍니다. 13절을 보면 그 일은 장래의 일입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장래일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소망(고전15:51)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계21:1)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소망입니다.(살전4:16)

성령님은 먼 미래뿐 아니라 개인적인 장래 일도 알려줍니다. 장래의 직업이나 배우자를 놓고 기도할 때 마음에 확신을 주는 방식입니다. 잠언16:9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14절 성령님께서 하실 일 중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연극 무대에서 단독 조명을 받고 있는 연기자를 상상해 봅시다. 조명이 성령님이고 무대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드러내고 높입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 오심은 은혜입니다. 성령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없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역사합니다. 요엘 2:28절에서는 성령님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지금은 이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는 방식은 행13:2, 눅2:26은 계시의 영으로 나옵니다. 요14:16은 교회를 위로합니다.. 딤전4:1절은 미래에 대하여 경고도 합니다. 눅12:12절은 위정자들이나 권세자들 앞에 할말을 생각 나게 합니다. 엡4:30절은 성령님은 근심도 합니다.

성령님에 대한 오해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성령님을 뭔가 신비로운 기운, 신비로운 에너지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기운을 받으러 깊은 산에 들어가 소나무가 뿌리 채 뽑힐 때까지 나무를 끌어안고 무속신앙인처럼 받아야하지 않는가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라는 유령 캐스피 같은 신비한 기운을 받을 목적이라면 방향이 잘못된 듯합니다. 어떤 분은 성령 받으라고 뒤통수를 때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항들은 성경말씀이 조명해주시는 바는 아닙니다. 성령님은 한 인격체로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자아를 잃게 만들어 로봇처럼 우리를 조정하지 않습니다. 성령 받으러 애매한 소나무 뿌리 뽑을 필요 없습니다. 성령을 준다는 유능한 사람을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눈 코 뜰 새 없이 살다보면 내가 과연 성령님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헛갈릴 때가 많습니다. 성령 받은 증명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없습니다. 성령님은 지정의를 가진 인격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며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령님은 자아를 잃게 만들어 로봇처럼 우리를 조정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증거


우리안 성령님 계시다는 증거 2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고린도 전서 12장3b절에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롬8:15절 말씀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됨 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제자들이 순교의 길을 갔음을 봅니다. 이들이 배트맨, 슈퍼맨 같은 초능력자들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졌습니다. 허물도 많고 학벌도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죽음 앞에서 당당했습니다.(행7:55) 사도행전에서 수천 명을 변화시키는 능력 있는 설교도 합니다.(행4:4) 이는 성령님께서 이들을 사로잡으셨기 때문입니다.(엡5:18, 눅4:1 행13:52) 우리도 모두가 좀 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서 늘 성령 충만한 삶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갈5:18)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비둘기에 비유함


성경참고구절
요한복음16:1-14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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