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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절제는 영적인 열매를 맺는 비결(요한복음15장 1-8절)

by 명주(明珠) 2024. 7. 13.

“영어권 음악을 비틀즈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누듯 한국의 대중음악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전후를 나눌 수 있다.”라고 평론가가 조용필 가수를 평합니다. 그는 “KBS, MBC, SBS, M.net 방송사 등 에서 진행되는 가요프로 순위 1위 기록을 함하여 80회 1위를 차지합니다. 노래를 잘하는 비결에 대하여 인터뷰를 했는데 절제에 있답니다. 그의 말을 인용하면 “...청중의 호응에 도취되고, 자기 스스로 노래의 절정에서 흥이 오를 그 순간에도 가수는 자기감정에 빠져들지 말고 그 감정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라고합니다. 노래의 호소력은 감정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고 적절하게 절제함에 있습니다. 성경의 강의를 준비할 때도 절제의 미덕 필요합니다. 청중은 인지적 한계입니다. 지식을 늘어놓는다고 다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저도 강의를 준비 할 때 제 마음에 쏙 드는 예화를 찾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크게 감동을 줄 듯 한 에피소드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으로 사용하였는데 예화가 튀어서 성경본문을 훼손 할 때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말씀을 위해 아리랑을 들려드린 적이 있는데 급하게 녹음을 하다 보니 중간에 목탁소리도 났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여러분 마음에 아리랑 가락만 남는다면 본문 내용 전달에 실패한 것이죠? 성경강의 준비도 적절한 절제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나에게 감동되는 스토리도 본문 텍스트를 살려주지 못한다면 절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깝더라도 과감히 잘라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식사기도를 합니다. 높은 분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입니다. 식사기도가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까지는 좋았습니다.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지나 남북통일로 뻗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세계평화와 인류번영으로까지 갔습니다. 자칫하면 우주선타고 지구 밖을 나 갈 뻔합니다. “에 또~~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으로~~~ 이제 최종적으로~~”하면서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식사기도 들은 적있습니다. 정작 음식에 대한 감사는 빠트립니다. 개인기도야 어떻겠습니까? 대표기도는 적절히 절제할 필요 있습니다.

절제는 한자의 마디 절(節), 절제할 제(制) 자를 씁니다. 국어사전에는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입니다. 영어로는 Temperance로서 “본성을 자제한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15장 1-8절 포도나무의 비유입니다. 포도 알레르기 있으신 분계십니까? 제가 본 적 없습니다. 포도가 그만큼 순한 과일이라고 할 수 있나요? 복숭아 알레르기는 많이 보았습니다. 포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과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일입니다. 일 년에 10kg 정도 소비합니다. 포도에는 주석산, 사과산, 펙틴이 함유되어 장 활동을 촉진하고 심장질환에 좋습니다.

농부의 역할



본문에서 농부가 하는 일에 주목합니다. 농부는 무엇을 하죠? 쓸모없는 가지를 제거합니다. 제거는 영어로 cut off입니다. 농사용어로는 가지치기, 전정 또는 순지르기라합니다. 가지치기 목적은 튼실한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포도나무는 2년생 가지에서 열매 맺습니다. 포도송이에서 5~7마디를 남겨 두고 가지치기합니다. 포도나무는 성장력이 좋아 넝쿨손이 강하게 뻗어 나갑니다. 그냥두면 양분을 빼앗겨 열매가 작아집니다. 포도 잎이 많으면 당도는 높아져도 포도송이는 작아집니다. 적당한 잎과 줄기를 남겨두고 잘라야 합니다. 포도 한 송이에 12장~15장 잎을 둡니다. 가지치기는 12월에서 2월 하순이나 늦어도 3월 초순에는 마칩니다. 너무 늦으면 진액이 흘러나와 수확이 어렵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우리 인간들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관리하는 농부고,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고 우리는 그 가지라고 정의합니다. 포도나무 앞에 뭐가 붙죠?참(True)입니다. 거짓 포도나무입니다. 구약 이사야 5장1-4절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내어 포도나무로 세웠습니다. 이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떤 포도만 맺었습니까? 들 포도입니다. 들 포도는 거칠고 상품가치가 없습다.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타락하였습니다. 명품 포도열매를 하나님이 바랐지만 가치 없고 하찮은 열매만 맺었습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



하나님은 예수님을 참포도 나무로 보냅니다.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예수님께 접붙어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명품포도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우리는 농부이신 하나님의 관리 대상입니다. 예수님께 접붙여진 인생은 축복입니다. 아니면 쓸모없는 가지로 지옥을 밝히는 화목재로 쓰입니다.(요15:6)

포도나무



포도원 주인이 수천 평 포도밭을 관상용으로 가꾸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이 주는 양분을 잘 받아 최고 명품포도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열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갈라디아서5:22-23절에 보면 우리가 내면적으로 맺어야할 9가지 열매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열매 맺기 위한 방법 운동선수의 비유



두 번째 함께 읽어볼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24~27절까지입니다. 본문은 운동선수의 비유입니다. 일등하려면 절제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경쟁은 질색이다. 그냥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겠다. 그래서 걷다가 앉아서 쉬다가 물도 먹고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경주는 참가상은 없습니다. 다 일등 해야 합니다. 스케이트로 말하면 쇼트트랙이 아니고 기록경기입니다. 우리는 각자 은사에 따라 하나님이 정해 놓은 트랙이 있습니다. 그 트랙을 뜁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 하나님이 등을 떠밀어서라도 달리게 합니다.(갈4:19) 등 떠밀릴 바에야 알아서 뛰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경주에서는 우리 성도들끼리는 경쟁자가 아닙니다. 함께 손잡고 완주해야할 동료입니다. 필요할 때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기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주했을 때 하나님은 영원히 썩지 않을 상을 줍니다. 하늘의 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입니다. (딤후4:8, 롬8:18)

열매 맺기 위한 방법: 절제



세 번째 말씀 찾아봅니다. 고린도전서 13장4~7절입니다. 성령의 열매의 첫 번째 열매가 사랑인데요. 본문은 사랑의 정의에 대하여 열거합니다. 그런데 8번이나 “아니하며~아니하며~~”란 말씀이 반복됩니다. 할 수 있는데 아니한다는 것이죠? 본문에 참고, 온유하고, 견딘다는 것도 모두 절제의 미덕(美德)이 깔려있습니다. 본성대로 다하는 것, 화나는 데로 다 화내는 것은 사랑이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절제해야겠습니까?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가 “건강한 목회를 꿈꾸는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에서 우리나라 3대 종교 가운데 개신교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에 영향을 미친 3대종교는 유교, 불교, 기독교- 그 책임은 교인들에게도 있고 더 큰책임은 목회자들에게 있다는 취지의 강연했습니다. 이 강연의 제목은 “돈·명예·권력·성욕을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목회하지 마라.” 입니다. 제목이 아주 직선적이죠?

무엇을 절제할 것인가? 에 대한 주제는 이분의 강연 제목에서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돈입니다. 돈에 대한 권면의 말씀은 우리 주일학생들까지도 압니다. 제일 유명한 말씀은 딤전 6:10절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예수님도 마태13:22절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말합니다. 돈 자체는 선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 첫 자리에 두고 추구하는 것 곧 돈을 사랑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돈이라는 가지가 무성하게 뻗어나가는 것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포도나무의 비유처럼 잘라야(cut off) 합니다.

제논이라는 철학자의 제자 중 돈에 대한 가지를 잘 자르지 못하는 허영심이 많은 자가 있었다합니다. 제논은 제자가 돈 쓰는 것을 절제할 것을 권하자 내 돈 가지고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투로 반박했다 합니다. 제자에게 스승은“그럼 소금이 많은 사람이 소금이 많다고 그것을 요리하는 데 마구 사용해서 되겠느냐!”고 충고했습니다.

권력욕의 절제


두 번째는 명예, 권력욕입니다. ‘국회의원 전원이 하나같이 노리는 것은 대통령이 되려는 것이다. ’라고 대통령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 누가 국무총리가 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권력, 명예욕 뒤에는 교만한 마음이 자리합니다. 우리 인류를 범죄 하도록 만든 것이 교만입니다. 요한복음 15장1절에서 인간의 존재의미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인간은 줄기도 아니고 더군다나 농부는 아닙니다. 그런데 교만하여 농부가 되려한 것이 문제입니다.(창3:5) 농부가 되어서 내 포도원 내가 가꾸겠다고 한 것이 인류불행의 원입니다. 교만한 마음도 우리가 일생 경계해야 할 죄입니다.(잠언16:18, 잠언18:12)

성도덕



세 번째는 성도덕입니다. 성도덕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간통죄도 없어 졌습니다. 하나님이 지적하는 죄인 동성애 부부를 인정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롬1:27)

제가 해외여행을 갔는데 이런 나라를 갔다고 한 번 상상해 봅니다. 어떤 나라에 갔더니 뽀얀 닭백숙 요리 하나를 놓고 온 국민이 침을 흘리고 보고 있었습니다. 보는 수준이 아니라 탐닉하는 수준입니다 이 닭백숙은 TV에서도 나오고, 광고에서도 나오고, 술집에서도 나오고, 인터넷에도 도배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첫째는 이 나라 국민이 상당히 굶주림에 지친나라가 아닐까입니다. 지친정도가 아니라 기아에 허덕인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정말 이들이 가나한지를 알아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다들 잘 먹고 잘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닭백숙 요리에 그렇게 홀려 있을까요? 뭔가 이상한 것이죠? 그것은 먹는 것에 대한 욕구가 뒤틀려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식욕이 정상이 아닌 것이죠?

이 상상을 성도덕에 적용해봅니다. 성은 생명을 낳고 키우며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善 good)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시대는 이 선(線, line)을 넘었습니다. TV, 인터넷, 광고 등 어디서나 욕망을 부추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닭백숙에 침을 흘리듯 성적인 욕구가 뒤틀린 시대입니다.-C.S 루이스 성도덕 인용- 순결이란 단어는 조선시대 열려 문에나 붙어있는 문구로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싸워야합니다. 운동선수가 트랙을 벗어나면 실격된다는 생각으로 선(線)을 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선을 넘지 않도록 경계 울타리를 쳐 줘야합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절제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죠? 혀를 제어하라는 말씀이 있죠?(벧전3:10) 야고보서1장26절은 혀를 재갈 물리라고 권면합니다. 그 외에 게임, TV, 영화, 음악, 등등 우리가 자르고(포도나무 비유), 선을 넘지 않고(운동선수의 비유), 하지 말아야 할 것(사랑장 말씀)들이 많습니다.

절제는 우리 의지로는 부족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딤후1:7절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 합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절제하여 명품 포도송이를 맺는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 일등 하여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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