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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하나님을 아는 우리 내면의 정보(로마서2:14,15 고린도후서 5:17)

by 명주(明珠) 2024. 7. 13.

성탄절이 2일 남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성탄절 이브에 방안에 빨랫줄을 만들고 최대한 양말을 많이 걸어두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동전이 양말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군것질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성탄절 걸어둔 양말

당시에는 50원하는 생라면을 사서 주머니에 부셔 넣고 스프를 뿌려서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 군것질은 제 아들에게 유전 되었나 봅니다. 아들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먹지 말라 해도 어느새 방안에 라면 부스러기가 자주 흩어져 있습니다. 요즈음 성탄절에는 예수님이 빠지고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 사슴, 썰매, 캐럴 송과 같은 문화만 남아있어서 걱정됩니다. 역사학자들은 예수님께서 3~4월경에 탄생하셨을 것이라 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4가지 소제목 안에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 또는 예수님 탄생의 목적을 알고 믿는자로서 어떻게 신앙생활 할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경이 없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로마서2:14,15절입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사람들 마음에는 선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깨끗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마치 신선과 같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해서 좌절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현대사에서 87년 6.29선언 전에 대학생의 데모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80년대에는 학생회가 없었고 학도호국단이 있었습니다. 학생자치 기구도 군대 조직과 같았습니다. 6.25행군도했고 군사훈련도 받았습니다. 당시 학도호국단이 없어지고 학생회로 바뀌는 과도기여서 이를 관철 시키고자 매일 데모를 했고 3층에서 뛰어내려 분신하는 학우도 있었습니다. 또 당시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습니다. 전국대의원 대표가 체육관에 모여 투표합니다. 특정 후보는 99.9%의 당선 율을 기록 합니다. 87년에는 대통령 직접선거를 골자로 한 6.29 민주화 선언이 있었고 이 선언 전에 학생들의 데모 열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저도 이때 민주투사로 한 몸 던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 저는 자취를 했는데 옆집에 불이나 할머니 한 분이 돌가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 재산 목록 1위는 책이었습니다. 서점에 가서 책 쇼핑을 하면서 시간 보내는 일이 큰 행복이었습니다. 옆집에 불이 나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열기가 자취 방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짧은 순간 ‘내가 모은 책이 모두 불타 없어 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행동이 책이 꽂혀 있는 책꽂이를 들어서 거실로 옮겼습니다. 그 후 주인에게 불난 사실을 알렸습니다. 다행이 30분 정도 지난 후에 소방차가 와서 물을 뿌려 주어서 자취방으로 불이 옮겨 붙지 않았고 옆집은 전소되었습니다.

정의로운 민주투사가 되지 못함과 불난 상황에서 이기심이 발동한 일이 지금도 창피하게 여겨집니다. 이것은 제 안에 이 행동이 옳지 않다는 기준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기준이 없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부끄러워해야할 이유가 없었겠죠? 이 기준은 사람은 자고로 정의로 와야 하고 이기적으로 살면 안 된다입니다. 이런 기준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가집니다. 국가, 민족을 초월하여 인간은 자고로 정의로 와야 한다는 기준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사람들은 눈만 뜨면 서로 타툽니다. 서로 타툰 다는 것은 우리 내면에 서로 암묵적으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준은 내가 스스로 만들지 않았고 교육을 통하여 배우지도 않았고 사회관습도 아닙니다. 제3의 세력이 우리 안에 심어놓았습니다. 불가항력적이고 떨쳐버리지도 못합니다. 바로 제3의 세력이 하나님입니다. 바로 이것을 내면 깊숙이 심겨진 도덕률 또는 본성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아니고 우연히 생겼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유물론자 또는 무신론자라 합니다. 성경적인 입장에서는 우리 내면에 심겨진 옳고 그름의 기준이 우연의 산물일 수 없습니다. 물질만의 정교한 조합으로 정신이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영혼을 만들 수 없습니다. 인격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 표현합니다. (시편14:1, 시편53:1)



2. 자유의지



자유 의지(free will)는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따먹을지 알면서도 자유의지를 주셨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우리 주변 가족이 모두 로봇으로 변합니다. 그러면 아이들 때문에 속 썩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남편들이 다 로봇으로 변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과연 행복하겠습니까? 남편이 자식이 시키는 일만 해서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데서 오는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튼을 누르면 커피, 음료수가 나오는 자판기 같이 만들지 않았습니다. 로봇 같은 인간을 만들었다면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상 로봇 같은 인간을 만드들고 심히 기뻐할 가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선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위험성을 감수하고라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을 창조했습니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간은 사랑이나 기쁨이나 행복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런 깊은 뜻을 외면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반기를 듭니다. 이렇게 유혹한 사탄의 무기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3:5을 참고하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너희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너희 스스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유혹입니다. 너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도하지 않고 인간이 중심인 세상이 유토피아로 바뀌었습니까? 그렇지 않죠? 오히려 세상은 더 불행하고 악해졌습니다. 앞으로도 더 불행 해질 것입니다.

경유차에 휘발유를 넣으면 어떻게 됩니까? 엔진이 망가집니다. 우리 인간도 이와 비슷한 원리입니다. 우리 인간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에너지를 받아야만 제대로 달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독립적으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3. 신인류의 시작



골로새서3:10절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두 번째는 고린도후서 5:17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께 반역한 인간들을 하나님은 물로 한 번 심판을 합니다. 그것이 노아의 홍수 심판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알려주시는 방식을 바꿉니다. 특정한 민족을 택하여 하나님 자신을 계시합니다. 이 특정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합니다. 그기록이 구약성경입니다. 또 이 민족을 통하여 예수님이 옵니다.

저는 호적상으로 2살 많은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제가 집에서 속을 썩혀 학교에 막 입학 한 동네 형들과 같이 학교 구경이나 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형들과 같이 줄서 있다 입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한 마디로 하면 “헐~~~” 두 마디로 하면? “허~~~얼” 입니다. 1년 이상을 덜 자란 제가 형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강가의 돌을 가지고 셈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 저는 글씨 쓰기는 커녕 연필 잡는 것도 힘들어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저의 연필 잡은 손을 같이 쥐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고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분은 어머니가 해준 말 중 “남의 돈이 제일 무섭다. 남의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갚으라." 기억난다 합니다. 이 분은 남에게 빚지고는 마음이 불편하여 살지 못한다합니다. 하나님도 죄 아래 우리를 볼때 빚진 마음으로 봅니다. 빨리 빚을 갚아서 자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들을 사단의 세력에서 구원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어머니가 연필 쥔 손을 잡아 주듯 당신을 반역한 인간들이지만 손길을 놓지 않았습니다. 또한 노예시장에서 돈을 지불하고 노예를 사 오듯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우리를 구원하려했습니다. 대가가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왜 꼭 십자가상에서 죽는 방식으로 대가를 지불했어야합니까?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 전능한 하나님이면 우리 죄에 대하여 말로만 해도 해결할 문제였습니다.

말로만으 안될 즹도로 우리의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어야만 할 만큼삼각했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을 들쳐 업고 응급실로 뛰어가야 할 만큼 위급한 상태요 또 무력한 상태에 인간은 놓여 있었습니다. 연필을 하나님이 같이 쥐고 써 주어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이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구현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장초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죄로 인해 형상을 잃고 타락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었습니다. 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중보자가 죄에 댓가를 받고 죽어야만 했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만회할 완전한 순종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죄가 없어야합니다. 그 조건을 만족 시킬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으면서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순종하여 피흘려 죽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내가 하나님께 반역한 대역죄인임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리고 대역죄인을 위하여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하여 주었음을 믿어야합니다. 이 믿음의 통로를 따라 하나님은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을 넣어 줍니다.

성경에서 표현하는 생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비오스라고 말하는 육체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늙어 죽어야 하는 생명입니다. 두 번째는 조예라는 표현을 쓰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준 생명입니다. 이 생명을 가진자들로부터 신인류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 구분도 BC에서 AD로 바뀌었습니다.


4. 그리스도의 옷



갈라디아서 4:1참고합니.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두 번째 구절은 갈3:26-27입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세 번째는 로마서 13:14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제복을 입는 직업들이 우리 사회에 많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제복은 군인입니다. 경찰, 법관, 의사와 간호사도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유니폼을 맞춰 입습니다. 사람들은 제복을 입음으로 다른 무리와 구별됨을 보입니다. 또 제복 입은 사람들끼리 동료의식을 느낍니다. 제복을 입으면 제목에 걸 맞는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면 엄마 아빠 놀이를 합니다. 엄마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흙으로 밥을 짓고 풀로 반찬을 만듭니다. 남자 아이들은 망토를 두르고 나무로 칼을 만들어 장군 흉내를 냅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로 가장하고 이 가장을 통하여 실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의 원리가 이와같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조예라는 새로운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생명을 가진 자는 그리스도로 가장해야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제복을 입고 흉내를 내야합니다. 그렇게 흉내 내며 살다보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내부에 어느새 만들어집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로 옷 입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탄생의 의미는 우리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탄생입니다. 이 탄생은 하나님이 미리 약속하고 수천년동안 예언한 탄생입니다.  성탄문화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 문화 담긴 의미도 깊이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성경참고구절
로마서2:14,15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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