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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다.

by 명주(明珠) 2024. 10. 11.

예수님과 12제자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예수님이 하신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마태 26:21)하셨다. 제자들은 몹시 근심했다. 우리말에 매우, 아주, 몹시라는 표현이 있다. 메우는 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의 뜻으로 아주보다 절제된 표현이다. 아주는 보통 정도와 비교가 안되게 훨씬 이란 뜻으로 매우보다 정도가 더 크다. 몹시는 더할 수 없이 심하게란 뜻으로 매우, 아주 보다 강하지만 부정적인 정서에서 쓰인다. 본문에 몹시란 단어를 쓴 것을 보면 서로 불쾌해하며 근심의 정도가 매우 컸음을 짐작한다.
 
11 제자들은 “주여 나는 아니지요!”(마태 26:22) 대답했다. 예수님을  주 곧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불렀다. 그러나 가롯 유다만은 다르게 대답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예수님을 주님이 아니라 단지 랍비, 선생님 정도로만 생각하고 불렀다
 
이런 유다에게 예수님은 떡을 찍어 건넸다. 유대인들은 떡을 나누어 주고, 먹여 주는 행위는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만 한다. 예수님은 배반할 유다에게 끝까지 사랑을 베푸셨다. 유다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나갔는데 성경은 밤이었다고 표현한다.  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두운 세상을 말한다.  예수님도 밤을 어두움의 권세라 했다. 
 
하나님은 죄인들도 기본적으로 사랑하신다. 끝까지 회개치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유다같이 자신이 은혜를 뿌리치고 나간 것이다.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스스로 밤을 향해 나갔다.
 
유다는 마귀의 도구로 쓰였다. 성경은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집어넣었다고 한다. 실행에 옮기도록 유다 안에서 움직인 자도 마귀다. 그러면 유다는 무죄인가?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사건에 마귀가 등장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이 단순히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영적인 사건임을 암시한다. 유다의 행위는 마귀의 사고방식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유다 자신이 바로 마귀였고, 유다의 생각과 행위 또한 마귀의 것이었다. 그래서 유다는 유죄다. 마귀가 들어간 유다의 모습은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단 마귀 아래에 사는 죄인의 모습과 같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사단 마귀는 옛사람이라는 형태로 여전히 성도를 유혹한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택하여 삼 년 반 동안 곁에 제자로 두셨는가?  그것은 주님의 완전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유다의 입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 하게 하신다. 유다는 예수님과는 완전히 반대 편이었던 마귀의 편에 서서 예수님을 관찰했다.  그러나 도덕적 결점이나 흠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고백은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마 27:4)였다.
 
예수님은 유다를 통하여 죄의 흉악함도 드러내신다. 유다는 예수님의 최측근으로 최고의 특권을 누렸다. 함께 동고동락하는 특권을 누렸다.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파는 죄를 저질렀다.

유다를 통해 죄의 무서움도 알리신다. 유다는 거짓 제자의 옷을 입고 있었다.  세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재산과 가족마저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다.  전도도 했다.(마 10:4) 기적도 일으키고 귀신도 쫓아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감추었다. 11 제자들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교묘했다.

예수님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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