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선지자는 9장1절에 하나님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하셨다고 말씀한다. 갈릴리를 이방이라고 말한 것은 소외되고 쓸모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사생활 공간이었던 나사렛은 갈릴리 지역에서도 좀 더 소외된 지역이다. 갈릴리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대부분인 26개월이상 사역을 하셨던 지역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과정의 말씀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나사렛 사람, 갈릴리 사람들이었다고 대놓고 무시 한다.
이스라엘 지도를 가만히 살펴보면 참 특이하다. 남쪽에 유다가 있고 위쪽 북쪽으로 북이스라엘인 사마리아가 있고 갈릴리는 그 위쪽 최북단에 위치한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말도 섞기 싫어하고 땅도 밟기 싫어할 정도로 앙숙이다. 갈릴리는 바로 그 사마리아 위쪽에 있다.예수님은 분명 유대인 혈통으로 오셨다. 갈릴리는 사마리아에 인접해 있는 지역인데 왜 유대인들이 거기에 가 살았을까요? 그리고 왜 갈릴리는 당시 사마리아에 편입이 안 되고 유대에 편입 되었을까요?
북한의 함경북도는 당연히 북한 땅이다. 그런데 그 함경북도만 현재는 남한 땅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상한 상황인 것 이다. 중간에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도 다 북한 땅인데 왜 그 최북단 함경북도만 남한 땅이되어 있는 걸까요? 갈릴리가 왜 유대 통치구역이 된 걸까요?
이걸 알려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올라가야 한다. 여호수아는 갈릴리 지역을 12지파 중 납달리, 스불론, 잇사갈에게 분배를 한다. 그러면서 그 지역의 원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라고 명령을 한다. 그런데 사사기1장30-33절을 보면 순종하지 않는다. 완전히 쫓아내지 않고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노역을 시키는데 쓴다. 그런데 이 노예들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반역을 하고 반란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세력이 된다. 그러니까 갈릴리 지역은 이때부터 상당히 골치 아픈 지역이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 갈릴리 지역이 쓸모없는 땅이라는 것을 방증하는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열왕기상9장10-13에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마치고 나서 성전 건축에 공이 컸던 이방 왕에게 선물을 나누어준다. 두로의 히람 왕은 성전 건축에 쓰라고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제공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감사의 표시로 갈릴리 땅 성읍 20곳을 하사한다. 기분 좋은 히람 왕은 선물로 받은 땅을 둘러봅니다. 그 둘러본 소감을 12, 13절에 기록한다. 20개의 성읍이 단 한 개도 눈에 차지 않아서 이름을 가불 땅이라고 짓는다.가불의 의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뜻이다. 있으나 마나 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란 땅이다. 일명 꿔다 논 보리짝 땅이다. 솔로몬은 골치 아픈 땅을 이방 왕에게 주면서 생색만 내려고 했다. 그런데 이방 왕 조차도 쓸모없다고 버려진 곳이 바로 갈릴리이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는 흘러 흘러 왕국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고 앗수르가 정복하고 바벨론이 정복하고 페르시아가 정복하고 끝에는 로마에 의해서 정복을 당한다. 처음엔 당연히 갈릴리는 북이스엘 곧 사마리아로 편입이되었지만 골치아프고 쓸모없는 땅으로 취급되어 갈릴리는 혼자만 붕 뜬 땅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 BC63년에 로마의 폼페이 장군이 이스라엘 천체를 집어 삼킨다. 그리고 나서 로마 정부는 갈릴리를 유대로 편입시켜 버린다. 왜? 순전히 지역적 위치 고려 없이 행정적인 편의만을 위하여 유대로 편입시킨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한다. 아마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 요셉도 그의 당대 이거나 혹은 할아버지 때 남 유다에서 갈릴리로 이주한 집안이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먼 곳 갈릴리까지 이민 가야 하는 그들의 신세가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니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의 제물로 당시 가장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배려해 준 산비둘기를 바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갈릴리 지방을 붕 띄우셨을까? 하나님은 가난하고 쇠외된 자의 편이다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까? 하나님의 섬세한 섭리가 있다. 바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을 위하여 완충공간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이 아마 남유다에서 자라고 예루살렘 근처에서 사역을 시작하셨다면 그 서슬퍼런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눈에 진작 들어서 한 달이 안되어 사역을 접어야 하셨을 것이다. 제자들을 세우고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들이 3년 동안 무르익는데 갈릴리 만큼 최적지는 없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갈릴리에서 뭔 일 있겠어? 사마리아 땅이 있어서 거기에 가기도 귀찮아 하는 사이에 주님의 아름다운 공생애 사역은 무르익어 갈 수 있었다. 아마도 갈릴리 사람들은 내가 이방의 길릴리에서 태어나지 않고 남유다 예루살렘 근처에서만 태어났더라도 이 모양 이 꼴은 안되었을텐데하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손길이 머무는 곳이요 섭리가 깃들인 곳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남의 자리가 부러워 보이면 이방의 갈릴리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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