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장, 초대교회 기도처, 오순절 교회 탄생 장소 마가의 다락방”
마가는 예수님의 12 제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직접목격했다. 바나바가 외삼촌이었다. 마가는 예수님의 70인 제자무리는 속했다. 이 때 나이는 19-20으로 추정한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쯤 연령을 추정해 보면 베드로, 바나바, 바울은 50대로 보인다. 마가는 어머니 마리아의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복음서에 나오는 마가의 다락방이 마리아의 집이다. 여기는 최후의 만찬장, 초대교회 기도처, 오순절 교회 탄생지로 사용했다. 사랑방이 어른 120명이 사용할 정도의 크기이면 마가는 부자였다.
마가는 예수님 잡히시던 날 밤 뒤를 따라가다 벗은 몸으로 도망쳤다.(막14:51-52) 최후의 만찬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으로 갔다. 이 때 마가는 자기 집에서 잠들었다. 새벽녘에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게 되자, 도망쳐온 제자들은 마가의 집에도 왔을 것이고 큰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마가는 잠결에 덮고 있던 베 홑이불만 걸치고 무리를 따라 나갔다. 그러나 군병들이 마가를 체포하려 하자 혼비백산하여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 홑이불은 세마포를 가리키는 것으로당시 고가의 수입품이었다.
바나바와 바울의 1차선교 여행에 마가가 동행했다. 밤빌리아 버가라는 이방지역에 도착했을 때 마가는 어려움이 예상되어 선교를 포기하고 이들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선교단의 여정이 언제나 순조롭지 않았으리라.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갔을 때 초여름이라 더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하고 전염병이 유행했다. 이들이 앞으로 갈 지역은 오늘날 터어키 중앙고원 지대였다. 여기는 지형이 험하고 황량하여 산적 떼의 출몰이 잦았다. 마가는 이런 상황 때문에 두려워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후에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지를 다시 돌아보고자 할 때 마가를 데고 가느냐 마느냐로 바울과 바나바가 다투고 헤어졌다. 마가와 바나바는 따로 다른지역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고 이들의 이름은 성경 상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후에 겁이 많던 마가도 변화되었다. 바나바의 시각이 맞았던 것일까? 바울은 변한 마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나중에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로마 감옥에서 마가를 부른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할 사람을 택할 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부르지 않겠는가? 바을은 마가를 자신의 동역자요 큰 위로가 된 자로 인정한다.(골4:11, 딤후4:9-11) 마가는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많은 믿음의 비밀을 배웠으리라. 베드로도 마가를 인정하여 베드로전서 5:13에서 ‘내 아들 마가’라고 부렀다.
그는 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립자가 되었다. 감독으로서 그곳에 머물러 이집트에의 전도에 힘썼다. 그는 트라야누스 황제의 박해를 받아 줄에 매여 끌려다니며 고초를 당하다가 불 속에 던져져 순교했다전한다.
마가의 가장 큰 업적은 마가복음의 기록이다. 마가복음은 4 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했다. 공관복음 중에서 기사의 순서가 장장 정확하다. 예수님의 활약상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이 잘 묘사했다. 간결하지만 그 필치가 예리하고 변화가 많고 생동감에 넘친다.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다와 다말 사건의 의미(창세기38장) (0) | 2024.08.30 |
---|---|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비유(엡2:10, 창1:31) (0) | 2024.08.30 |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이유(마가복음11장21-25) (0) | 2024.08.30 |
지구가 멈춘다면(여호수아10:12,13) (0) | 2024.08.30 |
모세의 아쉬움(신명기32:52, 신34:5) (0) | 2024.08.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