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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베데스다 연못이 생겨난 순수한 목적이 기복신앙으로 변질

by 명주(明珠) 2024. 8. 27.

성경기록 방식
성경을 기록한 방식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2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기계적영감설로 저자의 형편과는 관계없이 기계적으로 하나님이 불러주는 단어를 받아 적게 했고 한 단어 한 단어에 영감을 주어서 기록했다는 주장이다. 두 번째는 유기적영감설로 저자의 모든 형편 즉 개성, 성격, 재능, 경험, 교양(교육 및 수양), 용어, 문체, 어법 등의 인격적인, 인간의 요소들을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21장 25절에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하다고 말씀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병자를 고친 사건
그러니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세상에 쌓아 두기도 부족 할 정도로 많은 예수님의 이적 중 엄선하고 엄선한 한 가지 사건이란 말씀이다. 그러니 베데스다 연못의 유래도 자세히 살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란 뜻인데 히브리어를 그대로 헬라어로 음역하여 쓴 표현이다. 이 연못은 예루살렘 성전 북쪽에 양의 문이 있고 양의 문 바깥쪽에 있었다. 연못 주변에는 행각이 5개가 있었다. 거기에 불치병을 가진 병자들이 누워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못에는 가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이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1번 타자의 병이 낫는 신비로운 연못이다. 우리 나라 약수터에 가면 꼭 이런 전설 하나씩 있다.
 
정산 화암 약수터 전설
정선 아리랑에 나오는 화암 약수터의 전설이다. 1910년 문명무씨가 발결하게 된 유래이다.“ 하루는 문 씨가 꿈을 꾸는데, 구슬봉 높은 바위 아래에서 갑자기 청룡과 황룡 두 마리 용이 서로 뒤엉키더니 몸을 비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문 씨는 깜짝 놀라 일어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보고 꿈인 것을 알았다. ‘참 희한한 꿈도 있구나!’ 하고 잠시 생각하던 문 씨는 일찍 일어나 꿈에서 본 구슬봉 바위 아래에 이르러 땅을 파헤쳤다. 한참을 파니 갑자기 땅 속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물을 받아 먹어본 문 씨는 그 물이 약수임을 알고 그 자리의 흙을 걷어내어 손질을 하였다. 이것이 전국적으로 소문이나 피부병, 안질, 나환자들이 몰려들어 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물이 움질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병자가 낳음 받았다는 기록
요한복음5장3,4절을 보면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에 괄호를 쳤다. 왜 성경에 괄호를 함부로 치는 걸까요? 이유는 후대에 번역자들이 내용의 흐름의 이해를 위해 집어넣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뜻이랍니다. 그러니까 베데스다 연못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내려 보내서 특별한 기적을 일으키는 계시의 현장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미신적인 요소가 많았다. 1950년대 발견한 비문에는 베데스다에서 병을 고쳤다는 기록은 나온다. 그러니 기적적인 신비한 방법으로 병이 나은 사례는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로 천사를 보내서 고친 것은 아닐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베데스타 연못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베데스다 연못의 발원이 땅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간헐천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산꼭대기에 형성된 그것도 척박하기로 유명한 예루살렘에서 땅 속에서 물이 솟구쳐 올라온다는 것은 지형의 특성상 믿기 어렵다. 모든 연못은 다 물을 끌어다 가두어 만든 가두리 못이었다.
 
베데스다 연못은 BC142년에 마카비 혁명 이후에 점점 퇴색되어가는 성전희생 제사를 회복하기 위하여 빗물을 모이도록 만든 인공 저수지이다. 성경에 못은 수영장이나 목욕장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길이 110미터이고 깊이 7~8미터 큰 규모이다. 못은 중간에 가림 막을 설치해 한쪽이 차면 다음 쪽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로 만들었고 한쪽은 사람이 몸을 씻는 용도였고 한쪽은 제물로 드릴 양을 목욕시키는 용도였다.
 
주변 행각이 세워진 경위
주변에 행각 5개가 있었는데 이 행각은 히브리 정통 건축양식의 행각이 아니었다. 마카비 혁명 이후 BC63 예루살렘은 로마의 통치에 들간다. 그리고 분봉왕 헤롯 대왕이 세워지는데 그 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증축하면서 베데스다 못 주위에 행각을 세워준다. 그런데 이 행각이 헬라와 로마의 건축양식을 이용해서 만들었다. 왜 행각을 지었느냐하면 헬라의 치료의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를 기대하면서 지었다는 것이다. 로마는 아스클레피오스 신이 병을 치료해준다는 것을 믿고 목욕탕 주변에 기둥만 있는 행각을 세우는 형태가 유행했었다.
 
베데스다 연못이 만들어진 순수한 목적과 변질
베데스다 연못은 백성들은 누구든지 목욕 재개하고 맑은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정결하고 순수한 공간이어야 했다. 하나님께 드릴 제물인 양을 흠이 없게 깨끗이 목욕시키는 장소였다. 그런데 어느새 이방의 미신적인 요소가 가미된 공간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제사의 제물로 흠이 없는 양을 드려야한다는 것은 바로 죄가 없으신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예표 하는 의미가 강했다. 그런데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사람에게까지 적용해서 불편한 사람들은 성전에 아예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까지 가로막고 있었다. 당시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구약에 정통한 자들로서 베데스다가 미신적인 요소가 많음을 성경을 통하여 밝혀내고 바로 잡았어야 하는데 묵인했다. 그것은 양을 사고 팔고, 성전세를 통하여 이권을 얻는데 베데스다 연못 체제가 일조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데스다를 떠나라
이곳에 누워있던 38년 병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한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베데스다를 즉시 떠나라고 하셨다. 이제 나았으니 베데스다에는 너보다 불행한 사람들이 많으니 거기 행각에 기거하며 그들에게 평생 봉사하며 살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병이 나은 병자는 일생 소원이었던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성전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그를 다시 만나 말씀한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죄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죄도 포함되지만 미신이 충만한 베데스다란 공간에 다시 가지 말라 라고 해석해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죽을 몸에 살아 있는 동안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는 없는 존재이니까요.
 
참 안식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은 베데스다라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 속에 참 안식이 있다고 하지 않으신다. 마태복음11장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한다. 그러면 너희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한다. 베데스다로 가지 말고 예수님께로 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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