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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신앙 성장에 도움 줄 11 가지 교훈

by 명주(明珠) 2024. 8. 27.

숙어 “David and Jonathan ”

 

삼상20:17-22 “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본문은 요나단과 다윗의 화살 약속 장면이다. 요나단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를 확인하고 다윗을 떠나보낸다. 이 행위는 반역 행위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생명같이 사랑한다. 세 번 성경에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모두 주어가 요나단이다. 요나단은 아버지가 미워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한다. 요나단은 자기를 대신해 다윗이 왕권을 차지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한다. 그들의 우정은 영어 숙어(David and Jonathan )가 된다. 렘브란트는 이사랑의 표현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이별유화를 그렸다. 다윗은 요나단이 죽은 후 슬퍼 애가를 불렀는데 요나단의 사랑을 기이한 사랑으로 고백한다. 그의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과 닮아 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고전15:4-8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야고보는 야곱과 같은 말로 발꿈치를 잡다는 뜻이다. 바울은 부활의 목격자들을 거론한다. 그중 야고보를 특별히 언급한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이다. 친동생으로 30여년을 함께 살았다. 그는 예수님께서 살아생전에는 메시야로 믿지 못했다.(7:5)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하여 초대교회 수장이 되었다. 야고보서 성경을 남기기도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후 62년 대제사장 아나누스에게 투석형으로 사형당했다고한다.

 

문의 의미

 

시편24:7-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본문은 하나님의 법궤가 이방 사람들에게 넘어 갔다가 다시 성으로 들어오면서 성문 앞에서 부른 다윗의 시이다. 본문은 후대에 예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승천하신 때를 기념할 때 불렀다. 문은 공간을 분리하고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역할을 한다. 무형의 문도 있다. 등용문, 동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의 문으로 표현한다. 또한 양의 문으로 표현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 문을 열 때 들어오신다. 우리는 나중에 주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주실 때 천국으로 들어간다.

 

 

모르는 때에 오십니다.

 

24: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특급 비밀 보다 더 큰 비밀은 예수님의 재림 때이다. 본문은 그 때에 대한 상황을 설명한다. 밭을 갈다가, 맷돌질하다 두 사람의 운명이 갈린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갈린다. 두려움과 무서움에 떨고 있다가 갈리지 않다. 그래서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제일인 사랑

 

15: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사도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한 총거리는 2,400km이다. 2차 선교여행은 4,480km이다. 본문은 바울이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바울은 돌에도 맞았고, 태장을 사십에 하나 감한 매도 맞았다.바울은 선교여행 동안 자지 못했고 주렸고 목마르고 추위와 헐벗음을 견뎠다. 최후에는 참수형을 당한다. 바울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동기가 무엇일까요? 책임감, 사명감도 있었겠지만 가장 큰 동기는 본문처럼 사랑이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가시 뭉치를 뒷발로 차는 듯한 고통가운데 살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기쁨의 사도가 되었고 이런 주님을 사랑했다.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동기도 사랑이었다. 주님의 지상명령도 서로 사랑하라 였다.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바람보다 온도

 

2:17“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숍 우화에 북풍과 태양이 시합을 한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 벗기기 시합이다. 북풍은 바람을 세게 일으켜서 외투를 벗기고자 했지만 바람이 세어 질 수록 나그네는 옷깃을 더 여몄다. 반대로 태양이 뜨겁게 온도를 올리자 나그네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외투를 벗어 던졌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즉시 지적하시고 심판하시고 징계하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죄인을 다루는 방식이 180도 바뀌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대신 용서와 치유하시는 방식이다. 예수님은 영적인 의사로 이 땅에 오셨다.

 

 

어린아이

 

18:3“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11:6“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구원은 심오한 철학이 아니다. 복잡한 개념도 아니다. 본문은 생각이 복잡한 사람보다 단순한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한다. 우리의 믿음의 내용도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이 아니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심을 믿고 장차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이다.

 

투구

 

데전5:8 “-전략-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본문에 투구의 역할은 적의 창과 칼로부터 머리를 보호해준다. 현대에는 철모가 같은 역할을 한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 생활을 싸움에 비유한다. 우리는 전투병이다. 그래서 성경은 자주 전신갑옷을 입으라 권면한다. 전쟁 중에 머리가 상하면 생명에 치명적이다. 본문에서 구원을 투구에 비유했다는 것은 영적 전쟁터에서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투구 앞에 소망이라는 단어가 붙었다.구원이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의미 뿐 아니라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하늘에 거할 소망과 연결되어야 더욱 확실해 집니다.

 

 

머리를 들라

 

세상살이가 힘들면 머리를 들 힘조차 없을 때가 있다. 시편33절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가면서 쓴 시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신의 머리를 들어 주시는 분으로 표현한다. 현재는 왕의 지위를 잃고 한껏 풀이 죽어 머리를 숙이고 맨발로 야밤도 주하지만 후에는 머리를 들게 하시고 왕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표현했다. 이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원수들의 손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머리를 숙이고 돌아가셨지만 부활을 통하여 다시 머리를 들게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편지이다.

 

고후3:3절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다. 편지는 보통과 등기가 있다. 등기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편지로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편지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으로 썼고 돌 판이 아니라 마음 판에 썼다. 그러니 더욱더 분실 염려가 없다. 내가 나를 증명하기 위해 별도로 노력할 필요도 없다.

 

영생은 오늘입니다.

 

9:2-4절을 보면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스럽게 변한다. 과거에 살았던 모세와 엘리야가 현재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모세는 당시로부터 1,400년 전 사람이고 엘리야는 800년 전 사람이다. 두 사람의 시대차이도 600년이다. 그들이 동시에 나타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상의한다. 베드로는 그 모습이 너무 영광스러워 초막을 짓고 살자고 제안한다. 우리는 본문의 장면을 통하여 영생이 현재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발견한다. 영생은 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품고 오늘을 사는 것이다. 영생은 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 현재 우리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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