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 도움 받은 경험]
설악산을 하루 코스로 등반한 일이 있습니다. 내설악 설악동, 공룡능선, 중청을 올랐다 반대쪽 외설악 오세암, 수렴동 계곡, 백담사, 용대리까지입니다. 경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있었습니다. 온종일 걸어 어두워지기 시작한 저녁에 백담사에 도착했습니다. 백담사에서 용대리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인 줄 알고 내려가는 도중이었습니다. 트럭 한 대 옆에 섰습니다. 산적같이 생긴 운전자가 무조건 타라고 합니다. 괜찮다고 해도 무조건 타야 한다 했습니다. 차에 탔고 내려가면서 왜 강제적으로 타라고 했는지 알았습니다. 용대리까지는 트럭으로도 30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걸었다면 캄캄한 밤길을 1시간 30분 이상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발을 헛디뎌 계곡으로 떨어졌거나 멧돼지에게 받혀 비명횡사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 한 번 겨울에 폭설이 왔습니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다 타이어에 펑크가 났습니다. 바람이 완전히 빠져 눈 속에 갇혔습니다. 핸드폰도 보험회사 비상 출동 서비스도, 지나가는 차도 없던 시절입니다. 직접 스페어타이어를 갈려고 공구를 꺼내 펑크 난 타이어 암나사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암나사에 스패너를 걸고 올라타 발로 밟았는데 스패너 손잡이가 엿 가락처럼 휩니다. 차 출고할 때 기본적으로 비치한 공구가 불량이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또 트럭 한 대가 지나가다 섰습니다. 다짜고짜 타라고 합니다. 트럭을 타고 시내에 가 철물점에서 스패너를 다른 걸 구매하고 다시 와 스페어타이어를 갈아야 한답니다. 어쨌든 이번에도 트럭 기사의 도움으로 진퇴양난의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이 왜 자주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손길을 주고 헤쳐 나갈 길을 낸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로마교회 상황]
현재 로마서 서신을 받는 로마교회가 처해 있는 상황이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천하를 다스리는 로마 황제의 핍박이 있었습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로마교회는 20~50명 단위의 작은 교회 5개에 200명 정도였다고 추정합니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유대교 출신 신자와 이방인 출신 신자 간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 이단도 공격했습니다. 클라우디오 황제는 유대교인들 추방칙령도 내립니다. 향후 네로와 도미시안 황제의 통치 기간에는 박해가 극에 달합니다. 방화범으로 몰아 죽이고, 성찬식을 오해하여 식인종으로 몰았습니다. 서로 형제자매로 부른다 하여 근친상간자로도 매도합니다.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카타콤이라는 지하 묘소에 숨어 삽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도 사도바울은 성도들이 압도적 승리,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도록 힘을 줍니다.
[현재 고난과 장차 영광 비교]
먼저 로마서 8장 16~18절입니다.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後嗣)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로마 성도의 위치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후사이고, 장차 받게 될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 고난을 이기도록 돕습니다. 후사는 나중에 후히 대접한다는 뜻 아닙니다. 뒤 후(後) 이을 사(嗣)를 써서 상속자란 뜻입니다. 하늘에 세상 그 어떤 것도 비교가 안 되는 값진 재물이 상속으로 주어집니다. 현재 우리는 그 후사가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직접 눈으로 3층 천까지 올라가 확인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하늘 영광을 목격한 바울은 하루빨리 세상을 떠서 그리로 가려 했습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잠시 받는 고난은 비교조차 하지 말라 합니다. 비교 불가 예를 들면 태양과 지구 크기 비교와 같습니다. 태양 안에 지구 109만 개를 넣습니다. 태양을 농구공으로 줄이면 지구는 그 위에 볼펜 점 하나입니다. 우리가 받을 영광이 그만큼 큽니다. 비교하려고 시도도 하지 말랍니다. 하나님의 후사는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는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 함을 말합니다.
[세 가지 탄식]
19~23절입니다. 본문에 탄식이 세 번 나옵니다. 피조물들의 탄식, 신자들이 하는 탄식, 성령님 탄식입니다. 신자의 탄식은 아직 영화롭게 되지 않은 죄의 몸 때문에 오는 탄식입니다. 연약한 몸을 빨리 벗어났으면 하는 탄식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탄식은 자연 탄식입니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연의 탄식 소리 들었습니다. 감염병도 자연 탄식의 일종입니다. 우리가 잔디밭에 잠깐만 앉아 있어도 잡다한 벌레가 튀어 오릅니다. 숲도 멀리서 볼 때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룻밤 자려면 모기나 해충들이 달려듭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를 봐도 압니다. 농사짓는 분들은 자연의 탄식 잘 듣습니다. 돌아서면 풀이 나와서 뽑아줘야 한답니다. 엘니뇨, 라니냐도 탄식이고, 이상고온, 이상저온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자연의 탄식을 구속 사적 관점에서 봅니다. 자연은 인간이 저주받으면서 함께 받았습니다. 인간의 구원이 완성되어야 자기들도 탄식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니 빨리 인간들이 구원받기를 고대하여 나오는 탄식입니다. 사람들의 구원이 시급하고 당위성이 있음은 자연이 탄식하고 학수고대하기 때문입니다. 환경 논자들의 자연보호 중요합니다. 기후 위기의식도 중요합니다. 우리 신자가 가져야 할 자연을 보는 시각은 구원이 하루빨리 완성되어야 자연도 탄식을 멈추고 회복 가능합니다.
이번에는 성령님의 탄식입니다. 본문 로마서 8 : 29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의 탄식은 차원이 다릅니다. 병아리나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장면 상상해보십시오. 알 속에서 목도 가누지 못하고 온몸은 젖어서 작은 부리로 천천히 알껍데기를 깨는 모습입니다. 이를 보면 안타깝고 대신 깨주고 싶습니다. 대신 깨 주면 병아리는 살지 못하고 죽는답니다. 스스로 알껍데기를 깨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살 수 있습니다.
아기들이 한 살이면 막 걷기 시작합니다. 벽을 잡고 겨우 서고 뒤뚱뒤뚱 걷다가 자주 넘어집니다. 부모는 가서 일으켜 세우고 손잡아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그러면 빨리 걷지 못합니다. 성령님과 하나님의 탄식은 이와 같은 탄식입니다. 도와주면 우리의 성장이 없으므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상황이 성령님의 탄식입니다.
성령님의 탄식은 우리를 위한 간구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 아버지”만 반복할 때가 많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럴 때 우리의 든든한 지원군 성령님이 대신 간구해 줍니다. 우리가 미처 못 드리는 기도마저도 성령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도 합니다. 바로 곁에 서서 도와주는 스승님이란 뜻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룸]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하여 선을 이룹니다. 선은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최종목적입니다.
최종목적이 본문 29, 30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예정하고 부르고 의롭다고 하고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 구원은 길거리 캐스팅이 아닙니다. 즉흥적으로 길 가다 구원하자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구원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합작품입니다. 과정도 예정, 부르심, 칭의, 영화라는 세심한 단계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 성도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앞으로 영화가 남았습니다. 영화는 아바타 같은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화려한 절정의 순간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 몸이 변하여 하늘 영광으로 들어감을 말합니다. 구원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여기까지 우리를 선하게 인도합니다.
현재 우리 성도의 삶은 좌충우돌합니다. 내 인생에 둔 하나님의 전체 그림이 잘 안 보입니다. 우리 삶의 단편 단편이 숨은 그림 맞추기에서 부분 조각 같습니다. 인생의 쪽 그림만 보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전체 그림을 보여 줍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일생 왜 인생이 그렇게 꽈배기처럼 꼬이는지 몰랐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고 형들이 먹을 걸 구하러 왔을 때 그의 인생에 둔 하나님의 전체 그림을 압니다. 생명을 구하려고 하나님이 미리 보내신 그림입니다. 그는 이 그림을 보고 원수 같은 형들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 허물도 반전시켜 선하게 인도합니다.
[4가지 질문과 답]
다음 31~39절까지는 바울이 자문자답하는 수사학적 기술입니다. 좋은 질문이 답을 만든다는 말 있습니다. 강사가 강의가 끝나고 질문 있는 사람하고 호명하면 다 숙연해집니다. 시킬까 봐 강사와 눈을 최대한 마주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이란 무엇일까? 중력은 어떻게 생겼는가? 빛보다 빠른 건 없나? 빛에 올라타 우주여행 하면, 어떻게 되나? ”였답니다. 평생 이 질문을 하고 거기에 답하려는 과정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깁니다. 예수님도 어린 시절에 성전에서 선생님들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의 첫 번째 질문은? 31절에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두 번째는 33절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오?” 세 번째는 34절에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오?” 네 번째는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입니다. “대적하리오. 송사하리오. 정죄하리오. 사랑에서 끊으리오 .”입니다. 질문에 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도 정죄, 송사, 대적하지 못한 다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눈 부릅뜨고 누가 감히 자녀를 건드려! 누가 감히 손을 대냐는 의미입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 지 17가지 종류로도 끊을 수 없다고 합니다. 17 가지는 35절에 환란,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입니다. 적신은 헐벗는다는 뜻입니다. 칼은 목 베임입니다. 30절에 사망, 생명, 천사, 권세자, 현재 일, 장래 일, 능력입니다. 사망과 생명은 죽든 지 살든 지이고, 천사와 권세 자는 영계를 말합니다.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은 시간의 개념입니다. 능력은 천재지변입니다. 폭풍, 지진, 천둥, 번개 등입니다. 39절에는 높음, 깊음, 아무 피조물입니다. 높음과 깊음은 공간개념입니다. 천국과 지옥, 하늘과 땅의 권세를 말합니다. 끝으로 아무 피조물은 위의 16가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지칭합니다. 세상에 있는 유형무형의 그 어떤 것으로도 사랑의 끈을 끊지 못합니다.
[하나님 사랑의 영원성]
그 사랑의 확실성은 35절로 압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당연히 자녀를 아낍니다. 부모가 대신 죽기가 쉽지, 자식을 죽이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했습니다. 죄인들을 구하려면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한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잘 느껴지지 않는 분은 십자가를 바라보면 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37절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본문에 넉넉히 이긴다는 뜻은 압도적인 승리를 말합니다. 다른 표현은 정복자들 그 이상이란 뜻입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라갔는데 거기서 더 올라간 승리란 표현입니다. 본문에서 이긴다는 단어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이김이 아닙니다. 물론 영적인 시각으로 사단이 패자입니다. 본문 이김은 승자와 패자를 넘는 이김, 한계선을 넘어서는 이김입니다.
넉넉한 이김의 사례로 안이숙 여사의 간증 소개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간증 서적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안이숙 여사는 교편생활을 하며 신사참배 강요 탄압에 궐기 투쟁합니다. 기독교인으로 기독교 탄압에 항의하다 평양 감옥에 투옥되어 6년간 옥고를 치릅니다. 그때 감옥에서 전도한 수기 중 한 가지입니다. 괴물 같은 만주 여자 사형수로 들어왔답니다. 남편에게 학대받다가 살인을 했답니다. 여자는 그 과정에 반미치광이처럼 변했습니다. 머리도 풀어 헤치고 씻지도 않고 냄새도 났고 성격도 포악해서 밤새 알 수 없는 말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답니다. 옆에 가면 물어뜯어 독방에 가뒀답니다. 안이숙 여사는 이 여자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마음의 부담으로 교도관에게 부탁하여 같은 방에 같이 넣어 달라고 합니다. 만주 말을 몰랐던 안 여사는 " 그래, 네 말이 맞는다." 딱 한 마디만 배워 여자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그래, 네 말이 맞는다.”라고 반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운 교도소에 맨발을 한 여자 사형수를 가슴으로 품게 되었답니다. 여자 발은 형편없이 더러웠고 냄새도 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발을 품으라는 뜻에 순종하여 품었을 때 예상을 깨고 발에 악취가 아니라 향기가 났다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으로 결국 여죄수는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여사는 간단한 찬송도 가르쳐 줍니다. 여자는 때가 되어 사형장으로 갈 때도 끌려가지 않고 여사에게 먼저 큰절하고 감사 인사를 건넨 후 천국으로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사형장으로 향했다는 일화입니다.
넉넉히 이김은 한계선을 넘는 승리입니다. 예수님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들에게 저희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사랑을 통하여 승자만 있는 이김이 넉넉히 승리한다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신자 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현재 로마 성도가 처한 진퇴양난, 절체절명의 위기는 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경본문
로마서8:16-39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고대하다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그리스도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36 기록된 바 ㄱ)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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