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죄(殺罪)”는 살인이 아닙니다. 죄를 죽이란 뜻입니다. 제목이 좀 살벌하죠? 우리가 살인은 절대 하면 안 되지만 살죄(殺罪)는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교계에 속담이 있습니다. “죄에 대한 설교는 3달 이상하지 마라!”입니다. 교인들 부담되어 다 떠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듣기좋은 설교 99%, 죄는1%만 한답니다. 죄는 칭의와 성화 교리의 핵심입니다.
제1장 구원받은 신자의 상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린아이가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데 강제로 빼면 어떻게 합니까? 서럽게 울겠죠? 다시 사탕을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습니다. 우리 아이 키우며 이런 장난 한 번씩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구원도 이런 식으로 줬다 빼앗았다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속성상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기뻐야 정상입니다. 범사에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내면이 잔치 분위기여야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렇지 않죠? 매일 천국인 신자는없습니다. 구원간증 할 때는 구원받은 확신들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렇지않습니다.
롬7:21-24절을 참고합니다. 21절에서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에서 ‘함께 있다.’라는 뜻은 ‘근접해 있다,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죄를 질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절대적인 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죄의 상대적인 지배는 계속됩니다.
예를 들면 어느 나라에 내전이 일어났다 가정합니다. 반군과 정부군이 싸웁니다. 반군을 게릴라 군이라합니다. 게릴라군은 불법 군입니다. 게릴라 군이 산악지역에서 계속 불법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내부 사람들의 동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우리의 상태가 게릴라 군이 마음 한 구석에 주둔하고 있다고 여기십시오. 이 세력은 정부를 완전히 뒤집어 엎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서 게릴라들이 활동을 많이 하게 허용하면 괴롭습니다. 게릴라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주면 안됩니다. 내면에 기쁨이 사라집니다.
게릴라 소탕 작전이 살죄입니다. 게릴라 군을 몰아내고 거룩하게 되어 가는 과정이 성화(聖化)입니다. 일생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우리의 싸움은 평생 계속하여야합니다.
구원 받은 신자의 정체성이 이렇기 때문에 사도바울 도 본문 24절에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한탄합니다. “곤고하다.” 란 말은 전쟁터에서 나온 말입니다. 패잔 병처럼 상처입고 배고프고 기댈 곳도 없는 상황을 곤고하다고 말합니다.
사망의 몸이란 표현은 고대에 살인범을 잡으면 같이 꽁꽁 묶어두었다고 합니다. 시체와 얼굴을 맞대고 같이 묶어놓으면 섞어가는 시체와 함께 있는 것이죠.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탄식은 이런 상황을 염두 해 둔 말씀입니다. 얼마나 냄새나는 시체를 몸에서 떼어내고 싶겠습니까?
떼어내려는 작업을 히12:4절은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롬8:13절은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합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력을 상실함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구원받지 못한 것 같고 생명력이 없고, 매사에 짜증나고, 어둡고 우울하다면 죄의 세력이 득세하기 때문입니다.
제2장 죄의 실체
죄는 원어 하마르티아로 빗나가다란 뜻입니다. 죄는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빗나간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않고 자기의 주관대로 사는 불신앙도 죄입니다. 마음으로 진 죄부터 도덕적, 윤리적, 법적인 죄도 포함합니다.
죄는 크게 마음으로 짓는 죄와 행동으로 옮기는 죄로 분류합니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어도 이미 죄라고 합니다.“음란한 마음만 먹어도 이미 간음했다.(마5:28) 형제에 대해 악감정만 품어도 이미 살인했다. ”고 합니다.(마5:22) 마음으로 짓는 죄나 행동으로 옮기는 죄나 다 거기서 거기라면 행동으로 죄를 맘대로 지어도 됩니까? 아닙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손상된 영혼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진 죄는 진실 되게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면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긴 죄는 오래갑니다. 예로 살인죄를 지었다면 뼈를 깎는 영혼의 고통으로부터 회복되기까지 오래 걸립니다. 일생 걸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교도소에 가서 형법을 어긴 책임도 져야합니다.
다윗 왕을 보십시오. 그는 부하들 전쟁터로 내보내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 한 여인의 목욕하는 장면을 흘끗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삼하11:1) 왕의 직권을 남용하여 간음죄에 이어 충신인 우리아를 최전방으로 보내어 죽도록 방조합니다.(삼하11:14) 다윗 왕은 행동으로 옮긴 죄를 진 후 뼈를 깎는 아픔과 후유증이 있었습니다. 후유증 일생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난 원인도 그의 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죄가 행동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야합니다. 이것이 죄와 싸우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죄는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끈질깁니다. 이 끈질긴 죄에 대한 예를 주일 아침이라 노골적으로 드릴 수 없어서 컴퓨터 게임을 빗대어 보겠습니다. 게임에 중독된 것을 벗어나고자 맹세합니다. “내가 이제 죽어도 컴퓨터 게임은 안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 내가 성을 바꾸겠다. 게임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 심지어 손목을 자르겠다. 맹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컴퓨터 앞에 슬그머니 앉는 자신을 볼 때. 슬그머니 로그인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두드리는 자신을 볼 때, 이번 한번만 딱하고 절대 안한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하고 자기 합리화하는 자신을 볼 때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죄가 행동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야합니다. 이것이 죄와 싸우는 기초 단계입니다. 죄는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끈질깁니다.
죄를 계속 짓게 하는 사단의 목적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하여 하나님을 괴롭게 하려합니다. 죄에 마음 아파하는 하나님의 예는 성경에 많습니다.(엡4:30, 이사야7:13 말2:17 요11;35 히5:7) 엡4:30절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근심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 지 십자가만 생각해도 됩니다.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했으면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대신 죽게 했겠습니까? 아들의 목숨 값으로 우리 죄를 사했습니다. “겨우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하는 정도였어?” 할지 모릅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다는데 별로 충격이 없다면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합니다. 죄는 매우 즐거울 것이라는 환상도 심습니다. 그런데 죄른 짓고 난 후 즐거움은 커녕 죄책만 안겨줍니다. 마음에 허탈감, 공허함, 두려움 등이 밀려옵니다. 죄는 우리의 사고 기능을 점령합니다. 특정 죄를 계속 상상하게 만들다 환경만 주어지면 행동합니다.
제3장 죄의 지배 아래 사람의 특징
죄의 세력에 지배 받고 있다는 증거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 합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다른 특징은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는 ‘어휴 다행이다. 저 분도 나와 똑같은 죄에 빠지는 구나!”하며 안도감 갖습니다. 시편119:136은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남의 죄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아파 하실까 걱정하는 자세 필요합니다.
죄의 세력이 지배하면 신자의 기본 생활에 소홀합니다. 성경 읽기, 기도, 교회 출석 등을 소홀히합니다. 성경을 펼치기가 부담됩니다. 교회 문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제4장 죄와 싸우는 동기
우리는 상기를 통하여 죄와 적극적으로 싸워야할 당위성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싸우기 전에 싸우는 마음의 의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의도가 내 자신에게 있으면 안 됩니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죠? 내가 아무도 몰래 짓는 죄가 있는데 “이게 들통 나면 무슨 견(犬)망신인가?” “체면이 말이 아닐텐데... ... ”“내가 이 망신당하기 전에 죄를 그만 두겠다.”하고 죄를 그만 두는 것입니다. 이러면 한계가 있는 것이죠.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또는 망신살이 뻗칠까봐 죄를 멀리하는 것은 동기가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 내 안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제5장 죄에 대한 승리의 비결
롬6:11-14절을 참고합니다. 본문은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는가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죄도 우리의 순종을 먹고 자라고 은혜도 우리의 순종을 먹고 자랍니다. 중요한 것은 의지입니다. 순종하려는 의지조차 없는 사람을 악하다(wickedness) 반대로 싸울 의지는 있는데 힘이 부족한 사람을 연약(weakness)하다고합니다.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힘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태를 나 몰라라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일회적이지 않고 일생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죄를 이기는 방법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히12:3) 눅23:34-35절에서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매달고 비웃고 조롱하는 군병들, 백성들, 관리들을 향해 무슨 말씀을 합니까? “ 아버지여 저희 죄를 사여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이 한 마디 하려고 이땅에 왔습니다. 그렇게 용서하고 갔습니다. 십자가의 용서의 은혜는 흘러 넘쳐 오늘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용서의 은혜를 생각하면 죄는 힘을 잃습니다.
제6장 환경정비와 조성의 중요성
죄를 이기는데 실천요소는 환경정리와 조성입니다. 고혈압을 고치려면 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생활 습관을 고쳐야합니다. 의사들은 혈관에 안 좋은 술, 담배도 끊으라합니다. 짠 음식, 매운 음식, 기름진 음식을 피해야 합니다.
죄와 싸우는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죄에 쉽게 빠지도록 하는 환경을 정리해야 합니다. 죄를 지을 환경은 적극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이 죄에 쉽게 빠지게 한다면 갖다 버리라고 까지 말합니다. 청소년 범죄의 70%가 모방범죄라고 합니다. 스마트폰 압수하면 우리 아이들 반란 일으키겠죠?^.^ 회사가 매일 술 접대를 강요하고 양심에 반하여 회개 장부를 조작하는 일을 시킨다면 “계속 다닐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려해보라고 합니다. 소설, 영화 등등도 죄에 쉽게 빠지는 요소로 작용한다면 정리해야겠죠?
환경정비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받을 만한 환경조성도 중요합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장소는 무조건 참석하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빠지지 않는 것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라이브를 좋아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라이브로 역사하십니다. 말씀 듣는 장소는 적극 참여하여 현장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제7장 왜 하나님은 죄를 허용하는가
롬5:20절을 참고합니다. 본문에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했다는 말씀은 율법 전에 우리는 양심으로 죄를 판단했고 이때는 죄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율법을 줌으로 불명확한 죄들이 겉으로 드러 났다는 의미입니다. 양심으로 판단할 때는 우상숭배가 죄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에 불법임을 명시함으로 죄로 드러납니다. 범죄가 명확해 질수록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도 커집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죄를 허용하시는 단서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깨닫게 하는 도구로 씁니다.
복어 독을 비유로 듭니다. 복어 독을 먹으면 30분 이내에 입술, 혀끝, 손끝이 마비됩니다. 그러다 4-5시간이면 목숨을 잃습니다. 민간요법으로 이 독이든 복어 알을 소량씩 먹으면 면역력이 생기고 피를 맑게 해 주는데 효과가 있답니다. 독이지만 잘 쓰면 약이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통하여서도 우리를 성숙시키는 도구로 씁니다.
이상을 통하여 우리가 살죄(殺罪) 곧 죄를 죽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는 사단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늘 승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참고구절
로마서6:11-14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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