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마귀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에 대하여 교제를 나눕니다. 본문은 마태복음4:1-11절입니다. 순서대로 강해하지 않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주제별로 정리하겠습니다. 대주제는 마귀의 특징이고 7가지 소주제를 정하여 공부합니다.
1. 마귀는 성경에 익숙하다.
마귀는 성경 친화적 입니다. 영화에서 악귀들에게 성경이나 십자가만 갔다 대면 쫓겨 가는 모습을 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성경책을 항상 차 뒤쪽에 싣고 다닙니다. 그냥 365일 싣고 만 다닙니다. 성경책이 효염이 있어 사고를 막는다 여깁니다.
마귀가 성경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성경 내용을 인용도합니다. 우리도 잘 알지 못하는 시편 말씀입니다. 본문6절 시편 91편 12절 인용 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받쳐 주어 나비와 같이 바위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본문 전후 문맥을 보면 하나님의 각별한 돌보심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였다는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출19:4) 독수리 아무리 강해도 사람 못태웁니다. 마귀도 성경을 잘 인용한다는 사실 알아야합니다.
2. 마귀는 진짜 같은 거짓말을 합니다.
인간이 먹고 마시지 않고 사는 최소기간은 1주일입니다.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졌을 때 마지막 생존자는 21일까지 살았습니다. 사람이 물 만 먹으면서 최대 40일삽니다. 마지막에 간에 있는 글리세롤 지방이 포도당으로 바뀌면서 에너지를 보충해줍니다. 전환될 에너지가 없는 최대 기간이 40일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셨으니 나는 하루 더 해서 41일 금식하겠다하다 목숨을 잃었답니다. 본문에 40일 굶은 예수님은 당장 빵 한 조각이라도 먹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일단 살아야 사명완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아들 능력을 사용하여 신속히 돌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입니다. 마귀가 돌로 사람들을 죽이라한 것도 아닙니다. 마귀의 말에는 악한요소가 없습니다. 본인 목숨부터 살리랍니다. 아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말입니다.
3. 창세기3장과 비교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단은 동일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마귀의 정체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바뀌지 않았는지 창세기 3장 내용과 본문을 비교합니다.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본 소감은 창3 장 6 절에 나옵니다. 첫째 먹음직하고 두 번째는 보암직하고 세 번째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합니다. 미각 자극, 시각 자극, 마음 자극해 교만을 심습니다.
예수님 첫째 유혹은 돌로 떡을 만들어 먹도록 합니다. 미각자극입니다. 두 번째 예루살렘성 꼭대기에서 뛰어 사람들 앞에 능력있는 분으로보이게 유혹합니다. 시각 자극입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50미터 고지대에 있고 성전 꼭대기는 더 높은 곳입니다. 예루살렘은 세계 각지에서 예배 하러온 사람들로 늘 붐볐습니다. 이때 뛰어 내려 사뿐히 내려앉으면 예수님은 일약 슈퍼스타로 등극합니다. 얼마나 보기에 멋있습니까.
세 번째로 절 한 번으로 손쉽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영광 준다는 유혹입니다. 마음에 교만을 심는 유혹입니다.
최초 인류 아담과 하와의 유혹과 동일하게 마귀는 두 번째 아담인 예수님도 유혹하여 복음역사를 실패하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4. 사단은 속성을 추구합니다.
여기서 속성은 본성이 아니고 빠르기 입니다. 속성 다이어트, 속성운전면허학원, 속성영어란 말 많이 들어 보셨죠. 1주일만 먹어도 20키로 빠지는 신비의 식품, 1일이면 운전면허 오케이, 한번만 읽으면 말문이 트이는 영어 이런 것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마귀의 첫째 유혹은 속성 돌떡을 만드는 기적이죠. 두 번째는 속성 인기를 얻는 것이죠, 셋째는 한 번 엎드리면 속성으로 천하만국 얻도록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방법과 정반대입니다.
우리 인간은 창세기3:19절을 보면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 쓸개 다 빼놓고 일하지 않습니까? 자영업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은 더 많이 빼놓으신다 합니다. 간, 위, 폐, 심장, 콩팥, 소장, 대장, 위, 방광 이랍니다. 오장 육부 나열해 보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출근할 때 뇌를 집에 두고 간다 합니다. 위에서 시키는 것을 머리 굴리다 보면 힘드니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자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으려면 과정이 필요합니다. 농작물 수확도 경작하고, 씨 뿌리고, 김매고, 거두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단은 모든 과정 무시하고 속성으로 하라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속성을 알고 악한 세대가 표적을 요구한다고 한탄 합니다.(눅11:29)
우리가 어떻게 안전을 보장 받습니까? 신비로운 방법은 없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로 고통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망자가 239명이랍니다. 안전의식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끊임없는 교육과 훈련과 사회인식이 바뀌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한 번 뛰었는데도 완벽하게 안전을 보장해 준다는 것은 마귀의 성향입니다. 속성안전은 없습니다. 세 번 째 유혹도 마찬가지입니다. 엎드려 경배 한 번만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얻는다는 것도 비정상 적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단순하게 살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영혼이니, 죽음 이후 니 골치 아프게 생각하지 말라 합니다. 단순하게 보이는 세계만 쫓아 즐기며 살라 합니다.
5. 마귀는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영적인 세계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깁니다. 그러나 세상은 반대입니다.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깁니다. 약자가 강자를 섬깁니다. 약자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자존심입니다.
본문 3 절과 6 절을 참고하면 마귀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데 왜 못해? 너를 한 번 증명해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그런 것도 못하냐?” 이런 뉘앙스입니다.
자존심 상하게 하는 유혹이 십자가 상에서도 있었습니다. 마 27 장 40 절에 보면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계신 예수님께 무엇이라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해보라고 조롱합니다. “네가 왕이면 한번 내려와 봐! 못하잖아!” 이런 조롱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유혹은 돌을 떡으로 충분히 만들 능력이 없는 우리 보다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예수님이 더 유혹 됩니다. 우리는 마귀의 제안을 예수님이 물리치기 위하여 대단한 자제력이 필요했음을 짐작합니다.
6. 마귀는 강압적이지만 하나님은 자발적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습니다. BC67년에서 37년까지 약30연간 유대인들은 혁명을 많이 일으킵니다. 이 혁명 봉기로 남자만 15만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여자 아이 합하면 45만 명입니다. 유대인들이 고분고분한 민족이면 다루기가 쉬운데 이들은 선민의식이 강하여 어려웠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로마 병사도 더 무정 무자비하게 유대인을 대합니다. 당시 헤롯은 악랄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예수님 탄생 시 2살 아래 남자아이를 다 죽이라고 살인 교사 명령을 내린 장본입니다.(마2:16) 그가 처음 왕으로 부임해 오는 날 로마군인들이 유대인들의 집과 시장과 심지어 성전에서 까지 여자와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인들이 성읍의 모든 거주민과 재산을 다 빼앗아 가니 나는 이렇게 광야같이 황폐한 땅에서 왕이되어야 하는가?”하고 한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시대 배경 하에 유대인들은 강력한 힘을가진 메시아가 나타나 무력으로 정부를 세워주기를 바랐습니다.경제적, 정치적인 메시아를 바랐습니다. 당시 메시아는 성전 꼭대기로 임한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백성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되라고 유혹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길가에 널려있는 돌덩이들을 모조리 빵을 만드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자신들을 지배해주기를 바랐습니다. 또 수백 미터에서 뛰어내려도 안전하게 착지하는 신비로운 방법으로 자신들을 인도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천하만국을 휘어잡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으로 로마를 몰아내고 자신들을 다스려 주기를 바랐습니다.
우리도 가끔 하나님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 불의를 그냥 보고만 있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비용이 3조4592억원이 들어간답니다. 북한 주민 3년 먹을 치 식량입니다. 미사일 개발할 돈으로 이들을 먹이는데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는 불의한 지도자들을 향해 하박국 선지자는 무엇이라 했습니까? 하박국1:13“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서 무언가 확실한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았으면 가슴에다가 구원받았다고 불도장을 찍어 주면 갈등도 안하고 얼마나 좋을까요? “위 사람은 1900년 9월 15일 구원받았음하고 확인서를 때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은 ” 돌판에 증서 하나 만들어 주면 내가 구원 받았나 그렇지 않은가 갈등하지 않습니다. 또 내가 죄를 향해서 갈 때에는 발목을 비틀거나 부러뜨려서라도 막아주셨으면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둘째가 유산을 요구해 나가려고 하면 허용해 주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 이해 되지 않습니다.(눅15:11-24) “애비가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을 요구해! 못난 놈!”하며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강압적이지만 하나님은 비강압적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십니다. 가슴에 불도장은 앞으로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로지 한 가지 자신을 죽이는 방법, 십자가의 방법을 써서 구원합니다.(눅18:33)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고 묻혀서 열매 맺는 방식을 씁니다.(요12:24) 선(善)이란 상명하복 방식(上命下服 方式)으로 외부로부터 강요되어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선(善)이란 내부에서 밖으로, 아래에서 위로 자랍니다. 사탄의 권력은 강요하고, 현혹하고, 파괴합니다. 외적이고 강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력은 내적이고 비억압적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라는 씨앗은 강압적인 토대 위에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의 방법에만 반응합니다.(요1서 4:16) 총과 칼로 사람에게 사랑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만으로 우리의 자발적인 순종을 요구합니다.(요15:12)
7. 모든 것을 다 체휼하신 예수님
마귀는 한 마디로 어떤 존재입니까? 요8:44절을 참고하면 거짓말 장이입니다. 우리를 거짓의 세계로 들어오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친화적입니까? 아니면 마귀 친화적입니까? 마귀친화적인 속성이 더 강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40일 굶은 상태에서 돌을 떡으로 만들라면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머리 한 번 만 숙이면 천하만국 영광을 주겠다는데 마다할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은 늘 세상을 향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말씀을 쫓아 살 수 있습니까? 결론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히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2: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몸으로 다 겪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춥고 황량한 광야에서 40일 동안 굶주림으로 인간의 극한까지 체험합니다. 한사람도 예수님 편이 없이 십자가의 외롭고 고통스런 길을 갔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홀로 기도했습니다.(눅22:44) 예수님은 인간으로 겪어야할 최고의 고통겪었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의 영이 있습니다.(롬8:9) 그래서 우리가 겪는 고난,고통 잘 아십니다. 우리가이 예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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