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성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성이 무슨 성인지 아십니까? 콘스탄티노플성입니다. 이슬람식 이름으로는 이스탄불 성 입니다. 현재 터기에 위치한 성인데요. 성소피아 성당이 있는 곳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죠. 이 성은 1,100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성벽에 50개 이상의 성문 있고 300여개의 요새가 있습니다. 성벽은 3중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 이성에 대하여 ‘콘스탄티노플성은 신(神)이 아니고는 그 누구도 깰 수 없다’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견고합니다. 그러나 이 성도 1453년 5월29에 함락됩니다. 이슬람세력인 오스만 투르크 군대에 의해 성이 무너지는데요. 이들은 50일 동안 12만 명의 군인을 동원했고 초대형 대포를 사용해서 성을 함락시킵니다. 콘스탄티노플 성이 함락되면서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로마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로마의 멸망 원인
로마의 멸망의 원인을 외적으로는 다양하게 찾습니다. 그러나 내적요인으로는 우상숭배, 도덕적 타락, 향락주의, 퇴폐주의 등입니다. 이들은 피정복 민들로부터 얻은 부를 주체하지못합니다. 먹고 즐기는데 썼습니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그림잘 나옵니다. 검투사들이 싸웠던 원형 경기장, 수천 명의 무희들, 연극 등으로 향락을 즐겼습니다.
3s정책
우리나라 1980년대에 나왔던 문화정책을 3S라고 합니다. "3S"는 스포츠 (Sports), 성 풍속 (Sex), 스크린 (Screen)의 머리글자를 땄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을 때 정부는 백성들이 자신들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정책으로 3S를 장려합니다. 3S로 국민들을 우둔하게 만들어 우민화정책이라합니다. 우리나라의 스포츠 중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 농구대잔치가 모두 82~83년에 시작합니다. 이때 88년 서울 올림픽과 86년 아시안게임도 유치합니다. 37년 동안 존속했던 야간 통행금지가 이때 풀렸습니다. 그러자 밤 문화, 파티 문화가 활성화합니다. 매매 업소도 늡니다. 칼라 TV가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또한 비디오도 늘어납니다.(1980)
요즈음은 스크린을 손에 하나씩 들고 다니지 않습니까? 제가 서두에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콘스탄티노플 성에대하여 소개해 드렸는데요. 오늘 본문도 견고한 한 성이 나옵니다. 사마리아성입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 성은 아합 왕 때 완공합니다. 아합 왕의 부인은 이방여인인 이세벨이죠. 이세벨은 페니키아인입니다. 당시 페니키아는 코끼리 상아세공으로 유명합니다. 아합 왕은 궁전을 짓고 상아세공으로 장식을 합니다. 그래서 아합 왕의 궁전은 〈상아의 집〉으로 불립니다.
사마이아 성터 발견
1990년대에 고고학자들이(D. Ussishkin, J. Woodhead) 실제로 사마리아 성터를 발굴합니다. 발굴된 위치는 해발 440미터의 산꼭대기에 위치한 천연 요새입니다. 궁의 크기는 축구장 7배(100M*64M) 입니다.(289×157m) 성벽의 각 모서리에는 망대가 있고 성벽을 둘러 폭12m, 깊이 6.5m의 해자를 팠습니다. 해자는 성벽 주위를 파 물을 넣고 악어를 키워적들이 성벽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물론 사마리아성이 콘스탄티노플 성에 비교는 안되지만 견고합니다.
이스라엘은 여기서이세벨이 들여온 바알 우상을 숭배합니다.(호세아8:5절) 바알 우상숭배 문화에는 신전에 있는 창기들과 음란하고 부정한 축제도 견들입니다. 심지어는 신전에 남성 창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견고한 성을 믿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3S문화를 즐기며 살고자했급니다. 성벽을 믿고 천년만년 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들을 징계하실 합니다.(이사야9:9~13)
아람 왕 벤하닷의 공격
본문 6장24절을 참고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 성을 에워쌉니다. 아람은 지금 IS의 본거지가 있는 시리아를 말합니다. 이때 왕은 여호람 입니다.(BC~851~841) 여호람은 북이스라엘의 9번째 왕입니다. 성을 공격하는 전투가 공성전(攻城戰)입니다. 공성전의 첫 번째 전술은 성으로 들어가는 보급로를 차단합니다. 두 번 째는 성의 가장 약한 부분을 부숩니다. 또 성과 똑같은 높이의 다른 성을 쌓아서 공격합니다. 벤하닷은 이 중 첫 번째 작전만 구사합니다. 이스라엘이 먹을 것이 없자 두 손 들고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시간이 흘러 사마리아 성안은 아비규환입니다. 본문6장25절을 참고하면 당시의 소비자 물가를 기록함으로 백성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지 말합니다. 돈 단위는 세겔이고 부피단위는 갑입니다. 1갑은 1.2리터이고 1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 4일의 품삯입니다. 요즈음 최저시급 5580원이고 하루 8시간 일하면 노동자 1일 품삯은 44,640원입니다. 이렇게 환산하여 현실물가로 말씀하면 나귀 머리 하나에 14,284,000원입니다. 역대 이렇게 비싸게 팔린 머릿 고기는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나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돼지머리 시세가 만 육천 원 합니다. 14,284,000원 돼지머리 900 두삽니다. 당시 물가가 얼마나 비쌌는지 감이오시죠. 먹을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지표는 비둘기 배설물의 가격인데요. 비둘기는 겉보기는 순결, 평화의 상징입니다. 배설물은 식용으로 불가능합니다. 냄새가 고약하고 강한 산성입니다. 비둘기 날아갈 때 머리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맞으면 혹시 원형탈모 옵니다. 비둘기 똥이 자동차에 떨어지면 도색이 벗겨집답니다. 비둘기가 많은 곳에 주차하지 마십시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비둘기 똥 0.3 리터에 90만원입니다. 나중에는 이것도 없어서 못 먹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이들은 인육을 먹기 시작합니다. 스릴러 영화도 아니고 성경 말씀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자식을 먹는 일은 이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혈압조절 때문에 고기, 생선, 계란, 우유, 달콤한 거는 아예 끊고 현미와 풀만 몇 달 먹었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서 같이 얼굴보며 밥을 먹어야 끈끈한 동료의식이 생립니다. 한 솥밥을 먹어야 하는데 따로 국밥을 먹으니 왕따 아닌 왕따였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은 가리지 않고 감사히 먹습니다. 혈압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맡기기로 합니다. 제가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경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지만 인육은 이해불가입니다. 굶어 죽는 편을 택하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를 볼 때 이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까지 갔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하나님이 징계하셨습니다. 근거 구절이 있는데요. 이사야9:9-13절입니다. 우리가 지금부터 본문의 극한 상황에서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만했다는 이유를 압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상
왕의 타락상
첫째는 왕입니다. 26절을 보면 왕이 성 위로 지나갈 때에 여인이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때 왕은 무엇이라 합니까? 27절에서 왕은 상황이 이런데 낸들 어찌할 수 있겠느냐하는 신세 한탄조로 말합니다. 30절에서는 자식을 먹는 끔찍한 소식을 들은 왕은 정치적으로 가식적인 행동만 보합니다. 옷을 찢고 속살에 베옷을 입었음을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 자신은 충분히 회개한다는 표만 합니다. 31~33절에는 왕은 이 비극의 책임을 선지자 엘리사에게 전가합니다. 심지어는 마녀 사냥하듯이 그의 목을 치려고 신하를 보냅니다.
책임전가를 두자로 줄이면 핑계입니다. 핑계는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진후 처음 한 행동입니다. 책임전가의 원인을 투사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합니다. 투사는 검투사 할 때 그 투사가 아닙니다. 투사란 자기의 결점이나 실패나 비행의 원인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남 탓만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시험에 실패한 학생이 “선생님이 문제를 이상하게 내서 망쳤다.”하고 핑계를 댑니다. 경기에 패배한 선수는 “심판 때문에... 심판이 편파 판정해 졌다.”라고 합니다. 죄진 사람은 “부모를 잘못만나서 내가 이 모양이다”하며 부모를 원망합니다. 책임전가가 습관이되면 정신병에 걸립니다. 피해망상입니다. 피해망상은 길거리에 모든 사람이 자기를 손가락질한다고 여기다 심하면 불특정 다수를 공격합니다. 이스라엘 왕은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핑계만 댑니다.
본문7장11절로 가면 왕은 아람군대가 모두 도망갔다는 구원의 소식을 믿지 못합니다. 문둥병자들이 말로만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 노략한 은과 금도 보였을 듯합니다. 아람군대가 버리고 간 말과 전리품도 보여주었습니다. 왕은 증거를 보고도 끝까지 믿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들이 첩자라고 의심하기 까지 합니다. 왕은 어려운 상황을 믿음으로 타개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제시해야합니다. 필요하면 정확한 정보수집과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제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왕은 어떻게 했습니까? 저 엘리사 때문이야 하고 핑계만 댔습니다. 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신하들의 타락상
두 번째는 신하들의 반응을 봅니다. 7장2절을 보십시오. 한 신하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을 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낸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오.”합니다. 본문의 NIV영어 성경은 가정법 미래로 되어 있습니다. (Look, even if the LORD should open the floodgates of the heavens, could this happen?" ) 가정법 미래는 현재나 미래에 대한 강한 의심을 표현합니다. 또는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강한 가정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창을 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설령 낸다 해도 현재상황은 바꾸지 못한다는 강한 불신의 표현입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그런 일이 있으면 내손에 장을 지지겠다. 정도의 표현으로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신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엘리사는 이런 그에게 ‘반드시 네 눈으로 직접’ 하나님의 기적을 보리라고 말함으로 말씀을 다시 상기합니다. 그는 이 기쁨에 참여 할 수 없다합니다. 신하는 이 말씀대로 나중에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7:17, 7:20)
백성들의 타락상
세 번째는 백성들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24장12절을 보면 예수님은 시대가 흘러가면 갈 수 록 사랑이 식어진다고 합니다. 당시 백성들은 사랑이 없었습니다. 6장28-29절을 보면 배고픈 두 여인이 첫날은 자기 아들을 다음날은 다른 아들을 먹기로 약속했는데 한 여인이 그 약속을 어겼다고 왕에게 고소합니다. 이런 일을 공공연하게 왕에게 알리는 것을 보면 두 여인만의 문제는 아니닙니다.
부모와 자식은 천륜으로 맺어집니다.그러나 이들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메말라 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갔으면 회개하고 죄를 돌이켜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백성들은 끝까지 비정한 방법으로 구차하게 살아남고자 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들 그 다음 삶을 어떻게 이어가겠습니ㄱ까?
이상에서 우리는 왕과 신하들과 백성들 모두 선민으로서의 신앙심은 찾기 어렵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손길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통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합니다.
경제학적으로 물가상승이 통제를 벗어나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것을 초고인플레이션,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이라합니다. 7장1절에서 비둘기 똥도 없어서 못 먹었던 초고인플레이션의 물가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본문에 한 스아는 7.3리터입니다. 이번에도 현 시가로 말씀드리면 고운 밀가루가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3개 반 정도에 17만원, 보리는 2리터짜리 페트병 7개에 17만원으로 떨어집니다.
문둥병자들의 역할
7장3절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문둥병자를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입니다. 문둥병자는 성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입니다. (레 13:45-46;민 5:3) 이들은 평생을 부정한자의 오명을 쓰고 살아야합니다. 이들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며 다녀야합니다. 이들은 친지들이 공급해 주는 음식으로 연명합니다. 이들의 삶은 성안의 사람들보다 더욱 비참했습니다. 평소에도 오늘 굶어 죽을지 내일 굶어 죽을지 기약이 없었는데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어떠했겠습니까?
7장4절을 보면 드디어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극적인 선택을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바에야 차라리 적진을 향해 들어가는 쪽을 택합니다. 본문에는 항복이란 단어를 사용 하였는데요 다른 성경은 그냥 들어갔다(fall to:KJV)는 표현으로씁니다. 이들은 저녁 해질 무렵에 적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의 힘없는 발소리를 바꾸어 군대의 마차소리, 말 달리는 소리, 수십만의 군병들이 쳐들어오는 소리가 되게 합니다.
소리는 공기가 압축되었다가 펴짐을 반복하며 전달이 되는 종파입니다. 소리는 1초에 340m를 갑니다. 소리도 에너지입니다. 자연 상태에서 에너지는 생성하거나 소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입니다. 과학에서 법칙이란 말이 붙으면 유사 이래 한 번도 바뀌지 않는 진리입니다. 문둥병자들의 발자국소리가 1이었다면 아람군대에 까지 전달되는 소리도 1이어야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1이란 에너지가 아람 진영에 도달 했을 때 수천, 수만 배의 에너지로 커집니다. 사람들은 에너지를 변형하거나 이용할 뿐 새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 생성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정교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의 법칙을 만들고 거기에 따라 모든 우주 만물이 움직이도록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할 때는 법칙을 깨트립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고 보호자이고 위로자입니다.
퇴각하는 아람군대
하나님이 창조한 소리를 들은 아람 군대는 어떤 두려움이 들었습니까? 6절을 보면 주변 강대국이 모두 연합하여 (헷과 애굽) 쳐들어온다고 여겼습니다. 아람 군대는 이 소리가 얼마나 두렵고 급했으면 모든 장비들을 두고 몸만 빠져나갔습니다.(7) 적진에 도착한 문둥병자들은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렸습니다.(8) 이러다가 이들은 문득 성안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형제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성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들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멸시받은 서러움이 발길을 몇 번씩 멈추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음속에서 밀려오는 미운 감정을 이겨냈습니다. 심지어 7장9절에서는 만약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벌이 내릴 것 같다고 합니다.(9) 정탐꾼을 통해서 문둥병자들이 전한 아름다운 소식이 사실임을 확인한 백성들은 성문을 박차고 나가 아람진영을 노략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물가가 안정이 되었습니다.(7장15,16)
결론적으로 로마시대나, 북이스라엘 시내나, 오늘날도, 하나님을 향하여 높아진 성은 무너졌고 또 무너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도 허물어야할 성벽이 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교만의 성, 미움의 성, 불신의 성이 있다면 허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을 믿지 않고 하늘의 창도 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이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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