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AD65-70년경 마가가 기록한 복음서의 내용입니다. 기록장소는 베드로와 마가가 감옥에 있을 때로 추정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합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출생이나 어린 시절을 과감히 생략하고 1/3을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서술합니다. 마가는 12사도에 포함되지 않은 제자이고 사도바울과의 선교여행에서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을 만나며 일어난 사건의 기록입니다.
1. 광풍 속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제자들(막4:35-38)
바람은 기압 차이 때문에 뜨거운 공기가 차가운 쪽으로 이동함으로 생깁니다. 바다 표면은 육지와 다르게 낮 동안 공기가 서서히 달구어졌다 밤이 되면 서서히 식습니다. 밤에는 육지보다 뜨거운 바다의 공기가 위로 상승하면 그 자리를 육지의 차가운 공기가 메웁니다. 이러한 원리로 밤에는 바람이 육지에서 바다로 붑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 없어지게함으로 자연의 순리를 바꿉니다.
갈릴리 바다는 호수이지만 크기 때문에 바다라고 합니다. 둘레가 63km입니다. 주위로는 높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리어 있습니다. 만년설이 있는 헬몬산도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지금부터 이 갈릴리 바다로 시간여행을 떠나 봅시다. 때는 2,000여 년 전, 등장인물은 12제자와 예수님입니다. 막 4장 35절을 인용합니다.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저녁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36절을 참고하면 예수님은 배 위에서 종일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매우 지쳤습니다. 반대로 제자들은 휴가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자들입니다. 오랜만에 일상을 벗어나 바다에 나왔습니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휘영청 밝은 달도 이들을 반겨주었습니다.
이들의 배는 어떤 폭풍우도 견디는 무적함대 같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 빌립, 안드레가 어부 출신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베드로는 왕년에 갈릴리 수산계를 주름잡았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갈릴리 수협장 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자로 부름을 받으며 수협 장의 꿈은 접었을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 안에서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국무총리 자리에 앉는 꿈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비슷합니다. 꿈 실은 배는 순풍에 돛단 듯이 바다 한가운데로 미끄러져 갔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들어서자 기상이 급변했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이 갑자기 먹구름 뒤로 숨었습니다. 한 줄기 바람이 일어나 제자들의 머리칼을 날렸습니다. 제자들은 어부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각자는 배에서 정해진 역할에 따라 제 위치로 갔습니다. 머리칼을 스쳤던 한 줄기 바람은 곧이어 거센 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바람은 제자들의 몸을 송두리째 바다로 던져버릴 수 있을만큼 쎘습니다. 파도가 배 옆구리를 여러 차례 때리자 배 안은 금 새 바닷물로 가득 찼습니다. 제자들은 놀란 토끼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물을 퍼내고, 돛을 접고, 배에 균형을 잡기 위해 키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파도는 제자들의 노력을 비웃었습니다. 어부의 경험은 이 상황에서는 휴지 조각같았습니다. 타개할 방법이없었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베드로는 '아 총리의 꿈은 여기서 수장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이때 제자 중 오병이어 기적의 주인공 안드레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동료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이들은 일제히 예수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2. 광풍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막4:38-41)
38절을 참고하면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고물은 배의 뒷전입니다. 예수님은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밤은 왜 있지? 밤은 잠자라고 있는 것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창세기 1장5절을 참고하면 하나님은 낮과 밤을 창조함으로 하루의 단위를 정하였습니다. 밤도 창조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주십시오. 시편 127편 2절에는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준다고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호흡을 주고 심장을 감찰한다합니다. (사도행전17:25 예레미아11:20) 하나님은 폐와 심장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숨 쉬며 뛸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기관은 자율신경계에 의해 스스로 움직입니다. 폐와 심장의 기능까지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한다면 매우 피곤할 것입니다.
밤은 어두워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밤을 낮같이 밝혔습니다. 오늘날은 이로인해 잠 못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구, TV, 영화, PC, 스마트 폰 등이 숙면을 방해합니다. 외적인 조건이 이라라 내적인 불안, 두려움 등으로 자고 싶어도 못 자는 분들도 많습니다. 통계에 의하연 현대인의 수면제 소비량이 점점 늘어나고 있답니다.
하루 동안 지친 몸이 온전히 회복되려면 7~8시간이 걸립니다. 잠을 1시간 더 자면 500여 개의 유전자 신호 스위치가 작동하여 신체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7시간 자면 6시간 자는 것보다 동맥에 쌓이는 칼슘양이 33% 줄어 혈압을 낮춥니다. 기억력도 향상됩니다. 뇌는 잠자는 동안 노폐물 제거 활동이 깨어 있을 때보다 10배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우리는 밤에 반드시 쉬어야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광풍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곤히 잠들 수 있는 예수님을 배워야겠습니다.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배워야겠습니다.
어부 출신도 어찌할 수 없는 큰 광풍이 일고 있는 바다는 두려움의 바다입니다. 제자들은 이 바다에 빠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곤히 잠만자고 있는 예수님이 야속할 수도 있었습니다. 당장 물 한 바가지라도 퍼낼 일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자들은 급기야 이 예수을 다급히 깨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39절을 참고하면 "잠잠하라! 고요하라!"라고 바람에게 명령합니다. 예수님은 인격체를 향해 꾸짖듯이 말씀합니다. 바람은 이 말씀에 즉각 순종하였습니다. 바람의 방향이 저기압에서 고기압쪽으로 바뀝니다. 바람은 발이 달린 듯 육지로 달음질쳐 헬몬산 넘어로 사라졌습니다. 먹구름도 걷혔습니다. 그 뒤에 숨었던 휘영청 밝은 달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달은 마치 제자들을 나무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눈을 휘둥그레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들에게 "그래 고생들 했다. 마침 날 잘 깨웠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찌할 뻔했니?"하고 칭찬했습니까? 아닙니다.
40절을 참고하면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느냐?’ 고하며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서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행동을 믿음 없음을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무서워함과 믿음 없음은 마치 자석의 같은 극끼리 밀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무서워함은 믿음을 밀어내고 믿음이 없을 때 무서워합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 염려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저는 인생의 대전환기를 한 참 지났습니다. 그러자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체해서, 어지럼증으로, 허리와 목 디스크로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물리치료 받으러 일주일을 병원에 갔습니다. 서로 다른 종류의 약봉지가 네 개나 쌓였습니다. 약을 많이 먹으니 위까지 쓰렸습니다. 몸이 바벨탑 무너지듯이 한꺼번에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아! 이러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염려가 몰려왔습니다. 저는 두려움의 바다에 빠져 오래 허우적댔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살피면서 광풍 앞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들과 나의 모습이 똑같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음에서 오는 광풍 앞에 무서워하는 저에게도 예수님은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했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서 12:2는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는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새롭게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바라보고 또 나의 경험과 상식만을 의지할 때 두려움과 무서움에 빠집니다. 그러나 시선을 믿음의 주인인 예수님에게 돌릴 때 극복가능합니다. 두려움의 바다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바람과 폭풍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다른 성경 구절을 참고합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예수님은 창조주입니다. 온 우주를 만든 분입니다. 예수님이 만유의 주인입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한가운데 온 우주의 주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어부들로서 목수 출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에 모시고 간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바다와 배에 대하는 예수님보다 한 수 위라고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이 예수님의 배에 탄 것입니다. 제자들의 생명의 주인,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은 이 예수님을 믿고 어떤 광풍도 무서워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광풍은 예수님에게 맡기고 그 옆에 같이 드러눕는 배짱이 있어야 했습니다. 코까지는 골지 못하더라도 예수님과 함께 한숨 푹 자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같이 들어가면됩니다. 끌고 들어간 분이 다시 끌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능을 가진분입니다. 생명의 근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산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광풍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광풍은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키워주는 역할도 합니다.
제자들은 바람과 바다도 잠잠케 하는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41절을 참고합니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바람과 바다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다른 말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바람과 바다까지 순종시키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아서 평안하고 순탄한 인생 항해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 성경 구절
막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39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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