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유의 뜻
비유 용어 뜻은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것을 옆에 놓고 비교하여 표현하는 방법으로 헬라어로는 ‘파라볼레'(parabole)이며 ‘사물을 나란히 놓는다, 옆에 놓는다”이다.’ 이와 같이 비유는 예수님이 진리를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말씀 한 교훈이다. 예수님이 비유를 하는 목적은 천국과 구원의 이치를 보다 쉽게 이해시켜 주시기 위함이다. 또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구별돼 있기 때문이라고도 하셨다. 우리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설명하려면 당시 주변에 있는 친근한 소재를 사용하여 비유의 말씀을 하셔야 했다
2. 누가복음에 나오는 비유들
누가복음 15장과 16장은 예수님의 5가지 비유가 나온다. 양 99 마리를 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내기까지 끝까지 찾아다니는 목자의 비유,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는데 등불을 들고 부지런히 찾는 여인의 비유, 집 나간 둘째 아들과 집에 있는 첫째 아들 의 비유, 일명 돌아온 탕자의 비유다. 그리고 16장에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와 부자와 나사로 거지의 비유이다.
3.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권면한다. 최근 부영그룹 회장이 고향인 전남 순천 마을 주민 280여 명에게 300억 이상 기부했고 개인에게는 많게는 1억 원까지 통장에 돈이 입금되었다 한다. 이외에도 다른 않은 나눔을 실천했다 한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도 세상의 재물을 아낌없이 복음역사를 위해 쓰라는 해석이 본문 비유의 보편적인 해석이다. 재물자체는 선하다. 앞에 불의가 붙은 것은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우리 모두는 청지기일 뿐이다. 그런데 재물이 마치 자기의 소유인양 움켜쥐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입장에서 불의한 재물이라 표현했다.
4.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내용 정리
먼저 눅16장 1-13절을 정리한다. 부자는 불의한 청지기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주인은 일 년에 한 번 오거나 아니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은 소문으로 불의한 청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낭비한다고 들었다. 주인은 소문을 듣고 자세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청지기를 쫓아내기로 결정한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상황이 된 불의한 청지기는 막노동도 하자니 힘이 없었다. 최악의 방법으로 빌어먹지도 못할 처지다. 불의한 청지기는 또 한 번 불의한 방법으로 닥쳐올 불행을 대비한다. 그는 청지기 자리를 쫓겨나게 될 경우에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은 이들이 자기를 맞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기 맘대로 주인에게 빚 진자를 불러 탕감해 준다. 당시는 율법으로 고리대금업을 금지했다. 이자를 받으면 돌에 맞아 죽을 일이다. 그래서 당시는 이자를 미리 계산하여 원금과 이자를 합하여 빌려준 것처럼 장부를 꾸몄다. 당시는 올리브유 기름은 이자율이 100%였고, 밀은 50%였다. 불의한 청지기는 과하게 책정한 이자 부분을 깎아 주었을 수 있다. 그래도 모두 다 주인의 자산이다. 말대로 불의한 일이다. 계약문서를 새로 작성한 청지기의 행동에서 어떤 도덕과 윤리도 찾기 어렵다. 문서를 위조한 것도 법 위반이다.
5.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의미
본문에서 용어의 의미를 새겨 볼 만하다. 불의한 청지기가 말한 집은 단순히 자기 집이고 예수님은 영원한 처소라고 달리 말씀하신다. 단순한 집은 일상적인 의미이지만 영원한 집은 영적인 차원이다. 두 번째는 재물의 뜻이다. 청지기는 세속적인 재물을 이용하여 자기의 미래를 준비했는데, 예수님이 말씀한 재물의 의미는 다르다. 영어 성경은 세속적인 재물은 불의한 맘몬으로, 예수님이 말씀한 참된 재물은 진정한 것으로 번역했다.
예수님은 본문의 비유를 영적인 의미 즉 하나님 나라의 입성으로 접근하신다. 청지기가 죽음 이후에 우리를 영원한 집으로 맞아줄 친구를 사귀라 하신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5개의 연속적인 비유 가운데 있다. 잃은 양의 비유는 양을 끝까지 찾아 나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비유한다. 잃어진 드라크마도 마찬가지다. 돌아온 탕자도 아무 자격 없지만 무한한 사랑으로 맞아주는 아버지의 비유다. 부자 나사로의 비유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불의한 청지기에서도 이런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긍휼을 찾아야 한다. 불의한 청지기가 뭘 믿고 자기를 위하여 주인을 한 번 더 배신하는 행위를 하였을까? 물론 불법적인 방법이지만 미래를 대비한 자신의 행동을 용서하고 받아 주실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없었을까?
우리는 구원받기 전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타락했다. 자신에게는 구원받을 받을 만한 조건이 아무것도 없었다. 불의한 청지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불의하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도 죄인일 때는 불의한 청지기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장차는 영원한 하늘나라, 하늘의 처소로 가게 되었다.
4개의 비유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사이에 들어간 구절은 마치 5개의 비유와 무관한 말씀처럼 보인다.(눅16: 10-18)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다 하신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 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다.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듯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고 교만한 바리새인들을 지적하며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이고 그 후 예수님 이후부터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천국으로 침입한다. 아내를 버리고 장가드는 자는 간음한 자.”라고 말씀한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듣는 1차 수신자는 구제 불능 죄인과 세리이다. 그리고 이들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의료 충만한 바리새인들이다. 세리와 죄인은 그야말로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 한 사람들이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잃어진 양과 드라크마, 집 나간 탕자, 거지 나사로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처지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와 사랑이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율법은 세례요한에서 끝이다. 복음이 오자 천국은 침노당한다. 율법시대가 가고 은혜의 시대가 왔다. 당시 바리새인은 율법과 행위로 하나님 나라를 쳐들어가려는 자들이다. 은혜를 모르면 지금도 율법 뒤, 행위 뒤에 숨는다.
불의 한자, 두 주인을 섬기는 자, 율법 주의자, 간음한 자는 세리와 죄인의 반대편에 선 바리새인들을 가리리킨다.
본문에서 불의한 청지기를 주인에게 고발한 장본인은 율법이요 사단을 상징한다. 사단은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를 고발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라는 친구로 인하여 정죄 당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로 칭찬받는다. 눅16장 8절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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