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한 이유
마가복음4장10-12절은 난해 구절 중 하나이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본문은 예수님이 외인들은 의도적으로 죄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뜻이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의도와 반대다. 과연 예수님은 이렇게 편협한 분일까?
본문은 이사야6장9,10절을 인용한 말씀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았다. 계속 그렇게 하면 망하여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간다는 예언이다. 결국 예언은 이루어 진다.
비유라는 말은 헬라어로 parabolai'”(파라볼레)라 한다. 이 말은 평행하다라고 할 때도 쓰는 말이다. 파라볼레 원어 뜻은 모르는 물건 옆에 다른 물건을 곁에 두어 비교하여 안다이다. 비유는 하나의 숨은 진리를 설명함으로 단어 하나하나 떼어 해석하여 사람 입맛에 맞추려 한다면 이단으로 빠진다.
주석에는 본문 12절 첫 단어 “이는”을 목적으로 해석하면 못 보고, 못 듣게 하는 분이 예수님이다. 그러나 아니다. 예수님은 계속 비유를 말씀하셨고 주변에 익숙한 소재를 비유에 쓰셨다.
본문 예수님 의도는 “귀가 있으면 듣고 깨달아야 할 것 아니냐” 혹은 “듣고도 왜 깨닫지 못하느냐’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예수님은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구약 이스라엘 이사야 때와 마찬가지다.
반어적 진술이란 자신의 생각과는 반대로 말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잘들 놀고 있네!’ 같은 말이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 화가나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한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당신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고 몹시 화가 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한 가지 본문의 관점은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보자. 말씀의 비밀을 알고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들을 귀, 마음 문을 연 분이 하나님이다.
2.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뼈를 꺾지 않은 이유
어떤 분은 지옥 가기 싫은 이유가 흉악범을 만나기 싫어서라한다. 천국에 가서도 히틀러, 스탈린, 막가파들을 만날까봐 걱정한다. 끝까지 복음을 거부한다면 필연적으로 만난다.
예수님 십자가 못박힐 때 양편에 같이 매달린 자를 성경은 강도 또는 행악자라한다. 마태, 마가복음에는 강도(레스테스robber)로 폭도, 노상강도, 매국노로 표현했고(마27:44, 막15:27) 누가복음에는 행악 자(카쿠르고스 criminal)로 악한 일을 하는 자, 죄인으로 표현했다.(눅23:32)
당시 십자가형은 인류가 고안해 낸 최악의 형벌이었다. 당시 최고의 욕도 십자가형을 받을 님이었다. 십자가형은 주인을 죽이고 탈출한 노예, 나라 를 반역한 죄인, 무수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정치범이 받았다. 예수님 우편 한 강도는 죽기 직전에 구원열차에 급히 탔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죽은 후 군병들이 강도에게는 했는데 예수님께는 안한 일과 예수님께는 했는데 강도에게는 안한 일이 있다. 예수님께는 다리뼈를 꺾는 일은 안했다.(요19:32-33) 다리뼈를 꺾는 일은 십자가 사형수에게 베푸는 최고 배려였다. 빨리 목숨을 끊어 고통을 줄였다. 예수님은 몸이 약하여 뼈를 꺾어 고통을 줄일 시간도 없이 일찍 숨을 거두었다.
다른 이유는 구약 제사 때 제물로 드리는 양의 뼈가 꺾여 있으면 흠이 있는 부정한 제물이어서 제사가 성립되지 못했다.(민9:12 출12:46 민6:14) 예수님의 뼈를 꺾지 않은 영적인 이유는 예수님은 구약의 예표인 흠없는 양으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뼈는 우리 몸을 지탱하고 내부 중요 장기를 보호한다. 또 뼈가 겉으로 드러난 것은 뿔인데 뿔은 의를 상징한다. 뼈가 꺾이지 않은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의인으로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의미다.(시편34:19)
군병들이 예수님께만 행한 것은 옆구리를 찔러 물과 피를 쏟게 했다.(요19:34)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택한 행동이다. 보통 시신은 누구든 예우를 갖춘다.
뼈를 안 꺾었다는 것은 이미 죽은 것을 확인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또 예수님의 시신을 훼손한 것은 인간의 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악한 죄인들에게 예수님은 찔리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슥12:10절은 찌른 자가 찌른 자를 바라보고 회개한다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을 찌른 군병은 찌른 후에 의인을 찌른 자신을 뼈저리게 회개 했다고 전한다.
3. 금식 해야하는 이유
율법에는 일 년에 한 번 금식했다. 대속 죄 일이다.(레위기 23:27,29,32), 금식은 나에게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는 거로 죽음을 상징한다. 속죄일에 금식한 이유는 죄를 사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나는 그 앞에서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 대로 순종하며 살겠다는 신앙고백적 요소가 있다. 이스라엘은 금식의 횟수를 늘려갔다. 스가랴서에는 4월과 5월, 7월과 10월에, 날을 정하여 금식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스스로 정했다. 그러다 신약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유대인들 때에 와서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했다. 율법은 한 번이었는데 장로들이 유전으로 정하여 금식했다.
금식의 시작이 죄사함의 은혜를 깊이 기억하고 순종하겠다는 목적이었는데 어느새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경건함을 자랑하고 과시하는 행위로 변했다. 또한 이방인들 과의 구별되는 선민 사상의 행위로 금식했다.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도 감동하시는 기특한 일을 하려고 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는 유일한 민족임을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런 입장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장면을 보았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세례요한의 제자들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비방했다.(막2:18,19) 이 배경 하에 예수님이 당신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주신 비유가 새 포도주와 새 부대 비유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혼인잔치의 신랑으로 비유하여 ‘혼인잔치의 신랑과 함께 있는 이들이 어떻게 금식을 하겠느냐?’ 반문하신다.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데에 필요한 몽학선생이다. 그것 자체에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금식을 포함한 모든 율법은, 신랑이신 예수님이 완전케 하셨다. 40일 금식 후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안 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거라 ’고 하셨다. 예수님은 신랑을 뺏긴 후에 금식할 때가 온다고 답했다.(마9:14, 막2:18,19 눅5:33-35) 이는 제자들이 금식을 통해 생명까지 하나님께 바치는 사도로 준비될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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