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에세이(경험글)

축구는 부전자전이 아니다.

by 명주(明珠) 2024. 8. 24.

그 애비에 그 아들이란 속담이 있다. 신체능력 인지 성격이 닮는 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와 아들은 축구와 달리기는 닮지 않았다. 아들이 훨씬 잘한다.
내가 축구를 못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성격이 모질지 못하다. 공을 이쪽으로 차면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안절 부절 못하니 잘 찰리가없다.
두번째 자라면서 축구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산비탈에 살아서 축구할 손바닥 만 한 공간도 없었다. 학교 운동장은 1시간 이상 걸어야 했다. 산에서 머루 다래 따고 물에서 물고기 잡고 놀았다.
세 번째 못하는 이유는 군대다. 군대 축구는 기술이 필요없다. 악으로 깡으로 한다. 공은 안 보고 상대의 정강이만 본다. 내가 쫄병 때 고참 중 축구 선수 출신이 있었다. 축구 할 때 그의 기준으로 내가 얼마나 못마땅 했을까? 개 아들 소 아들하고 욕먹는 날이 수요일 전투 체육의 날이다. 내가 고참되면 축구는 없애야겠다 다짐 했다가 없애지는 못하고 나만 빠졌다.
축구의 시작은 1863년 영국 런던 선 술집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 축구협회 회원들 12명이 규칙을 정하면서 시작했다. Soccer란 용어는 이 협회 영어 용어 Assosiasion의 가운데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처음 규칙은 손으로 잡고 뛰어도 허용했다.  또 축구 골대 크로스바도 없었고, 전진패스를 금지했다. 이 협회 전에 동네에서 정육점 팀과 장갑 제조업 팀 각각 7명이 경기를 한 것이 축구 효시다.
1840년대에는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신체에서 길러진다는 “근육질 기독교” 정신에서 축구를 권장했다. 청년들이 넘치는 욕망에 휩쓸리지 말도록 과격한 축구를 권했다. 당시 명문 학교 출신 엘리트 팀은 공을 뒤로 살살 돌리는 방식을 남자 답지 못 한 수치스러운 일로도 여겼다. 그래서 힘으로 밀어 붙이는 축구를 하다 1883년 FA 컵에서 노동자 팀에게 패하면서 거칠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축구에서 기술 축구로 변했다.
아시아가 발로 하는 운동을 타 대륙에 비해 못하는 이유를 과거 환경에서 찾는다. 한국은 손을 많이 쓰는 쌀 농사를 통하여 먹거리를 공급했기 때문에 손재주가 뛰어나다. 그래서 축구보다 탁구나 배드민턴, 양궁 등을 잘한다. 목축과 수렵을 주로 한 서양인은 축구, 럭비 등 다리로 하는 운동에 강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손흥민이 이름을 날리는 것은 그가 얼마나 피말리는 노력이 있었는가 짐작이 간다.

'에세이(경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종플루와 코로나 19 체험기  (0) 2024.08.24
아들의 양심 고백  (0) 2024.08.24
무료 맹장 수술기  (0) 2024.08.24
연곡천 다슬기  (0) 2024.08.24
인생의 링  (0) 2024.08.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