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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강의원고

진노 아래 인간의 실상(롬1:18-21)

by 명주(明珠) 2024. 8. 23.

오늘 말씀은 로마서1장의 마지막 14구절입니다. 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구절입니다. 귀를 막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넘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인데 그러면 안 되겠죠? 오늘은 진노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진노의 진(震)자는 천둥, 벼락 할 때 쓰는 우레 진자입니다. 노(怒)는 성낼 노자입니다. 하나님이 천둥같이 매우 노한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대표적 이단이 영지주의라 합니다. 이들은 보편구원론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화 하나 안 내는 분, 그저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만 있다고 하면서 때가 되면 의인과 악인 모두 보편적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지옥도 당연히 필요 없습니다. 지옥 갈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텅 빌 지옥은 필요 없습니다.

 


오늘 본문 진노의 하나님은 이 주장을 정면으로 공격합니다. 우리도 복음 전할 때 아주 점잖게, 스마트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축복의 말로만 전하고 싶습니다. 그저 믿으면 행복이 옵니다. 병도 고쳐지고 복 많이 받고 부자도 됩니다. 이렇게만 전하고 싶습니다.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복음은 반쪽 복음입니다. 성경 전체에는 진노라는 단어가 231번이 나옵니다. 이중 로마서에만 10번이 나옵니다. 성경은 축복보다는 진노의 하나님 비중이 세 배 많습니다. 세례 요한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전한 첫 메지가 무엇입니까?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첫 설교를 들은 무리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도 진노의 하나님 때문입니다. “진로!”가 아니고 진노의 교리 아주 중요합니다.

진노 아래 있는 인간의 현실


우리는 또 진노의 하나님을 통하여 인류 불행의 원인을 압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498명이라는 민간인 학살 현장도 보았습니다. 임산부들만 있는데 공격을 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참 이해가 안 갑니다. 오늘날은 과학기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합니다. 고도로 문명화되었고. 4차 산업 시대입니다. 지구촌이란 말할 정도로 지구 반대편 일도 실시간 아는 시대입니다. 교육도 발달했습니다. 요즈음 대학에서 키우려는 인재상은 창의성 가진 인재, 융·복합 형 인재가 트렌드입니다. 아니 4차 산업 시대 인간이, 창의적인 인간이, 융·복합 적인 인간이 더구나 이성을 가졌다는 인간이 전쟁이 웬 말입니까? 21세기에 동물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 웬 말입니까? 또 우리 하루가 멀다고 범죄 뉴스가 나옵니다. 얼마 전에는 가평계곡 살인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불륜 남녀가 보험금을 노리고 전남편을 야밤에 계곡물에 빠져 죽게 만들고 도주합니다. 엄마가 10살, 9살 자녀를 죽인 사건도 있습니다. 이런 전쟁 비극, 또 끝없는 범죄들을 우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으로 설명이 되겠습니까? 최고의 고등동물로 진화한 인간이 왜 이럽니까? 찰스 다원이 앞에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미스터 다윈 씨? 정말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앞으로 진화해 가고 있습니까?” 거꾸로 가는데 다윈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이런 세상에 대한 답을 줍니다.

진노의 첫째 원인 불경건



18절부터 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세상이 이렇게 된 원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2가지 입니다.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입니다. 경건하지 않음은 불경건 입니다. 경건의 한자 뜻은 공경할 경(敬) 또 공경할건(虔) 자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경건은 “초월적(超越的)이거나 위대(偉大)한 대상(對象) 앞에서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操心)하는 상태(狀態)”입니다. 초월적이고 위대한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이 없는 걸 경건하지 않음, 곧 불경건의 뜻입니다. 불 경건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는 삶,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불신의 죄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불의입니다. 옳지 않음을 말합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모든 행동을 말합니다. 도덕적인 죄, 윤리적인 죄 법을 어기는 모든 행동들을 말합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전쟁범죄, 살인죄는 다 불의에 속합니다.

진노의 두번째 원인 불의


이렇게 불 경건하고, 불의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양상은 성경에 잘 나옵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진노는 노아의 홍수입니다. 하나님은 불 경건하고 불의한 세상을 노아와 가족 8명만 남기고 물로 한번 쓸어버렸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도시 멸망 사건도 있습니다. 이 도시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합니다. 성적 타락이 극에 달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유황불을 내리는 진노를 합니다. 또 하나님은 택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도 진노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을 종살이했습니다. 개인에 대한 진노도 많이 있습니다. 교만했던 느브갓네살 왕은 소처럼 들에서 짐승과 함께 풀을 먹으면서 7년을 사는 진노가 떨어집니다. 신약의 헤롯 왕은 이상한 벌레에 먹히는 진노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도 압니다. 우리는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처참하게 죽여야만 하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섬뜩한 진노를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하나님이 불로 태우는 진노가 있으리라 예언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수없이 언급합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자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이유


그러면 하나님 왜 이렇게 진노하십니까? 첫째는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자기를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를 모른 척하고 살아간다면 어떡하겠습니다. 하나님도 주인을 몰라보는 불경건에 대하여 진노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속성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듯이 하나님은 불경건과 불의의 죄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의 세력인 사단과 관계된 모든 것을 미워합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책임을 물으시고 공의로 심판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근거 첫째 옳고 그름의 법칙


그럼 이쯤에서 진노의 하나님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알았던 유대인들에게나 진노하시면 되지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들까지 심판하면 불공정하지 않은가? 정의, 상식, 공정에 어긋납니다. 또 이순신 장군은 구원받았습니까 하는 질문도 합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19절에 잘 나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이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을 알만한 정보를 우리 내면에 심겨 놓으셨다.” 고합니다. 그 정보를 우리는 옳고 그름의 법칙이라 합니다. 양심의 법이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눈만 뜨면 네가 옳으니 내가 오르니 싸웁니다.

오늘 아침에도 한바탕하고 오신 성도님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옳고 그름의 싸움은 인간만이 합니다. 원숭이 떼를 호랑이 한 마리가 습격했다 합시다. 무리 중 원숭이 한 마리가 동료를 버리고 나무 위로 날름 올라갔다 합시다. 원숭이들이 회의해서 이 원숭이를 나쁜 놈으로 규정하고 추방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전쟁 중에 전우를 버리고 도망간 사람을 어떻게 여깁니까?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그를 칭찬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 비난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류의 마음속에 선함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기준은 교육으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교육받지 못한 원시 부족은 잘 도망갔다고 칭찬하겠죠? 그러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옳고 그름의 법, 양심의 법은 하나님이 심어놓은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확실한 근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짓고 “아 시원하다, 상쾌하다.” 할 사람 없습니다. 무엇인가 속에서 쿡쿡 찌르고, 죄책감을 갖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근거 두번째 숭배의식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알만한 근거는 절대자를 숭배하려는 감각입니다. 신감각이라 합니다. 인간이 사는 곳은 숭배 의식이 다 있습니다. 저 아마존, 아프리카, 호주 원시 부족에게도 있습니다. 어디 가든 물 떠 놓고 비는 의식합니다. 죄 씻으려고 동물 잡아 피 흘리는 의식 있습니다. 동물에게는 종교 없습니다. 인간만에게만 있습니다. 이런 신의식도 하나님 계신다는 근거 중 하나입니다.


바울은 우리 속뿐 아니라 우리 밖에도 하나님을 알만한 근거가 있다고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자연과 우주와 피 조세계를 보면 하나님을 압니다.

미세조정 상수를 통해 본 하나님의 전능성



저는 물리학과 출신이니 관련된 내용으로 하나 소개합니다. 미세조정 우주, 미세조정 상수에 대하여 하나 소개합니다. 욥기38잘32,3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입니다. 하나님이 별의 궤도와 땅의 법칙을 다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중력을 측정하려면 중력 상수가 필요합니다. 우주 팽창 속도를 알려면 우주상수가 필요합니다. 상수는 철수와 같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불변하는 숫자인데 이 상수들을 하나님이 아주 미세하게 잘 조정하셔서 우주와 생명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이론입니다.

 

얼마나 미세하게 조정하셨나 하면 온 우주의 원자들을 다 모아놓고 그 원자 한 개 고르는 값만큼 미세합니다. 예를 들면 핵 속에는 양성자들이 있습니다. 양성자는 전기적으로 플러스 성질을 띠어서 서로 밀기 때문에 한군데 모여 있을 수 없습니다. 있게 하는 힘을 핵력이라 합니다. 이 핵력이 지구 위에 바늘로 점 하나 찍는 만큼만 변해도 지구뿐 아니라 이 우주가 생기고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원자

 

정교하게 움직이는 자연과 우주의 질서는 우연히 생기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움직입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압니다. 이렇게 우리 내부, 외부 정보를 종합할 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핑계 할 수 없다 합니다. 하나님 없다 여김은 손으로 제 눈을 가리고 태양이 없다 함 같이 어리석습니다.


진노아래에 있는 인간의 모습

감사하지 않음

21절부터는 불경건과 불의한 인간의 모습을 열거합니다. 불경건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죄입니다.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첫째 불경건의 죄는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않음 입니다. 영화롭게 한다는 뜻은 ”아름답게 하다.“”확대하다.“란 의미입니다. 이는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높이고 영광 돌림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벚꽃은 우리 보라고 피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핍니다. 그런데 오직 인간만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간은 창조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고귀한 존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고 자신의 영광만을 드러내려 합니다.

불경건



두 번째는 감사치 않는 것도 불경건의 죄입니다. 마5장45절을 보면 하나님은 해를 악인이나 선인에게 골고루 비춰 주십니다.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도 골고루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상으로 받는 햇빛, 공기, 물, 비,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거 거저 받으면서 모른 척하면 안 됩니다. 감사해야 할 제목입니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오늘부터 햇빛, 공기, 물 유로로 전환해 봅니다. 세무서에서 햇빛 세, 공기 새, 비세 일주일만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실감 날 것입니다.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리석게 됨



본문에서 또 사람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고, 어리석게 됩니다. 그래서 피조물을 숭배합니다. 22절, 23절, 25절, 28절을 참고하면 사람, 새, 짐승,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 섬깁니다. 사람도 섬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히틀러 때문에 유대인 600만 명이 학살당합니다. 팬심 즉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도 지나치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연예인이 자살하면 같이 따라 죽습니다. 그 이외에도 뱀, 지네, 파리, 바퀴벌레 신도 있습니다. 외계인도 만들어 섬깁니다. 강신, 이신, 모기 신, 우박 신, 메뚜기 신 등 많습니다. 이게 우둔하게 된 증거입니다.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꿈



25a절에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는 말씀은 신화를 말합니다. 신들끼리 서로 싸우는 그리스 로마신화 등을 말합니다. 우리도 단군신화가 있습니다. 곰이 마늘 먹고 사람이 되어 우리 조상이 되었다는 신화입니다. 하나님은 영이 십니다. 형상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려는 시도가 신화입니다. 하나님을 신화화 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 손으로 주무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불의의 양상



두 번째는 불의의 양상입니다. 24절~32절까지입니다. 온갖 죄의 유형을 열거합니다. 사도 바울이 2000년 전에 진술한 내용인데 오늘날도 매일 TV 뉴스로 직간접적으로 보는 죄들입니다. 1세기나 21세기나 인간의 본성은 변함없습니다. 본문은 21가지 죄인의 유형이 나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지옥에 가면 여기 열거된 21가지의 유형의 사람들과 아주 즐겁게 삽니다. 특히 6번째 유형인 연쇄살인범하고 같이 삽니다. 그렇게 하려면 계속 예수님을 거부하면 됩니다.

몇 가지 어려운 표현을 살펴봅니다. 10번째 유형 수군수군하는 자가 있습니다. 여기 가서 수군수군 저기 가서 수군수군, 앞에서 수군수군 뒤에서 수군수군하는 자들입니다. 뜻은 은밀하게 남을 헐뜯는 자를 말합니다. 수군수군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근거 없는 뭐 뭐라 카더라 뉴스도 같은 수군수군 입니다. 요즈음은 인터넷 댓글로 수군수군 많이 합니다. 악성 댓글 폭탄으로 당사자가 목숨을 버리게 만드는 일도 봅니다. 12번째 유형 능욕은(凌辱) 업신여길 능 욕될 욕 자로 남을 업신여기고 욕보이는 자를 말합니다. 19번째 유형 배 약(背約)은 등 배, 맺을 약으로 약속을 등진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배신자입니다.


24a, 27a, 29절은 특히 성도덕이 땅에 떨어짐을 합니다. 요즈음은 동성결혼도 28개국에서 허용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나라도 차별금지법 입법은 시도했으나 아직 통과는 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32절을 보면 더 나쁜 걸 알고도 일부러 고의로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인간의 본성 속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은 양심이 있어서 죄를 지면 벌 받고 죽을 줄 압니다. 그러면서도 합니다. 그리고 죄를 과감하게 짓는 사람들을 잘했다고 박수 칩니다. 또 죄짓는 사람은 남을 끌어들입니다. 죄책감을 나누려는 속셈입니다.

내어버려 두시는 심판



본문에 하나님이 물리력으로 직접 심판하는 진노 외에 다른 진노 방법이 나옵니다. 세 번 반복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24절, 26절, 28절입니다. 28절을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이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니 하나님도 우리를 마음에 두기 싫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같이 됩니다. 세상이 지옥처럼 변합니다.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신다는 부분에서 무책임한 분으로 묘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버려 두시는 것도 우리를 사랑하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부부간에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합니다. 남편이 부인의 머리 색깔, 구두 색깔, 옷 스타일, 사사건건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한다고 해보십시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우리가 나쁜 길로 갈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유의지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유의지를 발휘해 하나님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난 결과 세상은 많이 망가졌습니다. 서두에 세상이 불행하게 된 원인이 바로 여기 하나님이 내버려 두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지 말자




그럼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처음으로 18절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고 있는 대상은“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막는다는 뜻은 의도적으로 밀어내고 눌러버리고 진리를 목 졸라 없앤다는 뜻입니다. 그럼 진노가 쏟아지지 않게 하려면 어찌합니까? 진리를 막지 않으면 됩니다. 진리는 헬라어로 ‘알레떼이아’라고 합니다. 단어의 뜻은 ‘실체, 진짜 원형’이랍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은 구약시대에는 모형으로 예언되었고 신약에는 실체로 오셨습니다. 진리는 실체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으면 됩니다.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서 진리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사랑의 대상이 됩니다. 불경건과 불의에서 구원받아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끝으로 25b만 참고합니다. 바울은 뜬금없이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뉘앙스는 사도바울이 인간의 불경건함과 불의를 열거하다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문뜩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잠깐 멈춰서서 멀어진 마음을 예수님께로 돌이키고 찬송하고 '아멘' 하는 모습을 반영합니다. 마음이 예수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Come Back”합니다.



성경참고구절
로마서1:18-21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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