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노초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 15장:55-57절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몇 살에 사망했을까요? 100세인가요? 아닙니다. 5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는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신하들에게 시킵니다. 불로초를 먹으면 몸이 신선같이 변하여 영원히 죽지 않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불로초 찾으러 우리나라에도 사람을 보냈습니다. 금강산, 지리산, 제주도, 한라산까지 왔습니다. 진시왕도 50이 되자 병에 걸려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날 인류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생체복사를 통하여 우리와 똑같은 사람도 복제합니다. 제2의 나를 만들고 심장이 망가지면 심장을 꺼내 이식하고, 간이 망가지면 간을 꺼내 이식 가능합니다. 물론 현실화하려면 심각한 윤리문제가 대두됩니다.
뇌까지 이식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듯 합니다. 뇌의 영역은 아직 미지수가 많다합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의 죽음까지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죄 아래 인간은 모두 흙으로 돌아가도록 정한(창2:17) 이치를 아무도 거스르지 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
성경에는 육체의 죽음만 있다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3가지 죽음을 말합니다. 첫째 영적죽음으로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를 말합니다. 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죄가없는 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 두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감각을 잃고 육적인 감각(五感)만을 쫓아 살게되었습니다. 이 상태를 영적죽음이라 합니다. 두번째 죽음은 이렇게 살다 육체도 늙어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된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죽음 후에 심판받아 영원한 유황 불 못에 떨어지는 죽음 곧 영원한 죽음입니다.
영국의 회의론자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그의 일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나는 내 앞에 다가오는 저 세상이 무섭다. " 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은 토머스 홉스와는 반대로 사망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사망에 대하여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또 사망을 의인화해 “사망아 너 까불지 마라!”는 식으로 호통칩니다. 55절을 참고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
56절은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사망이 죄를 쏜다고 했는데 쏘다는 벌이 쏜다는 표현입니다. 말벌에 쏘여본 적 있으십니까? 쏘이면 다음날 뒷목과 어깨까지 부어서 일주일 동안 목을 잘 돌리지 못합니다. 본문에 사망은 바로 이렇게 말벌이 쏘듯이 죄를 쏜다고 합니다. 어떤 죄를 쏩니까? 15:32b참고합니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사망은 육체의 쾌락을 쏩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한마디로 고상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는 인간이 그저 먹고 마고 즐기는 일에만 몰두 하도록 만듭니다. 사망이 쏘는 죄들로는 로마서1장24-31절에 정욕,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무정 무자비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즐기며 살다 무(無)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끝나면 즐길 만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는 삯이 있다고 하죠? 현실적으로는 영혼의 괴로움이 있고 마지막은 사망 입니다. 사망은 죄의 결과로 왔습니다.(창2:17, 롬5:12, 롬5:23) 죄가 없으면 사망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고 했는데요. 율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데 있습니다.(롬3:10) 다 죄인이기 때문에 율법 앞에 서면 악한자로 낙인찍힙니다.(롬7:7-13) 율법은 인간을 정죄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사망-죄-율법을 한 세트로 취급합니다.
3일만에 부활한 예수님
고린도전서15:1-11을 참고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었습니다.(고전15:3) 십자가에서 율법이 지적한 모든 정죄를 예수님이 우리 대신 다 받았습니다.(롬10:4) 그리고 죽은지 사흘 만에 부활합니다. 부활한 모습을 당시 적어도 513명에게 보입니다. 유대 율법에는 2명만 증인이 있어도 사실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513명의 증인이 있으니 부활은 사실입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없다.”고하는 악한 동무들이 있었습니다. (고전15:33) 이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는 현실주의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부활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고전15:36) 우리 주변에도 다 썩어서 흙이 되었는데 거기에 살이 붙어서 몸이 된다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증가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 된다고 합니다.
사람의 인체는 13가지 원소로 구성되었는데 사람이 죽어 흙에 묻히면 세균에 의해 다 분해되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다시 모아 부활시킬 수 있을까?하는 질문 합니다. 또 우주여행을 하던 사람들 중에 지구를 벗어 난 후 로켓 사고가 나서 폭발했을 경우에 시신은 공중분해하여 원소들이 온 우주에 떠다닐 텐데 어떻게 부활하겠습니까? 또 어떤 성도는 바다를 항해하다가 죽게 되면 시신이 물에서 썩어 성분들이 5대양에 흩어져 버릴 텐데 어떻게 부활될 것인가? 하는 질문도 합니다.
이런 자들에게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고전15:34) 롬4: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쪽으로 일합니다. 시편 139편16절은 하나님은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다 보았다 합니다. 에스겔서 37:1-10을 보면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살아나는 역사에 대하여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오대양 육대주 또는 우주 밖 어디에 있든 아무 상관없이 부활시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본문 15:12-19절까지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의 모든 요소가 다 헛것이고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이 반드시 있다고 설명 합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또 자신도 날마다 죽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20-54절까지는 부활을 땅의 기준, 썩어 없어지는 혈과 육의 기준으로 보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떤 특정 식물의 씨를 보면서는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할 수 가 없습니다. 씨만으로는 땅에 묻혀서 대지를 뚫고 올라오게 될 줄기와 입과 화려한 꽃과 달콤한 열매를 모릅니다. 부활 할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신령한 몸이 됩니다. 시공을 초월한 몸이됩니다. 그러니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 말라고 합니다.(고전15:33)
부활과 영생
57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를 주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합니다. 요한복음5:24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육적인 생각만을 쫓아 살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한 심판에 처해질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리고 죄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영의 감각을 갖게 됩니다. 육이 아니라 영의 생각을 쫓아 사는 상태가됩니다.
재림
본문에서 우리는 2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이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올 때를 고대하며 살아야합니다.(눅21:27, 고전15:52, 데전4:16) 신자들이 살아 있을 때 오면 휴거를 통해 육체 죽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납니다. 요한계시록22장20절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합니다. 사도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곧 오시옵소서!”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납니다.
창세기 19:26절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 롯의 아내가 뒤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기록이 나옵니다. 롯의 아내는 망해가는 소돔과 고모라에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히12장1절은 우리를 내리 누르는 무거운 죄, 우리를 얽어매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사망을 이김
두 번째 교훈은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본문에서 사망은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무엇을 쏜다는 표현을 섰습니다. 에베소서 6:16절에서는 이것을 마귀의 불화살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불화살을 막는 것은 믿음의 방패입니다. 부활 믿음이 사단이 쏘는 화살을 막습니다.
우리도 불화살에 맞아서 신음할 때가 많습니다. 소화라도 잘 안 되면 겁이 덜컥 납니다. 토끼겉은 아이들을 두고 떠나면 어떡 하나 하는 염려까지 갑니다. 두려움과 염려에 사로잡히면 생각과 마음이 마비됩니다.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 현상을 통하여 날아오는 어두운 세력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사망이 주는 화살에 맞아서 비틀거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설교원고(33)
성경참고구절
고린도전서15:55-57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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