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디모데
자 이제는 두 번째 인물인 디모데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1절로 가겠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디모데란 이름은 “하나님께 사랑 받는자”란 뜻입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신앙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그의 고향 루스드라에서 좋은 평판까지 들었습니다. 성품도 유순하고 책임감 있고 인정이 많았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 포털싸이트에 인기투표를 하면 신랑감 후보 1위에 3년 연속해서 올랐습니다. 사위삼고 싶은 청년 1위에도 올랐습니다.
우리 교회도 믿음으로는 네이버포털싸이트에서 1위할 후보들 많습니다. 청년 자매님들 다른데서베필을 찾지말고 제발 눈을 떠서 주변에 있는 디모데같은 형제들 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가정이 많이 탄생하여 인구절벽 시대 탈출에 기여하길 기대합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마케도냐로 떠나면서 디모데를 감독자로 세웠습니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는 40대였습니다. 그는 다소 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의 사역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디모데는 몇 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부끄럼을 잘 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어린 나이에 에베소 교회를 섬기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속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물만 마시지 말고 포두주도 조금씩 쓰면서 위장과 다른 병을 다스리라고 권면하기도 했습니다.(딤정5장23절) 어린 디모데는 거친 광야와도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해 나가는데 너무도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는 어리다고 업신여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나름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긴다고 섬겼는데 업신여김을 당할 때는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만 두고 루스드라 고향에 가서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짖고 조용히 포도밭이나 일구면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디모데의 사정을 잘 안 사도바울은 디모데 전후서를 써서 돕습니다. 오늘 본문 2장1절에서 바울은 그에게 그리스도의 군사임을 일깨우며 가장먼저 "강하라!"" Be strong!"하고 권면합니다. 강해야하는데 어떻게 강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강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강할 수 있는 세 번째 비밀을 배웁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은혜 안에 있을 때 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바로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최대의 요소는 죄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침윤에 빠지고 뒤로 물러나고 마음이 약해집니다. 죄는 사단의 올무에 걸리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는 먼저 피흘리기까지 싸우는 자세를 견지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넘어질 때도 가끔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이 죽을 죄인! 백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 나는 쓸모없어!”하며 너무 자책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힘 있게 오뚝이처럼 일어서야합니다.
사도바울의 권면을 받은 디모데는 진정으로 강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사도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동행하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고린도교회, 마케도니아, 에베소 교회를 훌륭하게 섬겼으며 로마황제 도미티아누스의 박해 때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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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고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
딤후1:7절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능력, 사랑, 절제의 마음을 줍니다. 두려움이 있다면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것을 간파하는 것이 싸움의 기술입니다. 신체적인 원인으로 불면증이 오기도하지만 사단이 생각을 폭포수같이 쏟아지게 하여 참못이루게도 합니다. 걱정, 염려는 일시적으로 기억도 지웁니다. 불안, 염려가 마음을 사로잡으면 작업 기억 용량이 현격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시험칠 때 아는 것도 생각이 안 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고 악령들 역사입니다.
불면증의 원인
악령에 현상의 예 중 우리가 불면증으로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마치 생각하는 기계가 된 듯 할 때도 있습니다. 저는 눕자마자 1분 안에 코고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습니다. 온갖 잡념이 머리를 지배하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낮에 사랑하는 고개님과 다투었던 생각, 어릴 때 장마 졌을 때 고기 잡다 흙탕물에 떠내려가다 죽을 뻔했던 생각,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 아이들의 장래 걱정, 지구의 종말을 어찌될 것인가? 이런 생각의 홍수 속에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도 합니다. 불면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악한 영의 역사입니다.
기억력 상실도 악령의 역사 일 수 있다.
악한 영은 기억을 잠깐 잃어버리게도 합니다. 얼마 전 제가 병원 가서 검진 받고 차에 탔는데 차키가 없어서 한참 찾다가 시동이 걸려 있었다는 실수를 한 적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시동 걸어놓고 차키 잃어버렸다고 한 참 찾았습니다. 치매일까요? 아마도 검진 받고 난 후이니까 혈압도 높고, 간수치도 높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 이러다 요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단기기억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꼭 이럴 때 지갑, 핸드폰 잘 잃어버립니다. 마귀는 염려를 심어 단기기억도 상실하게 만듭니다.
우리 학생들이 시험 볼 때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즈음 시험기간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터인데 강단에서까지 시험 예를 들어 미안합니다. 큰 시험만 보면 망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공부는 장기기억 장치에 집어넣는 작업입니다. 시험 볼 때는 그 기억을 꺼내 문제를 풉니다. 문제를 보면서 기억들을 조합하는 작업을 작업 기억이라 합니다. 그런데 불안, 염려가 마음을 사로잡으면 작업 기억 용량이 현격히 줄어듭니다. 그러면 아는 것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랬다 집에 가서 편안해 지면 다 생각납니다. 이때는 이미 버스 지나갔습니다. 악한 영이 우리 마음에 “시험 답안 마킹할 때 한 칸 내려 쓰는 실수하면 어떡하나? 빵점 맞으면 어떡하나?”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집어넣어 불안하게 많습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악령들의 역사한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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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탁 (디모데후서4:9-18)
시대 배경
본문의 시대는 AD67년경입니다. 사도 바울의 나이는 68세입니다. 이때 로마는 네로 황제가 다스렸습니다.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시절입니다. 네로는 한 마디로 싸이코패스적인 행동을 한 황제입니다. 로마시 대화재 사건을(AD64) 기독교인들이 일으켰다고 뒤집어 씌웠습니다. 죄없는 기독교인들을 체포해 가두고, 잔인하게 죽입니다. 네로는 기독교인들의 시신을 횃불 처럼 태워서 정원을 밝히고 파티를 했습니다. 네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반란군을 피해 노예의 집에 은둔하다 발각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네로황제에게 체포된 바울
사도바울은 네로 황제에게 긴급 체포되어 로마 지하 감옥에 갇힙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다 참수형 당 합니다. 참수형 시켰던 돌기둥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기둥 위쪽이 패여 있습니다. 우리가 도마를 오래 쓰면 칼자국으로 패이듯이 돌 기둥의 깍여 나간 흔적은 참수형을 많이 하여 난 장검이나 도끼 자국입니다.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 쓴 서신서가 디모데후서입니다. 본문은 디모데에게 전할 말을 다 쓰고 개인적인 부탁을 하는 부분입니다.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하는 바울
9절은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라고 부탁합니다. 너는 디모데입니다. 어서(best) 속히(quickly)오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를 얼마나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지 압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오라고 합니다. 디모데 바로 옆집에 살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오는 도중에 드로아 들러서 바울의 겉옷과 책을 가져와야합니다. 로마와 에베소 사이 거리는 240Km입니다. 당시 열악한 도로를 감안하면 성인 남성이 걸어서 10일은 걸립니다. 디모데는 바울 만나러 갔다가 네로에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시대 분위기가 그만큼 살벌합니다. 이것이 무서워 주위 사람들은 다 떠났습니다.(딤후4:16절) 그러나 디모데는 목숨 걸고라도 반드시 올 사람입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두터웠습니다. (딤전1:2, 18, 롬16:21 고전4:17 딤전 1:2-18 딤후1:2, 살전3:2) 핏줄보다 더 깊은 관계입니다. 딤후1:3절은 바울은 디모데를 위해 밤낮 기도하고 또 생각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왜 그토록 보고 싶어 합니까? 친목계 하려고 합니까? 서로 믿음 안에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딤후1:4) 또 디모데의 은사를 불일 듯 하게하려고 합니다.(딤후1:6) 그 목적이 복음역사를 잘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을 보면서“나의 주위에는 이런 디모데가 있는가?” 자문해봅니다. “영적인 디모데가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속마음을 100% 다 털어 놓을 수 있는 디모데가 있는가?” “허물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만나면 기쁨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목숨 걸고 달려올 수 있는 영적 디모데가 있는가?” 모두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또 우리는 서로서로 영적인 디모데들이 되어 주어야합니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영원까지 같이 가야할 운명 공동체입니다. “미우나”는 빼겠습니다. 다 고운 분들입니다.
두 번째 생각해 볼 것은 우리도 디모데를 키워야한다 입니다. 키워서 바통을 넘겨주어야죠? 복음역사는 디모데를 영적으로 낳고 키우고 세워서 계승하는 역사입니다.(딤후2:2)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아시안 게임이 한창인데요. 복음역사를 육상경기에 비유한다면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고 계주입니다. 혼자 열심히 뛰어가서 일등 하는 100터가 아닙니다. 바통을 넘겨주는 계주와 같습니다. 바통을 떨어트리거나 넘어지면 꼴찌합니다. 복음역사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디모데를 키우지 못하면 복음역사는 단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시지만 독자적인 행보를 하시지 않았습니다.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면서 바통을 넘겨받으셨습니다. (막1:9, 눅3:21, 마3:26) 침례요한의 역사를 계승하셨습니다. 우리도 디모데를 키워야하고 또 세워야할 줄 믿습니다.
데마, 디도, 그레스게
10절을 보십시오.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은 아주 특이하게 갔습니다. 데마입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바울을 내버리고 갔습니다. 우리 아리랑 가사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고 했는데요. 데마는 발병도 안 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마를 성경에 기록해서 세세토록 불명예를 안겨줍니다. 데마는 세상을 얼마나 사랑했던지 벼랑 끝에 있는 바울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데마가 떠난 일이 충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떠나도 데마만은 남을 것이다.”라고 여겼습니다.(참고구절 빌1:24, 골4:14) 심지어 어떤 분은 ”데마가 떠나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데마는 장을 지지며 떠났습니다. 데마 이름의 뜻은 “인기가 있다.”입니다. 인기 있는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은 대적해야지 사랑할 대상은 아닙니다. 못 생긴(인기 없는)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산을 지키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
12절을 보면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그레스게, 디도, 두기고는 바울의 파송으로 간 사람들입니다. 그레스게는 성장한다, 디도는 공경한다, 두기고는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세 사람 모두 이름 뜻이 좋으며 데마처럼 세상을 향해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 마가
11절 하반부에 한 사람 더 이름을 언급합니다. 마가입니다. 마가는 망치라는 뜻입니다. 망치인데 “큰 망치”란 뜻입니다. 저희 시골에서 큰 망치를 오함마라고 했습니다. 오함마가 뭔가 찾아보니까 일본식 발음입니다. 일본어로 크다는 “오”라고 하고 망치는 영어로 해머입니다. 해머를 일본어 함마로 발음했습니다. 오함마 잘 쓰면 유익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잘 못쓰면 무기처럼 쓰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현재는 마가를 복음역사에 유익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지금 유익하면 과거 무익할 때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언제죠?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고자할 때 바나바와 바울이 대판 싸우고 각자의 길로 가는 원인제공을 한 장본인이 마가입니다. 마가는 선교여행에 동행했다가 힘들어서 예루살렘 집으로 간 전적이 있습니다.(행 12:25; 13:5, 13). 그러나 회개하고 돌아와서 지금은 복음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유익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가의 과거 잘못한 행동에 대한 배신감을 계속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오픈 마인드가 있어야겠습니다. 비록 망치로 친 것과 같은 충격을 주고 떠났어도 언젠가 돌아오면 하나님의 유익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보에게 부탁한 것
13절을 보십시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드로아는 청년 유두고 사건이 있었던 도시입니다. 유두고는 말씀을 듣는 중간에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었는데 사도 바울이 다시 살린 청년입니다. 이 사건이 있었던 곳이 드로아입니다.(행20:9)
가보는 이때 집도 개방하고 짐도 맡아준 사람입니다. 바울이 어떤 책을 가져오라 했을 까요? 무협지는 아니었겠죠? 바울이 찾는 책은 손 떼 뭍은 신앙 서적이고 가죽 종이에 쓴 것은 구약 성경입니다. 겉옷은 염소 가죽으로 만들었고 밤에는 이불 대용으로 썼습니다. 로마 감옥이 추워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알렉산더에 대한 경계
14절~16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위기 상황입니다. 옆에 동역자라도 있으면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바울을 버렸습니다. 심지어 물어 뜯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인데 그를 주의하라 합니다. 주의하라는 “조심(ware)하다. 수비하다, 막다.(guard)”란 뜻입니다. 권투선수가 가드를 올리고 방어한다는 뉘앙스입니다.
물어뜯는다고 우리도 같이 물어뜯지 말라는 것입니다. 14절 하반 절을 보면 주님께 맡기라고 합니다.(참고:시편 62:12) 원수는 하나님이 갚아 주십니다. (잠 24:12;마 25:21-46;롬 2:6;고후 11:15;계 2:23;20:13). 바울은 떠나간 동역자의 허물까지도 그들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1세기 복음역사를 섬기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죽을 고비도 수도 없이 넘겼습니다. 개인적인 고질병도 있었습니다. 주석은 간질이나 안질로 봅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호텔이 아닌 추운 지하 감옥에서 순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 후서를 처음부터 읽어보면 과연 바울이 참수형을 당할 사람인가? 춥고 배고픈 지하 감옥에서 편지를 썼나? 의심할 정도로 내용이 밝습니다. 영광, 생명, 기쁨, 능력, 은혜, 평강, 사랑 이런 표현으로 가득합니다.(딤후1;1,2,4 딤후1:7) 부끄러워 하지 않음(딤후1:12) 아름다운 것(딤후1:14) 승리자의 관(딤후2:5) 화평(딤후2:22)이 나옵니다. 바울은 마치 제대를 내일 앞둔 말년병장 같습니다. 고난이 많았던 세상을 졸업하고 천국에 막 입성하려는 개선장군 느낌입니다.
고난 속에도 넘어지지 바울의 넘어지지 않는 신앙 비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본문17절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바울 곁에 서 힘을 주었습니다.(참고:행23:11) 힘을 줌은 원어로 “엔뒤나모오”로 “권능을 부여하다. 힘세게 하다. 강하게 하다. 견고하게 하다(롬4:20)”란 뜻입니다. 주님은 마치 쇠를 풀무에 담그면 담글수록 강하게 되듯이 바울을 강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 주는 목적이 말씀 전파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이 일을 마치기까지는 사자의 입도 막아 줍니다.
18절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 본문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추가 내용이 있습니다. “The Lord will rescue me from every evil attack and will bring me safely to his heavenly kingdom. To him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 예수님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강한 의지(The Lord will)가 담겨있고, 악들우 공격(attack)으로부터 구해 주며, 하늘 왕국(his heavenly kingdom) 으로 안전하게(safely) 인도한다는 단어입니다.
사도 바울을 주님께서는 고난을 이기도록 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고난 자체를 없애 주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을 넉넉히 이기도록 “엔뒤나모오”! 견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모든 악들(every evil)의 공격에서 구해주십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보면 적들에 둘러싸인 형국입니다. 사단은 순간순간 공격해 들어옵니다. 두려움, 염려, 부정적인 생각 등 무차별 공격을 가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런 사단의 공격에서 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국, 천국으로 안전하게 안착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이 주님께 모든 영광을 세세토록 돌립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부심,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누가 이 세상과 우주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아서 없애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듭니까?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또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할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방향을 틀어주는 것은 복음밖에 없습니다.(딤후1:10)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 복음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자부심 있어야 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부심, 정체성을 가져야 겠습니다.
두 번째는 복음 역사는 궁극적으로 천국입성이요. 상을 받기위해 섬기는 역사입니다. 천국은 영어로 그가 다스리는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이미 우리 마음에 이루어졌습니다.(눅17:21) 또 후에 들어갈 소망이 있습니다. 상은 딤후2:10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고 합니다. 구원자체가 상입니다. 딤후4:8절은 예비된 의의 면류관입니다. 하나님이 줄 상은 남과 비교하여 우위를 따지지않습니다. 개개인에게 주어집니다. 절대적이고 가장 좋은 상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상 받는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납니다. “천국에서 쪽박 차고 살면 어떡하나! 천국에서 나사로처럼 남의 집 대문 옆에 자리 펴고 앉으면 어떡하나?” 염려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성공이고 상입니다. 또 마10:42절에서는 “누구든지 이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했습니다. 마25:40절은 작은 자와 예수님을 동일 시 합니다. 냉수 한 그릇 섬김이 예수님을 섬긴 것과 같습니다.
오늘 예배에 온 것 자체가 냉수 한 그릇입니다.
끝나고 서로 손 맞잡고 따듯한 위로 인사 한 번 하는 것도 한 그릇입니다. 교회 오면 주보를 읽습니다. 그냥 읽지 않죠? 중보기도 하면서 읽습니다. 다른 성도를 위한 기도도 한 그릇 입니다.(딤전2:1) 그러면 오늘 도합 냉수 몇 그릇? 세 그릇 확보하였습니다. 주님은 상을 결단코(certainly) 잃지 않는다합니다. 예수님이 맹세했습니다.(마10:42) 교회 화장실 청소 냉수 5그릇입니다. 근거는 제 기준입니다. 저는 남자 화장실 청소 담당인데 잊기를 잘합니다. 잊지않고 열심히하여 꾸준히 냉수 확보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주와 복음을 위한 냉수 한 그릇 수고 잊지 않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섬김도 귀하게 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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