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에는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생명의 떡 된 예수님을 소개하며 주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음을 증거 하신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말씀은 어렵도다’(요 6장 60절)라고 수군거렸다. ‘어렵도다’는 이해가 어렵다가 아니라 원어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관용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쉽게 설명하셨다. 그러나 모인 군중들과 유대인들과 제자들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다. 요 6장 61절에서 ‘내 말이 너희에게 걸림돌이 되느냐’고 반문하신다. 걸림돌은 그들이 가는 방향에 말씀이 제동을 걸었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하고 걸음을 뗄 때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율법 지킴이다. 이들은 율법을 613가지로 세분화하여 지켰다. 613을 더 쪼개어 2,134가지로 늘렸다. 그런데 과연 이 율법의 조항을 하나도 어기지 않고 지켜 낼 수는 없었다. 이들은 옛 시대의 양식(구약)으로 영생을 얻으려 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걸림이 되었다.
예수님은 이어서 열 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 게로 가오리이까’하고 대답했다.(요 6:68) 이 뜻은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누구에게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는 고백이다. 베드로는 마치 복음의 진리를 다 아는 것처럼 대답했다. 그런데 그 고백 이후에 베드로의 행동은 손뼉 쳐 줄 수가 없다. 베드로는 주님께 우의정, 좌의정 시켜달라고 엄마 찬스를 이용해 인사청탁을 한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을 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예수님이 체포되어 갈 때 세 번이나 저주하며 부인했다. 심지어 부활한 주님을 만나고도 고기를 잡으러 갈릴리로 떠났다.
이런 이중적인 베드로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사람이 그만큼 약하다는 반증이다. 언제든지 상황이 변하면 주님을 헌신짝처럼 배반할 수 있다. 두 번째 베드로의 고백이 베드로 자신에게서 나오지는 않았다. 마 16:13~17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 이때 예수님은 그에게 복이 있도다 하시며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하신다. 베드로 뒤에는 그의 인생을 이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크신 손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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