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누가복음의 심장이다. 여기를 이해하면 누가복음 전체를 이해한 셈이다. 본문에서 부자는 아주 큰 부자이다. 종들까지 풍족하였다.
본문 비유의 시작은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고 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였다.
비유의 장소는 사마리아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전도 여행 중이었다. 당시 유대는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하여 땅도 밟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동행했음은 이들은 예수님께 대단한 관심과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 마저도 사마리아인 그것도 제일 하층민인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자 불평이 들었다.
본문에 “식사를 했다.”의 시제는 현재형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 과의 식사 자리는 습관적이고 반복적으로 했다는 의미다. 예수님은 이렇게 불평과 반감을 가진 이들에게 더욱더 심한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이 비유를 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속이 더 뒤집히고 분노마저 들었을 법하다.
그 분노하는 이유는 이렇다. 당시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상속재산은 장자가 두 배고 나머지로 동생들이 나누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반드시 죽어야 재산소유권, 관할권, 처분권이 생겼다. 율법 사회는 엄격하여 즉결 심판이 가능했다. 구약 율법에 완악하고 패역한 자녀는 성 밖으로 나가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재산을 가지고 간다는 설정이 이들을 분노케 했다. 당시는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재산을 처분하면 살인자로 취급했다. 탈무드에는 부정한 돼지를 치는 자는 저주를 받았다. 둘째 아들은 사마리아인의 종이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부정한 돼지 치는 자가 된 것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당시 400만 명 정도가 디아스포라로 세계에 흩어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이방 땅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반드시 돕는다. 둘째 아들이 이런 도움을 받지도 못한 것은 그만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한 것이다. 동족 마저도 버린 사람이다.
본문의 비유 앞에는 2가지 비유가 연속하여 나온다.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그중 하나를 잃었는데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찾아서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는 비유다.
또 하나는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아내서 또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는 내용이다. 10드라크마는 신랑이 준 소중한 혼숫감이다. 한 개를 잃어버린다면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 이 비유 후에는 꼭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는 말씀을 덧붙인다.
본문 돌아온 탕자의 비유는 세 가지 비유와 한 묶음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점층법, 점강법이라는 수사를 쓰신다. 처음에 짐승에서 돈 그리고 사람을 비유하신다. 숫자적으로도 100마리 중 1마리, 10개 중 한 개, 두 명 중 한 명으로 비유한다. 이렇게 함으로 찾은 자의 기쁨을 강하게 표현했다. 잃어진 양도, 드라크마도 스스로는 어쩔 수 없는 처지다.
둘째 아들이 오해를 살 소지는 “스스로 돌이켰다. “는 표현이 있다. 이는 돌이킨 주체가 아들 자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마치 거울로 자기 모습을 비춰보듯이 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회개는 성령님 곧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가 먼저 임해야 가능하다.
본문의 탕자는 바로 우리를 상징한다. 탕자는 풍요로운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류를 대변한다. 이미 구원받은 신자에게 본문을 적용한다면 하늘의 약속된 풍요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실에 것을 달라고 매달리는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한다.
본문 20, 28절에서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두 번 다 집 밖으로 달려 나간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도 제목을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비유로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잃은 양도, 잃은 드라크마도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는 자의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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