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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유머가 담긴 예수님의 말씀 10 가지

by 명주(明珠) 2024. 8. 27.

1.낙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 낸다.
 
마태복음23장24은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행실에 대해 또다른 형태의 비판이다. 하루살이와 낙타를 극적으로 대비시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한다. 하루살이는 팔레스타인 기후에서 흔한 곤충(昆蟲)이며 가장 작다. 하루살이는 담근 포도주통에 자주 빠진다. 이에 사용 전에 채로 걸른다. 하루살이는 부정한 곤충이다. 낙타는 당시 가장 몸집이 컸다. 역시 부정한 동물이다. 예수님은 부정한 곤충과 동물을 비유로 들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비판한다. 더욱이 그들이 삼킨 낙타는 곧 그들의 무한정(無限定)한 탐심과 육체적 향락 및 무절제한 죄악을 암시한다.
 
2.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마7장6절에서 돼지는 배교자를 맘시한다. 이는 거짓 일군들을 가리킨다. 바울도 거짓 일군을 “돼지”라고 하였다(빌 3:2), 거짓 일군은 먹는 것과 대접 받는 것을 탐했다. 돼지가 보화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것인 줄만 알고 물고 찢는 것과 같이 거짓 일군들은 복음이 보화인 것을 알지 못한다. 진주는 진리나 지혜로운 말을 뜻한다. 당시 문학책에 “미련한 자에게 지혜로운 말은 돼지에게의 진주니라”고 하였다. 진주는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이다.
 
 
3.형제의 눈에 티는 보지 말고 네 눈의 들보는 보라
 
마7장3에서 티는 작은 것이고 들보는 큰 것이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죄이다. 남을 정죄하기 좋아하는 사람세게는 자신도 여러가지 다른 죄과들이 반드시 있다. 털어 먼지 안나오는 사람이없다.
 
4.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이 치르게 하라
 
마8:22 말씀은 제자 중 하나가 예수를 따르기 전에 먼저 부친을 장사하게 해 달라는 요청에 대한 답이다. 본문에서 죽은 자들은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없다. 처음에 나오는 죽은 자들은 그 사물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세상에 대하여 죽고, 율법에 대하여 죽고(롬 7:4),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뜻이다.(롬 6:11) 곧 세상이나 율법, 죄 등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본문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육적인 죽음을 맞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제자의 우유부단함을 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5.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마15:14은 당시 널리 알려진 속담이다. 진리를 분간치 못하는 영적 ‘소경’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그들은 자신들만 죽음의 길을 걸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멸망케 하는 자들이다. 영생의 삶으로 인도하는 예수님만이 그리고 그 예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진정한 인도자이다. 구덩이는 들짐승을 잡기 위해 들판에 파놓은 웅덩이다. 이 ‘구덩이에 빠지리라’는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불신케 하여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함으로써 함께 파멸당할 운명이 되게 하는 것이다.
 
6.잔과 접시의 겉만 깨끗이 닦고 속은 썩었다.
 
마23:25은 당시의 랍비들에 의해 제정될 의식적(儀式的) 정결예식과 관련있다. 여기서 ‘잔과 대접’은 그릇을 통칭(通稱)한 말이다. 이것을 정결히 한다함은 곧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표면적이고 가식적인 율법적 청결을 빗대었다. 실제로 잔과 대접을 깨끗하게 하는 이유는 종교적 의식(儀式)보다는 음식을 깨끗하게 담기 위함이다. 안팎을 모두 깨끗이 해야 되지만 우선적으로 깨끗이 해야 할 부분은 그릇 안쪽이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릇 안을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6.묵은 포도주를 마신자는 새 포도주를 마시려하지 않는다.
 
눅5장39은 옛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옛 것을 원하고 새 것을 배척하는 경향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항상 묵은 포도주만 마시던 사람들은 새 포도주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묵은 포도주만을 고집하며 새포도주를 무시하며 거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낡은 율법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진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전한 새로운 영생의 진리를 느끼지를 못했다.
 
7.남에게 보이려고 성구함을 크게하여 달지 말라.
 
마23장5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행위 전체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거짓임을 선언한다. 그들은 은밀히 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배우같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사람의 영광과 찬사와 인정을 더 사랑하는 자이다(요 12:43). ‘경문’은 ‘보호물’, ‘호신패’(護身牌)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기 이후부터 이것을 차고 다녔는데 처음에는 율법을 기억하고 경건에 힘쓸 목적이었다. 경문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율법을 써 넣은 한 조각의 고급 피지(皮紙)를 담은 사각형의 상자였다. ‘경문’의 크기는 주로 랍비들에 의해 규정되었지만 극단의 경건주의자들(사실은 외식주의자들)은 자신의 경건을 과시할 목적으로 크고 눈에 잘 띄는 경문을 만들었다.
 
8.회칠한 무덤
 
마23장27절에서 무덤은 들판이나 길 옆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무덤을 가리킨다. 우기(雨期)가 지난 유월절 전 아달월 15일에 회가루를 뿌려 하얗게 칠한다. 그 이유는 치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길가는 사람들(특히 유월절 순례자들)이 쉽게 식별하여 피해가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의해 시체나 무덤을 만진 사람은 7일동안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민 19:16). 이를 당시 대제사장의 위선에 대하여 비판한다. 회칠한 무덤’은 그들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죄악성은 뒤로 하더라도 사람만을 의식하는 그들의 허영적이고 위선적인 신앙 형태이다. 주검이 안장되어 있는 유대인의 무덤 속에는 송장의 썩는 냄세와 뼈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숨겨진 실체요 내면의 부정이었던 것이다.
 
9.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는가?
 
마7장16절은 가시와 엉겅퀴는 인간이 범죄한 결과로 나타났고(창3:18) 죄악의 상징이다. “포도”와 “무화과”는 의와 선을 비유한다.
 
10.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장송곡을 불러도 울지 않는다.
 
마11:17에서 ‘피리’와 ‘춤’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헬라, 로마인들에게서도 결혼식과 같은 잔치집에서 기쁨을 표하는 방식의 하나로 짝을 이룬다. 이 당시 아이들은 어른들을 모방(imitation)하여 결혼식 놀이를 했다. 곡하고 가슴을 치는 것은 장례식의 풍습을 말한다(23:30, 겔 24:16). 즉 아이들은 처음에는 결혼식 놀이를 하며 피리를 불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그 놀이에 참석하여 어른들처럼 춤을 추라고 권유하였으나 동무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하고 같이 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놀이를 바꾸어 장례식 놀이를 하며 애곡(哀哭)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들은 이 애곡에 맞추어 가슴을 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다. 이는 철저한 무시(無視)요 무관심과 불일치를 암시한다. 예수님은 구원과 해방과 기쁨의 복음을 전파해도 반응이 없는 무감각을 지적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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