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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빛고운구슬-명주(明珠)
성경말씀 의미와 교훈

하나님, 인간, 교회, 예언

by 명주(明珠) 2024. 8. 26.

1. 교회 필수 교리

성경에 기초한 교회

1세기 초대교회의 형태는 집교회였다. church라는 영어단어는 Lord's house의 뜻이다. 가정교회는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이다. 여기에 성경적인 침례와 주님의 만찬을 행하는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이다. 교제 안에 형제 사랑이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유명령한 2가지는 침례와 만찬(성찬)이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고 유기체이다. 교회는 지역적이면서도 시공을 초월한 가치도 가진다. 온 땅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조직은 사람이 임의로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유기체는 사람이 만들 수 없다. 하나님만이 만들고 키운다. 성경적인 교회의 첫째 조건은 구원의 복음으로 거듭남이 확실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성경 중심적이어야 한다. 거듭난 성도는 반드시 성경을 통하여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기초를 성경의 기초위에 세워야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시가 바로 성경이다. 성경에 모든 답이 있다. 거듭남의 증거도 성경 대한 반응과 신뢰이다. 거듭난 사람은 말씀의 젖을 사모하며 성경이 완전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세 번째 침례와 성찬의 실행이다. 끝으로 사랑이 넘쳐야 한다. 교회는 주님이 함께하는 가족의 개념이다. 주님은 두 세사 람이 모이는 곳에 함께 있겠다고 하셨다. 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 형제사랑이다. 형제사랑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많은 교리, 지식이 없어도 형제사랑만 있으면 된다. 형제사랑은 환란의 때에 더욱 빛난다. 환환란이 닥칠 때 서로의 형제 사랑이 확인된다. 환란과 핍박 안에서 속에 있는 보배가 나온다.

기도

기도란 말을 성경에 처음 사용한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기도할 때 사용했다. 따라서 기도는 간구란 말로 바꾸도도 된다. 오늘날 기도가 종교적인 의식처럼 된 것은 문제가 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다. 기도가 종교화 습관화되면 안된다. 기도해 놓고 무엇을 기도했는지조차 기억할 수 없다면 문제이다. 전도서5장2절에는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기도는 습관적으로 하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간절함과 절실함의 표현이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늘 믿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교통했다. 기도 할 때만 교통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안 해도 더욱 친밀한 관계가 유지된다.

주님이 만찬(성만찬)

성만찬은 어린양의 혼인 만찬의 예표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사건이다. 계시록3장20절을 참고한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 man hear my voice, and open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sup with him, and he with me)” 본문에서 교회가 문을 열면 주님이 들어 오셔셔 함께하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이 함께하심의 증거가 성만찬의 시작이다. 성만찬은 신랑되신 예수님의 신부로 우리가 설 때까지 행하여야 한다.

침례

침례는 장례식이고 방식은 온 몸을 물에 모두 담그는 수장의 형태가 성경적이다. 침례를 통하여 현재의 내가 죽는 의식을 행한다. 물은 어머니의 양수를 상상할 수도 있다. 침례는 나의 옛 생명이 죽었다고 믿음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음에 대한 선언이다. 실제는 아니지만 우리는 영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음을 안다. 육체는 그대로인데 영이 거듭났기 때문에 성도는 헛 갈리기가 쉽다. 죄성을 품고 있는 현재의 육체가 완전케 될 때까지는 유예기간이 있다. 하나님은 이 기간동안 다음 세상을 준비하도록 하셨다. 왕도를 갖출 수 있는 육체가 되도록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2. 하나님과 인간 교리

하나님의 섭리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의 하루의 삶은 이유 없이 온 일들이 없다.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올 것이 온 것이다. 성도의 삶의 우연은 없다. 모든 것이 필연이다. 생활 속에서 뜻한 바가 안 될 때도 잘 될 때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길 원하신다.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위해 연단도 하신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것도 장차 영광을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로마서8:18절에서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고난을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고 이겨야 한다.

인간의 창조 목적

창세기2:17절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령(commendment)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목적은 명령에 순종할 때 제사장이요 왕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벧전2:9)

영원과 새 창조

영원은 everlasting이다. ever 항상이란 뜻이고 last는 지속된다는 의미다. 영원에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시간을 창조하셨고 십자가를 기준으로 새 창조가 이루어졌다. 구약은 신약교회의 그림자요 예표이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모든 것이 성취 되었다. 십자가의 의미는 첫 창조에서 새 창조로의 교체란 의미다. 마치 애벌래가 나비가 되듯이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 구약시대는 육체, 물질의 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영의 시대이다. 영은 우리의 중심에 있다. 하나님은 영 안에 교제하고 대화하고 통하기를 원한다.

인간의 특성

사람은 산 혼(living soul)(창2:7)으로 창조하셨다. 혼적인 존재의 특성은 독립적이고 자유의지를 가진 것이다

고난의 의미

현재 성도의 삶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가는 시간 속에 있다. 현재는 그 과정이고 절차이다. 따라서 성도의 삶은 힘들고 고난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이 고난은 하나님의 시험의 의미도 있다. 부자, 가난한 자, 기득권자, 특권층 모두 내적으로 고통하며 신음하며 살아간다. 현재 사단이 지배하는 삶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궁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완전한 곳이 별도로 있다. 성도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 세상에서 좋은 것을 원없이 누리면 오는 세상에서 누릴 것이 없을 수 있다. 성도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누리지 못한 것은 오는 세상에서 보상을 받는다. 눅16장 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현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이다. 그는 다음 세상에는 더 이상 누릴 것이 없었다. 거지 나사로는 누릴 것이 없었다. 그는 다음 세상에서 위로를 받았다. 사도바울은 세상의 기득권을 얼마든지 누릴 능력과 권리가 있었다. 바울은 뼈대 있는 가문이었다. 바울 율법박사로 부유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자신은 만물의 찌꺼기와 같은 삶을 택했다. 우리의 가치관, 생각, 습관, 생활방식도 바울의 자세를 배워야 한다. 오는 세상을 대비하는 자세를 갖어야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누리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누리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누려야 한다. 현 세상을 통하여 우리는 오는 세상에 대해 미리 맛보기를 할 수 있다. 현재도 이러할 진대 하나님의 완성품인 오는 세상을 얼마나 더 좋을 까 늘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 있는 것이 전부인 양 불신자들과 똑같이 누릴 것 다 누리는 삶은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

3. 요한계시록 이해를 위한 교리

세대주의 입장에서 본 계시록

계시록은 결론의 책이다. 창세기는 원인의 책이다. 계시록은 결론이며 씨앗을 거두는 책이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계시록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즉 구약에서는 다니엘, 신약에서는 요한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셨다. 계시록은 마치 차광막을 설치하여 잘 안 보이게 만들었다고 상상하면 된다. 주해 작업은 이 차광막을 겉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성경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성도는 우리 안에 있는 진리의 영을 의존해야 한다. 요한1서에는 기름 부음이 우리를 가르치실 것이다란 말씀이 있다. 진리의 성령이 우리의 교사가 되어서 인도하신다.

창세기에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으로 성경의 흐름을 파악

계시록의 위치는 끝이요 결론이다. 결론을 알려면 서론을 알아야 한다. 서론은 창세기에 있다. 창세기 제목은 Genesis이다. 게네시스는 마태복음 1장1절 Generation과 연결한다. 예수그리스도의 세대란 뜻은 예수님의 족보이다. 창세기는 창조의 기록이 아니다. 창조기록은 1장에만 나온다. 성경을 주신 목적은 사람의 역할과 의무 곧 영어로 Generation 혹은 Generator를 알려 준다. 영어의 뜻은 생성, 발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발전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졌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아담이 자유의지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가 generator(생성, 발전)된다.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성, 발전이 달라진다. 선택에 의해 Family가 결정되고 달라진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그리스도의 Family요 믿음을 통해 거듭난 사람들의 list이다. 계시록의 제목은 the revelation of saint john the divine이다. divine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뜻이기 보다는 예언자란 뜻이 있다. 따라서 계시록은 예언자 성도 요한의 계시이며, 구약의 대예언서 소예언서가 있듯이 계시록은 신약의 유일한 예언서이다. 계시록은 현시점에서 장차 일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계시록은 성취되지 않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사건을 기록한 책이다. 계시록의 내용은 교회 중심이다. 교회가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교회가 칭찬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가 기록되어 있다.

다니엘서의 이레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은 결국 바벨론에 망하고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포로 생활이 예레미야25장11,12 예레미야29장10절에 예언되었다. 하나님은 포로 기간을 정해 놓으셨는데 70년이다. 이 기간은 이스라엘이 징계 받는 기간이다. 여호야킴 4년 BC605년에서 BC536년에 다니엘이 보니 다니엘서 9장을 기초로 68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예언한 70년 중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포로생활 끝나기 까지 2년이 남은 시점에서 앞으로 일어날 70 이레를 계시해 주셨다. 1이레는 7년을 말한다. 70이레이면 490년이다. 하나님은 490년 동안 하실 일을 다니엘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70이레를 세 단계로 보여 주신다. 첫째 7이레 두 번째 62이레 그리고 세번째 1이레는 봉해두셨다. 69이레의 시작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때부터이다. 이날이 BC445년 3월 14일이다. 69이레를 날로 계산하면 69*7*360=17만 3천 8백 8십일이다. 1이레는 다니엘에게 계시하지 않고 봉인해 두셨다. 1260일 42날 은 각각 삼년반을 의미한다. 합하면 7년이다.

금 신상

단7장에 금 신상이 나온다. 금 신상 느브갓넷살을 상징한다. 원어로는 느브간넷짜르 인데 느브는 신을 짜르는 황제를 뜻한다. 이름의 뜻은 느브신이 황제를 보호한다는 의미이다. 신상의 머리는 금이다. 금은 바빌론 제국을 의미한다. 금은 가장 좋고 화려하다. 실제 바빌론문화는 금같이 화려했다. 문명의 기원이 대부분 바빌론에서 기원한다. 기하학, 점성술, 물리, 화학 모두 여기에 기원을 둔다. 신상의 몸통은 은이다. 은은 금보다 못하다. 몸 통의 두 팔은 메데, 페르시아 제국을 상징한다. 메데는 현재 쿠르드족을 말한다. 바사는 페르시아이다. 허벅지는 놋이다. 놋은 은보다 못하다. 놋은 알렉산더 제국을 상징한다. 이 제국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제국을 말한다. 두 다리는 철과 진흑이 섞어 있다. 철은 놋보다 떨어지지만 강하다. 이는 막강제국 로마를 상징한다. 두 다리는 동로마와 서로마를 갈라진 것을 말한다. 나머지 발과 열 발가락이 있는데 이부분은 학자들 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처음 EC로 보았는데 25개국으로 늘어 났다. 경제 공통체란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세계 정부가 10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진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단2:43절에서는 뜨인 돌이 내리쳐 신상 전체가 무너진다. 주님의 재림직전에는 모두 흩어져서 왕국을 이루지 못한다.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세대주의

역사적 전 천년주의와 세대주의는 예수님의 재림 후 지상에 천년왕국이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나 교회가 환란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는 점에서 의견이 나뉜다.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환란 통과설을 세대주의는 환란 불통과설을 주장한다. 환란을 통과 한다는 입장에서 환란 전 휴거론의 모순은 하나님의 공의에 모순이 있다고 본다. 환란통과 없이 공의가 성취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확인하지 못한다. 성경의 전체구조는 대환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대환란의 때에 하나님의 공의가 성취된다. 예수님께서 결산하는 날이 7년대 환란이다.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고 인간의 악행에 대하여 다 보응하신다. 7년대 환란은 주님의 날이다. 교회는 환란 가운데에서 이것을 목격해야 한다. 계6장11절에는 초대교회 또는 중세 암흑시대에 순교했던 혼들이 계속항의를 한다. 원수를 갚을 때가 언제냐고한다. 하나님은 순교자의 수가 채워지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신다. 이것을 볼 때 원수 갚을 때가 7년 대환란이다. 환란의 때에 순교가 한 번 더 있다. 동료 형제들과 종들이 순교 당하여 그 수가 채워질 때가지 기다려야한다. 계시록에는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아이를 낳는다고 한다. 해산의 고통에 해당되는 것이 7년대 환란이다. 출애굽 시 10가지 재앙이 있었을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재앙을 목도했다. 본문도 7년 대환란 통과설의 그림자이다. 환란통과의 첫 번째 증거 계16장12절에는 여섯째천사가 대접을 붓고 난후 15절에서 보라 내가 도둑같이 오리니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17절 일곱째 천사가 대접을 쏟아 붙기 전 사건이다. 이것을 보면 환란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인데도 주님의 공중재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대환란 전에 주님이 공중재림하셔서 교회가 휴거한다는 것은 여기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두 번째 마태복음 24장29절 그날을 환란 직후 곧 환난이 끝난 시점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렸다. 30절에서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겠고...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큼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고 31절에서 그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기 천사들을 보래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의 네 바람으로부터 함께 모으리라 하셨다. 이와같은 표현으로 데살로니가전서4장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되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한다. 또
고전15장 52“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변화되리라, 나팔소리가 울리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일으켜지고 우리도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은 영어로 the last trump 이다. 마24장31절 큰 나팔소리는 “great sound of a trumpet" 데살로니가전서4:16절의 하나님의 나팔”the trump of God"이다. 계11장15절“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되 이 세상왕국들이 우리 주님과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으니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고전15장52절의 마지막 나팔과 계시록의 7나팔 중 마지막 나팔은 같은 나팔이다.

천년왕국

전천년설은 천년왕국 전에 재림이 있다. 후천년설은 천년 후에 재림이 있다. 이 이론은 어거스틴이 정립했다. 무천년은 주님이 부활 한 시점부터 천년왕국이 시작으로 본다. 이 이론은 칼빈이 정립했다. 지금 현재가 천년통치 기간으로 본다. 현 기독교가 세상을 정복하는 과정이 천년이다. 기독교문화 혁명도 이런 사상에서 나왔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세계를 정복하자. 선교회의 비젼도 여기에서 나왔다. 계20장에서 6번에 걸쳐 천년왕국이 언급되는데 문자적으로 천년이지 결코 상징이 아닌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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